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책임과 실천: 병입고황(病入膏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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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책임과 실천: 병입고황(病入膏肓)
  • 성동신문
  • 승인 2018.06.2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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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항석<국제Pen클럽/ 클레어홀 평생회원>
정항석<국제Pen클럽/ 클레어홀 평생회원>

병입고황(病入膏肓)!

‘병마가 고황(膏肓)에 들었다’라는 뜻으로 병증이 몹시 심하여 치료가 힘든 상황을 이른다. 고황(膏肓)은 심장(염통)과 명치의 끝을 가리키는 것으로 ‘심장과 횡격막 사이’에 상한 내장이 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치유가 불가하여 소생이 어렵다는 뜻이다. 이 말의 출전(出典)은 <춘추(春秋)>에 주석을 달아 놓은 <춘추좌전(春秋左傳) 성공(成公)>편인 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B.C.770-B.C.403년) 진(晉)나라의 제26대 임금이며 이름은 누(獳) 혹은 거(據)라고 알려진 경공(景公 B.C.599-B.C.581)이 하루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의 꿈은 기이하였다. 기이하기도 하였지만, 그의 마음은 매우 심란하였다. 경공(景公)은 뽕나무 밭의 무당에게 꿈을 말하면서 해몽을 부탁했다(公覺 召桑田巫 巫言如夢). 꿈 이야기를 다 듣고도 곧바로 말을 하지 않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이윽고 무당이 말하였다.

‘불식신의(不食新矣).’

많은 말을 했던 경공의 언급에 비하면 너무도 짧았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는 그야말로 짧고 굵게 경공의 심장을 멈추게 할 뻔하였다. 말하자면, ‘새로운 것(그 해 수확한 곡식)을 먹지 못하는 의미’로 먹지 못하니 죽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탓인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는 정말 병을 얻게 되었다. 진(晉)에서는 의원을 구하지 못하고, 진(秦)나라에서 용하다는 의원(醫員)을 청하였다. 진(秦)나라의 의원인 완(緩)이 경공을 치료하게 된 것이다. 완(緩)의원이 도착하기 전에 경공이 눕게 되어 또 꿈을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두 수자(豎子), 즉 두 명의 더벅머리 어린 아이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완의원)는 훌륭한 의원이야, 우리를 해칠까 걱정인데, 어디로 도망을 가야 할까(彼良醫也 懼傷我 焉逃之)?”

한 아이가 말하였다.

“걱정하지 마! 황(肓)의 위쪽과 고(膏)의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를 어찌할 수 있겠어(居肓之上 膏之下)?”

고약하겠지만 ‘고(膏, 염통 밑, 심장)과 황(肓, 가슴의 명치끝)’에 눌러 자리 잡고 있으면 누구도 그들을 물리쳐내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마침내 완의원이 도착하여 경공을 진맥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분위기만큼 무겁게 말해 주었다.

“병을 치료할 수가 없겠습니다(疾不可為也).”

그리고는 그 까닭까지 일러주었다. 그곳은 침을 어떻게 놓아도 ‘너무 위험할 뿐만 아니라 침이 닿는다 하여도 그 효험이 미치지 못하고, 약도 제 구실을 못하는 곳이니, 치료를 할 수 없다(達之不及 藥不至焉 不可為也)’고 말한다. 완의원은 고치기 어려운 곳에 ‘병이 깊어 불가하다(攻之不可)’는 말을 하고 있었다. 애써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동시에 마음은 무거웠지만 하고픈 말을 다 하였다. 이에 경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아내었다.

“그대는 훌륭한 의원이요(良醫也).”

죽음을 앞두고 하는 말 치고는 너무도 짧았다. 한 나라의 최고 의사결정자에게 있는 그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목숨을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 더욱이 높은 사회적 위치에 있다고 믿는 것들의 심사가 뒤틀릴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못된 행위를 악용하는 것은 비도덕적 행위이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는 예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공은 그러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으며 그래서도 아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산과 사회적 지위’도 아니고 ‘목숨’을 두고 하는 것에 처연히 받아들인 경공은 그를 정성껏 예우하고 진나라로 돌려보냈다고 전한다.

