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을 위한 카르텔에서 모두를 위한 다양한 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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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을 위한 카르텔에서 모두를 위한 다양한 연대로
  • 성동신문
  • 승인 2019.02.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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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석 / 건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 석 / 건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장안에 화제였던 드라마 이 2월 초 종영되었다. 여기저기 드라마 관련 기사와 평론이 넘치면서 시청 욕을 자극했기도 했지만 드라마 소재가 대학입시이고, 대한민국 상류층 삶을 묘사한 거라 나도 관심 있게 보았다.

나는 대한민국 0.1%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카르텔(cartel)을 다지기 위해 특권화 된 장벽을 쌓고 자신들을 다른 사람과 구별 지으려고 발버둥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캐슬에 입주하는 것 자체가 외부세계와 구별되는 특권층이 되는 것으로 '구별 짓기'의 물적 토대 역할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지키고 자식들을 자신과 똑같이 만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드라마 처음 장면에 아들을 서울의대에 보낸 한 가족을 위해 여는 호화 파티장면은 이후 이들이 서로에 대해 유지하는 이기심 가득하고 위태로운 전략적 동맹을 잘 보여준다.

물론 드라마는 이들이 자식과 화해하고 참회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 다소 황당했지만 그 이상의 엔딩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런데 오히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제작 의도와 달리 드라마를 흉내 내 입시코디네이터를 찾거나 특수 가구 주문이 늘었다는 소식은 참 씁쓸하다.

사실 드라마에서 묘사한 장면의 사실성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의사나 로스쿨 교수들이 실제 드라마처럼 호화롭게 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수십억을 받는 입시 코디네이터의 존재나 학교 현실도 과장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의 사실성은 초점이 아니다. 드라마는 어떻게 보면 현실을 더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우리 내부에 숨겨진 특권의식, 최고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구별 짓기 논리, 욕망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입주민들은 돌아서면 흉보고 욕도 하지만 만나면 형님 동생하면서 출세를 위해 서로 끌어주고 협력하는 것은 물론 자녀의 대입 준비 노하우도 공유한다. 그러면서 서로를 속물로 비난하지만 절대 속물적 카르텔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도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입지를 차별적으로 다지고 그들만의 자원이나 고급 정보를 독점하기 위해 만든 캐슬이 어딘가 있을 것이다. 명문대학에 있는 특수대학원이 인맥을 쌓고 교류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창구 역할을 하는 것도 다 아는 사실이며, 특별한 사교클럽이나 친목모임, 자녀 입시를 위한 최상위권 학부모 모임의 존재 등도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임이나 네트워크가 점점 견고해지면서 자신들을 위한 입법과 정책을 위해 이용되고 일상의 정치를 움직이는 은밀한 창구가 되는 현실이다. 이러다 미국처럼 로비가 합법화되고, 새로운 신분질서와 차별이 제도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든다.

작년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면서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정부도 강력하게 추진한 사립유치원 개혁이 유치원장들의 전 방위적 로비와 방해로 슬그머니 유야무야 되면서 조용해진 것이 기득권 세력이 지닌 카르텔의 위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다. 유치원 비리로 자녀들이 고통을 당하는 층이 서민층이고, 유권자로 봐도 이들 숫자가 훨씬 많지만 현실에서는 돈과 조직력을 앞세운 기득권 세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정치인들도 힘센 자들 눈치를 더 보는 것이다.
 산업 사회에서 여러 형태의 단체나 네크워크가 만들어지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뛰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소득 불평등 구조가 갈수록 심화되면서 사회적 자원의 분배는 물론 문화, 교육 같은 사회적 자본과 상징적 자본의 불평등이 점점 더 커지는 데 이런 카르텔이 일조하는 것이 문제다.
 경제적 불평등이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점점 심화시키면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체제 안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사람들과 경제 구조에서 점점 떠밀려 나면서 배제되는 자들의 분리 장벽이 커지고 있다.

이 묘사한 것처럼 계급적 분화와 자산 불평등이 한국사회에서는 교육 불평등을 초래하며, 교육자체가 새로운 신분 질서 구축에 발판이 되고 있다.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목숨을 거는 것도 그것이 마치 조선시대 과거제도처럼 신분상승의 독점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극화와 배제는 사회 갈등을 초래하고 한국 사회의 공동체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킬 수 있다. 상생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1등이 모든 것을 가지는 승자독식 구도인 한국사회는 서로를 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실력을 쌓아 엘리트층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존경받고,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면서 한국 사회 발전을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자신들을 위해 살고, 경쟁에서 도태된 자들은 이들에 대해 적개심과 분노를 가진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적대적 모순이 배제를 공고히 하는 분리 장벽이라고 경고했는데 한국 사회가 그 전형처럼 되고 있다.

드라마에서 최고의 수재들이 서울의대에 진학하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이것도 비뚤어지고 병든 우리 사회의 기형적 단면을 풍자한다. 정상사회라면 뛰어난 인재들이 좀 더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분야로 가거나 혹은 전문가가 되어 공동체와 자신의 발전을 같이 도모해야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 필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좀 더 공동체의 선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시민연대와 네트워크가 지금보다 더 많아지면서 이른바 '삶의 정치'가 종횡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카르텔이 아니라 상생을 위한 다양한 네트워크가 더 있어야하며 지역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다.

한국사회는 최근 경제침체, 인구감소, 대외 갈등 등 여러 문제가 많이 생기고 있는데 이런 위기의 순간 일수록 내부의 구별 짓기와 배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 생활정치와 시민네트워크가 지역사회 발전을 이끌어내면서 한국사회 전체에 긍정적 시너지를 전파하는 선진 광진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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