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로 시작된 시민의 주인 선언을 정치개혁과 삶의 정치로 꽃 피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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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로 시작된 시민의 주인 선언을 정치개혁과 삶의 정치로 꽃 피워야 한다
  • 광진투데이
  • 승인 2016.12.1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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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석 교수/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김 석 교수/건국대 융합인재학부

10월 29일 서울청계광장에서부터 시작된 촛불집회가 40일 넘게 계속되면서 점점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주말마다 국민총궐기이자 축제처럼 열리는 촛불집회는 이제 87년 6월 시민항쟁을 훌쩍 뛰어넘는 새로운 시민 불복종운동의 모델이 되어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이번 촛불집회의 특징 하나는 특정 단체나 조직이 이끌지 않는 자발적인 국민운동이지만 그 요구나 방향에서 굉장히 성숙한 정치적 수준과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촛불을 끄고 다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꼼수를 부리고, 야당이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우왕좌왕하며 휘둘릴 때도 시민들은 동요 없이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청산되어야 할 집단이 바람 한번 불면 꺼지는 게 촛불이라고 폄하하고, 대통령을 옹호하는 소수 극우집단이 맞불 집회를 통해 촛불이 좌파의 선동인 것처럼 몰아가려 하고, 일부보수언론도 제도권이 수습하라고 촛불의 종료를 강요하지만 이제 촛불은 낡은 구습과 기득권 유지에만 골몰하는 부패세력을 집어 삼킬 거대한 파고가 되어 가고 있다.

향후 정치적 결말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촛불집회를 통해 얻어지는 성과들은 결코 적지 않다.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이 뉴스를 보며 토론하고, 무심하게 살며 정치에 거리를 두던 소시민들이 가족과 연인의 손을 잡고 광화문과 거리로 나오고 있다.

촛불광장에서는 남녀노소 없이 모두 하나가 된다. 일상의 공간에서 베란다나 벽, 심지어 자동차 뒷면에 '박근혜 퇴진'포스터나 스티커를 붙인 채 성난 주권자의 목소리를 정중동으로 분출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서점가에서는 헌법관련 책과 전임 대통령의 연설문을 다룬 책들이 때 아닌 붐을 일으키고 있다.
초등학생들과 청소년들이 광장에서 깜찍한 퍼포먼스를 연출하면서 재기발랄하게 정치적 청원을 하고 유투브에서도 각종 패러디와 시민의 저항을 보여주는 영상이 연일 생산되고 있다. 점점 거세지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해 공무원들도 시민저항에 동참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헌법 1조가 실체화된 정언명법처럼 살아나고 있으며 국민이 주권자로 스스로의 위엄을 선언하고 있다.

정치권, 재벌, 고위 공직자 등 그동안 리더 행세를 하면서 국민의 대리인이 아니라 주인처럼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던 이들이 망쳐놓은 불법과 적폐를 진짜 주인이 바로잡으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간 역사를 보면 이런 거대한 시민적 저항과 변혁운동의 여진이 조금이라도 약해지기 시작하면 숨죽이고 있던 개혁 대상들이 사태 수습의 명목으로 반격을 꾀하면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뻔뻔하게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린 일이 수없이 많았다. 그러다 보면 온각 추악한 악행과 비리가 온 천하에 드러나도 단죄되지 않고 그냥 묻힌 채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이 거의 안 된 것이나, 5.16 군사 쿠테타와 일인 정권유지를 위한 유신의 반 헌법적이고 반인간적인 범죄, 12.12 군사 쿠테타에 이어진 광주학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전혀 되지 않은 것, 더 가깝게는 4대강 관련 비리가 여전히 의혹으로만 남아 있는 것 등이 그러한 예다.

이번에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든 단군 이래 유래 없는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에 의한 국정농단과 권력의 사유화와 이에 얽힌 인사 비리. 대통령을 둘러싼 온갖 불미스러운 소문과 세월호 사건의 연관성, 끝도 한도 없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터지는 정경 유착과 특혜 등 촛불집회 후에도 파헤치고 바로 잡아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여기서 우리가 지켜야 할 촛불의 원칙은 분명하다. 그것은 단순히 대통령이 퇴임 후 명예와 안전(?)을 보장받으며 야합에 의해 사퇴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적 의무와 책임을 방기한 것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단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정농단을 묵인하고 부역하면서 기득권을 챙긴 세력에 대해서도 준엄한 법적처벌이 있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고, 저항이 있더라도 복마전처럼 얽히고, 썩어 들어간 상처를 도려내면서 반드시 정치개혁과 국가 시스템의 정상화를 이루어야 한다.

촛불집회는 대통령 한사람만 퇴진시키면서 국정파탄과 부패의 실질적 공범 노릇을 한 세력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주는 정치적 타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불법을 단죄하고 사회 정의를 세우면서 대한민국의 병을 고치라는 주권자의 엄숙한 선언이 제도적으로 실현될 수 있어야 촛불의 역사적 의미가 꽃을 피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저항의 열정이 일상 삶의 정치로 진화하면서 시민들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대의제 민주주의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지만 이제 정치를 저들 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지자체 공간을 활용한 여러 형태의 시민네트워크와 직능단체를 형성하고 주민 참여와 교육의 장을 넓히면서 시민이 정치의 감시자이자 실질적인 주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

어둠이 짙을 때는 불을 밝힌 채 여명이 밝아오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아직 촛불이 타오르고 있지만 지금부터 촛불 이후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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