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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동 주민자치회에서 5060 인생학교 글쓰기 교실이 열렸다. 마을자치회 간사 이재희(중앙 소개자) 님과 민선희 활동가가 전체 내용의 진행을 함께 맡아 진행해 주었다.마장동, 5060인생학교 글쓰기교실지난 6월 28일부터 7월 19일까지, 마장동(동장 김평선) 주민센터 3층 다목적실에선 5060 인생학교 '글쓰기' 수업이 열렸다. 마장동주민자치회(회장 김영진)가 주최한 주민자치활동 지원사업의 하나. 5060인생학교는 은퇴를 앞두거나 생애 전환기를 앞둔 주민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만남을 통해 삶의 활력을 찾도록 돕는 프로그램. 당시 참여자들의 글을 마련해 싣는다. 글을 통하여 '성하의 여름'을 느끼고, 각기 지역의 의미도 되찾아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시길 빈다. - 편집자 주1. 비오는 날- 빈대떡, 꽃모종, 까만 가마솥 보리볶음 생각나어릴 때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자랐다. 비오는 날에는 친구들과 봉숭아꽃과 다양한 꽃을 모종하여 심고 나면 마음이 뿌듯하였다. 비 오는 날이면, 또 어머니께서 부엌 까만 가마솥에 보리를 볶아 주셨다. 여름 방학때 친구들과 수영을 하며 간식으로 먹은 기억이 난다. 내 고향은 신안군 흑선면 사리인데, 대흑산도 소재지이다. 마을 앞바다에 작은 섬들이 나란하게 자태를 보이는 곳. 거기서 모래 백사장에서 맘껏 뛰놀고 수영한 기억들이 이번에 제주여행 모래 백사장 여행 할 때 생각났다. 비오는 날에는 빈대떡을 붙여 아이들과 간식으로 부담 없이 먹은 때도 종종 생각난다!- 박연아 / [대흑산도서 나고, 현재는 청계천 마장동 거주]   2. 아버지와 은어- 땡감 떨어진 길에서 어릴 적 추억에 잠기다       오늘 아침에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동사무소로 끌려가다시피 해서 같이 가게 되었다. 왜? 5060 건강체크 프로그램 받기 위해서다. 가는 도중에 동네 길 옆에 감나무에서 어린 땡감이 요즘 태풍에 떨어졌나 보다. 나는 그 땡감을 보는 순간 옆에서 같이 걷는 아들에게 -이 땡감을 보니 내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아버지 왜요?-음, 7월쯤 되면 한여름이잖니. 그때 이 땡감 주어다가 짓이겨서 집 부엌에서 재를 같이 섞어서 냇물에 푼단다.-왜요? 이종수-7월쯤 날씨가 30도 이상이면 냇물도 미지근하지. 그때 이 땡감을 푸는 거야.-무엇 때문에요? -음. 사실은 냇물에 은어라는 물고기가 한참 크고 있지. 그것을 잡아 회쳐 먹고 기름에 튀겨먹어도 아주 맛있단다. 왜냐하면 은어 고기는 비린내가 안 나고 담백하단다. -아버지 다음에 우리 같이 해봐요. 재미있겠어요.-그래 한번 기회를 보자꾸나. 우리는 동사무소에서 혈당과 혈압체크하고. 집으로 오는데 소낙비를 듬뿍 맞으며 집에 왔다. - 이종수[삼척이 고향, 마장동은 제2의 고향]  3. 마장동 굴다리- 여름 물난리 속, 따뜻한 이웃들 정김창호마장동에는 도선사거리에서 마장역 가는 방향으로 굴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위로는 경원선이 지나가구요. 내가 중학교 다닐 때쯤 지금처럼 비가 많이?오면 굴다리가 물에 잠겼습니다. 어른 허리 높이쯤? 되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려면 그 길을 통과해야만 했지요. 그렇게 물구경만 하고 있는데 주변에 몇몇 총각(?)들이 어디선가 큰?스치로폴 판대기 같은 것들을?가져와서?학생들과 사람들을 태워 날랐습니다. 누구 하나 물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건넜고 우리들은 그 모습을 꽤나? 재미있게 구경하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가, 박완서 님의 청계천 묘사 중?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식간에 펼쳐진 그 장면들은 어렵지만 참 순수했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김창호[마장동서 나고, 자라 지역일까지 맡고있다]  4. 토렴, 알알이 스며드는 맛- 마장동 식문화의 정수라고 할 국밥집 토렴 마장동은 김영진을 설명하고 포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브랜드이다. 마장에서 태어나서 지금껏 마장에서 살고 사업하고 있는 기본 뼈대가 있다. 또한 나에 하루 24시간이 상당수 마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마장동에는 청계천이 있고 청계천 하류 1.6km를 흐르고 있다. 마장 청계 주변에는 1930년대부터 야채시장이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야채 시장 주변에 하나 둘 씩 국밥집이 생겨났다. 설렁탕 원조라고 티브이에 나온 옥천옥, 우거지가 잔뜩 들어간 선지해장국이 유명한 대중옥, 간판도 없이 운영하는 갈비탕 전문 금호식당, 청계천 지류인 용두천에 곰보추탕 등 식당들이 즐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소설 '왕십리' 속에 주인공인 준태가 자주 가는 식당이 바로 '대중옥'이었다. 청계천에 자리를 잡은 식당들의 특징은 24시간 영업을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술꾼들이 어디선가 술을 먹다가 새벽녘에 성업한 곳을 찾아오는 곳이 바로 청계천 국밥집이었다. 마무리로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곤 했던 곳들이다. 대중옥에는 우랑(숫소의 정낭)과 송치(암소 배 속에 든 새끼) 등 다른 곳에서 팔지 않는 독특한 메뉴가 있었다. 또한 통 미꾸라지를 통째로 걸쭉하게 끓여내는 서울식 추탕도 있었다. 마장동 국밥집들에 두 번째 공통적인 특징은 '토렴'에 있었다. 밥이나 국수 따위에 따뜻한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며 데우는 방식을 토렴이나 한다. 이런 토렴을 하려면 육수가 하루 종일 끊고 있어야 가능했다. 김영진밥은 미리 지어두면 찬밥이 되기 마련이고, 이를 따뜻하게 만들어 먹기 위하여 찬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밥을 따뜻하게 만들어 손님에게 내는 방법이 바로 토렴이다. 이렇게 토렴하면서 국물로 여러 차례 밥을 덥히므로 밥을 넣고 끓인 것에 근접하게 되어 따뜻한 국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쌀밥 낱알마다 국물이 배어들게 되므로 밥 자체가 맛있어지게 된다. 토렴에 횟수를 더 많이 반복할수록 국밥은 더욱 맛있어진다고 한다. 그릇에 밥을 담고 뜨거운 장국으로 토렴한 후 그 위에 고기와 달걀 지단을 얹으면 하나의 국밥이 완성된다. 한마디로 토렴은 국밥집 주인장이 손님에게 내미는 첫 인사이자 정성이라고 볼 수 있다. 노련한 주인장은 때로는 토렴을 하면서 손님과 인사로 말도 붙인다. 토렴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국밥 맛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을 보면 토렴이 상당한 솜씨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관계에서 나오는 토렴 맛에 끌려 수십 년간을 단골로 찾아가고 그 맛에 내 입에 인이 박여서 지금껏 나 역시 찾아가고 있다. 토렴의  역사는 이랬다고 한다. 배고픈 사람이 끼니를 요구할 때, 집 안에 새로 지은 밥이 남은 게 없고 먹다 남은 보리밥을 줄 때가 있는데, 그땐 뜨거운 장국으로 토렴해서 주는 게 없는 사람에게 베푼 최소한 도리였다고 한다. 잠시 마장동과 청계천 국밥 토렴을 생각해보았다. 토렴은 수고이고 정성이고 솜씨이다. 우리네 사람 관계도 토렴처럼 때로는 소통 안되는 사람들과도 계속 반복적인 시도를 하는 수고를 하고 그것이 솜씨로 발휘되어서 차가운 관계가 뜨거운 관계로 변화했으면 좋겠다.- 김영진[4대째 마장동서 살고 있는 본투비 마장동김씨]5. 서촌과 북촌- 화초 혹은 잡초에 대한 단상며칠 전 종로구 옥인동, 속칭 서촌이라고 불리는 동네로 사진 촬영을 갔었다. 오래된 가옥들과 콘크리트건물들을 분류하여 구분하는 듯 얼히고 설킨 전깃줄로 어지러운 전봇대들이 우뚝 서 있는 곳이었다. 촬영 테마와 소재를 생각하는 와중에 눈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골목길변 옛가옥이든 현대식 빌라든 대문과 입구에 내방객을 환영하는 듯 놓여져 있는 화분들과  담벼락과 골목길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나온 잡초들이었다.문득 일년여 전에 돌아보았던 북촌 골목길이 생각났다. 그곳 옛한옥들은 거의 다 육중한 대문을 갖고 있던 것 같은데, 한결같이 잠겨있었고 문앞에 화분이 나와 있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벽과 벽 사이 골목길은 매일 청소하는 듯 깨끗하여 그 흔한 잡초들 또한 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북촌과 서촌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물론 화분과 잡초를 볼 수 있냐 없냐의 차이가 계기가 되었지만, 그것으로 각기 동네에 사는 이들의 성향 차이까지 확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예로부터 북촌에는 양반사대부들이 많이 살았고, 서촌에는 상업과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어쩌면 거주 인적 구성원의 특성 상 북촌은 내부지향형이고 서촌은 외부지향형에서 오는 세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북촌은 유무형의 자산을 지키고자하였고 서촌은 화합과 조화를 중시하다 보니 개방형 마인드 표시로 대문앞에 화분을 두고 그리고 자연상태의 잡초를 방치함으로서 내방객들과 가질 수 있는 긴장과 경계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서촌인들에게는 적어도 화초와 잡초를 구별하여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것은 아닌 듯하였다.화초와 잡초.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싶진 않다. 식물 존재 자체적으로는 실제 아무 차이가 없다. 단지 사람이 설정하고 규정한 실용적인 관점에서 구분되는 것뿐인 것 같다. 사람 손을 타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반려견이 주인에게서 버림을 받게되면 천덕꾸러기같은 유기견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김석한적어도 서촌에서는 화초에 비해서 못생기고 화려하지 않지만 생활공간 한 곳에서 버젓이 생생한 자태로 서촌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구태여 잡초라고 분류하여 부를 필요가 없는, 또 하나의 이쁜 생명체일 뿐이다.화초도 마냥 방치하면 잡초가 된다고 한다. 잡초 또한 마냥 방치하면 사람에게 해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식물에게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다. 숨쉬고 자라는 생명체 모두에게 해당하는 얘기다.오늘부터라도 도로변 아스팔트와 인도 경계면을 헤집고 빼꼼히 얼굴 내민 이름 모를 풀일지라도 그의 강한 생명력을 격려하며 이뻐하자. 서촌 좁다란 골목길변 오래된 가옥담벼락과 붙어있는 장독대 콘크리트 틈새로 살짝 삐져나온 갸날픈 강아지풀에 잠자리가 앉아 있었다.- 김석한[광진 주민, 지역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7-26 13:04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 성동지사 심영섭 담당자. 이곳에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등록할 수 있다.지난 7월 22일, 기자는 성동구도시관리공단 3층을 찾았다. 청계천변 청계천 9가. 그 건물에  건강보험공단 성동지점이 있다. 3층 민원실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사전 확인을 받은 참이었다. 이미 죽음의 과정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기계의 힘을 빌려 목숨을 연장하지 않음을 자신의 자유의사로서 명확히 밝혀 일종의 '공증'을 해두자고 하는 것. ◆청계천변 국민건강보험 성동지사서 신청 가능민원실에 들어서면 대각선 건너편에 큼직하게 표식이 돼 있다. 자리에 앉자, 절차는 10여분 만에 진행되었다. 본인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그리고 연명의료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과 그것을 들었음을 확인하는 서명절차 두 번. 그게 내 죽음-연명의료에 대한-을 내 스스로 결정하는 절차의 전부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해 궁금한 몇 가지를 담당자께 질문했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모르시는 분들도 있다. 많이들 이 절차를 이용하고 계신가?“평균 하루에 7~8명은 오시는 것 같다. 어떤 경우에는 친구분들이 함께 오시기도 하고, 부부가 함께 오기도 한다. 어르신들이 역시나 다수인데, 여자어르신이 상대적으로 남자어르신보다는 많다. 주변분들에게 이런 절차를 진행했다고 말씀하시면, 그것에 자극을 받고 오시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여기 성동지점에는 옆동네 동대문에서도 많이 오신다. - 병원에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가능한 것 같은데. “함께 전달해 드린 책자를 보시면, 안내가 돼 있다. 서울에서는 현재 은평구와 중구 보건소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병원에서는 가톨릭대서울성모병원 및 여의도성모병원 등이다. 대한불교조계종 등 비영리 법인 및 단체도 있다. 성동선 한양대학교병원에서도 등록이 가능하다.”2022년 7월 22일 현재의 등록기관수는 558개다. 의료기관 수는 336개. 이중 성동구는 두 곳이 등록기관 등록이 돼 있다. 위 국민건강보험공단 성동지사[성동구 청계천로 546, 3층(마장동) 1577-1000]와 한양대학교병원[성동구 왕십리로 222-1 / 전화 02)2290-8665] 광진구로 넓히면, 국민건강보험공단 광진지사(광진구 구의강변로 45, 105호(구의동) 전화 1577-1000 동일하다]- 이곳에서 신청을 하면 어떤 절차를 거치나?“우리는 대행기관이다. 의향서 등록에 관한 업무, 설명이나 작성 지원을 해드린다. 결과도 통보하고. 만약에 원하신다면, 연명의료의향서 카드도 보내드린다. 카드가 없어도 전산등록이 되어 효과는 동일하다. 연명의료에 대한 최종적 관리를 하는 곳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http:www.LST.go.kr)이다.”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를 찾았다. 거기서 찾은 몇 가지 정보.   ▶ 2021년까지 1,158,585명 작성, 100명 중 2.65명  2018년.2.4~2021.12.31까지 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인구는 꾸준히 늘었다. 2018년 100,529명에서 2019년 432,138명. 2020년에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줄어서 257,526명이지만, 지난해는 다시 368,392명이다. 2021년 기준 누적 1,158,585명. 인구 100명당 2.65명, 2.65%가 이미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것. 이중 남성은 357,077명, 여성은 이보다 2배 이상 많아서 804,717명이다. ▶ 연명의료계획서  치료 중 작성되는 연명의료계획서는 2018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2021년 현재 누적 81,129건. 남성이 50,596건, 여성 30,533건이다. 60대와 70대의 남성에게서는 그 비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인상적인 표지. ◆시대 따라, 사회 따라 죽음에 대한 다른 태도2016년 한 해, 우리나라 총 사망자 28만 명 중 75%인 21만 명이 병원에서 사망했다. 병원에서는 의학적으로 소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도 생명연장을 위한 다양한 시술과 처치를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 변화가 온 것은 2009년 김할머니 사건 이후. 76세의 김 할머니는 폐암 발병 여부 확인을 위해 검사를 진행하던 중, 갑작스레 의식을 잃었고, 식물인간 상태에서 인공호흡기와 같은 생명연장장치에 의존해 중환자실에 있게 된다. 할머니 가족들은 평소 할머니의 뜻을 전하며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병원에서 이를 거절, 결국 소송에 이르게 된 사안. 대법원은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했고,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라면,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한다. 2013년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특별위원회서 절차와 방법을 논의, 2016년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단계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었고, 이 법에 따라 연명 의료결정제도가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된 것. 2009년 김할머니 사전 전에는 어땠을까?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은 당시의 정황을 보여준다. '의학적 권고에 반하는 환자의 퇴원'에 대한 의료진 및 가족을 살인죄 및 살인방조죄로 인정한 판례가 있었다.  물질문명의 전파나 과학기술 등의 발전으로 인한 물리적 세계의 변화를 우리는 쉽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주거환경을 포함해서 먹거리와 사용하는 도구 등 환경에 너무나 쉽게 적응한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속도, 정신이나 문화의 영역에서 변화는 조금더 늦게 온다. 이를 설명하는 단어가 '아노미-문화지체'다. 위 연명의료에 대한 논란은 그런 예다.◆호스피스가 좋은 죽음 핵심이지만, 영국은 일상화, 한국은 갈 길 멀어연명의료의향서를 마친 기자에게 공단은 <말기 환자와 가족을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안내>서를 동봉해 주었다. 안내서는 아쉬웠다. 호스피스에 대한 설명이면서, 호스피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定義)와 설명이 없다. 입원형/자문형/가정형 호스피스에 대한 설명과 전문기관에 대한 설명,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오해와 진실'을 다루고 있지만….호스피스는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이 편안하고도 인간적인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위안과 안락을 베푸는 봉사활동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지칭."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를 순화해 '임종봉사자'로 번역했다.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일까? 어떤 죽음도, 심지어 좋은 죽음도 나쁜 삶보다는 낫지 않다(好死不如惡活)고 주장하는 중국인들의 생각에 대해 어떠신가? 죽음의 질 지수(Quality of Death Index)는 이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겠다. 이코노미스트 인텐리전스 유닛은 완화의료 및 보건환경, 인적자원, 돌봄자원구입능력, 돌봄의 질, 지역사회의 참여 등 5개의 범주를 20개 항목으로 나누고, 이를 지수화해 '좋은 죽음에 대한 평가지표'를 마련해 적용하고 있다. 한국은 2010년 40개 OECD 회원국중 32위, 2015년에는 18위로 올랐다. 73.7점. 영국은 93.9점이었다. 영국은 어떤 상황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국이 '웰다잉의 나라'가 된 비결로 꼽는 것은 호스피스 제도다. 영국 정부는 완화의료에 대한 포괄적 정책을 수립하고, 국가보건서비스(NHS)를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한다.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다양한 기부와 봉사활동이 이루어진다. 환자들은 거의 무료로 호스피스를 이용한다. 어린이도 호스피스에서 죽음과 함께 산다.  태어나자마자 뇌출혈로 수술을 받은 미아란 아이. 그 아이는 현재 17개월이고, 언제 어떻게 상황이 나빠져 병원 신세를 져야할지 모른다. 이 아기를 엄마는 호스피스에 데려다준다. 호스피스에서는 이 아이의 아침을 챙겨주고, 놀아주고, 옷도 갈아입히고, 온종일 돌보다 엄마에게 돌려준다. “만약 위급 상황마다 병원에 간다면, 대기시간도 길고, 매번 낯선 의료진에 미아에 대해 설명하거나 새로 진료가 시작될 것"이라는 미아의 엄마는 “호스피스가 없었다면 가족의 일상이 무너졌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2017년 호스피스의 날을 맞아 마련된 '누구도 홀로이지 ㅇ낳게 사진전' - 보건복지부 제공◆'의사조력존엄사법' 전에 해야할 일들최근 국회는 일명 <조력존엄사법>이 대표 발의됐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동대문갑)은 1) 말기환자이고 2) 수용키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며 3) 신청인 자신의 의사로 희망할 경우, '조력존엄사'가 가능하도록 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조력 존엄사법 발의에 대한 호스피스학회 입장-2022년 6월 21일”(출처: hospicecare.or.kr)을 냈다. 이 글은 좋은 죽음에 대하여,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1.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나, 이후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호스피스 돌봄이 가능한 질환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호흡부전, 만성간경화에 국한되고 있다. 2. 이조차 인프라 부족으로 대상 환자중 21.3%만이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있을 뿐이다. 약속했던 인프라투자, 돌봄에 대한 관심, 사회적 제도 정비 등은 아직 제자리걸음 그 이상이 아니다.  3. 지난 코로나 2년을 거치며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 88곳 중 21곳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휴업했다. 나머지 기관도 방역을 이유로 면회가 금지돼 환자들은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질 높은 생애말기 돌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요지. 당면한 문제의 해결과 돌봄에는 소극적인 채, '조력 존엄사'는 자칫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죽음 전에, 우리가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였다.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7-26 12:46

장수의비결 네셔널지오그래픽2005년 11월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장수의 비결-The Secrets of Living Longer>을 특별기획기사로 게재했다. 저자는 댄 뷰트너. 사냥, 정원가꾸기, 자전거타기, 캠핑, 사냥 같은 야외활동을 많이 하는 집안에서 자랐고, 알래스카에서 아르헨티나까지 혹은 전 세계 대륙을 종단횡단한 탐험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저자가 직접 전 세계의 장수마을을 찾아 탐험하고 취재한 내용. 소개된 곳은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그리스 이카리아, 일본의 오키나와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로마린다, 코스타리카의 니코야(한국판에서는 담양-곡성-구례-순창 네 곳을 장수벨트로 소개했다) 이곳을 책은 '블루 존'이라고 불렀다. 병없이 오래 활동하며 행복하게 사는 곳. 이곳에선 나이가 무의미해서, 90세 100세에도 여전히 밭에서 쟁기질을 하고, 바다에서 다시마를 줍는다. 해변서 물구나무 서고, 오토바이를 타며 즐긴다. 책에서는 대략 9가지 정도의 공통점-파워나인-을 찾았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까?'병 없이 오래 사는' 아홉 가지 비결1.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농사를 짓고, 살림을 하고, 자주 걷고.2. 소명의식. 목적의식적인 삶(아침에 일어나면서 설레는가?)3. 스트레스 관리. 달리기든, 샤워하며 음악 듣기든, 편안한 친구와의 대화든.4. 소식. 배고픔이 가시면 먹기를 멈춘다. 배불러도 먹는 우리 이웃은 얼마인가?5. 고기를 적게, 채소와 과일을 더 많이. 생선은 더 자주, 붉은고기는 덜.6. 술은 적당히 하루 1-2잔. (와인 한두 잔이 좋다는 이야기가 배경이다)7. 공동체에 소속된다. 친구, 취미모임, 정당이거나 계속 자신의 일 동료이거나8. 가족과의 시간을 우선시. '저녁 있는 삶'이란 구호는 그간의 정치 구호중 최고다.9. 건전한 사회적 네트워크. 우리는 물든다. 향 싼 종이거나 생선을 싼 종이처럼.이 아홉 가지 비결 중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이것이 특별한 블루존에서만 하지 않아도 되는 습관이란 점이다. 맑은 공기, 맑은 물 아니어도, 우리는 '불루 존'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 경쟁과 스트레스,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하여 접대를 하고, 밤을 새워 공부하고 일해야만 하는 상황은 우리들에게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위 아홉 가지는 우리의 일상에서 실천해 봄직한 것들이다. 내 삶의 양식들을 조금 반성하면서, 삶의 루틴들을 다시 조직해 볼 수 있을까?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온 것들을 다시 점검해 보는 일이다. 그중에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유교주의, 성별의 구분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전에 해온 대로 세상을 산다. 물질적 실질적 삶의 조건들은 쉽게 바뀌지만, 우리의 정신, 우리의 문화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을 '아노미-문화지체'라고 하는데, 우리가 대략 그렇다. 어르신, 시니어들에게 이 문제는 첫 번째 넘어야 할 과제다. 남녀로 구별돼,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아온 삶은 이제 안녕을 고해야 한다. 서로 가보지 않은 곳을 '탐험'해 보자. 남자어르신, 집에서 살림에 참여하기 위 블루존의 습관 중 첫 번째로 꼽힌 것은 그들이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집안일을 하는 여성들이 바깥서 일하는 남성들보다 왜 평균 6~10여년씩 더 사는지 알려준다. 하루 세 번의 밥을 차려내고, 끊임없이 처리할 수밖에는 없는 설거지와 빨래 그리고 청소와 같은 일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헤겔은 “노예가 밭 갈고, 집안 일 하고, 물건 고치고, 이런저런 대소사를 처리하면서, 나중에는 주인보다 더 많이 세상에 대해서 앎으로서 주인의 주인이 되는" '노예의 볍증법'을 이야기했었다. 그러니 살려는 자, '살림'부터 손에 잡을 일이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 요리하고, 빨래를 개고 청소기를 잡고, '음쓰(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가는 남자 어르신은 적다. 이것부터 다시 아내의 손에서, 자식들의 손에서, 혹은 요양사의 손에서 되찾아오시라. 아직 해보지 않았고, 하실 수 있는 일이라면, 가장 먼저 그걸 하시라. 가정의 평화와 더불어 나의 건강도 챙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4번, 5번, 6번도 모두 살림을 통해서 내가 통제 가능한 일이다. 스스로 적게 먹고, 물을 많이 마시라. 고기를 줄이고, 채소와 견과류를 더 많이 챙기라. 이렇게 하는 것이 영양제를 한 줌씩 먹는 것과 견줄(돈도 훨씬 더 적게 들어갈 수 있다)만하다. 요리는 그중 으뜸이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긴 여정이 필요하다. 먼저 싸고 신선한 재료를 사기 위해 장을 보아야 한다. 다음 재료들을 씻고 다듬어야 한다. 요리와 조리를 하는 과정 다음에는 담고 먹고 또 치우는 과정이 남았다. 설거지와 음쓰를 버리는 일까지 하면, 한 끼 밥을 먹는다는 일이 엄청한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동안 이걸 해준 이들에게 고마움이 든다. 그 고마움이 힘든 노년의 시기를 넘어갈 지도와 나침반, 등산 여정 중의 초코바가 된다. 그러니 지역 경제에 도움도 될 겸, 길을 걸어 동네 시장에도 들르고, 지역에서 오래된 마트도 쓱 들어가 보라. 구멍가게들은 전부 편의점으로 바뀌었지만, 경쟁력 있는 지역의 상점들은 꽤 괜찮은 가게와 마트로 성장해 있다. 여자어르신, 도서관에 공공기관에 가실 것도서관에 가보면 신문 열람대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전부 남자어르신들(반면, 시장을 가보면 흥정을 하고 있는 이들은 대개 여자 어르신들이고)이다. 내 어머니는 치매에 걸렸고, 지금은 요양원에 계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3년여가 흘렀고, 남편 없는 산 삶의, 또다른 결과다. 어머니는 남편을 따라 시댁에 제사를 다닌 것이 가장 큰 '임무'였다. 남편의 일자리, 남편의 고향친구들을 따라 계모임에도 다녔다. 자동차 운전을 하는 아버지 옆에 어머니는 앉아 있었다. 은행업무와 필요한 사회적 계약들을 아버지가 했다. 어머니에게는 사회적 관계, 그녀의 공동체가, 공공에의 접속이 없었다. 그 훈련들이 적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사라지자, 행동반경이 집으로 한정됐다. “폭식보다, 끽연이나 폭음보다 해로운 것이 있다면, 그건 외로움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측면에서 이는 진실이다. 건강이 신체적 건강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건강의 측면에서도 아울러 건강해야 정말 몸이 지켜진다고도 할 수 있다. 공동체를 찾을 수 있는 곳, 소명의식을 생각해볼 수 있는 만남, 이를 통해 사회적 네트워크가 지속될 수 있는 어떤 곳. 그곳이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이다. 공원은 공공의 재산이다. 서울숲은 응봉산과 대현산, 금호산과 매봉산, 아차산과 수락산 같은 넓게 펼쳐진 자연이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면, 그곳은 나라의 재산이어서 그렇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돈'을 지불하면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 카페와 식당, 백화점과 놀이공원이 그렇다. 하지만 '돈' 없이도 가볼 곳은 많다. 집밖의 공원처럼, 무엇보다 먼저 도서관이 그런 곳이다. 도서관을 공원 가듯이 천천히 둘러보자. 거기 꽃만큼 예쁜 책들이 있다. 영화도 있다. 벤치에 눌러앉듯, 거기 강연도 신청해 보자. 책을 보고, 책을 빌려도 보자. 강좌가 있다면 그것도 좋다. 거기서도 우리의 삶이 새로 시작한다.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7-13 09:48

