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는 어떤 이념을 구현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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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는 어떤 이념을 구현하고 있나?
  • 서울로컬뉴스
  • 승인 2016.10.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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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석 교수/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김 석 교수/건국대 융합인재학부

정치를 바라보는 동양의 대표적 사상인 도가, 유가, 법가의 입장은 아주 판이하다. 무위(無爲)를 강조하는 도가는 윤리와 정치가 자연의 질서에 반한다고 보면서 인위적이고 제도적인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는 자연스러운 정치를 찬양한다. 노자는 이상적인 통치는 백성이 통치자가 있다는 것만을 아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장자도 천하를 있는 그대로 보존해 너그러이 놓아둔다는 말은 들었지만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말하며 정치에 소극적이다. 노장사상은 서구사상의 아나키즘(anarchism)과 비슷하지만 실제로 무정부주의를 주장하기보다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사심을 버리고 물 흐르 듯 통치하는 것을 주장한다고 할 수 있다.

유가는 가장 적극적으로 수양과 통치를 하나로 바라보면서 현실에서 도덕적 이상 실현을 주장하는데 <대학>의 유명한 글귀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眞濟家治國平天下)가 그것을 잘 대변한다. 나라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먼저 심신을 닦고 주변을 정제한 후 나라를 다스리면서 마침내 천하를 평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글귀는 개인적인 출세를 의미하는 입신양명 보다는 널리 인의(仁義)를 펼쳐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이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유가가 말하는 정치적 이상은 덕을 가진 통치자가 백성을 자식처럼 돌보면서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왕도를 실현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법가는 가장 엄격하게 관료제 같은 제도정비를 시행하고 벌과 형을 엄격히 집행하면서 부국강병을 도모할 것을 주장하는데 세 입장 중 군주의 위상과 역할을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전투적 사상이다. 법가에서 말하는 법은 개인의 천부적 인권과 자유를 옹호하는 서구적인 자연법이나 계약사상이 아니라 위로부터 강제되는 군주의 의지를 말한다. 법가는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사람은 가차 없이 처벌하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지키기 때문에 가혹한 통치로 원성을 사기도 하였지만 전국시대 진나라의 통치이념으로 중국을 통일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도가, 유가, 법가의 이념은 각각, 무치(無治), 덕치(德治), 법치(法治)로 요약할 수 있다. 무치가 도의 흐름에 부합하는 무위의 치를 찬양한다면 덕치는 통치자의 덕과 베풂을 강조하고, 법치는 엄격한 법 집행과 질서에 호소한다. 이 세 사상을 비교한 것은 동양사상의 지배와 영향을 받고, 여전히 유가적 정서가 강한 우리나라의 정치체제가 대체 어디에 속할까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세 이념을 우리 시대에 맞게 풀면서 모델을 찾아본다면 도가 정치는 정치인과 국민의 차별이 없고, 상호 존중하며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탈권위적 정치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핀란드처럼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혼자 장을 보거나 국민들과 허물없이 어울리고, 고위 공직자나 정치가도 가난하게 살기도 하는 그런 나라의 모습이 도가에 가깝다. 유가의 목표가 백성을 편안하게 만들고 인의를 통해 교화시키면서 왕도의 이상을 펼치는 민본주의와 왕도정치라면 철저하게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리더가 모범을 보이며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그런 나라가 해당 될 것이다. 아마 국민의 행복을 국정의 제일목표로 삼는 부탄이나 국민을 위한 복지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고, 실제 행복도가 높은 덴마크 같은 서유럽 국가가 비슷하지 않을까?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준법을 강조하고 통치자의 권위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통치문화가 법가에 가깝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실제로 주요자원을 국가가 독점하고 경제활동을 통제하는 것이나, 대통령의 권한이 어느 나라보다 강하고 권위적인 통치문화가 지배하는 모습 등은 법가를 닮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법가가 아닌 것은 법가에서 군주를 귀히 여기는 것이 그가 사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이며, 귀천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법을 집행하는 공정함을 우리 현실에서 좀처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법가는 우민화를 위해 사상을 통제하기도 하고, 범죄를 막기 위해 연좌제 처벌을 적용하거나 백성보다 군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국민의 행복보다는 효율적인 통치기강 확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가는 재능 있는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신분 차별을 과감하게 혁파하고, 법질서 확립을 위해 고위층이라 할지라도 특혜를 인정하지 않았다. 살인범을 숨겨준 태자를 대신해 그 사부들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려 법의 지엄함을 보여준 진나라 상앙의 일화가 법가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법치국가라면 아마 현재 문제가 되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잡음이나, 뇌물 검사의 비리 같은 사례를 철저히 색출해 더 가혹하게 처벌하였을 것이고, 법을 집행하는 데 성역을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또 부국강병을 위해 잊을만하면 터지는 방산비리 같은 부정사례를 철저히 엄단해 국민의 혈세가 엉뚱한 곳으로 새지 않게 하고, 국방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이적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 표방하는 바는 그럴듯하지만 도가도 유가도 법가도 아닌 철학 부재의 정치, 소수 특권층만 위하는 기형적 정치문화가 대한민국의 현 모습이다. 우리에게 맞는 정치의 정체성부터 찾으면서 건전한 정치문화를 만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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