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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 좀 빌려 씁시다!송란교 / 논설위원
송란교 / 논설위원

창름실즉지예절 의식족즉지영욕(倉廩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은 관자(管子) 목민편에 나오는 말로, ‘창고가 가득하면 예절을 알고, 옷과 양식이 풍족하면 영욕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요즘 언어로 ‘먹고사니즘’ 해결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말이 있는데, 자신의 배가 부를 때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조선 영조 때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柳爾冑)가 지은 집인 운조루(雲鳥樓)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귀를 적은 큰 뒤주가 지금도 남아 있다. 통나무를 깎아 만든 쌀 두 가마니 닷 되가 들어가는 뒤주로, 아래의 마개를 열면 누구나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한 그 군수님의 얼굴은 덕지덕지 붙은 욕심보가 아니라 알뜰살뜰 모아 제대로 베푸는 할머니의 인자한 복주머니를 닮았을 것이다. 전남 무안읍에서는 관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365일 식료품 나눔 캠페인의 일환으로 ‘차곡차곡 사랑곳간’을 설치해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쌀 한 톨이라도 더 챙기려 탐욕을 부리고 인정이 바싹 마른 요즘 세상에 ‘함께 사는 지혜’를 생각하게 한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먹을 게 부족하고 모두가 어렵게 생활하던 시절이었지만 넉살이 좋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배 고품을 달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훈훈한 인심 덕분이었다. 밥 한 끼 퍼주는 인심, 물 한 잔 건네는 인심, 담배 한 대 나누는 인심, 술 한 잔 함께 하는 인심, 새참 나눠 먹는 인심, 하물며 낚시 밥에도 넉넉한 인심이 매달려 있었다.

요즘에는 그 이전 보다 먹을 것은 풍부해졌으나 인심은 거꾸로 변한 듯하다. 바닥난 인심, 갈라진 인심, 사나운 인심 때문에 인사말 한마디 건네기도 어려운 시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줄면,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며, 내 것을 훔쳐가려 한다고 다른 사람을 의심하며 더욱 더 꼭 움켜쥐려 마음의 문을 굳게 닫는다. 그러다가 마음을 여는 열쇠도 잊어버린 듯하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가지고 있다 잃어버린다면, 잃어버린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아주 평온하던 마음이 잃어버린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걱정 불안 초조가 엄습하고 온통 의심과 불신에 사로잡히게 된다. 누가 훔쳐 갔을까?, 잃어버린 걸까?, 어디에 두었을까? 아무튼 내 것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안절부절 하고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하고 다른 사람을 의심하게 된다. 내 몫 챙겨 달라고 태어나면서부터 우는 걸까? 사람들은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일 진데, 한 세상 살면서 다른 사람 물건을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일 텐데 오직 ‘내 것’ ‘내 몫’만을 외친다.

어린아이는 생존을 위해 웃는다. 하루에 400회 정도 웃는다. 웃지 않으면 부모가 자신을 버릴 거라 생각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잘 웃지 않는다. 성인들은 하루에 10회 이내로 웃는다고 한다. 이제는 나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에 빠지고, 웃으면 나만 손해를 본다는 굳은 믿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코 손해 볼 수 없다는 옹졸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웃음이나 미소는 상대방에게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나타내는 수단이었다고 한다. 그런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 무뚝뚝한 표정, 느낌 없는 표정, 찡그린 표정은 상대방에게 공격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곁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왠지 무섭고 섬뜩하다는 느낌이 든다. ‘미소가 잠들면 어둠이 날뛴다.’

예쁜 말이 줄고 아름다운 미소가 사라지니 따뜻한 인정도 마른다. 이제는 생각도 빌리고 마음도 빌리고 웃음도 빌려야 하는 세상인가 보다. 그냥 빌려주지도 않는다. 빌리는데 돈 달라고 한다. 웃음이 빈곤한 세상을 우리들 스스로 만들고 있다. ‘웃음 좀 나누어 씁시다’, ‘인심 좀 빌려 씁시다’라고 말하면 그 사람 뺨을 때릴 겁니까? 함께 웃어주렵니까?

성동신문  sdnews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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