서울시는 지난 7월 7일, 조직개편(안)을 마련했다. '시민은 지우고, 매력을 앞세웠다'는 평가. 마을-도시재생 대신 개발로 서울시의 큰 방향이 바뀌었다.구글에서 서울시청을 검색하니, '동행-매력 특별시 서울'이란 로고와 함께 뜬다. 지난 7월 1일 본격 시작된 8기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정 슬로건이다. 서울시는 지난 7일, 민선8기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정방향에 맞춘 서울시 조직개편(안)을 마련함으로써, 위 구호를 시정에 실현하기 위한 액션에 들어갔다. 지난 시기 민주당이 다수를 이루었던 시의회 대신 이번에는 국민의힘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만큼, 개편안은 7일~11일의 입법예고를 거쳐 14일 시의회에 제출된 후, 원안대로 실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동행과 매력 내세운 서울시, 개발 중시 시민은 배제'동행'은 약자와의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약자와의동행추진단'이 시장 직속의 정규조직으로 신설된다. 각 실과 본부, 국에 생계·교육·주거·의료의 취약계층 맞춤형 정책을 본격화한다고 조직개편안은 밝히고 있다. 특이한 것은 윤석열 정부에서는 '폐기'하기로 공약했던 '여성가족부'의 서울시 버전인 '여성가족정책실'이 '저출생 시대 보육과 돌봄의 공공의 역할 강화를 위해 전면 개편·강화된다'고 밝히고 있는 점이다.'매력'은 '디자인서울 2.0' 그리고 “세계가 주목하는 K뷰티 산업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뷰티패션산업과' 신설” 등이 키워드다. 미래 먹거리 용산정비창 개발 등이 “누구나 살고, 일하고, 투자하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로 카테고리 지어져 위 사업과 연결된다. 초선과 재선 당시 디자인서울을 통해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만들고, 세빛둥둥섬 등 서울의 외관을 주로 바꾸어간 오세훈 시장의 '개발주의'가 다시 재림을 앞두고 있다. 모아타운과 모아주택은 서울시의 '개발' 브랜드다. 모아타운(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은 그룹으로 묶어 대단지 아파트처럼 공급하는 방식이고, 그 안에 모아주택(소규모주택정비사업)도 진행된다. 다가구와 다세대주택 필지 소유자들이 개별필지를 모아 블록 단위로 개발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는 이들 지역에 “공공기여 없이도 층수를 완화(15층)하고, 품질과 공공성을 위한 세부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하고있다. 모아주택의 경우 지난 1월 13일 “지하주차장 확보가 가능하도록 부지면적 1,500m2 이상의 부지면적만 블록단위가 가능하도록 하거나, 이렇게 지하주차장을 만들고 지상에 녹지공간을 조성“하는 것 등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지난 6월 11일 신속통합기획 재건축 1호 사업지인 광진구 신향빌라 추진위 구성을 건너뛰고 바로 조합설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합직접설립제도'도 승인했다. 빌라주민 89%가 '조합 직접설립'에 찬성하였기 때문. 통상 3년6개월여 걸리는 조합결성이 1년으로 단축될 수 있다. 주민협의체 및 조합 임원 선거 및 창립총회 등 전단계에 걸쳐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방침. 이전 도시재생 등에 투여된 인원이나 재정은 이제 개발에, 집에 집중 투여된다. (현재 서울시에는 신속통합재개발 적용가능 대상지 60여 곳 등데도 이같은 지원방안을 지속 홍보할 계획이다)이제 서울은 (박원순 시장의) '마을'과 '재생'에서 '시 주도'와 '개발'로 테마가 바뀔 태세다. 도시재생이 진행되고 있던 마장동과 사근동 역시 모아타운으로 지정됐다. 마장동 457 일원(7만5382㎡) ▲사근동 190-2 일원(6만6284㎡) 등이다. 마장동을 찾은 건 그 때문이었다. 2022년 모아타운으로 지정된 마장동457 일대도시재생 진행되던 마장 “5년내 가장 실망스러운 일”서울시는 서울숲의 관리주체를 비영리민간기구였던 서울숲컨서번시에서 서울시 직영으로 2022년부터 전환했다. (2005년 서울숲 조성 당시부터 숲을 가꿔온 서울숲사랑모임과 서울그린트러스트 조직이 결합되었던 서울숲컨서번시는 2016년 서울숲 관리주체가 됐었더랬다.) 에너지 자립마을 등에서 활약했던 태양광 사업에 대해서, 서울마을종합지원센터에 대해서도 감사 내지 수사 의뢰가 됐다. 마을예술창작소나 마을공동체, 마을미디어, 마을주택 등 수많은 시민 영역도 재정적 정책적 지원은 축소 폐지됐다. 도시재생도 마찬가지.   마장도시재생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건, 이곳이 서울시가 그간 직접 주도해오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간 진행해 오던 상인주민과의 도시재생상생협의체 회의에서 서울시는 빠졌다. 마장동 주민들과 상인들의 오랜 사랑을 받았던 마장키친도 문 닫은지 오래. 올해 12월까지 예정된 도시재생 사업이자만, 마장도시재생지원센터도 조기 폐쇄할 계획이다. 마장동에서 4대째 살고 있으면서 마장도시재생상생협의체 주민대표를 맡고있는 김영진 회장을 만났다. 2017년, 마장도시재새생이 시작될 당시부터 “마장동, 마장동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어서 나선 지난 5년 이래, “가장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그는 토로했다.  주민/상인-서울시-성동구청이 세 개의 발을 이루며 도시재생을 진행시켜나가다, 급작스레 불거진 서울시의 '변심' 때문이다. - 마장동 도시재생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싶다. “마장도시재생은 성동구의 다른 도시재생지[성수동/송정동/용답동(장안평과 전통시장)/사근동 등]와는 다르게 중심시가지형이다. 마장동축산물시장의 재래산업구조를 개선하는 것을 가장 큰 축으로 지난 2017년 2월 선정됐다. 2018년 1월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가 개소했고, 꾸준히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현재 외부에선, 마장동도시재생이 '실패사례'라고 한다. 주민 입장서 보았을 때도, 성공적이라고 하지 못하겠다.”- 어떤 점이 미흡하고, 예상했던 바에 미치지 못했나?“마장도시재생을 시작할 당시 매우 중요한 과제가 있었다. 마장동 주민들의 최대 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마장동축산물시장의 냄새를 저감하는 문제였다. 오랜 동안 연구를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그게 현 마장 525번지 마장청계플랫폼에 유지처리시설을 넣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인근 아파트 주민들 반대 민원에 밀려 좌초했다. 서마장 지역은 올해 동명초등학교 입학하는 학생이 0명이었다. 주민들이 살만한 환경이 되지 못하는 곳이다. 이곳을 개선하고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서마장상생센터(가) 등을 짓고, 일정한 역할을 맡기고자 했다. 그러나 이곳 역시 설립 자체가 표류하고 있다. 마장동은 서울시가 직접 사업을 챙기고 있는 곳이다. 결국 서울시 의지 문제다.”- 축산물시장 북문쪽 525번지는 플랫폼이 완공됐다. 왜 서마장 지역 센터 건립은 늦고 있나?“서울부동산 옆에 부지는 이미 마련돼 있었다. 근처 2곳의 경로당이 너무 낡고 시설도 열악해서 이 두 곳이 센터에 들어가고, 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시설을 넣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서울시가 실제적인 책임을 지면서 추진해야할 사안이다. 그런데 그 동안 여러 번 건물을 짓는다 안 짓는다 말이 바뀌었다. 주민상생협의체 등과 협의하면서, 이곳에서 성장한 도시재생기업(CRC)이 이곳을 맡아 운영하는 것도 우리의 합의였다. 최근 서울시는 이 계획도 취소했다. 자신들이 적절성을 심사해서, 적격한 업체가 있을 경우에만 센터를 짓겠다거나, 그 업체들에게도 임대료를 물리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도시재생기업 성장을 위한 지원에도 손을 떼면서, 현실불가능한 조건을 붙이고 있다. 그동안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어기고 있는 거다. 도시재생이 올해말까지 운영인데, 도시재생지원센터도 이미 와해된 상황이고, 8월이면 그나마도 문을 닫는다고 했다.”고기연구소 조합 만들고, '마장다움' 마움갤러리서 희망 만들기- 현재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서울시 담당자들과 면담을 요청해서 지난 6월 13일 대화를 가졌다. 마장축산물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 박재홍 대표, 나, 마장도시재생을 유치하는 데 애쓰셨던 김충수 어르신, 그리고 주민들, 성동구청 도시재생과 담장자들과 함께였다. 서울시는 '서마장센터는 어쨌든 짓겠다' 했지만, 주민과의 협의와 참여로 이루어져온 도시재생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서울시에 정식으로 마장동 도시재생에 대한 요구사항을 담아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마장의 고민을 기회로. 협동조합 고기연구소가 꿈꾸는 마을 역시 '동행-매력의 마을'이다. 타운-집의 하드웨어와 주민-협치라는 소프트웨어가 이들의 희망이다. 오른편 뒤가 김영진 회장.- 주요 내용을 말씀해 주신다면?“무엇보다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협의하는 민주주의 원칙, 협치의 대세에 어긋난다. 마장도시재생은 도시재생특별법 및 마장도시재생활성화계획 고시[2019-304호]에 의해 진행돼 오고 있었는데, 이 역시 서울시는 공공재산 및 물품이용 조례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525센터와 서마장센터 등 하드웨어적 공간에 주민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그간의 약속을 지키라는 것. 마장동과 마장동 사람들을 위한 실질적 행동을 하라는 것. 우리 요구는 오직 그뿐이다.”김영진 회장은 최근 협동조합 고기연구소 창립총회를 열었다. 마장동의 '고민을 기회로' 엮는 지속가능한 조직과 활동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오랜 동안 공장으로, 교회로, 혹은 탁구장으로 쓰이던 60년 된 건물 3층에 마움갤러리를 열었다. '마장다움'을 찾아 오래 고민한 끝에, 마장 주민들과, 뜻을 함께 하는 시민들이 차근차근 시간과 돈과 마음을 써서 만들어낸 공간이다. 아직 바닥 공사를 하지 못한 시멘트 바닥에서 이들 마장동 사람들은 '2년여 기간 동안' 노래 교실을 열었었다. 마장지역의 어르신들 50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이는 마장실버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성악가와 음악가, 기획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이곳에서 '콘텐츠박물과 이야기갤러리'도 열었었다. 마장동의 문화적인 자원들, 역사와 함께 흘러온 사회적 자원들이 고루 마장사람들에게 공유되었다. 지금 이곳에선 로컬콘텐츠 교육전문가 과정을 10주차로 진행하고 있다. 매주 사람들이 모여 꿈을 현실로 이뤄가기 위한 상상을 펴고 있다.   “마움갤러리로 놀러오세요. 이제 마장은 생산의 기지였다가, 문화의 생산지가 됩니다. 주민들이 서로 만나는 커뮤니티 공간이 되었습니다. 협동조합 고기연구소의 조합원이 되어주세요. 우리 마을을, 우리 스스로가 바꾸어가는 희망의 역사를 써보죠. 우리가 함께 가는 길은 우리의 길이 됩니다. 노신이 이야기했던 것처럼요. 그들이 않으면요? 그거 우리가 하죠, 뭐!”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7-12 17:52

  이날 강의는 놀멍쉬멍가드닝클럽(대표 민선희, 사진 좌편)에서 주최했다. 마장동 주민자치회, 송정동 도시재생협의회, 성수동 주민과 기업의 직원 등이 참석해 동참을 뜻을 같이 했다.2022년은 로마클럽 보고서가 발표된 지 정확히 50년이 되는 해다. 우리가 알고있는 책 <성장의 한계>가 그 책이다. 로마클럽 보고서는 '현상태로 지구가 삶의 양식을 지속할 경우, 지구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경고'를 냈다. 1972년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들은 이런 보고서를 냈던 것일까?이제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다성장은 지속될 수 없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하는 삶으로 우리의 삶이 변해야 한다.1945년에 일본에서는 두 개의 핵폭탄이 터졌다. 1952년 영국에서는 대기오염으로 1만여 명 이상이 사망했다. 1960년대 일본에서는 미나마타병과 이따이이따이 병이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곤충과 새가 더 이상 울지 않는 세계를 경고할 때, 곁에는 살충제가 있었다. 1960년대 후반, 미군은 베트남전에서 엄청난 양의 고엽제-살충제를 베트남 전역에 쏟아부었다. 1971년 이집트의 아스완댐 완공 이후, 지역에서는 전염병이 발생하고, 하류지역에선 토사 공급이 줄면서 농업 생산량과 어업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로마클럽은 이후 20년이 지난 1992년에, 그리고 14년이 지난 지난 2004년에도 지속적으로 책을 발간하며 세계에 경고를 냈다. 2004년 이후 지구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2007년 한국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상에서 원유 1만2천547㎘가 바다로 흘러 나왔다. 2019년 가을 호주에서 사상 최악의 산불 사태가 발생했다. 다음해 봄까지 이어진 산불은 한국 국토면적에 해당하는 약 1000만 헥타르(ha)가 넘는 대지를 태워 수억 마리 동물들이 죽거나 서식지를 옮기는 등 영향을 받았다. 2020년 전세계를 멈춘 코로나19가 발발했다. 2021년 1월 13일 국제학술지 '대기과학 발전'에 발표된 바다 수온 측정 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바다의 평균 표층 수온은 195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발등의 불이 된, 이제 인간의 목젖을 쥐고 흔들고 있는 기후위기에 1섹터인 정치와 2섹터인 기업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와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후위기에 대해서 발언한 후보는 거의 없었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책을 내건 녹색당은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20대 총선에서 녹색당은 비례로 0.76%(18만2301표)를 얻었을 뿐이다. 최근 ESG(환경/사회/협치)를 바라보는 기업의 반응에 대해서 들었다. 물론 시니컬한 농담이겠지만, '이런-시발-젠장'이란다. 탄소중립을 위해 기업들의 부담은 점차로 높아질 수밖에 없는 데다가, 노동조합이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고, 지배구조 또한 투명화 해야 한다는 압력이 불만인 것이다. “큰기업이나 그런 여력이 있지, 작은 기업들이 우선 살아남거나 경쟁에서 이겨야지, ESG를 하겠느냐?”는 게 기업인들의 속내다. 성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ESG 관련 행동을 소개하는 것은 한 표를 가진 주권자들이 바뀔 때 정치도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단단히 마음먹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물을 때 기업은 마지못해 친환경에 나설 것이다. 3.4%가 단단히 마음을 먹고 바뀌면, 세상도 움직인다.  분해정원은 음식물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땅에 돌리는 작업이다. 모든 곳에서 ESG 작업이 필요하다. ■ 분해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 성동50플러스에서지난 6월 24(금), 새로 생긴 성동구50플러스센터에서는 <분해정원> 이야기 강연이 열렸다. 인천 계양에서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는 공동체 운동을 소개하는 이 자리에 많은 성동사람들이 참석했다. 그날의 강연 요약.   “우리 인천은 수도권 쓰레기를 받는다. 2025년이 되면, 외부의 쓰레기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자기 지역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자기 지역에서 처리하는 원칙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때가 되었다.  음식물쓰레기만큼 심각한 것들이 많지 않다. 서울만 하더라도 분리수거 체계가 되어있고, 아파트에서는 RFID 카드를 통해 문만 열고, 음식쓰레기를 넣기만 하면 해결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러나 이외 지역에서는 거의 음식물쓰레기와 일반 쓰레기가 여전히 혼재해 버려진다. 이를 매립하거나 소각하는데, 음식물쓰레기의 특성상 소각할 때 심각한 환경오염과 에너지 낭비가 일어난다. 이때 발생하는 메탄가스는 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타소의 26배다. 서울 등서 분리돼 버려지는 쓰레기도 엄청나게 복잡한 공정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에너지가 소모된다. 음식물쓰레기로 인해 발생하는 지구온난화 비율은 3위다. 매년 13억톤의 음식물쓰레기가 버려진다. 전체 음식물의 1/3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이를 분해해 퇴비로 만들어 활용하는 분해정원을 시작하게 됐다. 최근 전주에서는 음식물쓰레기 대란이 일어났다. 누군가는 이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일터에서 죽는다. 처리장에서 음식물을 섞는 교반기가 멈추면-이물질이 끼거나 해서- 이를 제거하기 위해 인력이 투입된다. 정화조와 하수도 맨홀에서 질식사로 죽어간 사람들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여년 기간 동안 국내 현장에서 발생한 질식사고는 모두 195건. 질식사고를 당한 노동자는 316명이었고 이 중 168명이 숨졌다.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나 사료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두 개의 길 모두 환영받지 못한다. 돼지열병 이후 이렇게 만든 사료를 급여하지 않게 법으로 지정됐다. 퇴비도 한 방법이겠지만, 당신이라면 당신이 먹을 채소를 키우는 데 이걸 쓰겠나? 사회적 비용이 들고, 환경적으로 해롭고, 사람이 죽어간다. 그래서 분해정원은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다.   물론 쓰레기를 줄여가고, 좀더 '깨끗한 쓰레기'가 배출되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로 해야할 우리의 과제라고 결론이 났다. 처음엔 우리 집에서 시작했다. 우리집 화분에 넣을 퇴비를 만들었다. 다음에 우리는 공원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인구의 51.1%가 흙을 만질 수 없는 공동주택에 사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렇다면 공원은 좀더 시민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동체 활동을 시작한 이유다. '혼자면 외롭고, 함께면 괴롭다'는 말이 잇지만, 평등한 동료시민이 되는 길 안에 환경 운동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디트로이트더트(http://detroitdirt.org) 같은 곳에서 보듯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 쇠퇴후 도시농업의 메카가 됐다. 그런 가능성은 내일 현실이 될 수 있다. 분해정원을 검색하시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으쓱단은 ESG를 실천하는 성동어린이 위원회다. 지난 6월 25일 오리엔테이션과 발대식을 갖고 활동에 들어간다.   ■ ESG(으쓱)단 성동꿈나무 실천위원회 발대식 : 어린이지난 6월 25일 토요일, 행당동 마음온도에서는 성동의 어린이들로 구성된 ESG 실천위원회 으쓱단이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후 성동구청(구청장 정원오) 대회의실로 이동 발대식을 마쳤다. 어린이들로 구성된 이곳 위원회는 이날 성동구청 대회의실에 정기위원회도 가지고, 환경과 사회 그리고 협치 활동에 들어간다. 성동구의 ESG 공모사업의 일부이기도 한 이 활동은 함께 하는 가족들의 후원과 실천을 통해 차츰 마을 안으로 전파될 것이다. 후세대에 빌려 쓰는 지구에서, 지금껏 어른들이 행해온 길과는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될 이 어린이들의 활동을 가족과 부모가 함께 지켜보았다.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6-29 11:53

