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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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광주의 추억
  • 서울로컬뉴스
  • 승인 2019.02.2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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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김상진/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1980년대 대학생들은 5월이 특별하였다. 매년 5월 대학 캠퍼스는 꽃향기 보다 최루탄 가스 냄새로 가득 찼다. 5월은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건만 80년대 대학생들에게는 불효의 달이었다. 광주민중항쟁 때문이다.

필자의 대학생활 입문도 광주민중항쟁이었다. 새내기 일학년 시절 민주광장에서 집회를 하던 선배들이 백골단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그 때도 5월 이었고 집회에서는 처참한 광주학살에 대한 비디오 상영이 있었다. 요즘 영화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전쟁영화 같은 비디오는 가슴을 뛰게 하였다. 무지막지한 군인들이 정권을 잡기위해 광주시민을 총칼로 짓밟는 장면은 젊은 피를 끓게 하였다. 이후 필자는 소위 운동권 학생이 되었다.

요즘, 다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정국의 이슈가 되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이 개입된 폭동”“5.18 유공자는 괴물집단” 등으로 말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망언 때문이다. 

이들도 1980년이면 젊은 시절 있었을 텐데 참으로 기가 막힐 말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의 현대사에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만큼 정치적으로도 수 없이 다루어진 내용이다. 1988년 5.18의 핵심 당사자였던 노태우 정권 때 국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식 규정하고, 11월 5.18광주 국회청문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청문회 스타가 노무현 대통령이다. 1990년 '5·18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 등에 관한법률'을 제정하여 유족의 범위와 위원회 설치, 보상금과 각종 지원금 등에 관한 규정을 마련하였다.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가 시작되면서 12.12사태와 5.18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 노태우는 법의 심판을 받고 구속되었다. 1995년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을 통해 1997년부터 5월 18일이 민주화운동 국가기념일이 되었다. 이후 모든 역대 정부는 매년 그날 국가기념식을 거행하며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그런데 4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북한군이 개입된 폭동'이라고 말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역사인식은 무엇인가.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민주화세력은 모두 빨갱이들이다. 이들에게 보수의 가치, 진보의 가치란 없다. 나는 선(善)이고 상대는 악(惡)일 뿐이다.

지만원씨 같은 과대망상증이 있는 사람은 그렇다쳐도,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인식이 이래가지고 무슨 국정을 논하겠는가. 자유한국당은 망언을 자행한 자당의 국회의원들을 정리해야 한다. 저잣거리 술꾼보다 못한 국회의원들이 있는 정당에게 국민이 정권을 맡기겠는가.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섰다. “지금 국회와 정치권 일각에서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거나 북한군이 남파되었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왜곡하고 폄훼하는 것은 우리의 민주화 역사와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며 결국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다."라고 명확히 규정하였다. 더 이상의 어떤 말이 필요하겠는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다. 우리 현대사에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던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자양분이 되었다. 1987년 반독재민주화운동을 낳았으며 2017년 촛불시민혁명으로 승화되었다. 또한 앞으로도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이끌어 갈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다. 필자는 지금도 5월이면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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