흔히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고 한다. 과연 그런 것인가! 하지만 이는 우리를 위로하는 말일 뿐, 진정 알 수 없는 일이다. 없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으나 있다고 우길 것도 못된다. 다만, 위의 이야기에서 경공이 보여준 메타포는 그의 병증만큼 그 의미가 깊다. 오늘을 기준으로 25세기를 넘게 전해지는 <춘추좌전(春秋左傳)>이 전하는 말들은 그 동안 사람 사는 곳에서의 번민과 고민 그리고 그 대처와 방법 등 마음가짐에 대한 교훈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고황(膏肓)에 병이 들었다는 병입고황(病入膏肓)은 오늘을 사는 우리 사회에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병입고황과 유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말로는 고질병(痼疾病)이 있다. 통증이 너무 고약하여 오래된 병이라는 것이다. 일정 몸이 상하면 발달된 의술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상하면 자신만이 아니라 그 주변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특히 고위층에 있는 이들의 경우는 사회의 고질병(痼疾病)을 만들고 그것이 사회의 부정적 원인이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류사에서 이 병의 원인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회적 가치가 희박하다는데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육신을 놀리지 않으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현대의 우리사회에서는 이 말이 그다지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일면 ‘군림(dominating)’을 위한 병증 즉, 다른 이로부터 ‘인정(recognition)받기’ 나아가 ‘지배하고 조종하기(control and manipulate)’등에서 오는 인정·지배의 심리적 증후군이 이를 제공하고 있음이 발견되고 있다. 위의 이야기에서 경공이 보여준 일화는 이를 일소해준다. 최고의 사회적 위치에 있으면서 자신의 삶의 종말을 인정하고 다른 이를 지배하고 조종할 수 있는 것을 배제하면서 ‘있어야 할 곳(이승의 삶)’에서 ‘가야 할 곳(저승)’을 받아들이는데 아름답다고 할 만큼 초연한 자연적 조화를 보여주었다. 어쩌면 그에게 마지막 치유책은 ‘물러나야 할 곳’에 대한 ‘수용과 인정하기’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를 아직도 존경의 수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면서 더 많이 가지려 하는 것에 대한 일침이다.

한국사회에서 특정의 정치사회는 고질병이 있다고들 말한다. 정치(政治)가 생업(生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치가(政治街)에 너무도 오랫동안 자리 잡고 민생을 위한 어떤 역할에도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이들이 고(膏)와 황(肓)의 위치에서 굳건히 있으면서 물러나지 않으려는 수자(豎子)가 되어 한국정치를 중병에 들게 하는 탓이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가장 못된 병중에는 ‘너와 나를 나뉘는 패거리 심리’, 그리고 이를 조종하려는 ‘무리들의 조합(組合)심리’ 등에서 기인한다. 주목할 것은 사회의 문제는 인간인 우리(ourselves)가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그 우리는 특정인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를 포함한다. 때로는 간헐적으로 뒤늦게라도 이를 수정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2018년 6월 일곱 번째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마친 어느 날이었다. 어느 정당의 중진 정치가가 새로움에 대해서 말했다. 그의 말은 이러했다. ‘이제는 참신한 인물을 대표로 내세워야 한다. 우리도 새로운 사람을 내세워 보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리고 ‘더 젊고 참신한 사람들로 당 지도부를 구성해서 내세우면 변화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라며 자신을 비롯한 기존 정치가들에게 불출마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정치적 변명도 그리고 구실도 제시하지 않는 채’ 여전히 그의 말에 귀 기울지 않는 정치꾼들이 더 많았다. 무엇으로 그리고 어떻게 ‘참신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적어도 ‘수자(搜子)’가 되어서는 안 되는 환경을 제공하려는 의지도 없이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그냥 그 자리에 있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국민이 쫓아낼 때까지 있겠다는 몰지각한 인정투쟁(recognition struggle)이다. 사실 ‘참신하고 신선하며 창의적인 사고’의 제공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문제는 사적이든 지 또는 공적이든 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었던 ‘지내온 시간 속의 반복’에 있다. 그 반복이 발전의 차원에서 투영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지난날 한국의 정치사회는 발전의 측면에서 그 반복으로 인하여 더디었다는 것이 병입고황 그리고 고질병이 되었다.

한국 정치사회에서 ‘황과 고’의 위치에서 ‘수자(豎子)’에 대한 불만은 그들이 사용한 시간의 반복과 중복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동안 그들이 해야 할 일의 평가에서 거의 평가가 무의미하다고 할 만큼 정치에 대한 국민의 정치 불신은 그 시간만큼 비례하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신들을 위한 것에는 그 관심이 집중되었던 탓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노출되는 우리의 병을 치유하는 방법론적 대안으로써 ‘물러나야 하는 때’를 뽕나무 무당이 예고하였듯이 알려줄 때라도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적어도 정치인들이 해야 할 책임과 실천이다.

공자는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려는 치자(治者)를 위한 가르침을 많이 했던 유학자이다. 그러한 그가 편찬한 것으로 전해지는 <춘추(春秋)>에 대표적인 주석서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 ‘좌전(左傳)’, ‘좌씨전(左氏傳)’, ‘좌씨춘추(左氏春秋)’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춘추(春秋)>에 대한 다른 주석서인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과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함께 묶여서 춘추삼전(三傳)으로도 불린다. 그만큼 세인들이 많이 보아야 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희망을 위한 좋은 말들로 가득 찬 <신춘추(新春秋)>의 등장을 기대한다. 다시 경공을 만나자. i) 경공은 자리는 물론이고 물러날 삶에 연연하지 않았다. ii) 가진 것을 기꺼이 내놓을 때를 알았다. iii) 자신에게 ‘할 수 없다 혹은 아니 된다’고 고언을 마다하지 않는 이에게 예의를 다했다.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이를 받아들였던 그는 아름다운 감동을 남겼고, 그러한 모습을 보고 싶은 우리들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우리도 그러한 정치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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