강동신문 유명곤 발행인과 리봄교육 조연미 대표가 업무협약식을 맺었다지난 6월 23(목) 광진구의 50플러스 주민들이 결성한 마을기자단이 출범했다. 이들은 광진구청이 기획하고, 리봄교육과 건국대가 함께 양성한 마을기자들. 이들은 지난 8주간의 기간 동안 마을기자가 되기 위한 글쓰기 교육과 블로그 교육을 받았다. 기자 양성에 글쓰기 교육이 들어간 것은 기사가 결국은 '글'이라는 인문학적 바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철학 때문. 블로그 교육이 아울러 진행된 이유는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정보검색과 전파성 때문이다. '자기만의 온라인 사무실'인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는 마을기자는 이곳을 통해 자신의 전문적인 기사를 쌓고, 유용하게 활용도 할 수 있다. 이들 마을기자들은 디지털 온라인을 통해 시니어 정책 및 관련 내용들을 탐색하고, 이를 분석하는 기사들은 물론, 자신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내용들을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가겠다고 마음을 모았다. 광진마을기자단이 편집기획 회의를 하고 있다.한편 이날 마을기자단은 성동신문·광진투데이·강동신문과의 협약식도 지켜보았다. 이들이 기록한 마을의 소식들이 실릴 매체들. 이 협약식을 진행한 리봄교육 조연미 대표와 성동신문·광진투데이 이원주 발행인 그리고 강동신문 유명곤 발행인은 “마을 신문이야말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신문이며, 새로운 필진의 신선한 기사들을 실어드리기 위하여 매체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발대식과 협약식 등을 기획하고 진행한 리봄교육 조연미 대표는 “시니어에게 필요한 정보와 내용은 디지털에 있다. 많은 시니어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디지털 교육을 받고 실제적으로 마을에서 참여할 때 개인의 일자리는 물론 시니어들의 일반적인 문제들도 해결될 단초를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슬로우 디지털'을 내세우는 리봄교육의 시니어디지털 교육은 매주 수요일 무료로 리봄교육에서 펼쳐지기도 한다. “시니어를 알고 있는 시니어가 천천히 가르쳐주는 덕분에 누구든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슬로우 디지털 교육은 다른 지역에서도 진행된다. 리봄나눔 교실이 진행되는 곳은 동작과 사당, 그리고 멀리 광명도 있다. 자신의 지역에서 필요에 의해, 직접 시니어들이 나선 것. 시니어들의 새 봄이 여기서 시작되고 있었다.리봄 나눔교육은 무료로 진행하는 슬로우디지털 교육이다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6-29 11:14

서울숲 습지생태원에서 플로깅과 씨앗폭탄 만들기에 참여한 사람들.올해 우리는 70억 마리의 꿀벌들이 몰살했단 소식을 들었다. 기온상승의 영향을 받는 한국에서 관측된 변화다. 전세계적으로는 조류가 50%쯤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보고서도 있다. 곤충과 새들이 우리 주변에서 더는 날아다니지 않는 세계는 어쩌면 가시권에 든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변함없이 지난 6월 5일엔 환경의 날을 맞았다.지난 6월 4일 토요일, 서울숲에서는 작은 생태 환경의 행사가 있었다. 행사의 내용은 플로깅(줍깅)과 씨앗폭탄 만들기. 놀멍쉬멍가드닝클럽이 주최하고, 한양마을공동체와 초보도시농사꾼이 협력한 작은 모임이었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 이는 민선희 활동가. 그를 지난 6월 8일 응봉동 주민자치회 사무실서 만났다. 6월 4일, 환경의 날 맞아 플로깅과 씨앗폭탄 만들어민선희 활동가. 서울숲 정원사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의 언어를 배웠다.- 그날 있었던 행사의 내용과 취지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플로깅[이삭을 줍다는 뜻의 스웨덴어 Plocka upp과 영단어 Jogging의 합성어]은 달리며 혹은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친환경 운동이다. 지난번 쓰레기 수거를 할 때, 한 컵 이상의 담배꽁초들이 나왔다. 비닐코팅이 돼 종리로 수거될 수 없는 전단지도 엄청 나왔다. 인적이 드믄 곳에서 겨우 30여 분 진행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서울숲에는 고양이들을 포함해 많은 벌레들과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쓰레기를 버리겠지만, 이들 생명체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씨앗폭탄의 계기가 된 건, 꿀벌몰살 사건 때문이었다. 꿀벌들의 먹이가 될 밀원이 조금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에겐 여전히 녹지가 부족하다. 이미 조성돼 있는 곳도 사람들이 밟아서 훼손돼 있기도 하고. 씨앗폭탄은 예전에 민주화 운동을 할 때, 혹은 전쟁을 당한 시민들이 적을 물리치기 위해 던진 화염병이 생각나지 않나? 사람들은 그걸 꽃병이라고도 불렀다. 씨앗폭탄을 그런 곳에 던져넣을 수 있겠다.서울숲에서 오랜 동안 활동해왔던 우리 놀멍쉬멍 가드닝클럽에서 제안했고, 성수동의 아파트 커뮤니티와 성동구민기자단 분들로 구성된 초보도시농사꾼 팀이 함께 해줬다. 성수동에 독서모임 작당모의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분들도 참여해주고…. 재미있게 행사를 치뤘다.”- 서울숲의 운영주체는 근래 바뀌었다. 2016년부터 서울숲을 관리해오던 민간기구 서울숲컨서번시가 지난해로 운영을 종료했고 이제 서울시 동부녹지사업소에서 직영한다. 서울숲서 오래 활동해 왔는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전에 습지생태원 정원 관리를 위해 CCTV를 설치 제안을 여러 번 드린 적이 있는데, 예산 문제인지 좀 지지부진했다. 요즘엔 민원으로 간주되는지, 빠르게 처리됐다. 다만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숲이라는 오랜 전통이랄까 문화 같은 것에선 아쉬운 부분이 있다.”응봉동과 마장동 주민자치회 활동가 “함께 마을 만든다”- 현재 응봉동과 마장동에서 주민자치회 활동가로 근무하고 있다. 일하게 된 계기는?“나는 교육관련 회사에 근무했고, 공부도 지속하고 있었다. 그러다 직장을 그만 두고, 전환을 준비하던 때 뉴딜일자리로 만난 것이 주민자치회 공론장 코디네이터였다. 뉴딜 사업이었으므로 일자리 적응 교육도 진행하니까, 미리캔버스같은 걸 배워서 이곳 업무에도 적용하고. 웹자보나 카드뉴스도 만드니까 예산도 절감되고(웃음). 당시 코로나로 주민들간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던 상황이었다. 주민총회는 자치회 업무중 가장 크고 중요한 일 중 하나다. 다음 한해의 의제를 제안, 수립, 선정, 투표를 하는 과정에 관여하고 돕는다.     현재 성동구에선 9명이 활동하고 있고, 1인이 2개동씩을 맡는다. 나는 응봉동 주민이어서 응봉동 그리고 내가 이 일을 시작한 마장동도 여전히 함께 한다.마장동의 주민자치회 역사는 오래다. 박원순 시장의 마을만들기 이전에 이미 2013년 행정안전부의 시범동으로 주민자치회가 시작됐다. 2년 임기의 자치회가 마장동은 이미 5기. 마장동 마을기획단은 조직적으로 마을자치회에 결합됐고, 지금도 여전히 주민 참여도가 높다. 2016년인가 기자가 마장동을 찾았을 때, 그곳 강당에선 직장 은퇴 주민과 이제 막 초중고를 입학하는 학생들이 모여 서로 축하를 해주고 있었다. 마장동 언덕 홍익교회서 시작한 작은 모임 하마공부방은 '직업을 말해줘'란 프로그램을 4년여 지속해 왔다. 마장동의 이웃들이 직업의 강사가 돼 이곳 아이들을 만나는 프로그램. 마장은 마을이었다.- 마장과 응봉에서 하고 있는 일을 몇 가지 더 말씀해 주신다면. “자치회는 이전 주민자치위원회와는 위상이 많이 다르다. 이전에는 동 시스템이 위원 선정에도 관여되고, 직능단체대표들의 협의회 같은 성격이었다면, 이제는 마을주민 누구든 6시간의 주민자치학교를 이수한 뒤에 참여한다. 주민참여예산도 배정돼 있고, 스스로 정한 의제를 갖고 매해 자치 사업도 진행한다. 분과가 형성돼 이 안에서 활발한 토의토론을 통해 마을일을 결정한다. 민주주의의 학교다. 마장동에서는 주민센터 옥상텃밭을 만들어 활동했다. 그곳서 재배된 채소로 취약계층나눔도 하고, 인근 어린이집의 생태학습장으로도 활용한다. 응봉동엔 응봉 스카이캐슬이란 재미난 모임이 있다. 산동네 265번지 분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다. 응봉아이꿈누리터 센터장이신 유성원 님이 주축으로 학부모 대상으로 운동회도 하고, 응봉산 대현산 탐방도 한다. 마을공동체가 주민자치회와 접속돼 활동을 확장한 경우다.”- 민 대표 자신도 주민으로서, 마을활동을 직업으로 삼는 경우 같다.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을마다 처한 경제적 사회적 환경도 모두 달라서, 이를 잘 이해하는 주민이 참여하는 일은 대단히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마을일이란 게 지적, 감정적, 육체적 역량을 모두 써야하는 일이 흔하다. 마을 주민 중에는 자원봉사로 이 일을 하고픈 이도 있고, 파트로 활동을 하고픈 분도 있다. 그리고 풀타임으로 자신의 전망을 세우는 이들도 있다. 이 모든 걸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대문이나 금천구 등 이미 안정적으로 서포트되고 있다. 성동구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가치의 언어 배우는 중, '공존'이 나의 키워드프랑스 다큐영화 <내일>을 보면 새로운 시대의 전환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나온다. 농업에서, 경제에서, 민주주의와 교육도 새로운 가치와 활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한다. 이전에 경영학과 공학, 외국어를 배웠던 많은 사람들은 새로 생명의 언어, 소통의 언어를 배워간다. 민선희가 배우는 새로운 언어는 무엇일까?  - 대학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무엇을 가르치는가? “내 전공이 유아교육 및 초등교육이었다. 회사에서는 교육 및 교재 개발과 강의를 진행했었다. 지금은 예비교사들, 일반대 사범대 학생들에게 '초등실과'를 가르친다. 올해는 '공존'을 키워드로 학생들과 나누고 있다. 얼마 전에는 숙제를 내줬다. 방울토마토를 키워보라고 했는데, 학생 하나의 답변에 조금 놀랐다.”- 어떤 답변이었나?“자신의 식물이 되게 늦게 자란다는 말도 있었고, '저한테서는 초록토마토가 나오던데요!' 이런 친구들도 있었다. 어린 토마토를 보지 못하고, 상품으로 나온 토마토만 접한 아이들에게선 그런 반응도 나오겠구나 싶었다.”왼편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민선희 대표의 일러스트, 놀멍쉬멍가드닝클럽 회원모집, 플로깅 장면 및 씨앗폭탄 만들기- 마을에서의 경험은 교육이나 강의에 영향을 주고 있나?“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언제나 좋았다. 기획한 후 이를 꾸준히 밟아나가면, 누구나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겐 서울숲에서의 정원사 과정이 큰 전환을 줬다. 그곳서 흙을 만질 때,  누가 무엇인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이 들었거나 젊거나, 부자거나 아니거나, 능력과 지위가 높고 낮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동일한 시간내에 성실하게 땅을 일구고, 생명들을 돌볼 수가 있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전의 내 교육방식의 틀을 깬 계기였다. 성동의 더 많은 곳에서 정원사교육이 있었으면 한다. 더 많이 땅에서, 사람 안에서 일할 수 있게.”민선희 대표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우리의 시대 -인류세(Anthropocene)-를 생각했다.  인간은 가장 번성한 시대를 살고 있고,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이 시대의 흔적을 살피면 인간이 남긴 유물들이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거기엔 플라스틱과 비닐과 인조가죽, 대량 사육돼 소비된 소와 돼지와 닭의 뼈들, 높이 솟았던 마천루 등의 건축폐기물, 자동차들과 항공기, 기차 그리고 아스팔트 등이 포함될 것이다. 또 있다.1945년에 일본에서는 두 개의 핵폭탄이 터졌다. 1952년 영국에서는 대기오염으로 1만여 명 이상이 사망했다. 1960년대 일본에서는 미나마타병과 이따이이따이 병이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곤충과 새가 더 이상 울지 않는 세계를 경고할 때, 곁에는 살충제가 있었다. 그리고 2020년대초의 코로나까지.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지구에 가한 영향으로 발생한 일이다. 1968년 제안되고, 1970년 창립된 로마클럽이 발표했던 1972년 <성장의 한계>. 책에 나온 '연못의 수련'이 주는 경고는 섬뜩하다.“하루에 2배씩 면적을 넓혀 가는 수련이 있다. 만일 수련이 자라는 것을 그대로 놔두면 30일 안에 수련이 연못을 꽉 채워 그 안에 서식하는 다른 생명체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 보기에는 수련이 너무 작아서 별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수련이 연못을 반쯤 채웠을 때 그것을 치울 생각이다. 29일째 되는 날 수련이 연못의 절반을 덮었다. 연못을 모두 덮기까지는 며칠이 남았을까? 29일? 아니다. 남은 시간은 단 하루뿐이다.”우리는 지금 한 달의 어느 날을 살고 있을까?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6-14 16:58

송정동 재활용정거장 10호에서, 송정동 주민들로 구성된 자원관리사 분들과 함께.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이런 재활용 시스템은 마을을 바꾸는 중핵이다.송정동은 굽은 동네다. 중랑천은 청계천을 만나기전에 용답동과 송정동 사이에서 굽이를 트는 데 그 천을 품은 동네다. 동쪽은 동일로가 길게 뻗으면서 광진구와 경계를 이루고, 남으로는 광나루로를 두고 성수동과 나뉜다. 서쪽에 주거지와 중랑천 건너 넓은 공공부지가 펼쳐지고 북쪽으로 이어진 뾰족한 영토를 송정제방이 차지하고 있다. 거기 제방서 봄이면 벚꽃이 여름에는 장미가 가을에는 단풍이 진다. 달리기를 하고 걷기를 하는 많은 이들이 있고, 제방아래 토끼굴을 지나 내려가면 중랑천에 자전거가 달린다. 노을이 지는 때, 굽은 물이 서편으로 흐르며 만드는 풍경은 성동8경(을 선정한다면)에서도 손꼽을 만하다. 송정동 사람 문미자 대표를 만난 건 지난 3월 여의도에서였다. 50플러스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5060점프업 창업3기 과정에 동네(성동) 사람이 참여해 반가웠다. 그의 아이템은 '송정동 비누'였다.  송정동 제방서 피는 벚꽃, 장미꽃, 환삼덩쿨 같은 것을 기반한 제품. 우리의 창업과정 주제가 '도시재생'이었지만, '우리동네 사람들이, 우리동네서 난 것을 가지고, 우리동네를 지속해서 키워갈 사업'을 한다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3개월여 수업과정을 마쳐가는 5월, 몽실몽실 송정고체비누 문미자 대표를 송정동 초입 카페 무경계에서 만났다.     골목에서 문미자 대표. 더위가 절정이면, 이곳 벽에서 안개분수가 나올 계획이다. 바닥도 벽돌블럭으로 바뀌었다.큰 재난에 발벗고 나선 이들과 함께 비누로 나눔Q: 문미자 대표님에 대한 창업팀 사람들의 기대가 대단하더라. 이미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계시다는 점, 동네 자원을 활용한다는 점, 환경 생태 메시지가 분명한 사업을 지속한다는 점 등이 놀랍다는 평가다. A: “우리는 동네에서, 구에서 오랜 동안 관련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 (사)마을넷동네가 주최한 성동환경기지개(기후지킴이개시) 행사도 함께 치렀고, 전국도시재생박람회 때도 참여했다. 기반이 되는 이들은 자율방재단이다. 재난시에 동네를 지키도록 조직돼 있던 분들인데, 코로나 시국에서 역할이 커졌다. 이분들과 동네 돌며 폐식용유를 모아 비누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비누 1,500개를 경찰, 환경미화원분들, 마을가게 이런 데 다 돌렸다. 도시재생 주민협의체 분들, 주민자치회에서 함께 했던 이웃들..., 이런 송정 사람들이 같이 늘 참여해준다. 우리가 여럿이 늘 함께 가니까 핫한 팀이지.(웃음) 늘 불러주시고 찾아주신다.”Q: 송정동에서 도시재생이 진행되는 줄은 알고 있었다. 어떤 일들이 진행되어 왔었나? 마을마다 현안들이 다르니까. A: 송정동 도시재생활성화사업은 마중물 사업비 100억에 연계사업비가 연계 투입된 큰 규모의 사업이다. 벌써 어린이 상상마당이 조성됐고, 세대가 함께하는 플랫폼 공간 조성 다양한 형태의 공공 외부공간도 함께 세워질 것이다. 동네에 적용되는 디자인의 기준은 개성있고 재미난 기능을 가진 건축물들이 동네를 채우도록 해서 이미 변화를 느낄 수 있으실 거다.마을을 들어오는 큰 길가 간판들을 모두 새로 바꾸는 작업들이 벌어졌다. 많은 주민들이 대단히 흡족해 하신 사업이다. 그 외 동네도 많이 달라졌다.”Q: 성동구에서는 올해 10억 규모의 ESG공모사업을 모집했었다. 송정동 팀은 여기에는 참여를 하지 않지만 송정동의 재활용정거장은 큰 이슈가 됐었다.A: “쓰레기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문제였다. 이 문제만 해결되면 원이 없다는 분들도 많았다. 송정동은 저층 주거지가 많고, 아파트처럼 잘 관리되지 않는다. 재활용정거장은 재활용품을 모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집 앞서부터 시작했다. 주민자치회 감사님과 또 한분이 나섰다. 성수동 3곳과 우리가 가장 먼저 시작해서 성과를 냈다. 여기서 재활용관리사들이 나와 있으면서 주민들에게 재활용 방법도 홍보하고, 지속적으로 동네 관리도 한다. 마을이 깨끗하게 바뀌면서 이제는 15곳에서 진행한다.”송정동 길가 가게들의 간판이 산뜻하게 바뀌었다재활용정거장, 송정비누 등 마을 바꾸는 일에 진심송정동재활용정거장은 자리를 잡았다. 처음 주3회를 진행하다 이제는 틀이 잡혀 주2회 진행한다. 관리소마다 동네 주민 2명이 함께 역할을 맡아한다. 퇴근하는 이들의 시간까지 고려해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앞뒤로 30여분의 준비와 정리 시간에 대한 세심한 보상까지를 포함해 시간당 1만원의 수익도 돌아온다. 주민들과 얼굴을 맞대고, 주민이 직접 어떤 일을 진행하는지 알게되어 참여가 점차 높아졌다. 덩달아 동네 쓰레기의 무단투기 같은 문제나 종량제 쓰레기봉투 등도 질서를 잡아가는 중이다. 서로에게 관심도 없고, 재개발을 기다리며 한정없이 낡아만 가던 동네는 차츰 환골탈태를 해갔다. Q: 송정제방은 최근 10여년 사이 크게 변화했다. 꽃들과 나무는 더 많아졌고, 산책길과 자전거길이 분리됐고, 더 세심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성수동에 서울숲이 있다면, 송정동엔 송정제방길이 그런 자랑이겠구나 싶다. A: “중랑천까지 있는 길이어서 그럴 가능성이 높았지만, 처음부터 주민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전거가 쌩쌩 달려서 주민들이나 아이들 사고위험도 언제나 있었다. 동네를 살펴 민원을 넣어서 과장님들이 나와 보시도록 하니까, 그때부터는 바뀌었다. 자전거길을 도보산책길과 분리하고 관리한다. 지금도 우리가 스무 명씩 나가서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가세요' 캠페인을 한다. 앞에서 뒤에서 계속 말하니까, 아무리 강심장 아저씨라도 내리지. 지구대 경찰관들과 함께 하면 효과가 더욱 좋고.”한 4~5년쯤의 송정동은 시간을 거슬러 오른 동네같았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큰 길가 가게들은 남루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소박하지만 핫한, 가족들이 함께 찾아가 걷기에 재미날듯한' 거리로 변했다. 그때 골목길이 무채색이었다면, 지금은 산뜻한 보도블럭이 깔렸다. 한여름 더위 경보가 발령되면 집들에서는 미스트 분수가 뿜어져 나올 준비를 갖췄다. 어둡고 인적 드물었던 골목에 조명이 밝혀졌고, 집들마다 주소가 붙어 찾아가기도 편안하다. 4층을 채 넘지 않는 건물들은 저마다 특색을 갖고 세워지고 단장돼 있다. 마을 초입서 멀지않은 곳에 지어진 '검고 세련된 유리·벽돌건물'은 송정동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려주는 시금석 같은 느낌이었다.   몽실몽실 송정동고체비누를 만들고 있는 과정. 제방서 채취한 벚꽃 등 식물에 마을서 수집한 폐기름을 사용한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이들은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다.봉사, 활동 그리고 창업까지, 사람의 모습을 한 마을 송정동 Q: 개성있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걷기에 좋은 골목길이 되고, 상가거리가 발달하고 있다. 재개발의 목소리는 없나?A: “사실 이곳은 재개발 목소리가 일찍부터 있었다. 서울서 '두 번째로 큰 단지가 될 것'이란 목소리도 있었고. 나도 재개발조합 이사로 참여했었다.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면서, 또 안에서 재개발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도시재생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최근에 시장이 바뀌면서 개개발 추진 움직임이 있었는데, 간발의 차이로 재개발 아닌 재생으로 결론이 났다. 나는 그 사이에서 반대도 찬성도 표시를 않았다. 주민자치회 대표부를 맡고 있으니까. 5년여 도시재생이 곧 마무리되는데, 과연 어떤 것이 진짜 주민을 위한 것일까 하는 고민이 여전하다. 내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주민들이 여기서 오래 일할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Q: 여느 곳 도시재생사업지에서나 지속가능한 도시재생과 지속가능한 주민모임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송정동에서는 어떨까?A: “주인이 없고, 그러니 책임감이 떨어지고, 공공도 임기가 바뀌면 내용이 달라지는 게 현실이다. 도시재생사업 종료후 지역에 남는 조직의 경우도 아이템이 지속가능하지 않고, 기술이나 행정 인력도 부족하다. 우리는 젊은 세대로 역할들을 계속 넘기고 있다. 이전 세대는 최대한 지원하는 체제를 갖추려고 한다. 비누로 아이템을 가지려는 건, 이게 계속 소비되는 제품이고, 우리가 지속 생산가능한 물건이니까….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 교육과 돌봄, 강의나 커피 등에 관심이 많고, 우리는 다른 데, 서로 시너지를 낼 수도 있겠지. 도지재생센터에서도 관심을 갖고 돕고 있다. 김소영 코디에게 고맙고. 우리들이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이지? 그게 여전히 화두다.”진도서 태어난 문미자 대표는 남농 허건 선생의 마을 운림산방 근처서 자랐다. 나주 밀양박씨 5대종손의 맏며느리가 되면서 대학을 중퇴(그 시절엔 그런 일들이 잦았다)한 뒤, 많은 가솔들을 거느리며, 더 많은 경우 그들을 섬기며, 세월을 났다. 송정동에 옮겨온 것이 어느덧 40여년 전. 늦깎이 공부에 대한 열망을 푸느라 방송통신대에서 행정, 가정, 교육과 영문학을 공부했고 졸업(여긴 졸업이 매우 어려운 곳으로 악명이 높다)했다.지금 그에게는 마을일과 마을사람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문미자 당신과 함께면 같이 가고,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그만이지!”하는 많은 이들을 하드캐리하며, 예까지 왔다. 봉사는 활동과 사업과 창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일과 사람'을 붙잡고 혹은 붙잡혀 있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번 50플러스 창업과정에도 그들과 함께 문을 두드리지 않았는가!원동업“남편이 폐이식을 했어요. 죽을 고비를 넘길 때, 기도했어요. '살려주어서 감사하다'고 봉사를 시작했어요. 쑥뜸을 떠주는 봉사도 오래하고, 봉사 1천시간 은장도 받고, 송정동 통장도 하고. 오랜 동안 일하고 쉬고 있는데 어느날 당시 김종선 동장님[현 성동도시관리공단 이사장]이 도시재생 일을 해보라 끌어들인 거에요. 할까말까 하는데, 조계사 보살님이 내게 그래요. '불공을 절에서 쌓지 말고, 자신에게 손내미는 곳서 일하라고. 그게 덕'이라고.”BTS 방탄소년단은 '피, 땀, 눈물'을 이야기했는데, 여기 송정동 사람들은 '봉사, 활동, 창업'을 하고 있었다. 문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송정동 골목을 걸었다. 거기 그의 흔적들이, 모습들이, 겹쳐보였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고 하는데, 개인의 삶은 마을로 옮겨온다. 아니, 다시 말해야한다. 마을은 그곳을 사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5-25 17:14

지난해 2021년, 대한민국의 총 출생아 수는 26만500명이었다. 2020년에는 27만2300명이었고, 2019년에는 30만3100명이었다. 그렇다면 내년이면 50살이 되는 1974년의 출생아 수는 얼마였을까? 92만3천여 명. 1955년부터 1974년까지 20년 동안 최대 108만1천여명(1960년)에서 최소 90만8천여 명(1955년)까지 줄곧 90만 명을 넘는다. 2020년 현재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수)이 겨우 0.84명인데 반해, 위 20년 동안 출산율은 최소 3.8명에서 최대 6.2명이나 됐다. 즉, 올해부터 향후 20여년 동안 50세를 넘는(50플러스)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분포를 이루게 된다.     경험과 자본 있지만, 대전환 앞두고 준비 필요 50플러스들은 누구인가? 현대를 디지털 시대라고 한다면 이들은 철저한 아날로그 시대를 경험한 이들이다. 농업에서 제조업 그리고 정보혁명의 시대를 거쳐간다면, 이들은 소가 쟁기질하고, 집에서 소와 돼지와 닭을 키우던 시대를 거쳤다. 이들은 해일처럼 일어나던 제조업시대의 주역이었다. 곳곳에 도로가 닦이고 차량들이 홍수를 일으키고, 빌딩이 서는 시대를 거쳤다. 이들은 권위적 독재정치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세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재는 메타버스와 NFT의 4차 정보혁명 시대를 관통하고 있기도 하고.그래서 이들은 자산과 경험과 지식을 축적한 첫세대다. 동시에 지금은 일터에서 퇴장을 준비하거나 이미 진행된 세대이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평균 수명 83세까지의 긴 공백의 시간이다. 이들의 과제는 그래서 일터 이외, 새로운 장에서 적응하고 새로운 이들과 맺어야할 관계다. 이들은 어떤 나침반을 손에 쥘까? 누가 이들 옆에서 친구가 되어줄까? 성동50플러스센터가 지난 4월 29일 한양대 건너편 서울숲더샵 상가3층에 개장했다. 50플러스는 바로 이들 신중년을 위한 공간이요 활동이다. 현장을 들러 초대 이정아 센터장과 만나 센터 전반에 대해 들었다. - 50플러스가 성동에도 개관한다. 의의가 있다면?“호모 헌드레드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100세까지 사는 세대는 인류가 처음 맞이하는 사태다. 우리나라 평균 기대 수명이 83.5세다. 매년 평균 수명은 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선 50이면 은퇴가 시작되고, 60세까지 직장에서 버티는 확률은 8%밖에 안 된다. 생애 전환의 시기이자, 새로운 삶이 시작되어야 할 때다.”일자리가 최대의 복지, 창업준비실과 컴퓨터실도 준비- 성동50플러스는 어떤 곳인가? 어떠한 일을 하나? “전환을 위한 인생설계가 큰 축을 차지한다. 일, 재무, 사회공헌, 사회적 관계, 가족, 여가, 건강 등 생애설계의 기본에 대한 맞춤형 상담이 있고, 이를 돕는 프로그램도 구축돼 있다. 역량 강화를 위한 자서전쓰기나 퍼스널브랜딩도 있고, 축적된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등도 함께 도움받을 수 있다. 은행권에 계셨던 분들의 경험을 활용하는 재무상담역을 맡으실 수도 있고, 교직에 계셨던 분들에겐 지역의 배움을 지원하는 일과도 연결된다. 이분들의 창업과 창직 등도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한 다양한 지원공간들이 여기 있다.”- 많은 일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 같다. 가장 중심이 되는 분야가 있다면?“다양한 선택을 하실 수 있는데, 결국 일자리가 최대의 복지라는 관점에 우리가 서있다. 내가 계속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면 신중년 세대가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를 해소하는 게 가능하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소외감은 다양한 일과 활동에 참여하면서 해결될 수 있다. (커뮤니티를 가지면 상호 정보교환 등을 통해 건강관리도 된다) 50플러스는 인생이모작센터 같은 곳의 연장인데, 그 출발에는 은퇴세대의 엄청난 실패라는 문제의식이 바탕이 됐다. 치킨집이나 대만카스테라 같은 경우처럼 일회성, 단발성 창업 등도 많았는데 아시겠지만, 그건 위태한 일이었다. 이들에 대한 조직적 체계적 사전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불확실한 시대, 은퇴 및 질병위험 등에 집중 대응해야현대를 초뷰카(변동성(Volatile), 불확실성(Uncertain), 복잡성(Complex), 모호성(Ambiguous)의 머릿글자를 딴 뷰카(VUCA)의 더욱 심화된 형태)의 시대라고 한다.  코로나19처럼 미증유의 사태가 닥치기도 한다. 기후변화가 바꾸어놓은 탄소중립의 시대는 산업질서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개인적인 상황에서도 큰 변화가 있다. 고혈압과 당뇨, 고지혈과 비만 등 대사증후군은 악화된다. 이로 인한 합병증은 물론 본격적으로 질병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우울증, 치매, 난청, 골다공증, 관절염, 호흡기질환 등 노인성 질환도 출몰한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임진왜란 같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 어떤 이들에게 눈길이 가나? 어떤 이들이 준비해야 하나?“중년의 남성들이 열심히 회사생활만 하다가, 갑자기 일을 그만 두게 되면 무력해지기도 한다. 사회적 지위를 가졌던 분들 중엔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분들도 많다. 여성들은 수다를 통해 다양한 대화와 커뮤니티를 갖는 반면에 남성들은 감정의 표현이 서툰 것도 사실이다. 일 중심으로 살아오셨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제 같이 배워야 할 때다. 도시농업 과정 같은 게 그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생명을 키우며 본인이 치유되기도 한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요구도 충족될 수 있다. 이곳 50플러스도 도시농업을 접할 수 있다.”- 성동50플러스를 수탁 운영하게 된 곳이 (사)성동마을넷 동네[대표 고경진, 김만순]다. 이정아 대표도 이곳서 오래 같이 일하셨다. 의미가 있다면?“대상자가 될 분들을 분석해 보면 성동 인구의 대략 1/4 정도가 해당[만50세~65세, 68,509명 21.11%]한다. 이들이 두텁게 자리잡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지원체계가 없으면 허리가 무너지게 되는 거다. 부양을 하는 마지막 세대이고,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척추 같은 세대다.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잇는 허브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우리들은 주민들과의 접점이 컸었다. 마을 안의 다양한 주민주체들과 자치회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 점이 굉장히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공공 복지가 저소득층, 장애인 등 선별적 복지적인 측면이 있다면, 50플러스는 보다 보편적인 복지로의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50플러스 세대에게 특별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그분들이 우리의 선배시민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분들과 함께 우리도 인생2모작에 나서는 거. 우리는 핵심적인 가치로 전환과 환경, 돌봄과 건강을 내세우고 있다. 유의미한 활동을 함게 하심으로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추적 역할을 해낼 것이다.”시장과 은퇴자들과 마을에서 단련해 왔다.이정아 센터장은 사업을 했었다. '돈을 버는 게 좋아!' 대학 대신 학사주점을 택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장을 보고, 밤에는 한두 시까지 문을 열었다. 주말엔 학생들이 없으니 좀 쉬긴 했지만, 그렇게 3년을 버텼다. 그리고 늦게 대학에 갔고, 집에 손을 벌리기는 싫어 알바를 병행키로 마음을 굳혔다. 그때 시작하게 된 것이 나중에는 전국에 뻗어나간 초대형 감자탕집 영업매장이었다. 매장 1천 평에 주차장 1천 평. 아이들을 데려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터가 있는 곳이었다. 알바로 시작한 그는 곧 매장 매니저를 맡게 됐다. 경영을 직접 해본 이의 시각과 실행력이 낭중지추 같았던 것. 이후 이곳이 전국에 프랜차이즈 매장을 열어갈 때, 매장의 준비와 교육을 이정아 매니저가 책임졌다. 전국을 다니면, 매장을 여는 일이 재미있었지만, 노후자금을 거의 투자해 새로 시작하는 은퇴자들이 눈에 밟혀 잠을 잘 수도 없었다. 2주쯤 진행되는 프로젝트시마다 다시 다짐했다. “이 돈을 날리게 할 순 없어!”사회복지를 공부한 그는 성남의 금융복지상담센터서도 일했다. (사)희망살림의 사회적기업 에듀머니(대표 제윤경)가 전체 틀을 짰고, 박원순 시장은 서울복지재단에 넘기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자체중 처음 센터로 만들어 역할을 했던 곳. 여기서 그는 노인들에 대한 금융사기 예방교육을 1만여 명 넘게 진행했고, 재취업자 금융교육을 정기프로그램으로 제안했었다. 돈을 단순히 재정적 도구가 아니라, 삶의 주체적 선택으로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도 그였다. 성동과 연을 맺은 것은 옥수복지관으로 왔던 사회복지 실습.50플러스를 (사)마을넷동네가 맡게 된 것은 상징적이다. 신중년들은 이제 바깥의 일터에서 지역으로 차츰 접속될 것이다. 일만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일을 배우기 시작할 것이다. 일만 아니라 스스로와 이웃이 함께 성장해 가는 여정의 기쁨도 알아가면서, 그들이 우리 곁으로 올 것이다.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5-12 16:25

한 사람이 썰매를 타다가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걸 옆에서 장대를 갖고 있다가 구해줄 수 있는 건 또 얼마나 희소한 행운일까? 여기에 더해 그 장면이 부근을 지나던 어느 사진가에 의해 차곡차곡 찍힐 가능성은 또 얼마나 될까? 그리고 60여년 만에 물에 빠졌던 그 청년과 그 사진가가 그 사진을 가운데 두고 만날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찰라'는 60여년 만에 다시 부활해 2022년 5월의 봄 가운데 섰다. 인사동 인사아트갤러리 박옥수 사진전 <시간여행>에서다.물에 빠졌던 그 뚝섬 사람, 옛 사진전에 가다종혁은 이곳 뚝섬 일대와 한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예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기 때문이다. 때는 1월이 막 지나고 있을 무렵. 한강은 꽁꽁 얼어있었다. 이곳서는 한 자(30센티쯤) 두께나 얼음이 얼곤 했다. 마을사람들은 얼음을 켜서 꺼내어 땅을 깊게 파 묻은 뒤, 왕겨로 덮고 깊게 덮었다. 한여름이 되면 겨울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어쨌든 그날, 한강에서 썰매를 타는 건 여느 때처럼 아무 문제도 없었다. 방향을 하류쪽으로만 향하지 않았다면…. 그쪽, 그러니까 성수동 뚝섬 하류쪽, 지금의 수원지 인근에 물이 얼지 않는 곳이 있었다. 한강이 중랑천을 만나기 전. 합류한 물이 응봉산을 앞두고 급하게 좌로 굽이를 도는 곳이어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날 웬일이었을까? 종혁은 썰매를 하류로 향했다. 한없이 펼쳐진 은빛 세계를 마음이 내닫는 대로 달리고 싶었다. 그러다 아차! 얼음이 깨지고 말았다. 어른들이 조심하라던 그곳이었던 게 생각났다. 물은 차가웠다. 빠르게 흐르는 물줄기가 그의 몸을 끌어댔다. 얼음 속으로 몸이 빠져드는 게 느껴졌다. 그의 상체를 얼음 위에 붙잡아 둔 건, 그가 짚고 있던 썰매 막대였다. 못을 박고, 날카롭게 송곳처럼 벼린 그것. 그걸 얼음에 박고서 겨우 몸을 의지했다.   “신이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나봐. 그때 옆에 썰매를 지치던 청년들이 있었어요. 그때는 썰매를 탈 때, 긴 장대에다가 송곳을 박고 타는 게 있었다고. 서서 썰매를 타곤 했거든. 그게 키보다 컸어요. 길었다고. 그걸 갖고 있는 애들이 마침 내게로 달려온 거야. 그걸 붙잡고 나와 겨우 살았지.”뚝섬 사랑했던 사진가, 시대를 환기하는 사진을 내걸다사진가 박옥수는 67년, 한양대학교 학생이었다.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그해, 그는 형이 교사생활 첫 월급으로 장만한 카메라를 들고 성동교를 넘어 뚝섬으로 향해 있었다. 그가 자주 가는 곳이었다. 섬처럼 보이는 너른 들. 사람들의 마을. 방둑 아래 토끼굴의 어둠을 지나면 거기 언제나 빛으로 넘실대는 한강. 모래밭과 수양버들나무들과 멀리 뒤배를 이룬 산들. 그 모든 것들이 미술을 하다가 이제 막 사진기를 쥔 앳된 청년 옥수의 마음을 설레게 했었다. 얼음에 빠진 사람을 발견했을 때, 그는 둑방가에 있었다. 얼음나라가 된 뚝섬의 한강변이 널리까지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급한 순간이었지만, 그는 목에 걸린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주변에서 이미 구조를 위해 사람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그렇게 다섯 번의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피사체가 구출이 되고, 사진가는 안도의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떴었다. 물에 빠졌던 그 사람 홍종혁은 현재 성수동의 예아네꽃집 사장이다. 46년생인 그가 태어나 평생 떠나지 않은 곳이 여기 뚝섬이었다. 5월 7일, 사실 그는 가게를 비우면 안 되었다. 내일이 어버이날 아닌가. 꽃집이 대목인 날이었다. 그러나 얼음에 빠졌던 그의 모습을 찍었다는 사진가의 전시회를 안 가볼 수 없었다. 가면서 이곳 땅 뚝섬을 떠올렸다. 사진, 시대의 온기와 생기를 환기시키다성수동 뚝섬은 역동적인 곳이었다. 매일 뚝섬나루엔 한강 하류에서 온 새웃배와 상류에서 내려온 뗏목들이 닿고, 짐을 부렸다. 정선서 온 뗏목은 위에서 뜀박질해 달려도 한참을 갈 만큼 길었다. 그걸 해체해 목재로 만드는 제재소가 뚝섬에 있었다. 잘게 쪼게 땔감으로 실어 소달구지에 실어가기도 했다. 큰 농원들도 주변에 많았고, 어부들도 흔했다. 뚝섬사람들은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고, 생활력이 강했다. 이곳은 상공(商工)의 땅이었다. 그 힘겨운 노동 사이사이로 흥겨운 놀이도 겹쳐졌다. 한겨울 썰매는 그 한갓진 시간, 그곳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해방시키던 놀이였고. 추신 : 홍종혁이 물에 빠진 것은 경동국민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58년 무렵. 박옥수의 사진이 찍힌 건 67년경이다. 그러니 사진의 그는 홍종혁은 아닌 걸로 판명됐다. 그래도 두 사람은 같은 땅을 살고 밟았던 사람들로서 말을 섞고 기억을 나누고 따뜻한 눈빛을 교환했다. 사진이 환기한 그 시대의 온기와 생기를 지닌 채 종혁 씨는 다시 뚝섬으로 돌아갔다.세 번, 박옥수의 사진전에 갔어요사진가 박옥수 선생의 사진전을 보러 세 번을 갔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생각나는 사진이었다. 마을 사람을 불러모으고 가족과 함께 보고픈 사진이었다. 오래 들여다보아 사랑스럽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싯구가 있는데, 그의 사진이 꼭 그러했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박옥수의 오래된 사진들이 꼭 그러하다. 흑백으로 찍혀 더 그 부분이 도드라져 보인다. 사진은 찰라의 풍경이다.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사진이라고 하는데, 그 찰라를 오랜 동안 남기기 때문에 그렇다. 사진은 피사체와 가까울 때, 더 좋은 사진이 된다. 그건 물리적 거리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그래야 한다. 환하게 웃는 박옥수의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거기엔 박옥수 선생의 미소가 거울처럼 반사된다. 그의 사진에는 미덕이 더 있다. 사진 안에서 시간과 공간이 확장된다. 박옥수의 사진은 찰라를 위한 기다림이 느껴진다. 논두렁의 물꼬를 건너가는 그 순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옥수의 사진에는 놀이와 노동이 함께 한다. 땅을 파는 노동자의 행위와 어미의 짐을 받아 내리는 소년이 함께 있다. 이 역시 그 때를 기다린 것이다. 이는 조형적 균형과 내용적 대비로 조형미를 갖게 된다. 그의 사진이 오랜 동안 사랑받을 이유다. 박옥수의 사진은 '당연히 가야할 시선'이라고 명명한 것들에서 살짝 비켜선다.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선거연설에서 많은 기자들과 사진가들은 카메라 앵글을 후보에게 맞출 것이다. 하지만 박옥수 선생은 그 연설을 지켜보는 키큰 나무와 거기 올라선 많은 이들을 잡는다. 이로서 사진에는 시대의 숨결도 스며든다. 뚝섬나루를 채운 배추와 수박들, 이를 담는 트럭과 리어카 그리고 뒤편에 즐비한 한강변 판잣집들의 풍경이 또 그러하다.  사진에는 저편의 풍경과 사람 말고도, 이쪽 사진가의 호흡과 시선이 담겨있다. 1949년생. 1960년대 초중반 무렵부터 시작된 박옥의 사진은 2022년 현재에도 계속된다. 그는 지금도 작은 사진기-핸드폰-만 들고 세상에 나선다. 그가 있는 곳마다 사진이 찍히어 시간여행에 보태진다. 젊어 한국 곳곳을 돌며 찍던 그때와 바뀐 것은 없다. 사진은 사진이고, 결국 그 사진은 사진가의 고집이며 마음임을 잊지 않은 것처럼.사진가 박옥수(왼편)와 뚝섬 토박이 홍종혁 씨와의 대화. 60여년 전의 뚝섬을 공유하고 있는 그들은 2022년 다시 만나 그 기억을 환기했다. 뒤편 사진을 찍는 이는 사진전을 기획한 지승룡 선생. 박옥수 사진전 <시간여행>에서. 사진가 박옥수와 뚝섬사람 토박이 홍종혁(예아네꽃집) 님.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5-12 16:23

왼쪽부터 조현영 파트장, 성용숙 성동종합재가센터장, 유스앤 장애인 활동지원 파트장. 이들은 센터내의 전문서비스 직원들과 함께 노동을 돌봄으로 연결한다.나는 최근 성동에서 함께 일하던 몇몇의 젊은 청년들 몇과 이별했다. Y는 할머니가 아프셨는데, 그 병간호를 자신이 맡겠다고 나서면서 서울을 떠났다. 할머니는 곧 돌아가셨지만, 그녀가 꾸린 짐은 고향 고성에서 풀린 뒤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청년 L은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쓰러지면서 그 간병을 떠맡았다. 농사를 짓는데다 연로한 어머니가 그 일을 맡을 수는 없었다. 1년여를 곁에서 전일 간호를 하다가, 재활을 마친 아버지가 고향 집으로 돌아가자 그 역시 아버지 곁에 남겠다고 결심했다. 고향 집엔 소도 있고, 폭설에 무너진 비닐하우스도 있었다. 만약 국가에서 보다 전폭적으로 그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었다면? 그들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노령자들을 따라 장애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신규 장애인으로 청각장애자는 2만8525명이 늘었다. 국민병인 당뇨로 투석을 하는 이들은 신장장애자로 등록되는데 이들도 급증했다. 지체장애가 1만4428명, 뇌병변도 1만3217명 신규 등록됐다. 이들도 모두 보호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다. 이들을 누가, 어떻게 돌보아야 할 것인가? 서울사회서비스원 성동종합재가센터의 물품들. 다양한 통합돌봄이 필요하다개인과 가족에서 국가로 돌봄 서비스 이동했다. 그 책임 다하려는 것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비스원)은 이러한 시기, 이러한 과제를 안고 출범한 서울시 공공돌봄 조직이다. 성동종합재가센터가 현장을 맡는다. 서울시에서 가장 먼저 성동구(구청장 정원오)가 자리잡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효사랑 주치의, 필수노동자 조례 등 활동으로 공공행정 부문에서 지속적인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성동의 정책이 이를 당긴 것이다. 뚝섬역 3번출구앞 뚝섬미술관 2층에 위치한 센터를 찾았다. 돌봄의 최전선에서는 무슨 광경이 펼쳐지고 있을까?    -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 대해 먼저 설명을 부탁한다. “돌봄은 이전까지 개인과 가족의 책임이었다. 그러다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 인식 변화가 생겼고, 그 변화를 가속한 것 중 하나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보험제도이다. 노인들의 치매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이나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등이 확대된 것이 크게 달라진 지점이다. 서비스원은 이러한 시대적 움직임에 부응하기 위해 (10여년간의 준비를 걸처) 2019년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국가 책임의 돌봄이라면서도 실제로는 민간에서 장기요양보험의 95%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지점에 대해서 공공이 직접 돌봄서비스 종사자를 고용하여 전체 돌봄의 서비스 수준을 높이려는 것이 설립의 의도다.”센터내 직원이 직접 기획 구성 촬영해 완성했다. 이들은 소명과 사명으로 일한다- 성동종합재가센터에 들어오다 보니, '행복한 노동, 따뜻한 돌봄'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공공의 직접고용과 행복한 노동은 연관이 있을 듯하다.  “우리는 정규직으로 처음 출발한 곳이다. 직원에 대한 고용 및 처우도 개선했다. 돌봄은 필수적인 일인 동시에 사람 존중 인권 존중의 서비스가 되어야만 하는 일이다. 따라서 이를 수행하는 돌봄노동 자체가 먼저 존중받고 돌봄노동자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 요양보호사 등에 대한 인식과 처우가 낮다. 시간제로  고용도 불안정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적 돌봄 서비스가 제대로 될 수가 없지 않겠나? 지속적으로 개인과 가족이 맡기 어려운 일이 늘어날 텐데 선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돌봄은 또 전문적인 영역이기도 하지 않나. 이용자에 따라 대처하고 서비스해야 할 내용들이 달라진다. 정규적인 역량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최근 이곳 성동종합재가센터 돌봄서비스를 이용하고 계신 분을 우연히 현장에서 뵈었다. 요양보호사께서 돌봄노동에 대한 자부심과 전문성이 있으셨다. “2019년 성동종합재가센터가 문을 열면서 동고동락한 이들(직원분 혹은 동료들)이다. 지난해 창립 1주년 수기집 제목이 '성동 77개의 별을 따다'였다. 10년여를 요양보호사로 일하다 오신 분도 있고, 신입도 있었지만, 일흔일곱 명 직원들이 한 뜻으로 문을 열었다. 공공 영역 직원으로서 프라이드가 높은 분들이 많다. 우리의 위상을 우리가 만든다는 자부심이다.”수가도 넘고, 한계도 넘어 돕고자 하는 사람들-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특히 지난 2년이 넘는 동안 코로나19로 돌봄 현장은 더욱 어려웠을 것 같다. ·성용숙 센터장 : “요양시설 이용자와 직원이 모두 격리됐을 때, 우리가 긴급 투입됐다. 코로나 긴급 돌봄에서 서비스원의 존재가치가 확인됐다고 해야할까? 초기엔 방호복도 없이 사명감으로 낮은 레벨의 방호복을 착용하고 24시간 돌봄을 진행했다. 요양보호사들의 돌봄을 지원하기 위해 함께 입소 한 방문 간호사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나도 같이 의논하느라 단체카톡방에 들어가 활동했다. 치매 어르신들은 증상이 폭력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고. 언제든 코로나 확진자로 전환될 수 있는 이용자들이시기에 늘 날선 긴장이 현장에 있었다.”- 많은 돌봄 노동자에 대한 지원과 '돌봄'의 역할을 센터에서 해야한다. 어떻게 지원하나?·유스앤: “공공 영역이다 보니, 민간에서 감당이 안 되는 분들이 넘어오는 경우도 많다. 뇌병변 등 상태가 심한 경우 본인 의지로는 물 한 잔도 드시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화장실 한번 가려면 짊어지고 화장실로 이동해야 할 때도 있고. 월급제로 운영되니 고용의 안정 같은 장점 있지만, 각기 다른 상황에 있는 각기 다른 기질의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은 여느 직장이나 같다. 일당 백이면 좋겠다.”·조현영 : “집에 계신 분들에 대한 긴급 돌봄이 우리의 주 업무다. 의사소통의 필요성과 욕구들이 많아 그런 교육들도 같이 한다. 스스로 찾아서 대기시간에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여러 노력들을 한다. ·성용숙 : “각 환경에 맞춰 서비스를 해야 하니, 필요한 기술 및 케어에 대한 교육을 쉼없이 한다. 우리가 개발한 돌봄 키트도 여럿이다. 신체 활동 보조를 하면서 간호사와 동행하여 좀 더 전문적인 활동을 논의하기도 하고, 인지장애증 어르신 등의 인지 활동강화를 위해서는 작업치료사도 함께 근무하고 있다.”성동종합재가센터의 소통의 단면. 현장이 중심이다라는 원칙을 고수한다- 특별히 인상 깊은 지점들이 있다면?·조현영 : “이런 공간에 어떻게 사람이 살아? 이럴 만큼 어렵게 살고 계신 독거노인도 많다. 한 분은 지상서 13 계단을 내려가 자연의 빛도, 환기도 안 되는 집에서 인지장애인 치매 증상으로 고통받고 계셨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크셨고. 그분과 신뢰를 쌓고 지역 자원과 함께 장판을 갈고 공기정화기를 설치해 드렸다. 이후 동주민센터, 치매안심센터 등과 같이 주거를 1층 공간으로 이사했다. 그런 총력전이 기억에 남는다.”·조현영 : “장기요양 사업은 이용자댁에 2-3시간 가서 일하도록 돼 있는데, 좀 더 수시 돌봄을 해야한다. 그런 역할 해내려고 노력하는 센터 분들이 많이 있다. 수가나 그런 데서는 아직 준비가 안 됐지만, 당뇨가 있어 저녁마다 쓰러져 있는 대상자가 있었다. 간호사가 함께 방문하여 저혈당을 예방 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논의하고 '저녁식사를 챙기면 새벽 저혈당 증상을 예방할 수 있겠다.'싶어 급여제공계획을 수정한 후 저녁시간에 비수가로 요양보호사들이 방문하여 저녁 식사를 챙겨 드렸다, 또한 저혈당과 대소변 훈련을 위해 출근 시간을 30분 앞당기는 등 직원들의 자발적 헌신 없으면 못하는 일이다. 공공이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 않나 싶다.”마을과 함께 돌봄 필요한 이들의 희망이 되고 싶다- 아이를 키우는 데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돌봄 역시 그런 것 같다. 중증의 위급환자를 살리기 위해 병원에선 의사들이 모여 한 환자를 집중토의 하기도 한다.·성용숙 : “우리는 민간과도 적극 협조한다. 성동희망나눔 이일순 대표는 우리 장기요양 운영위원장이시다. 우리가 잘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와주시기도 했고. 희망나눔은 노노 일자리 케어도 하시고, 사회서비스용 일자리 사업단도 있어 함께 성동구민의 돌봄 공백을 채우고자 하는 구상도 있다. 놀이 활동도 하고. 우석균(성수의원 원장)님도 촉탁의로 같이 해주신다. 이런 것이 우리의 장점이다. 상태 안 좋아지면 방문간호 서비스와 연계도 한다.”- 돌봄노동은 어려운 이들을, 어려운 환경에서 돕는 일이다. 감정노동을 하기 있기도 하고. 어떻게 스스로를 돌보고 관리하고 넘어가시는가?·성용숙 : “사명감? 소명의식?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 그동안 우리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자발적으로 논의해 진행해 오셨다. 성동구서 우리가 하고 싶은 건, 통합돌봄이다. 장애인활동지원이든 돌봄이든, 주거 복지 간호 돌봄 지역 네트워크 자원연계의 전 역량을 투입하고 싶다. 우리에게 돌봄서비스를 의뢰하신 이용자들께서 마지막까지 온전하게 살다 가시는 게 우리의 목표다."<성동종합재가센터 현장을 가다>행당동에 살고 계신 전길영 선생(95)은 지난해 침대에서 떨어지는 낙상사고를 당했다. 고관절을 수술하고 오랜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거동은 여전히 불편했다. 아니 거의 일어나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때 성동종합재가센터의 긴급돌봄과 연결이 됐다. 자택으로 출근을 하게 된 요양보호사는 박정순 님. 전길영 선생님은 그를 '천사님'이라고 부른다. 이는 전길영 님의 인격상으로 당연한 일이지만, 거기에 합당한 이유도 있다. 정순 요양보호사는 선생에게 반가운 말벗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필요한 일상의 일들, 더구나 재활을 위해 필요한 조처들도 감당해 주기 때문이다. 혹여 모를 코로나 감염을 막으려 마스크를 두 장을 쓴다는 것, 결코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는 것. 이런 것도 전길영 선생은 안다. 그리고 실상 이 모든 것들이 돌봄 받는 이들을 위한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전길영 선생이 드디어 보조기를 이용해 걸을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정성스런 돌봄 노동의 결과일 것이다. 박정순 님은 멀리 금천서 여기 성동까지 온다. 집에서 더 가까운 센터가 없지 않지만, 굳이 여기까지 오는 것은 자부심 때문이다. 서울시에서 설립하고, 직접 고용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직원들이 서로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노동과 섬세하고 따뜻한 돌봄.'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많은 노동 현장에서 지켜지지 어려운 원칙인 걸 스스로 안다. '반가운, 정직한, 다정한 그리고 사명감 높은' 이것은 전길영 선생이 박정순 요양보호사에게 느끼는 감정의 키워드다. 박정순 요양보호사님 또한 성동센터에 대해 이렇게 느낀다. 건강한 노동이 아름다운 돌봄을 낳는 과정이다.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4-26 18:48

“이 재미있는 걸 왜 남자들만 했던 거야?” 축구교실 넘어 축구단 꿈여자축구교실은 성동여자축구단이 될 수 있을까? 공이 어디로 굴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여자는 축구를 하지 않는다.' 2017년께쯤의 성수동 경동초등학교 운동장. 다른 초등학교 축구클럽과 붙은 경동축구클럽의 아이들은 온통 남자아이들 뿐이다. 코치 선생님에게 묻는다. 왜 여학생들은 없는 겁니까? “여학생들에게도 문호가 열려있지만, 지원을 하는 아이들이 없는 거죠.”이상했다. 여자아이들은 어릴 적에 남자아이들보다 더 키가 크다. 더 목소리가 크고, 드세다. 내가 아는 그 여자아이도 여느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더 잘 달린다. 그런데 왜 이 자리에는 없는가?새벽이면 거의 모든 초·중·고 운동장을 점유하고 있는 이들은 중년의 남자들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학교 운동장 정원화 프로젝트에 가장 먼저 반대했던 이들이 조기축구회였다. 이들은 토요일 일요일이면 감질났던 축구를 질리게 한다. 올해 이른 봄 용답동을 다닐 때, 한 떼의 사내들을 만났다. 축구를 끝내고, 다함께 다소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는 남자들이었다. 빨갛다고 해야하나? 검다고 해야하나? 그들의 혈색은 건강하고, 살은 탄탄했다. “우리 회원 중에는 80대 할배도 있소.”어리거나 젊거나, 빨리 달리거나 힘이 있거나,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성들은 왜 축구에는 없는가? 남자축구단은 2,816개나 되는데, 왜 여자축구단은 겨우 116개인가?  훈련을 하고 있는 이수호 코치와 축구교실 참여자들. 진지하고 열정적이다.인권이요 민권이다. 여자축구는 축구교실을 맡고있는 이수호 코치2022년 4월 22일 금요일, 성동구 응봉축구장의 여성축구교실은 50년 전인 1972년 6월 23일의 미국 리처드 닉슨의 서명 법률 타이틀 나인과 관계가 있다. 위 법률 Tiltle IX는 1960년대 미국을 휩쓴 민권 인권 운동의 흐름을 이어받고 있는데, 이는 1963년의 동일임금법(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를 없앤 노동법) 등과 동일한 맥락의 조치였다. 타이틀 나인은 모든 교육에서 남녀간 성별에 따른 차별적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한 법이었고, 이에 따라 미국은 스포츠 체육 활동에서 남자와 여자아이들이 구분되지 아니하고 동일한 운동기회를 제공받는다. 이는 이후 미국의 스포츠가 세계 제일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가 된다.여자축는 민주주의다. 성동의 여자축구 혹은 성동여자축구단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막내다. 10여년 전 성동구에도 여자축구단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성동구는 서울시에서 여자축구단이 없는 유일한 구였다. 그렇다면 여자축구단 맏언니는 누구인가? 송파구의 여자축구단은 1998년 탄생했고, 현재까지 건재하다. 2019년 기준으로 송파여자축구단은 전국생활체육대축전(4월), 대통령기 전국축구한마당(8월), 서울시민리그(7월) 및 서울시 자치구 여성축구교실 왕중왕전에서 모두 이기는 기염을 토해내며 4관왕에 올랐다. 송파구 여자축구단 번성의 비결은 무엇일까?송파구 홈페이지 문화관광 파트에 가면 송파여성축구단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구성 32명. 단장과 감독과 코치를 포함한 단원이 30명. 결원이 생길 때에만 충원한다. 이들은 전용구장도 있다. 송파구여성축구장에서 훈련한다. 정기훈련은 월·수·금 10시에서 12시까지. 일주일에 3회씩 2시간이면 상당한 운동량이다. 이들은 해외 전지훈련도 한다. 서울시 자치구 최고의 지원금 수준은 지원한 만큼 번성하는 공공체육의 주소를 보여준다. 잘되는 집, 오래되어 번성하는 음식점의 공통점 중 하나는 직원들이 사장만큼이나 오래 같이 일한다는 점이다. 송파는 창단 이듬해부터 함께한 감독(김두선)이 있고, 역시나 창단때부터 축구단을 지켜온 백전노장도 있다. 이들 송파구여성축구단 멤버의 연령대가 20대부터 60대까지 스펙트럼을 갖는 이유다. 여성축구교실에서 자연스럽게 축구단으로 합류하므로 인적 구성 역시 탄탄하다. 24년 역사와 전통이 갖는 자부심은 이런 선순환의 동력이다. 크게 지원하면 크게 성장하는 건 어디나 같아서노승현 선수다시 성동의 여자축구는 어떠한가? 지난 3월 성동구 문화체육과에서 20~50대 여성을 대상으로 축구교실 회원모집을 했을 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겨우 스무 명쯤을 모집하는 그 공고를 보고 119명의 여성들이 지원을 했다. 3월말쯤 당첨자 발표가 났을 때, 왜 나는 떨어졌는가를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더 많은 기회를 달라는 것이 그네들의 요구였다. 그렇게 모인 교실 사람들이 첫 수업을 4월 1일 했더랬다.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4월 22일 다시 찾았다.'불타는 금요일'. 빼앗길 수 없는 그 달콤한 시간을 빼서 여기 여성들이 모여있는 거였다.  한 번도 축구경기 따위를 해본 적 없는 이도 여럿이었다. 그저 축구를 좋아하는 내 아들과 놀아주기 위해 신청을 한 엄마도 있었다. 아직은 쌀쌀함이 남아있는 강변의 밤. 왜 이들은 스스로 여기 모였나? 축구화에 정강이를 채일 수도 있고, 공에 맞아 입술이 터질 수도 있건만. 발레와 더불어 축구를 함께 하고 있다는 초등2학년 남자아이엄마 노승현님은 말한다. “지난해 쯤 아이 축구를 하러 풋살장에 갔어요. 거기서 여자 풋살이 있어서 하게 된 거죠. 재미있는 거예요. 그런데 여자축구단을 모집한다는 걸 봤어요. 풋살엔 담장이 있는데, 여기 축구는 사방이 터진 곳이잖아요. 우리도 팀을 이뤄서 다른 팀들과 경기도 하고 싶죠. 축구하는 여자들과 일상의 여자들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일 놀란 건 함께 하는 사람들이죠. 올해 12월까지 이곳 축구교실을 운영한다고 하는데, 될 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어요. 공을 찰 수 있을 때까지.”김혼비의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에 나오는 구절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상상도 못하고 살아오다가, 그 현실태를 눈앞에서 본 순간, '나도 하고 싶다.'를 넘어서 '내가 이걸 오랫동안 기다려 왔었구나.'를 깨닫게 될 때 어떤 감정이 밀려드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 어제 진상 손님들 두 테이블이나 있어서 진짜 힘들었는데 오늘 아침에 축구 올 생각하니까 왜 짜증도 별로 안 나냐. 하하하. 왜 그런 거 있잖아. '야, 너희 내가 그냥 보통 식당 이모인 줄 알겠지만, 알고 보면 나 축구하는 여자다 이거야!'축구교실 넘어서 성동여자축구단으로 나아갔으면이분들, 여성축구인들을 맡아 지도하고 있는 이는 성수동의 젊은 축구코치 이수호 풋볼웨이 대표다. 옥수초 축구부를 거쳐 브라질로 축구유학을 다녀와 경기기록분석을 전공한 재원. 아버지 이재일(현 성동구 축구협회/전 성동구축구연합회 부회장) 역시 40여년 이력의 청우 축구회 소속 축구인이니 축구 가문이다. 다음은 이수호 대표와의 일문일답. - 성동여자축구단 '감독'이시다. 현황을 이야기해 달라. “하하. 아직 그렇게 이야기하실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축구교실 강사일 뿐이다. 성동여자축구단이 될지는 구청에 물어보셔야 하지 않을까?”- 하하. 선수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여긴다면 축구단이겠지. 어쨌든 그동안 서울 25개 구에서 성동구만 여자축구단이 없었다. 이번엔 뜨거운 지원신청이 있었다고 들었다.“그렇다. 해서 선수들에게 자주 말씀드린다. 하고자 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명심하시라고. 더 많은 분께 기회를 드리고 싶다.”- 시작한 지 4주가 흘렀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참여해 보니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고 느끼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워낙 열심히들 하고 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삶에 활력을 주는 걸 느낀다. 축구에 오롯하게 집중하는 게 보인다.”선수들의 단체 사진을 찍다가, 회원들에게 물었다.  “여기는 여성축구교실인가요? 아니면 여성축구단인가요? 축구단이라시면 축구단이라 쓰죠!”잠깐 '축구교실이요!' 말이 나왔지만, 곧 “우리는 성동여성축구단!”이라는 답이 더 크게 들려나왔다. 앞줄 뒷줄의 축구단 단원들이 이에 동의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끝이 창대하여질 성동여자축구단. 공은 차여졌고 구르기 시작했다.시합전 작전회의.함께 모여 역할을 나눈다.공 하나를 놓고 다투는 축구경기는 단체의 팀웍이 가장 중요한 성패의 요인이다.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4-26 18:40

춘래불사춘이지만, 아름다운 봄풍경은 어디나 있다. 늦었지만 배움의 자리는 언제나 아름답다성동문화원 윤필교 주임께서 어르신 문해교육 장소를 일러주었다. 평소 교육이 이뤄지는 소월아트홀 내 구민대학이 마무리 공사 중이라 장소를 옮겨 수업이 이뤄진다는 말씀이었다.  장소는 행당1동 주민자치센터. 건물 바깥으로 난 계단을 오른 뒤에, 다시 좁고 가파른 철제계단을 오르고 나서야 겨우 장소에 도착했다. 성동문화원 교실 안내가 거기 덩그라니 붙어있다. 교실로 들어가는 양 옆은 캐비넷 사물함이 촘촘하다. 거기 어르신들 이름이 작게 붙어있다. 옆에는 서예 수업 때 쓰는 한지 받침이 돌돌 말려 있다. 아마도 시간을 번갈아가며 수강생을 받는 모양이다. 교실 한켠에서 햇살이 들어오는데, 젊은 선생님은 앞에서 칠판에 글을 쓰고 있고, 늙은 학생들이 고개를 들었다 숙이고 들었다 숙이며 연필로 공책을 채우고 있다. 할머니들의 머리는 한결같이 뽀글이 파마를 해서, 뒤에서 보면 마치 브로콜리 같다. 벽 달력엔 '일동제약 아로나민 실버_프리미엄' 광고가 보인다. 이곳은 어려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을 위한 늦깎이들 학교다. 2022년 3월 7일 월요일, 21대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둔 날의 화이트보드엔 이런 글자들이 쓰였다 지워지고, 쓰였다 지워졌다.  저녁마다 외삼촌이 PC(피씨)방에 간다. / PC 방에서 인후염이 옮았다. / 강원도에 산불이 났으니, 상부상조합시다. / 과부가 홀애비 심정을 안다. 동병상련 / 부조금을 천만 원 했어요.소련은 1991년에 해체됐다. / 우크라이나에서 석류를 3kg 사왔다. / 生(생)과일 주스 3.5ℓ를 만들었다. / 대선 지방선거 총선외숙모는 신경인지장애 검사를 했다. / 신경인지장애^치매. ^는 등호. / 작년에 밴댕이젓을 3kg 샀다. kg=킬로그램 “부조금이에요. 부주금이 아니고. 우리 얼마나 봉투에 넣을까요? 오만 원? 에이, 우리가 말로만 하는 건데, 더 쓰세요. 백만 원? 천만 원 하죠! 좋아요. 어머니들, 은 이거 아시죠. 꽁치! 세월호 리본같이 생긴 거. 이거는 리터예요. ( )는 괄호예요. ^ 는 등호, 같다는 말이에요. 괄호 치고 글을 쓰면 그건 왼쪽이랑 같다 이런 말이에요. 똥구멍이 평소에는 어떻게 돼 있어요? 네, 꼬옥 닫혀 있죠. 그리고 응엉엉~ 할 때는 어때요? 열리죠? 의사선생님들은 그 똥꼬를 뭐라고 하냐면, 괄약근. 이런다고요. 어려운 말로. 열고 닫고 하는 거. 여기 '괄'이 그런 괄짜예요. 우리는 우리끼리니까… 똥꼬~.”할머니들은 여고생이 된 것처럼 까르르르 웃는다.“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대선이구요. 우리 서울시장님, 구청장님 뽑는 선거가 지방선거예요. 총선은 국회의원 뽑는 선거예요. 내일모레 우리 선거 하잖아요. 어머니들도 선거 꼭 하세요. 아들하고 딸하고 누구누구 뽑으세요 한다고 뽑지 말고, 어머니들이 이것도 보시고, 저것도 찾아보신 다음에 투표하셔야 해요.”교실은 빼곡하다. 코로나가 무섭지만 배움의 열기는 내내 가시지 아니했다문해교육은 단순한 글자배움 아니다. 세상 여는 열쇠교육을 받는 할머니의 눈은 초롱하고, 손은 굳세다수업을 뒤에서 듣고 보고 있자니, 지금 이 자리 문해교육은 단순히 '글자'를 배우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빛을 보지 않는다. 빛이 비추는 세계를 본다.”고 하는데, 지금 이곳의 사람들은 말이 비추는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선거는 똑같은 선거지만, 국가와 자치단체가 다르고, 행정부와 입법부가 다르다는 걸 새삼 안다. 언어는 글자만이 아니라, 기호가 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이들이 사는 세계만이 아니라 나 자신도 알게 된다.  의사의 언어와 우리들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치매를 신경인지장애라고 하는지를 처음 알았다. '괄'이란 말이 '조이고 단속'하는 것이로구나 깨닫는다. 치매는 이들에게 가까운, 어른어른거리는 그림자다. 세상은 말을 통하여 비로소 이들에게 각인된다. 강렬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강사 지현정(51) 님의 말. “이분들의 수업은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일이에요. 어린이들이 흡수지처럼 받아들이지만, 할머니들은 … (방수시계처럼 잘 안 스미죠!-기자(웃음) 그게 잘 안 되죠. 제가 자주자주 생활과 가까운 말씀들을 드리면서 수업하는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그렇게 해야 어머니들이 기억해요. 또 하나는, 어머니들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시도록 돕고 싶은 거죠. 어머니들이 사는 세계가 남편하고 애들하고 집만 있는 게 아닌 거잖아요.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아가는 건 당연한 거예요.우리 세대는 공교육이란 걸 너무나 당연하게 체험한 세대죠. 하지만 이분들의 시대는 그러지 못했어요. 가난 때문이기도 했지만, 유교사상도 영향을 끼쳤죠. 여자아이들은 배울 필요가 뭐가 있어. 집안일 하고, 시집 가면 그만인데. 여기 계신 분들도 자녀분들 모두 시집장가 보내고, 남편도 은퇴하시고 그렇게 시간이 되어서야 늦깎이로 공부를 하러 오신 분들이에요.”농부들은 논에 물들어 가는 소리를 가장 좋은 소리라 듣는단다. 부모들은 자식 목에 밥 넘어가는 소리, 아이들 글읽는 소리에는 배고픔을 잊는단다. 그네들에게도 그 소리만큼 듣기 좋은 소리가 없을 것이다. 할머니들의 글 읽는 소리는 어떤가? 그들의 목소리도 더없이 듣기에 좋다. 학생 참여자 박성자(75)님의 말. “너무 좋아요. 나는 늦게 소식지를 보고, 전화를 했어요. 그리고 다음날 찾아와서 그날부터 수업을 하게 된 거예요. 우리도 읽는 것은 읽는데, 읽기만 하지, 솔직히 잘 받아쓰지를 못하는 거라. 알면서 사용하니까 좋지요. (읽을 수는 있는데, 쓸 수가 없다는 게 무슨 뜻이죠?) 솔직히 우리 말이 '얼라를 낳는다!' 이러잖아요. '병이 나았다' 이것도 있단 말이에요. '그게 더 낫다' 이런 말이 다 다른 건데, 읽을 때는 '낫다' '나따' 이렇게 같으니까. 공부를 하면서 그게 다른 걸 아는 거지요.”이건 글자 교육이 아니다. 세상 교육이고, 자신을 키우는 일이다노인을 위한 나라 없다. 그래도 스스로 피는 꽃처럼'이렇게나 좋은' 수업을 위하여 거쳐야할 어려운 과정이 여럿이다. 첫째 이런 수업이 있다는 걸 들을 통로가 별로 없다. 이분들 중 많은 이들은 이 소식을 <성동구 소식지>를 통해서 알게 됐는데, 거기 글씨가 너무나도 작다. 사회에서는 흔히 이렇게 말도 한다. “지금 글자를 배워서 뭘 하겠다고?” 그동안 글을 모르는 엄마이고, 할머니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 이런 것에도 스스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있다. “수강자 분들 사진을 찍으시면 안 됩니다.”하고, 문화원의 담당자는 내게 단디 일러주었다. 한국사회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대입이다. 거기에 온 나라가 달라 붙는다. 다음에는 중등이나 초등 혹은 유아 교육이 순위를 다툰다. 어릴 적 여하한 이유로 배울 기회를 놓치고 여기까지 온 이들을 위해서는 별 국물도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잔혹한 추격극이요, 스릴러인데, 우리 현실에서도 그렇다. 초등학교를 마친 이들을 위한 중학과정은 훨씬 더 드물다. 성동구 역시 중학과정이 하나쯤 있긴 하지만, 고등과정은 아예 없다. 문해교육은 겨우 '한글' 익히기에 족하고, 영어나 수학 같은 과목에 대해서는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강의자들이 강력하게 원하는 부분이 여기다. 왜 이런 환경에서도 이들은 배우기를 멈추지 않을까? “옛날엔 강이면 다 강인갑다 했지. 세상은 그냥 세상인 줄로만 알았지. 그런데 강에는 미국강도 있고, 인도 강도 있고, 세상엔 5대양 6대주가 있는 거잖아요.”- 이건 할머니 학생의 말이다. “할머니들이 예전에는 파리바케트를 못 읽으시니까, 거기 파란 간판 있는 데서 만나! 이러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거기 가게가 없어지면, 한참을 다른 곳에서 도시기도 하는 거죠.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면 이제 세계가 열리는 거예요. 동기동창이 생기기도 하는 일이잖아요.”이건 강사 지현정 강사의 말. 그는 말을 잇는다. “어르신들을 위한 문해교육에 국가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아요.(유엔에서는 '문해교육의 해'를 선포한 해가 1990년이었다) 이전에는 뜻있는 분들이나 단체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하다가, 나라에서 평생교육의 차원으로 지원을 하기 시작한 거거든요. 어르신들을 뵈면 정말 열정적으로 배우세요. 공부만 제대로 했으면 정말 큰일을 하셨겠다 싶을 만한 분들을 많이 뵙거든요. 우리가 여자들을 가르치지 않아서, 그만큼 나라에도 손해가 됐다 그렇게 생각하죠. 아직도 늦은 일이 아니구요.”문해교육을 받는 할머니의 책상 풍경남자어르신들, 더 많은 교육장과 프로그램…등 할 일 아직 많다“어머니들이 문해교육을 받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니에요. 여기서 한번 배우기 시작하면, 점점 자신감을 가지시거든요. 그러면 사회복지사에도 도전하고,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얻으러 다니시고 그러세요. 졸업장은 그냥 종이 한 장이 아니라, 그 다음 세상으로 가기 위한 출입증 같은 거예요. 그래서 성동문화원도 코로나 기간에 어머니들의 요구로 문을 열어 놓았던 거죠.  여러 군데로 옮겨다니며 불편하셨을 텐데도, 다 따라오신 거구요.”남자어르신들이 거의 없는 건, 그분들은 모두 다 글을 알고 있어서는 아니다. 가난으로, 전쟁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은 이들도 별반 다를 것도 없다. 다만 그들은 '늦게 배우는 일'을 들키는 일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네들의 손을 이끄는 다정한 환대의 손길이 없어서다. 그런 생각을 하자니, 아직 차가운 햇살 아래 장기를 두고 있거나 그 옆을 서성이는 종묘근처의 어르신들이, 소월아트홀 옆의 남자어르신들 몸짓이 애잔하다.봄이 왔는데, 봄 같지 아니(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한 날들. 전쟁으로 다툼으로, 미세먼지로, 마스크로 아득한 서울 한복판. 이 땅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 이곳이 생각났었다. 어머니들께 “아름다운 꽃 사진 한 장 찍자!”말씀드렸다. 당신네들의 이 모습은 얼마나 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냐고…. 그네들이 공책을 앞에 들어보이며 사진을 허락하였다. 세상으로 나오는 창과 문을 앞에 두고, 그 뒤에 어머니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문해교육은 한글만이 아니라 영어와 한자를 넘나들고 국어와 사회를 섞는다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3-15 12:42

문화는 방대하고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김구 선생이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높은 문화의 힘'이란 백성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작동하는 삶이요 예술이었을 테다. 그 문화를 붙들고 씨름하는 중핵이 성동문화재단(이사장 정원오)이다. 2015년에 출범한 성동문화재단은 지난해 두 번째 대표이사를 맞이했다. 지난해 6월 취임후 얼마 지나지 않은 윤광식 대표를 n개의 서울 <성동별곡> 관련 일로 만났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넷, 문화체육부 의원을 그만큼쯤 보좌한 입법과 정책관련 전문가였다. 식사하는 한 시간 동안 가볍게 시작한 성동문화와 재단 이야기는 깊고 다양하게 뻗어갔고,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3월 15일 성수아트홀 재개관을 앞둔 윤광식 대표를 다시 만났다. 문화의 하드웨어적 인프라는 어느 정도 갖춰졌고, 마을공동체 역량이 풍성하지만, 성동의 문화적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함께 답을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다.  윤광식 대표이사_새로 조성된 소월아트홀 광장을 바라보는 2층 연습실에서.문화 정책과 입법에 오래 관여한 문화행정가- 소월아트홀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문화재단은 8년째다. 어떤 분은 코로나19가 16부작 미니시리즈 중 14부작 정도를 지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도 곧 종식되면 성동문화재단(이하 재단)도 큰 변화를 맞을 거다. 먼저 정원오 구청장이 내신 <지속가능도시 ESG>를 혹시 읽으셨나?“물론. 발로 뛰어본 이만이 쓸 수 있는 책이었다. 일단 재밌게 썼고, 현장 중심으로 쓰셨고. 슬슬 넘어갔다. 일관된 철학도 있었다.”- ESG(환경-사회-협치)를 마을에 적용해 보면, 매우 통합적인 어떤 걸 요구하는 개념이다 싶었다. 시대의 큰 조류이고. 재단에서도 관련한 움직임이 있을까 궁금하다.“심플하게 보면 환경 문제를 기초로 하고, 소셜 그러니까 사회에 대한 참여, 공동체의 확산이나 회복 이런 문제들 아니겠나. 지역 밀착도를 높이고, 지역 예술가나 전문가와 협업체를 구성한다든지, 구와 저희 문화재단이나 도시공사 같은 출자 출연기관들의 더 밀접한 협업을 구상하고 있다. 거기에 이코노미, 지역 경제가 살아야 된다는 화두도 있다. 현실적이고, 100%합당한 얘기다. 거기 원칙이 있다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야 자유와 창의가 샘솟는 문화 경제가 만들어진다.”- 아참, 먼저 재단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주신다면?“올 7월이 되면 7년이다. 현재 문화재단이 소속 기관들의 위탁기관까지 포함해서 21개 기관이다. 도서관이 7개, 소월과 성수 아트홀, 아이꿈 누리터라고 복지 쪽에 있는 초등학교 돌봄센터가 7개, 청소년 문화의 집, 상담센터들, 어린이집 두 개, 다락옥수와 갤러리 허브 등 전시실 공간 2개 등이다. 청년 상담센터 성동오랑도 있고. 직원이 대략 380여 명, 문화쪽만 160여명이다. 기간제를 합하면 더 많고. 성동문화재단은 2014년도 지역문화진흥법이 국회에서 만들어지고, 저도 그때 국회에 있으면서 상당한 역할을 했었는데, 그리고 그 안에 지역 문화의 진흥과 발전, 그 다음에 지역 문화 창출을 위해서 지역 문화 재단을 만들 수 있다는 규정이 처음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법에 근거해서 이제 문화재단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전엔 대개 조례상에 기반해 만들어졌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국가보조금법상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상태의 국가 국비 지원을 할 수 없다, 이렇게 돼 있다. 지금 재단이 약 102억 정도 예산으로 경상 운영과 일부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된 거다.”한국콘텐츠진흥원 협약표창장 그리고 감사패, 펑펑 울던 직원들을 어찌하나 문화는 자연스레 태도와 관점에 스민다. 법령과 예산, 가용가능한 자원부터 짚는 것은 아마도 윤광식 대표에게 제2의 천성이 된 듯했다. 문화정책에 정통한 문화행정가가 본 성동문화재단의 풍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출범 테스크 포스를 꾸리고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신생 문화재단은 많은 고민을 안고 있었을 터였다.“준비와 내용이 없는 건 아닌데, 재단이 나아가야 될 중장기 발전 계획에 아쉬움이 컸다. 앞으로 문화재단이 어떻게 걸어나갈 것인가를 제대로 연구 용역하고 그다음에 구성원들의 의견도 좀 들어보고, 또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문화재단의 모습을 살펴본 다음, 세계적인 추세, 흐름 이런 것들이 결합이 돼야겠는데, 이제 막 그런 걸 만들어가고 있다. 또 예술가 공예가 활동가 이런 이들과도 어떻게 협치해 갈지, 방향을 잡고 구체화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구청을 쫓아가는 관치적인 측면도 여전히 강한데, 이제 슬슬 탈바꿈해서 문화재단만의 독자성을 확립해가는 시작이, 이제부터 벌어질 거다.”- 문화재단 블로그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봤다. 직원 두 분이 표창장과 감사패를 받았다. 문화사업부 정현정 님, 그리고 도서관운영팀 정도일 직원이었다. “저는 상을 준다는 것이 나름 품격과 존중과 그분이 했던 노력의 가치가 스며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구청장께서 코로나로 나갈 수가 없는데, 구민들 문화에 대한 향유권을 높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베란다 음악회, 자동차 극장 공연을 총괄 주도했던 게 정현정 주임이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제일 힘들게 고생했다.”- 다른 분은 감사패를 받았다.  “취임후 21개 기관을 3번에서 4번 정도 돌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훑어만 보는 게 아니니까. 저는 지하부터 시작해서 옥상까지 다 열어보고 꼼꼼히 본다. 그런데 그 분은, 용답도서관인데, 방 상태가 너무 청결하고 깔끔했다. 일반적으로 본인만의 공간이거나 시설직 공간이 그러기 쉽지 않다. 공구함들 정리해 놓은 방이었는데 딱 느낌이 '정갈하구나!'. 그리고 만나 말씀 들어보면 이분이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이런 분이 반드시 귀감이 돼야한다. 전 직원들한테 모범으로서’ 소개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한 가지였다.”- 공무원에게 상벌은 당연한 것일 수 있는데, 무엇이었나?“부임후 한 2개월 정도 지났을까. 전 직원들 면담을 시도했다. 한 90명 정도를 개별 면담. 따로 부르는 건 아니고, 보고 들어오면 자연스레 말을 붙인다. 생활이 어땠는지, 근무 여건은 어떤지. 그다음에 본인 생각은 어떤지, 각종 성과 평가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재단이 어떻게 갔으면 좋겠는지. 직장내 갑질은 없는지, 불편하거나 불만족스러운 건 어떤 거였는지를 쭉 묻고 들어보려는데 처음에는 얘기 잘 안 한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대표시니까.(웃음) “한 30분에서 한 시간쯤 얘기를 나눈다. 한 5분 정도는 쭈뼛쭈뼛 하다가 한 10분 정도 되고 하면, 쭉 얘기하는데…. 그중에 한 70~80프로는 펑펑 울고 나갔던 것 같다.”- 마음 아픈 일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에서 그런 일을 겪는다고 한다. 죽도록 일이 많거나, 비합리적인데 자신의 목소리는 묻혀만 가는…. “그동안 재단 자체가 전체적으로 좀 '인색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도 없고 관심도 없고 서로 간에 애정도 없고. 그 이유가 뭐였냐 봤더니 원 퍼슨 원 프로젝트, 1인 1사업 체계였다. 들어온 지 1년6개월 된 친구나 십년 된 친구나 똑같이 사업을 하나씩 받아서 독립 채산으로 하고 있는 거였다. 10년차면 노하우도 있고 금방금방 잘할 거 아닌가. 그럼 가르쳐야 되는 거지. 그런데 소통은 불가하고 내 일에 관여 말고, 그러면서 잘 되든 잘못되든 서로 외면하다 보니, 직접 책임도 지게 되면서 트러블이 많아지고 악순환이었다. 그것부터 바꿔나가야겠다라고 생각했다.”사무실에서 윤광식 성동문화재단 대표이사. 뒤에는 김구선생의 말씀 _한 없이 높은 문화의 힘_이 붙어있다. 가능한 문화자원과 기업들과도 협력해 문화도시 큰 꿈 이루겠다 - 문화재단이라고 해도 역시 직장은 직장인가 보다. 어떤 과정이었나.“소통을 해야 되겠는데 소통하는 방법을 모르는 거였다. 먼저 저를 보여줬다. 거기 신뢰가 있어야 따라올 거 아닌가. 머리를 쥐어 짠 게, '야, 문화재단 있으려면 기본적으로 문화적 지식이 좀 있어야 되지 않겠냐?' 했다. 문화가 결국 역사와 종교와 철학 이게 다 결합된 건데. 해서 잘 모르지만 열심히 공부해 서양문화사 열 강좌, 동양문화사 열 강좌, 그리고 한국문화사, 문화 행정이 어떤 건지를 좀 강의를 좀 하고 싶다. 이렇게 선언했다. 화요일과 목요일. 방법은 아침 시간밖에 없었다.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대표가 불러냈다는 소리 나올까 봐 ‘철저하게 자발성’에 기초해 듣고 싶은 사람만 왔으면 좋겠다.”처음에 다섯 명부터 시작하자 했는데, 처음에 28명 정도가 나왔다. 두번째 강좌에서, 불만은 아닌데 '이걸 교육 이수로 해달라. 근무로 쳐달라!’이런 요구가 왔다. 그래서 제가 화를 버럭 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인 것도 같은데.(웃음) “상도의가 있어야지! 여러분들이 한 시간 먼저 오는 만큼 나도 한 시간 먼저 온다. 강좌 준비에 주말도 반납하고 준비한다. 자발성에 기초해야지 싶었다. 유튜브로 찍자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러면 현장의 재미를 잃게 되니까, 안 했다. 최종적으로 한 스물두세 명까지 나왔다. 문화행정에 대해선 전체 직원들이 좀 들었으면 좋겠어서, 소월아트홀 개관하면 크게 해볼 생각이다. 물론 자발성에 기초해서….”(웃음)- 문화도시에 대한 구상은 신선했다. 기대도 크다. “문화도시는 예비도시 선정후, 본도시가 되면 200억의 예산을 5년간 집행한다. 우리 구의 문화적 역량들을 모아 준비하고자 한다. 문화자원이란 말을 행정용어로 처음 적용한 게 저였다. 조례도 먼저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데, 진행중이다. 타지역 공부를 마쳤고, 성동구 내 문화자원들과도 협의체를 구성하고 있다.”새 단장한 소월아트홀 2층 연습실에서 바라본 성동의 파노라마 풍경. 지역의 문화는 공간에서 꽃필 수 있다. 앞에는 광장이 펼쳐진다. 윤광식 대표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문화관련 단체와 기업등과 만나 업무협약을 맺는 일이다. 그간 가수협회, 한국실연자음악연합회 등 협력을 협의했고, 한국화랑협회와도 협약을 앞두고 있다. 성수동에 자리잡은 엔터테인먼트 기업 SM과도, 원 밀리언 리아킴과도, 그리고 도서관 자동화 시스템 이씨오도 재단과 '친구'가 됐다. 행정은 경영이 아니지만, 결과를 위해 모든 자원을, 체계적으로 동원한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하다. 세상에 있는 규칙에 충실하면서, 차근차근. 기사에 채 담지 못한 긴 인터뷰가 끝나고, 신영옥 홍보팀장께서 개관을 준비중인 소월아트홀을 안내해 주었다. 아직 비어있으나 산뜻하게 새단장한 350석 공연장, 예술가들과 공예가들이 햇살을 받으며 주민들과 만날 너른 아트홀 앞 광장, 그 광장과 왕십리를 파노라마 배경으로 가진 2층의 연습실, 디자인을 더욱 다듬은 성동문화재단의 로고 등까지 구석구석 새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코로나가 다행이었다. 우리가 준비를 충실히 할 수 있었다"는 윤대표의 말씀이 다시 상기됐다.무엇보다 공간을 다니며 함께 문을 열어준 직원들의 따뜻한 환대가,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태도가 계속해서 보였다. 사진촬영을 웃으며 거부한 그네들 뒤로, 새 모습을 한 재단 그리고 소월아트홀의 역사가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참, 성동의 문화정체성이 무엇이냐고? 이제 성동문화재단을 더 유심히 바라보시라. 문화행정가들은 문화로 그것을 실천하고 보여주는 법이니까.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3-11 18:39

꼬끼오 치킨호프의 박태선 사장이 딸 이지영 작가의 책을 들고 있다. “여름 밤엔 밖에서도 자리 폈으면… ”소박한 꿈도 꾼다.박태선 사장은 51년생이다. 겨울 초입 12월이 생일이니, 지난해말 정확히 일흔의 세월을 살았다. 그중 35년 동안 치킨 그리고 호프는 그녀의 일이었다. <꼬끼오 치킨호프>. 마장동축산물시장 서문을 건너, 육교쪽으로 조금만 오르면 그녀의 가게가 있다. 살짝 자리를 파고들어간 '겸손한 자리'다. 35년을 그 한 자리에서, 이름을 바꾸지도 않고, 메뉴를 고치지도 않고, 특별히 종업원을 쓰지도 않으면서 88년 올림픽을, 2002년 월드컵을 그리고 2018년의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동네 사람들과 소리지르며 박수치며, 묵묵히 치킨을 튀겨내고 골뱅이소면을 말면서 함께 자리를 지켰다. 지난해 우연히 들르게 된 그 가게엔 자녀들이 보낸 꼬끼오 35주년 축하 화환이 문 앞에 우뚝 버티고 서있었다. 그리고 매장 안에는 그 박태선 사장의 따님이 지은 책 세 권이 나란하다. 《엄마의 돈 공부》 《엄마의 첫 부동산 공부》 그리고 《엄마의 경제독립 프로젝트》.2020년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보았을 이들이 박태선 사장같은 자영업자들이었다. 어려움의 시기 동안에도 꼬끼오 치킨호프는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50억 자산가의 엄마이자, 35년 자기 가게를 굳건히 지켜온 사장 박태선 님과 지난 2월 10일 만났다. 인터뷰 후에도 박태선 사장은 가게를 열기 위해 자신의 일터로 갔다. 35년간 한 자리, 한 메뉴, 엄마 박태선의 가게- 35년은 강산조차 세 번 반쯤 바뀌는 세월이다. 오랜 동안 수고 많으셨다. 자녀들의 같은 마음으로 축하인사 전하고 싶다. 처음 가게를 이곳서 하게된 계기가 궁금하다.“1986년 찌는 여름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중곡동. 거기서 2년여쯤 첫 치킨호프 가게를 하고 있었다. 장사가 잘 됐는데, 비워달란 말을 들었다. 서대문에 있는 녹십자병원에 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다, 문을 연 호프집을 봤다. '대낮부터 장사를 하다니, 이곳 목이 좋은가보다!' 그렇게 생각해 돌아오는 길에 내렸다. 우리집 옆 선경부동산이 옛날엔 몽성사였다. 그곳 할아버지가 이곳을 소개해 주셨다. 당시 돼지갈비식당이었던 곳이었는데, 살짝 건물이 들어가 있어 가게세가 좀 쌌다. 인수를 한 뒤 중앙시장 가서 에어컨도 설치하고, 인테리어도 한 다음에 7월초 문을 열었다. 어느새 35년이다.”- 마장동 축산물시장 앞의 치킨 호프집이다. 장사는 잘 됐나?“당시엔 시장 경기가 좋았다. 상인분들이 바빠서 옷도 못 벗도 여길 오시는 거다. 장화 신고, 앞치마도 벗지 않은 채로, 노란 의자였는데 핏물이 고이기도 하고…. 그래도 뜨거운 치킨이랑 차가운 맥주를 맛있게 드시고,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까 좋았다. 위로 받고 가시는 분들도 있고. 직원 없이 홀로 버티면서 식사를 챙기기도 어려우니까 배고플 때도 여러 번이다. 겨울에 문열러 오면 춥고, 밤늦게까지 하려니 힘들지. 그래도 묵묵히 도와주는 분들에게 힘을 얻었다. 따뜻한 눈인사로 추위도 잊고, 가끔 김밥 같은 거 사서 들러주는 분도 있고. 그런 분들 덕분에 현재까지 버틴 거지. 이젠 두 아이도 다 출가하고, 손주까지 있지만, 계속 가게를 하는 이유일 거다. 놀면 너무 심심할 것 같고.”- 35년여 기간 동안 어려운 일이 많았겠다 싶다.“가게에 불이 난 적도 있다. 우리집은 치킨을 압력솥에서 튀긴다. 훨씬 더 보드랍고 잘 익으니까 오래전부터 그렇게 했지. 헌데 어느날은 내가 가스불만 줄여진 상태로 마감을 했나 보더라고. 아침에 와서 보니까 솥에서 연기는 나지, 기름은 쫄아붙었지. '장사 해야지!' 하는 급한 마음에 거기에 물을 부었다. 그랬더니 확 기름증기에 불길이 번져서 천장에 불이 붙은 거라. 실크도배지라 금새 번지는데, 마침 옆집 성인약국 할아버지가 소화기를 갖고 계셨다. 옆 치과서도 소화기를 갖고 와 함께 꺼주셨다. 전기가 다 나가고 난리가 났지만, 그래도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이웃들이 늘 고마운 이유다.”-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을 안 물을 수가 없다. 식당이나 카페처럼 사람이 모여 음식을 먹는 곳의 매출은 특히 어려울 것 같은데.“우리집 꼬끼오는 오후 4시부터 장사를 한다. 그리고 9시면 영업을 마쳐야하니까 손님이 1/3으로 줄었다. 1차 손님을 받을 수는 있는데, 2차는 못받으니까. 어려움은 물론 코로나19 이전에도 있었다. 여름엔 손님들이 바깥에서 앉아 먹었으면 한다. 우리 가게는 바깥에 상을 펴도 사람들 통행에 방해가 덜 되는 편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야외에서 영업을 하다가 누군가 신고를 하면 그걸 못하는 거다. 벌금도 물고. 한 삼년여 그런 신고 때문에 장사를 할 수가 없었다. 한여름에만 2달 정도 장사를 하는데. 유럽 같은 데는 노상 카페도 있고, 이게 한여름 밤의 낭만도 되는 건데…. 그런 점을 행정에서도 배려를 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35주년을 맞은 박태선 사장의 가게에 가족들이 축하 화한을 보냈다 “나를 위해 돈 쓰세요!”20억 자산 가진 딸이 엄마에게 하는 말- 따님의 책이 가게에 전시돼 있었다. 돈 공부, 부동산 공부, 경제독립 프로젝트 관련한 책이었다. 20억대의 자산가시라고. 김미경TV에서 200만회 조회에, 유튜브 강의 모습도 봤다. 그 책들의 엄마가 혹시 박태선 사장님인가?(웃음)“그건 아니고. 우리딸 지영이가 평범한 엄마였다. 밖에서 일하고, 집에서도 일하고, 애들 키우고, 그게 얼마나 장한 일인가. 그런 이들이 돈도 벌고, 집도 사고, 경제 독립도 했으면 싶어서 낸 책이란다. 책 사다가 열심히 읽고, 밤새서 공부하고, 세미나도 참석하고 그러더니 책을 냈더라.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지금은 강의도 하고, 지방에도 가고 해서 엄청나게 바쁘다. 돈을 제대로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가계부 같은 것도 내서 총 다섯 권을 낸 걸로 알고 있다.”- 저자 이지영이 부모님 이야기를 책에는 무엇이라고 썼나?“엄마 아빠가 돈 때문에 다투는 모습?(웃음) 사람들은 그 책을 읽고 되게 쉽게 읽힌다고 하더라. 다른 재테크 관련 책은 읽기가 되게 어려워지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게 쓰여졌다고... 다 내 이야기 같고 눈물이 나더라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다면 엄마로서는 따님의 책을 보고 새롭게 배운 부분이 있을까? 그 부분은 무엇인가?“나를 위해 돈을 써라! 그렇게 말했더라.”- 돈을 나를 위해 써야 한다고? “그 말이 맞다. 내가 없이 살 때도 아이 교육비를 아끼지 않았거든. '무슨 과외를 해?' '대학을 무슨 돈으로 보내?' 그렇게 주변에서 이야기할 때도 우리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그건 엄마가 딸을 위해 쓴 것 아닌가?“딸도 자기 투자를 많이 했다. 해외여행을 해도 그게 자신의 추억이 되고 힘이 되고 그러니까, 그런 건 한다. 나도 일요일이면 등산을 하고 여행을 간다. 토요일 밤에 떠나서 일요일 돌아오는 때가 많다. 돈 아낀다고 안 가고 집에 있어봐야, 아프면 그게 다 병원비로 들어가는 거니까. 건강하게 활력을 찾고. 자신에게 보상을 해야, 새롭게 살아갈 힘이 생긴다는 거다. 그런 건 딸에게 배운 거다.”지영씨는 책에서 '엄마가 이렇게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하는 모습을 처음엔 서운해 했다. 손녀의 생일도 간단히 토요일날 점심때 가게서 때우자는 이유가 밤이면 엄마의 여행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지영씨도 곧 마음을 바꿔 엄마를 응원하고 있다.  - 누구와 함께 가시나?“마장동에 녹색산악회라고 있다. 향일암에도 가고, 정동진으로 새해 해돋이도 보러 가고. 주변 세탁소 아저씨랑 풍물방 사람들도 함께 간다. 이웃들도 만나고 참 좋다. 남편은 다른 취미가 있어 함께 가지 않는다. 나는 산을 정상을 갔다 와야하는데, 남편은 좋아하질 않으니까.”박태선 사장은 남편을 젊어 다니던 회사에서 만났다. 규모가 큰 무역회사였다. 당시 아홉 살 위이던 남편은 불문학을 공부했던 사람. 딸이 영어통역대학원에 갈 만큼 영어에 관심이 크고, 책을 몇 권이나 낼 만큼 문재(文才)가 있는 건 아마 그런 영향일 것이다. 엄마 태선이 딸 지영에게 권한 공부는 수학과였다. 이러한 이력으로 지영씨는 당시엔 외국계 사모펀드가 최대주주로 있던 은행에 입사, 본점에서 최고경영자들을 수행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혔더랬다. 인생의 일들이란 허투루 쌓이지 않는 법이다.따님 이지영 작가가 낸 책들. 엄마는 그 자격만으로 돈을 벌고 인생을 즐길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성실하게 일하고 넉넉한 마음 지닌 엄마는 이미 부자 딸 지영씨가 쓴 책에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부모님은 평생 집을 산 적이 없다. 부모님의 사업이 잘 되어 꽤 넉넉할 때조차도 전세로 살았다. 몇십 년 전 알아봤던 아파트의 분양가가 1억2천만원, 전세가가 8000만원이었는데, 부모님은 담보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결국 8000만원을 내고 전세를 살았다. 이를 그 집주인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결국 그때 집주인은 분양가와 전세가의 차익인 자기 돈 4000만원을 갖고 새 아파트를 소유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아파트의 시세는 7억원이다. 더 안타까운 건 그때보다 연세가 더 많아진 부모님께서 지금도 전세로 살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부모님은 전세금은 언제든 받을 수 있는 안전이 보장된 돈이고, 집을 사게 되는 순간 리스크는 커진다고 여기신다.”-《엄마의 돈 공부》72쪽에서지영씨는 어떻게 했을까? 지영씨는 5:1:1:3 원칙을 지킨다. 일단 수입의 50%는 먼저 저금하고, 30%는 생활비로 쓴다. 1/10은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1/10을 다시 자신을 사랑하는 일, 즉 보상에도 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영씨는 이러한 방법으로 종잣돈 1억원을 3년 안에 모은 다음, 꾸준히 공부를 하면서 집을 마련하고, 부를 쌓아나갔다.다음에 오는 세대는 이전의 세대보다 늘 더 나은 법이지만, 그렇다고 이전의 세대가 다음 세대보다 더 낡거나 바보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가고, 새로운 세대가 거기 적응하고 있을 뿐. 부모는 변하지 않는 세상의 더 큰 원칙에 충실한 이들일 뿐. 딸 이지영 씨도 엄마가 자신의 삶을 즐기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 데 대해 경의를 표했었다.- 따님 이지영은 “엄마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경제 멘토”로 책에 소개됐다. 따님이 <꼬끼오 치킨호프>를 프랜차이즈화 하자고 하지는 않나?(웃음)“하하. 말만. 딸이 미혼모를 돕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오히려 그랬지. 혹시 그 친구들이 내 기술을 배우러 온다고 하면 아낌없이 가르쳐 주겠다고.”태선 사장의 낭군은 아침이면 재료를 준비해주고, 가게 청소를 하고, 정리정돈도 해준다. 넉넉한 마음을 일에도 관계에도 쏟는 엄마는 이미 충분히 부자였다.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2-23 16:53

코로나19는 지난 2년여간, 지구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미증유의 영향을 끼쳤다. 코로나19보다 '천배쯤 그 파장이 클 것'이라고 예상되는 지구온난화는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이제야 국가와 기업이 행동에 나서는 모양새다. 바이든은 대통령이 되면서 제일 먼저 트럼프가 탈퇴했던 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했다. 세계최대의 자산운용사라는 블랙스톤은 그들이 투자하는 각국의 대기업에 서한을 보내 “거의 모든 투자에서 ESG 평가를 반영할 것”을 선언했다. 이제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대한 고려와 적용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보인다. 하지만 의구심은 여전히 있다.2022년 올해는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 보고서가 나온 지 50년이 되는 해다. 여기서 언급되고, 이후 큰 현안이 된 단어가 '지속가능성'. 즉 우리는 이미 50년 동안이나 지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이어졌지만, 사태는 현재까지 왔다. 지구온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성동구의 ESG 상황은 어떨까? 성동구는 지난해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발족했다. 정원오 구청장은 『지속가능도시 ESG』를 책으로 펴냈다. 올해 성동구에선 9억9천의 예산으로 'ESG 실천공모사업'도 실시한다. 기업쪽은 어떨까? 한기선(세림기계) 대표를 만난 것은 그가 '기술적인 해결책'을 가진 '기업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폐그물이나 부자같은 해양 스티로폼, 플라스틱, 폐비닐, 폐목재 등을 처리하는 환경산업 최전선에서 일하는 연구자 겸 경영인이다. 환경(E)문제에도 사회(S) 구성원과 여러 영역 협치(G) 필요 - 여러 환경문제가 있겠지만, 코로나19 이후로는 일회용품 재활용쓰레기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현장에서 매일 이런 문제를 접하고 있을 텐데?“쓰레기 문제를 발생시킨 것은 인간 아닌가. 그러니 인간이 스스로 우리가 발생시킨 쓰레기들을 처리해야 하지 않나. 쓰레기를 발생지에서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쓰레기 처리를 외부로 옮겨야 할 경우에 또다른 환경오염과 물류비용이 발생한다. 어느 지자체에서 다른 곳의 쓰레기나 재활용품을 받으려 하겠나. 2025년엔 서울의 쓰레기를 이제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인천을 탓할 수가 없다.”- 또 다른 문제가 있나?“지난해 부산 서구 생곡의 재활용처리센터에서 노동자가 분신자살을 했다. 처리주체, 노동환경면에서 많은 문제가 있던 곳이었다. 4차산업 혁명의 시대에 아직도 제대로 된 처리환경이 되지 못하는 곳이 많다. 환경처리노동자들의 인권과 생존권조차 보장되지 못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도 된다. 이전처럼 쓰레기 문제를 대처하면 안 되는 시대다.”- '어쨌든 우리 지역에서 쓰레기 처리는 안 된다'는 주장은 여전하다. “정치가 설득을 해야할 문제라고 본다. 민간에 인센티브를 주고,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방안을 낼 수도 있다. 사용자가 깨끗하게 세척하고 분리해낸 재활용품에 대해서 보상을 하는 안이다. 에코코인 같은 걸 활용하는 곳도 이미 있다. 재활용처리 시설 같은 것을 만들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전체 구민에게 주식으로 주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사회적기업화를 하면, 이게 그린산업이 되도록 주민참여를 이끌 수도 있다.”폐합성수지 무촉매자연순환형 열분해 정제유 제작 과정. 여러 종류의 폐기물들은 열분해 과정을 거쳐 정제유로 환원된다. 자료제공 (주)세림기계- ESG에서는 환경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와 지배구조도 중시한다. 즉 사회적 약자를 돌보거나 민·관·산학의 협치도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성동구 같은 경우도 진행되어 오던 유지처리장 같은 시설설치가 무산됐다. 성격은 약간 다르겠지만 결국은 거버넌스 협치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성동에서 재활용정류장 같은 정책도 운용한다. 아파트같은 곳은 관리가 되는 편이지만, 일반 주택가에서는 재활용품 관리가 잘 안 되니까, 이를 관리하는 데 지역 자활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환경 문제에 사회적 배려가 적용되는 것이다.“필요한 정책이라고 본다. 민간의 협조와 이해 없이는 쓰레기 폐기물 처리장 같은 것도 짓기 어렵다. 정책 집행자들이 제일 신경을 쓰는 곳이 어디겠나? 기업보다 유권자다. 학계의 전문가들이나, 민간의 시민단체등과도 긴밀하게 협조하고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쓰레기는 처리만이 아니라 애초에 줄이는 노력도 해야하는데, 여기에도 민간의 참여와 압력은 절대적이다.많은 곳에서 환경운동은 곧 시민 소비자 운동이기도 하다.”폐플라스틱, 폐비닐, 폐스티로폼 처리할 기술적 비즈니스적 대안 이미 있어- 현재의 재활용품 처리 방식이 궁금하다. 폐지나 캔은 잘 알려져 있고, 페트병 같은 경우는 따로 모아서 섬유를 만들기도 한다. 하나하나 묻자. 우선 스티로품 처리는 어떻게 하나?“용적을 우선 줄인다. 그걸 감용작업이라 하는데, 전기열선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이 배출된다. 우리는 스티로폼을 고압스팀으로 찌는 방식을 사용한다. 유해 물질이 발생하지 않고, 바닷가에선 조개나 기타 이물질이 붙어도 제대로 처리된다. 유럽에서도 권고하는 친환경적인 처리방식이다.”- 감용되고 남은 그 재료는 어떻게 처리하나?“부피를 줄인 다음 그 물질은 액자나 건설현장 몰딩 소재로 재탄생된다. 폐기물 처리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성동구엔 축산물시장이 있다. 이곳에서도 폐비닐이나 스티로폼이 엄청 많이 사용된다. 코로나19 이후로는 각 가정에서도 플라스틱과 폐비닐도 배 이상 늘어난 것 같다. 이런 처리는 어떻게 하나?“기존의 방법은 고형폐기물연료(SRF)로 만들어 태우는 거였다. 지방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열병합발전소나 시멘트공장 등에서 활용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태울 때 다이옥신 등 2차오염 물질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온실가스도 나오고. 항산화물 질산화물이 나오는데 이것 역시 규제를 받으니까 막대하게 환경설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 동안에는 제재가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이제 탄소세라든가 하는 것들이 강제로 부과가 되면 역시나 큰 어려움에 빠질 거다. 환경오염 등의 문제로 주변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는 별개로 하고.”- 세림은 조금 다른 방식인가?“최근 우리는 폐합성수지 무촉매 자연순환형 열분해 정제유 재활용 설비를 개발했다. 600도씨 무산소 환경에서 용융로에 폐플라스틱, 폐비닐, 나일론 같은 걸 집어 넣는다. 그러면 등유와 비슷한 기름이 추출되고, 납 등 물질은 비중에 의해 가라앉는다. 비닐이나 플라스틱이 원래 석유에서 온 것 아닌가. 역분해, 역반응이라고 보면 되는데, 그런 상태로 처리한다. 오염된 폐비닐 같은 것은 기존엔 재활용 처리되지 못해 소각되던 거다. 폐지라든가 캔은 돈이 되고, 처리기술도 있다. 어려운 문제같지만 기술적 대안도 분명히 있다는 점을 강조드리고 싶다.”- 환경문제, 기후변화 대응, 이산화탄소 저감…. 이런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기업은 왜 일찍 이 문제에 나서지 않았나? 혹은 이미 나서고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것인가?“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는 쪽이니까. 그동안은 탄소배출에 대한 규제가 적었다. 유예기간이 지속됐고. 해마다 기업에 국가에 배출가스에 대한 저감목표를 준다. 그런데 예를 들어 생산량이 떨어지면? 80% 생산목표에 탄소배출이 백만톤이 목표였어. 그런데 우리가 50만톤밖에 생산을 못했어. 그러면 감축할 이유가 없는 거다. 그런 오류에 빠지면 자구적 노력을 안 한다. 목표치를 어떻게든 외면하거나 낮게 가져가는 전략이 통했다. 이제는 부족한 배출가스는 돈 주고 사야하는 시대가 됐다. 저항이 여전하지만, 실제로 삼성이나 SK같은 데서 탄소세 때문에 정제유 재활용 열분해에 관심이 높다. 투자도 많이 하고. 그간 투자를 안 한 것은 아닌데, 실패를 한 다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거지.”인간이 지구에 가한 위협 인간이 스스로 제거해야- 이런 일에 어떻게 나서게 됐나? 한기선 대표의 이력이 궁금하다. “90년대초 충남대에서 임산공학을 공부했다. 산림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인간에게 가장 친환경적인 재료가 나무 아닌가. 소재 중심, 목재자원의 솔루션을 찾는 게 내 관심이었다. 석사과정에서 당시 복합재료를 연구했다. 그 이후 들어간 곳이 LG화학기술원. 복합바닥재 개발에 나서서 건강마루, 구들장마루 등을 개발했다. 무기 유기소재를 10년쯤 다뤘다.그 뒤 카이스트 옛 동료와 국가가 과학기술에 대한 공공기술 이전 사업화 모델을 컨설팅하는 회사에서 일했다. 날리지 웍스라고. 한국기술정책연구원(STEPI) 멤버들이 세운 회사였다. 한 3년쯤 했나? 그 뒤 금호석유에서 일했다. 신재생에너지사업 분야였다. 거기서 8~9년쯤 일했다. 바이오매스도 주요한 업무 분야였다.”- 바이오매스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해준다면?“생물 유기체로부터 만들어지는 모든 종류의 물질을 통칭한다. 티베트같은 곳에선 소똥을 연료로 사용하고, 우리 선조들은 인분에 재와 겨 등을 섞어 퇴비로 만들어 땅에 뿌렸다. 자원의 재활용과 순환이란 측면의 접근이다. 기후변화 시대 우리의 화두다.”- 회사를 나와서 새로운 기업의 대표가 됐다. 계기는?“단순하게 보면 폐기물이 이제 돈이 되는 시대가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훨씬 더 절실하게 기후변화에 대한 해법을 실천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유일한 해법은 탄소배출을 저감하고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거다. 지구가 현재에서 1.5도 이상 기온이 높아지면 해안 도시들에 큰 재앙이 온다. 폭염 한파 폭풍 산불이 일상화될 거다. 무엇인가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만들고 배출해낸 쓰레기와 화석연료의 부산물질들은 결국 인간이 해결해야 한다. 쓰레기를 처리하고 다시 자원으로 100% 재순환하는 것. 그것이 우리 인간이 사는 법이다. 거기에 산업의 미래도 있다고 생각한다.”·(주)세림기계 : 공장 경북 경산시 자인면 울옥길31-24 ·연구소 :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동로 46-1(남양동3-7) ·홈페이지 : www.serimmachine.com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2-23 16:45

청년 이상국은 이번 주에 다시 강원도 주문진 향호리의 주민이 된다. 지난 2012년 봄쯤 서울로 이촌향도해온 지 딱 10년만이다. 2012년 당시 그는 스물일곱.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던 해였다. 서울서는 처음 자리를 잡았던 곳이 성수동이었다. 디자인과 일러스트를 하는 누나가 당시 성수동 일러스트학원에서 1년 정규코스(꼭두는 수료후 연구년제와 공동작업실 체제도 운영했다. 해서 많은 예비 작가들이 성수동을 기반으로 주거와 작품활동을 했었다)를 밟고 있었다. 경일초등학교 근처서 집을 얻었다가, 뚝섬역 6번출구 가까운 다세대주택으로도 옮겼다가 옥수-금호동 경계의 산동네로도 이사했으니, 10년쯤 그는 서울시민, 성동주민으로 살았다.서울서 그는 주로 문화와 예술이 깃드는 공간에서 일했다. 시민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도 여럿 했다. 그때마다 그는 책이거나 잡지거나를 만들고, 꾸준히 활동과 사고의 흔적을 인터넷 공간에도 남겼다. 그의 10년 서울 성동의 생활을 공유한다. 성동엔 그를 기억하는 이들도 제법 될 것이니…. 테마파크서 웃던 가족들, 특별한 경험을 일상으로 만들고 싶었던 청년 - 서울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재작년 7월 여름에 아버지가 쓰러졌다. 뇌출혈로 알았지만, 최종 진단은 뇌종양의 일종인 뇌수막종이었다. 큰 수술을 하고 서울의 국립재활원에서 집중재활도 했다. 현재는 강릉에서 재활의 과정을 밟고 있다. 아버지를 설득하여 서울의 재활병원으로 이끈 사람이 나였다. 재활병원 입원하여 1년을 함께했다. 아버지는 아직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 곧 전입신고도 고향에 할 생각이다.- 고향은 어떤 곳인가? “고향이 강원도 강릉이다. 강릉에서도 북쪽 끝의 주문진에서 살았다. 동해 바다와 산이 접해있고, 동해안에는 바다와 연결된 자연 호수인 석호가 많았다. 내 고향 향호리도 그런 곳이다. 부모님은 그곳 농부였다. 지금도 여전하고.- 고향 떠나 홀홀단신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나. 직업과 직장, 연애와 결혼 그리고 주거와 독립 같은 큰 과제는 청년의 과제였고. 어떻게 생활했을까 궁금하다. 먼저 일에 대해서.   “서울에서의 첫 일터가 서울어린이대공원이었다.”- 대공원이 있는 광진구가 본래는 성동구였다. 거리가 가까워서?“그런 요인도 있겠지만 일하고 싶은 곳이었다. 문화기획자로서 사는 것, 테마파크에서 다시 일하고 싶었다. 군 제대후 알바를 했던 곳이 에버랜드(예전엔 용인자연농원이었다)였다. 에버랜드 엔터테인먼트팀에서 공연 가이드로 일했는데, 관객들을 위한 이벤트를 만들고 또래들과 함께 일하면서 큰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다.”-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직원들을 캐스트라 부르는데 분기별로 자유이용권이 나왔다. 부모님과 외할머니, 외삼촌 등 가족들을 초대해 함께 했었다. 공연도 보고 퍼레이드를 함께 했던 기억이 추억으로 남았다. 현실은 그저 일상의 경험이지만, 이곳에서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그게 정말 즐거운 추억이 된다면, 우리의 일상에 새로운 경험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않나? 본질적 가치에선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농촌 테마파크 같은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 졸업후 첫 직장인 어린이대공원 일은 어땠나?“캐릭터월드라고 복합문화공간이었는데, 키즈 테마파크였다. 공간을 임대받아 운영하고 있었는데, 내가 1년3개월쯤 됐을 때, 경영상 문제로 폐쇄를 맞았다. 다른 부서로 이동할 것인가? 일을 관둘 것인가 결정해야 했다. 전자라면 안정적일 순 있을 테지만, 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니까, 후자를 택했다. 다음으로 옮겨간 곳은 캐릭터 상품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캐릭터 라이선싱 사업을 했다. 나는 캐릭터를 테마파크로 조성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으나, 주어진 업무는 기대와 달랐다. 오래 근무하지 못하고 다시 떠났다.”일에 열심, 사람에 진심! 직장도 마을도 삶의 스승들2011년 서울시 보궐선거로 당선된 박원순 시장의 슬로건은 '시민이 시장입니다'였다. 그는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에 정책의 방점을 찍었다. 북카페나 마을예술창작소 같은 문화예술공간을 지원하고, 대안에너지나 미디어, 마을공동체나 사회적경제 지원을 위한 센터를 짓고, 자발적인 시민 주민 활동을 지원하는 활동이 서울의 마을 곳곳에서 펼쳐졌다. 내가 이상국 씨를 만난 것도 마을에서였다. 그는 성수1가2동의 마을계획단에서도 활동했고,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면서 소식지 편집을 맡기도 했다. '청년'은 드물고 귀한 존재였다. - 시민영역을 제3섹터라고 한다면, 3섹터서도 여러 활동을 한 것으로 안다. “사회적경제 영역의 청년활동가로 시작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발행하는 사회적경제 뉴스레터의 에디터로 기사 작성, 인터뷰, 편집 등의 기술을 배웠다. 이후 서울시 시민기자로 문화 공간을 찾아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당시 청년위원회라는 곳에서 정책조사단으로 청년 정책을 조사하는 활동을 지속한 것도 그때 시작됐다. 그때 만났던 친구들이 지금까지 관계를 맺고 있다.”- 다가치놀자 성수동에서라는 프로젝트도 수행한 게 기억난다. 숲에 가고 마을도서관을 찾고, 주민들 포럼도 만들고. 아마 많은 분들은 지역활동가로 상국씨를 기억할 거다. 대학에서도 일한 이야기도 궁금하다.“2년 동안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도 일했다. 당시 청강은 성수동에 교육실험장격인 청강랩[카페성수]을 열고 다양한 문화예술 강좌도 하고 여러 교육 실험을 했다. 셀프쿠킹클래스, 웹툰워크숍, 과학 북클럽, 하우스콘서트 같은 것이었다. 나는 주1~2일은 카페서, 3~4일은 이천에 있는 대학으로 출근했다.”- 대학이라는 큰 조직은 무엇이 특히 달랐나?“도시의 커뮤니티 내에서 조직이 시스템과 체계로 움직인다는 것은 약속과 합의가 중요하다. 큰 조직에는 내부 구성원들끼리 보이지 않는 약속과 합의가 존재했다. 청강에서는 조직 문화를 좋은 방향으로 개선 시켜 나가기 위해 내부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가는 분위기가 있었다.”- 조금더 설명해 준다면?“새로운 문화를 탐방하고 함께 모여 배우려 했다. 사람책이라고 있지 않나. 내부 구성원들끼리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서로 배우고 성장하려는 문화가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경청하는 기술 그런 것들은 사실 사람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건데, 청강에 있을 때는 여러 영역 작가나 교수님들과 협업을 하는 일도 많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배우는 게 되게 많았다. 일하면서 가장 많이 성장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청년 문화기획자 이상국 씨가 포스팅했던 지난 기사들. 고향 마을의 감자를 팔면서 '감자 오래 보관하는 세가지 방법'은 많은 이들이 읽고 댓글도 달았다. 가는 이제 지역에 내려가 그동안 경험하고 배웠던 것을 실천할 계획이다.아버지 간병 떠맡아, 고향서 아버지와 함께 일어서는 꿈꿔상국 씨는 청강 이후 실업급여를 받았다. 그동안 공부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구직활동도 했다. 청소년 진로 관련 교육회사 재취업. 야근이 많고 퇴사자도 많은 곳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쓰러졌다. - 직장이 안정적이고, 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그러니까 아버지 간병을 맡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무엇을 느꼈나?“사실 내가 병원에서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일을 아예 안 한 건 아니다. 친구들과 프로젝트를 계속했었다. 청년으로 내가 아버지 간병을 하면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거는 어떻게 보면 당시 내가 엔(n)잡러였기 때문이었다. 청년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여러 프로젝트를 맡았었으니까.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내가 간병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를 같이 완수 해야 될 책임 같은 게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그 일을 해서 조금 더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간병 돌봄 문제는 사실 개인에게 책임을 모두 전가하는 거는 정말 너무 어려운 일이긴 하다. 사회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이상국의 서울 10년은 문화기획자로서 성장하는 도시에서의 과정[사진 위]이었다. 이제부터의  삶은 고향 향호리와 아버지와 함께인 삶일 것이다. 그가 꿈꾸는 농촌테마파크의 현실을 기대한다.- 이제 서울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간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일단, 리프레쉬?(웃음) 그동안 프로젝트나 일을 마칠 때마다 여행을 했었다. 그런 여행도 좀 하고 싶다. 앞으로 할 일? 강점 가진 걸로 해야겠지. 글 쓰고 편집하는 일을 해왔으니까. 디지털 온라인 공간과 지역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 나는 국제통상을 공부했고, 그중 유통에 관심이 컸다. 고향의 농산물, 유휴공간이나, 빈 하우스 같은 것도 눈에 들어오고 있다.”- 이곳 서울로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지역의 입장에서 보자면 상국씨의 '귀향'이 크게 귀한 일이겠다. 지역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풀어갈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사람이니까.“아버지를 돌보면서 눈에 안보이던 사회적 문턱들을 많이 경험했다. 그걸 돌파하는 일이 어떤 게 있을 수 있을까? 생각이 많다. 아버지는 편마비 환자로 왼쪽 신체가 불편하시다. 신체활동의 제약은 크지만, 그렇다고 바깥 사회활동을 못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강릉이나 지역에 대한 이야기도 굉장히 많이 알고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분이다. 그걸 마을라디오 같은 형식으로 풀면 어떨까? 아버지는 답답함을 해소하고, 근처 어르신들과 교류도 할 수 있는 통로가 될 테니까. 얼마 전 TV 프로 한국인의 밥상에서 봤던 <풍정라디오> 이야기 같은….”하동, 목포, 전주, 순천 그리고 강릉의 공통점은?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가 한달살이를 했던 지역이다. 지역의 고민과 희망을 안고 고군분투하는 지연민들과의 깊고 오랜 만남에서 정석 교수가 얻은 결론은 두 가지. 하나는 '소다연강미(小多連强美)', 작더라도 그 수가 많아지고 서로 이어지면 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지역엔 희망이 있다. '일백탈수'도 그의 주장이다. '일 년에 백만 명 탈수도권해야 대한민국이 산다는 것. 여기 희망의 씨앗 하나가 이제 막 지역으로 뿌리를 내리러 갔노라 전해야겠다.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2-14 12:54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풀뿌리 기초자치단체장이자 도시탐험가다. 그동안 그가 낸 책들생존을 하는 데는 큰 혈관이 필수겠지만, 생활이 활기있게 이루어지려면 모세혈관이 건강해야 한다. 정치나 외교, 국방과 경제 같은 큰 영역은 국민의 삶을 좌우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곳은 역시나 지역이다. 내가 사는 동네와 학교, 우리 마을과 교회, 이웃들과 부대끼는 작은 공간들. 그곳의 삶은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삶의 풍경을 지배한다. 골목과 도시가 건강하고 지속한 가능한 곳에서만 사회도 국가도 건강하다.설명절 기간 동안 정원오(성동구청장)의 신간 《지속가능도시 ESG-ESG에 Economy를 더해 지속가능도시를 탐구하다》를 읽었다. 298쪽에 출처와 설명을 자세히 단 미주(尾註)가 열세 쪽이나 되고, 표와 그림 색인도 달린 책(아이쿠, 이거 학술서 같은 거 아냐?) 아닌가 싶었지만 오랜 만에 머리를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각오였다. 쓴 사람도 있는데, 그걸 못 읽겠어? 그저 재밌고 자극적인 기사나 영상만 보아온 터! 참회의 의례를 해야지. 이유는 또 있다.책은 중요한 사례로 성수동, 성동구를 든다. 2004년 주거를 시작해, 2012년부터 곳곳을 다니면서 '마을활동'을 하고 있는 나로선, 반가울 수밖에. 이 책은 내가 최근에 안고 있는 불안 혹은 욕구에 단비가 됐다. (우리는 아이들을 낳아 길러도 되는 걸까? 지구온난화는 어쩌누?) 10년 마을살이의 정리도 됐다. SNS나 신문의 쪽정보로는 만날 수 없는 포괄적 맥락과 해소에 이르는 길들의 지도가 거기 있었다.  분명코 도래할 고통의 그날들_우리 도시는 이래도 괜찮나?책은 '도시'에 대한 개괄로 시작한다. 도시는 성장해 왔다. A.D 1년으로부터 1820년까지의 59개국 평균 1인당 GDP는 겨우 1.5배 성장한다. 그런데 1820년 이후엔 10배 성장(1820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한다. 한국은 그 성장의 기세가 더 대단하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최근까지 우리의 GDP 성장률은 500배다. 1920년 서울 인구는 25만4천명인데, 100년 동안 서울인구는 약 40배로 증가한다. 서울만이 아니다. 서울과 '똑같은' 도로, 주택, 기반시설을 누리는 도시들은 '수도권'을 형성하고 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넘어 메갈로폴리스가 된 것이다. 11.3%의 땅넓이 수도권 인구는 50.2%다. 2,604만명이 산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니, 지금은 그보다 늘었을 터다. 문제는 이러한 성장이 지방의 소멸을 부른다는 데 있다. 지난 2018년 인구감소지역은 89곳이었는데, 2020년에는 105곳으로 늘었다. 대도시권 또한 네크로폴리스(폐도시, 무덤도시)가 돼 갈 수 있다. 수확체증의 법칙으로 성장한 도시에 수확체감의 법칙이 엄습하는 것이다.코로나19의 펜데믹(전지구적 감염)은 도시 팽창이 자연의 파괴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준 고통보다 100배쯤 파괴력이 크다고 여겨지는 기후변화도, 세계적으로 광범하게 진행된 산업화 즉 도시화의 직접 결과다. 도시란 곧 4차산업혁명이니 세계화(글로벌화)니 하는 말과도 동의어다. 이는 곧 양극화 불평등의 심화도 내포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생산력은 엄청나게 높아지는데, 노동은 체계적으로 제거된다. 땅과 공장을 가진 지배계급이 있었던 시절엔 많은 수의 중간관리자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애플이나 구글이나 메타(페이스북)이나 네이버나 카카오나 하는 주식시장의 상위 포식자들은 훨씬 더 작은 수의 기획자와 엔지니어(프로그래머) 그리고 디자이너만 데리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키오스크(무인 대면결제 설비), 무인공장, 자율주행차와 드론이 전통적 물류시스템의 인간들도 갈아치우게 될 것이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처럼, 생산력은 극히 높아지고 임금에 의해 지탱하는 소비력은 종말은 필연적이다.   개인의 자유와 도시의 풍요와 현대화의 편리를 조금도 양보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이 시대에서 코로나19로 잠시 맑아진 지구의 하늘 대신 우리는 양산되는 1회용 쓰레기, 땅을 뒤덮은 물류차량과 오토바이들의 물결을 새롭게 만났다. 전기차로 배터리로 혁신을 다진다는 현대차같은 대기업이 성과급 잔치를 벌인 날 그날, 지역에 뿌리박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파산선고를 했다.ESG+e 환경 사회 지배구조 그리고 경제라는 대안비극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 곳은 선진국, 잘 발달한 산업도시에서였다. 중후장대의 도시 디트로이트나 철강도시 피츠버그 그리고 조선업의 도시 스웨덴의 말뫼 같은 곳도 파산의 눈물을 흘렸다. 이는 점점 더 세를 불려가는 세계화의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하다. 렉서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이들은 억만장자가 되지만, 올리브나무처럼 붙박혀 사는 지역 토박이들은 쪽박을 면하지 못하더라는 것이 책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암울한 전망이었다. 도시는 어떻게 이에 대처해 왔는가?이 책 <지속가능도시>가 제시하는 대안의 이름은 ESG. 이제 우리-정부와 기업과 시민들-은 환경(Environment)을 최우선에 두고, 사회(Social)와 지배구조(Governance) 혁신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책은 여기에 경제(Economy)를 더한다. (그게 없는 건 기업으로서는 이 부분이 이미 전제조건이기에 그럴 뿐이다)이 네 가지는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필수요소들이다. 하나라도 없으면 그건 모두는 '0'이 된다. 2002년, 스웨덴 말뫼의 상징이었던 코쿰스 조선소의 대형크레인은 현대중공업에 1달러에 팔렸다. 해체와 이전이 조건이었다. 지역의 상징이자 생명줄이었던 조선소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알마르 레팔루 시장을 필두로 한 주민들과 기업인과 전문가 그리고 공무원들이었다. 이들은 신문지면에서 토론하고, 콘퍼런스를 거듭하면서 중공업의 도시를 지식산업도시로 탈바꿈시키는 현실의 도전을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미디어혁명도시(Media Evolution City)를 선포하고, 직주근접의 스타트업도시를 친환경적으로 건설한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은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선입견과는 다르게 스웨덴에서 해고는 자유롭단다. 하지만 직업을 잃어도 삶을 잃지 않아도 될 만큼 든든한 복지시스템이 동시에 존재한다. 평생학습은 사회 제도적으로, 사회에서 관습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구조에 적응해 그 안에서 다시 몸을 일으킬 충분한 지식과 기술을 얻을 수 있다. 필요한 재정은 국가의 재정균등화 정책으로 확보할 수 있다.피츠버그도 좋은 사례다. 한때 공동화위기에 빠져 청년층이 50만여명이나 빠져나가고, 고용율은 25%의 도시가 이곳이었다. 1994년 취임해 2005년까지 재임한 톰 머피가 시장으로 있으면서, 이 도시는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3위에 오른다. 어떻게? 피츠버그엔 48킬로미터 이상의 수변이 개발돼 녹지가 조성된다. 1천 에이커의 산업부지는 상업/주거/공공 복합단지로 변신한다. 도시는 내부에서부터 커갔다. 외부의 자원을 들어오려 했던 디트로이트와는 다른 방향이었다.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가진 이들이 그들의 아이디어로 꾸준히 추진됐다. 정책적 지원은 그들을 모일 공간을 마련하고 지원해주는 것이었다.혁신과 포용 이룬 지자체들, 희망을 만들어가다지속가능성이란 미래의 필요와 자원을 해치지 않고, 현재를 유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환경이 깨끗하고 풍부할 때, 비로소 사람들은 정주하려 한다. 성동구의 성수동이 현재와 같은 '전성기'를 구가하게된 결정적 요인중 하나는 중랑천과 한강을 끼고 조성된 서울숲 덕분이었다. 그 환경 하나만으로 충분한 매력으로 보고 몰려온 청년예술가들, 기획자들의 땀이 성수동에는 여전히 스며있다. 성수동은 사회적 연결선 안에 있다. 성수는 2호선 라인(2호선은 종로 을지로 퇴계로 구도심들과 영등포라는 물류와 산업 중심 그리고 강남이라는 신도시를 연결하는 라인으로 구상됐었다)이고, 뚝섬역-성수역 양옆으로는 한양대와 건국대라는 지식 기반도 근접해 있다. 이곳의 교수들과 학생들은 직간접적으로 성동구내의 여러 정책 형성과 실질적인 지역 활성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강을 따라 형성된 복부간선, 동부간선, 강변북로의 잘 짜여진 도로망과 왕십리역을 중심으로 하는 철로 그리고 강남 압구정이나 영동과의 인접성도 발전의 기반이었다. 서울에 희소하게 남아있는 준공업지대인 점도 메리트가 됐다. 예술가들이 공장과 협업을 하고, 기업가들이 스타트업을 일으킬 때, 이곳은 최적지였다. 말하자면 성수동 '지역사회가 가진 정체성'이 시대의 물결을 탄 것이다. 서울숲 옆 도로에 카페와 스튜디오, 식당과 스타트업들이 들어서기 전, 성수동엔 담장허물기 사업이 진행되어 있었다. 가게들 사무실 상점들이 쉽게 들어선 이유다. '젠트리피케이션(둥지내몰림)'을 호소한 청년기획자들과의 만남으로부터 성동구의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이 시작됐다.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는 서울숲길, 방송대길, 상원길의 몇 구역에는 프랜차이즈나 대기업의 입점을 막는 협의체와 함께 존재한다. 구청은 건물주들과 직접 협의하고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임대료를 일정 한계 내에서 막는다. [이 조례는 이후 2021년 5월 지역상권상생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로 발전한다. 지배구조(Governace)란 곧 협치인데, 이는 성수동이 코로나19가 득세한 현재도 지속해 활기를 유지하는 비밀이기도 하다.책에선 여러 키워드가 읽힌다. 도시 운영에 새겨둘만한 이야기들이다. 환경문제 혁신의 주체로 '기업'을 든 것은 인상적이다. 행정의 규제나 시민들의 도덕적 실천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이 거기에 있다. 필요를 인식케 하고, 이익이라는 유인책을 두어야 한다. 포용은 사회구성원 모두를 품으려는 마음이다. 그건 자선이 아니다. 그 안에 다양한 발전과 생존의 가능성이 있다. 천재의 오만과 오판에서 오는 부패를 막을 힘도 거기 존재한다. 갈등은 피하고 싶지만, 퇴비와 같다는 말도 적어둘 말이다. 땅에 뿌려지면 우리에게 큰 열매로 돌아오니까.  책 <지속가능도시>엔 지역과 자치단체가 환경(E)과 사회(S)와 G(협치) 그리고 경제(E)를 조화롭게 버무려 시대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사례도 촘촘하다. 퇴폐업소가 빼곡했던 성안로에 앵커시설 엔젤공방을 만든 강동의 사례도 보이고, 세대이음을 실천해 보육과 교육 그리고 노인의 교육과 돌봄을 활성화한 양천의 모습도 보인다. 경남 기장은 '교육이 최고의 복지'를 내세웠고, 동작구에선 어르신 행복주식회사를 운영한다. 건물클리닝과 아이돌보미 산타가 되고, 수공예 제작판매망도 있으니 봉사로 활력을 찾고, 경제적 효능이라는 일거양득의 현장이 거기 있다. 도시재생의 도시 순천이나 구역 정체성을 유지한 수원도 향후 여행지로 점을 찍어둔다. 기초자치단체는 작은 곳이지만, 이곳의 장은 시민의 삶과 전면적으로 만난다. 삶과 일과 쉼이 버무려진 그 안에 우리의 세계가 있다. 이곳이 구해지면 세계 또한 구해질 것이다. 수퍼맨조차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함께 서로를 구하고자 하면 나 또한 구해질 것이다.                               원동업기자(성수동쓰다 편집장) <iskarma@daum.net>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2-14 12:38

이홍렬 선생이 마장동서 아이들을 위해 기획했던 이웃 직업인과의 대화 《직업을 말해줘》와 함께. 왼쪽부터 명영순 송경민 윤상임나는 2016년 2월 1일의 블로그를 보고 있다. 제목은 '다시 색전술'. 블로그 주인장은 병원에 입원해 있고, 지금 막 수술을 위한 사전 조처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다. 그의 왼팔엔 링거가 연결돼 있고, 제모크림을 발라 털을 녹여떨어뜨린 터라 겨드랑이엔 약냄새가 남아있다. 사람들이 모두 자는 밤에 홀로 블로그에 글을 올린 이가, 오늘 찾아갈 그 사람 이홍렬이다. 그의 글.“병원에서 노인들을 보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20대의 젊은이를 보면 안타까움이 가슴으로 밀려오고 어린 아이가 부모와 함께 휠체어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 온다. 그렇다면 나는?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을 보면? 열심히 살다 이제 쉴 때가 된 사람을 보는 느낌? 아니면 앞으로 돌진하다 돌부리에 넘어져 쉬는 가련한 중생?몸이 아프니 겸손해졌다. 잘난체 하던 젊은 시절에는 남들을 참으로 자주 무시했다. 무엇이 그리 잘 났다고 그랬는지 알고 보면 자랑할만한 것도 없었는데.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겠으나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죽도록 사랑하다 보면 진정 사랑을 알겠지. 병실의 환자들이 코를 고는 시간에 나 홀로 글을 쓴다.”- http://m.blog.naver.com/ipleelee 중생전의 이홍렬얼마 더 살지는 모르지만, 죽도록 사랑해야지“앞으로 얼마를 더 살지는 모르겠으나”라고 썼던 그는 2018년 1월 3일 고인이 됐다. 그는 “죽도록 사랑하다 보면 진정한 사랑을 알겠지”라고도 썼다. 그가 베푼 사랑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왜 풍납동에 살고 있던 그가, 마장동에서,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는지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오바마 대통령을 초대하려던 '직업을 말해줘'> 기사 참조] 알고 싶었다. 이홍렬과 함께 '직업을 말해줘'를 기획하고 진행했던 윤상임, 송경민을 만난 이유였다. 근처 사근동에 살고 있는 이홍렬의 형수 명영순 님도 자리에 함께 했다. - 이홍렬 선생은 <직업을 말해줘>의 기획자이자 기록자였다. 마장동 홍익교회 하마방에서 시작해 5년여 가까이 많은 직업인들을 모셨었다. 초대된 강사들중엔 이홍렬 선생과의 인연으로 오신 분들이 다수라고도 들었다. 이홍렬과 마장동과의 인연을 듣고 싶다.명영순 : “시동생(이홍렬)의 고향은 제천이었다. 그후 워낙 많이 옮겨 다녔다고 들었다. 강원도로도 천안으로도.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에 1960대 후반 1970년대 초 서울로 왔을 때, 터를 잡은 곳이 청계천변 판자촌이었다. 8만원 전세금인가를 주고. 홍렬은 마장동 동명국민학교를 다녔다.”- 당시 청계천변엔 판자촌이, 하류와 중랑천변으로 '개미굴(토굴을 파고, 그 위에 비닐과 판자로 얹댄 임시거처)'이 많았던 때다. 가난한 삶의 풍경이 이곳 마장동 사근동 송정동 용답동 일대에서 펼쳐졌었다. - 명영순 : “남편 홍식이 아버지 자리를 대신해 마음에 큰 짐을 지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비가 오면 우산 장사를 하고, 겨울엔 호떡장사, 여름엔 하드통을 메고 다니며 장사를 했다고 들었다. 집안 사정상 벌 사람이 없으니 벌어야 했을 거다. 다들 고생을 많이 했겠지만….”- 이홍렬 선생의 과거 이력이 궁금하다. 어떤 분이셨나?명영순 : “형제는 2남2녀였다. 홍렬에겐 형과 누나가 있고, 여동생이 있었다. 시어머니가 남편 사랑에 대해선 한이 없다고 하셨더랬다. 굉장히 다정다감한 성격이셨던 것이고, 홍렬은 아마 아버님을 닮은 듯하다. 우리집 아이들이 아파 열이 나면, 아이들을 업고, 동네를 한바퀴 돌고 오곤 했던 게 시동생 홍렬이었다. 명절때면 제사 장만에 손을 보태주는 이도 홍렬이었다. 형은 숭실대 전자공학과를, 홍렬은 연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으니 형제가 이과적인 성격을 가졌을 거라 생각하지만, 둘다 음악에 심취하고, 사진도 찍고, 책을 읽고 글쓰는 일을 엄청나게 좋아한 사람들이었다. 형제가 그런 점에서도 비슷한 것 같다.”이상주의셨죠. 발이 땅에서 떨어진 듯한이홍렬 선생은 간암 투병중에도 마장동에서 활동을 지속했다. 그는 꿈을 잃고 생기가 가셔버린 아이들을 위해 '직업을 말해줘'를 기획하고 진행을 도맡아 했다. 창간호이자 종간호가 된, <직업을 말해줘> 소식지를 발행했다. 거기에 그는 썼었다.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꿈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저녁 식사에 지인을 초대하여 손님의 직업에 관하여 자녀와 손님의 직업에 관하여 자녀와 손님이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한다고 합니다.아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나요? 그러면 신뢰를 함께 주어야 합니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개 부모의 신뢰를 듬뿍 받고 자란 사람들이었습니다. (…) 자녀들을 전적으로 믿고, 자녀들과의 약속을 지킨다면, 우리들의 아이들은 반드시 행복한 삶을 살 것입니다.”윤상임 : “선생님은 이상주의자라고 해야 하나? 발이 땅에서 떨어진 채 사는 분 같았죠. 아이들한테 책을 주세요. 당신이 읽던 책들. 영어백과사전처럼 두꺼운 책이예요. '자신에게 좋았고 좋아했던 책이니까, 아이들도 좋아할 거다!' 그런 거죠. 박물관 가고 음악회 가고 그런 것도….(웃음)”송경민 : “이홍렬 선생님과 매미우화를 밤새 보았던 일이 기억나요. 땀이 삐질삐질 나는 여름밤, 모기한테 뜯기면서 선생님과 함께 세림아파트 내 숲에서 있었어요. 밤에 탈피를 하니까. 저는 그 전엔 매미 자체가 안 보였었어요. 아이들하고 엄마들, 주변분들도 모두 다 참여 가능한 자리였어요. 영상도 제작해서 저희들과 공유해 주셨더랬죠.”- 윤상임 : “교회서 공부방을 했어요. 형편도 어렵고 학력이 달리는 아이들과 함께 하니까, 다른 분들이 '학업진도'나 성적과의 관련성 이런 것도 엄청 신경쓰는데, 이홍렬 선생님은 태평이세요. '아이들은 놀아야 하고, 스트레스도 없어야 한다.' 뭐 그러시는 거죠. 저는 수업에 사람이 올까 안 올까 걱정이 많은데, 선생님은 '없으면 놀지, 하나라도 있으면 하고.' 그러시는 거죠. 걱정이랑 해탈이랑 둘이 쿵짝이 맞았던 거 같아요.”송경민 : “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하면 관심들을 가지실 테니까 <영어성경학교> 같은 것도 열었어요. 그러면 미국식 영어랑 영국식 영어를 구별해서 듣도록 준비를 해오시고요. 어원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관련 이야기들도 쭈욱 풀어주시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온 청교도들을 알아야 영어 단어와 문장이 제대로 이해되기도 하니까….”왼쪽부터 이홍렬의 손그림전, 사진전 그리고 스마트폰 개인사진전. 그는 이웃의 가게, 공간에서 자신의 재능과 우정을 나눈 사람이었다.한 알 밀알이 떨어져 땅에서 썩으면 이홍렬은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일을 좋아하는 사진가요 편집인이었다. 마을에서 섹소폰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던 예술인이었다. 그는 그 재능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재능을 이용해서 홍보 영상을 만들었다. 그가 기획한 <직업을 말해줘> 영상을 채운 것은 그의 사진과 그의 편집기술이었다. 그는 그린 그림들과 사진들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화이트큐브, 하얀 전시실의 벽면이 아니라 삶의 터와 가까운 가게와 카페에 걸었다. 누구나 밥 먹으러 와서, 차한잔 하며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자신이 다니던 교회의 사람들, 이웃의 풍경이었다. 전시회가 끝나면 그 사진들을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홍렬의 블로그 제목은 <오래 살지 말자 즐겁게 살자>다. 정신없이 앞으로 내딛다가, 고개를 들고 더 높은 곳을 향하다가, 어느날 다가온 죽음 앞에서 그가 찾은 것은 '사랑'이었다. 그가 남긴 블로그 기사를 차근차근 살피고, 그에 대한 이웃을 말들을 다시 재생해 듣는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을 쫓아 신의 말씀을 듣는 삶을 살았다. 그의 죽은 자리에 어울릴만한 성경 단어가 내게도 생각났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덧붙이는 글>마장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신동한 할머니, 동명초 후문에 있던 문방구 한양슈퍼에서(아래 사진은 젊은 시절 신동한 님)이상돈, 사랑의 다리 세운 사람. 마장동 동마파출소장을 역임했다.지난해 마장동을 찾았다가 두 분의 인상적인 분을 만났었다. 한 분은 1970년대초, 마장동에서 순경과 파출소장을 역임했던 이상돈 선생. 그는 한영중고 앞 청계천에 '사랑의 다리'를 놓은 사람이었다. 당시 청계천변과 하류 중랑천변은 가난한 이들이 대규모로 밀집해 있던 곳이었다. 어려운 살림에 생계를 꾸려가느라 교육의 현장에서 밀려난 어린이, 청소년들도 많았다.  이상돈 선생은 그들을 위해서도 애향기술학원을 짓고, 한글과 타자, 편직술등 직업교육도 했다. 겨울 내복도 장갑도 변변히 없는 버스안내양들을 위해서도, 넝마를 주워 파는 청계천다리 아래 재건대 아이들 위해서도 이상돈 선생은 힘을 썼다. 마장동서 <청계천박물관 이야기갤러리전>을 진행할 때는 동명초등학교 후문서 장사를 하고계신 한양슈퍼 신동한 할머니도 만났다. 50여년 가까이 문방구를 하셨던 할머니는 우리에게 그동안 간직해 왔던 문방구 제품을 모두 기증해 주셨다. 그리고 5만원의 후원금까지.(이상돈 선생님도 기부금을 주겠다고 하셨다). 마장동에서 만난 이 어른들은 한결같이 불쌍한 이웃들 아이들을 위하여 한없이 주고싶어 했다. 마장동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사는 사람들의 땅이다.

뉴스 | 원동업 기자 | 2022-01-25 2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