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 적자 없이 조합원 배당금 챙기는 신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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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 적자 없이 조합원 배당금 챙기는 신협"
  • 동대문신문
  • 승인 2019.03.0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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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경영위한 임직원들 노력으로 '관내 최고 신협' 우뚝

이사람 - 대명신협 이사장 김종구

왕산로에 위치한 용두동 소재 대명신용협동조합(이하 대명신협)은 동대문구에 위치한 4개의 신협 중 가장 늦게 출발한 후발주자다. 가장 늦게 출발했기에 먼저 출점한 신협들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때 대명신협은 자산, 조합원 수 등 모두 열세로 가장 열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난달 9일 '제27차 대명신협 정기총회'에서 결산 발표에서는 자산 1150억원, 순수익 9억원 등 관내 신협 중 가장 으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대명신협은 경영평가 1등급 조합, 자산 및 자본건전성 1등급 조합 등의 타이틀을 얻게 됐다.

본지는 관내 가장 후발주자이었지만 현재 최고 선두주자로 대명신협을 이끌고 있는 김종구 이사장을 4일 만나 그의 경영 노하우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비싼 이자 쓰는 시장 상인 위해 설립

대명신협은 1991년 2월 12일 설립 발기해 1992년 3월 14일 신협 업무를 시작했다.

대명신협이 위치해 있는 왕산로는 국내 최대 전통시장인 경동시장, 청량리시장 등 종합시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활발한 경제활동이 벌어지고 이곳에는 당시 상인들이 비싼 이자의 일수를 쓰고 있었다고 전해졌다. 이에 새터전을 잡기 전 존재했던 대명교회는 목사와 장로, 신도들이 비싼 이자로 힘들게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들을 위해 교회단체 조합인 대명신협을 설립한 것.

"대명신협 설립 전 상인들은 30~40%의 이자를 내며 돈을 빌려 썼다. 100만원을 빌리면 130만원을 갚는 구조다. 급한 이들은 140만원을 갚아야 하는 40% 이자에 돈을 빌리기도 했다"며 김종구 이사장은 당시를 설명했다.

이런 불합리한 고리대금을 근절시키기 위해 생겨난 것이 대명신협인 것. 대명신협은 1992년 당시 출자금 9,800만원으로 설립돼 이후 상인들의 더욱 자유로운 경영에 힘쓰게 됐다.

 

■ 대명신협의 역사, 김종구 이사장

대명신협이 설립되기 전 김종구 이사장은 축산업협동조합(이하 축협) 직원으로 근무했었다. 축협 직원으로 시장 상인들을 위해 영업을 자주 했던 그는 "금융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 주겠다"는 당시 대명신협 관계자 약속에 설립과 맞춰 스카우트 된 것.

김종구 이사장은 "대명신협 설립을 위한 서류들 모두 제가 접수 시켰습니다. 사실상 제가 만든 셈이죠"라며 웃음을 지었다.

설립 당시부터 대명신협의 일원이었던 김종구 이사장은 동대문구에서 가장 후발주자였던 대명신협을 위해 무단히 노력했다. 특히 인근 지역신협이 있어 경쟁이 치열했던 것.

하지만 당시의 김 이사장은 '경쟁보다는 상생'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남의 밥그릇 뺏는 식에 경영은 절대 발전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그래서 인근 신협과 서로를 존중해 가며 선을 넘지 말자는 합의로 운영 했었습니다"라며 신협의 장점을 함께 알리며 정보를 공유하며 동반 성장의 길을 걸었다.

그런 결과 9,800만원의 출자금으로 시작했던 대명신협은 첫해 자산 12억원으로 늘어났고, 경쟁이라고 생각했던 인근 신협 또한 큰 자산으로 늘어났다는 것.

김종구 이사장은 "당시 전쟁과 같은 경쟁을 했다면 대명신협은 물론 인근 신협조차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생의 경쟁을 통해 신협을 함께 키워나간 것이 오히려 양 신협의 발전을 가져 온 것이죠"라며 출점 당시 치열했던 일들을 회상했다.

 

■ 후발주자였지만 선두주자로 달려

동대문구에서 가장 늦게 출발했던 대명신협은 현재 관내 4개 신협 중 가장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연일 수 있지만 이러한 결과는 김종구 이사장이 말하는 임직원들의 노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금융업도 그냥 앉아서 영업을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여·수신 영업도 직접 발로 뛰어서 영업해야 합니다. 그래서 임직원들은 오직 대명신협을 키우겠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김종구 이사장은 오래전부터 그가 일했던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김종구 이사장은 먼저 최대 조합원인 시장 상인들을 위해 새벽 6시 반에 출근해 7시부터 동전 교환 서비스를 했던 것. 은행이 문을 여는 오전·오후에는 장사로 인해 잔돈 교환이 어려운 점을 알고 이른 새벽 직접 시장을 돌아다니며 잔돈을 바꿔주며 대명신협을 알렸던 것.

김종구 이사장은 "처음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하루를 일찍 시작해야 되고, 영업활동이 아닌 홍보활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시장 상인들을 알게 되고, 홍보를 통해 영업까지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정말 임직원들 모두 고생이 많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대명신협은 다른 신협보다 공격적인 경영을 했다.

"우리 신협을 있게 한 것은 오작 조합원님들의 덕분입니다. 조합원님들에게 조금 더 배당금을 지급해야 더 많은 조합원이 생기고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김종구 이사장은 "이러한 경영으로 대명신협은 단 한 번도 적자가 나지 않고 매년 조합원님들께 배당금을 드렸다"며 대명신협의 신화를 이어갔다.

 

■ 지역 봉사활동도 으뜸인 대명신협

대명신협은 동대문구민 뿐만 아니라 성동구 마장동, 용답동, 사근동을 공동유대로 해 믿음과 나눔의 경영이념을 두고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 비영리로 운영되고 있는 협동조합 금융기관이다.

외국 자본이 주가 된 제1금융은 수익이 나면 외국으로 유출되지만 신협은 자체적으로 운영해 수익이 나면 조합원들에게 되돌려 주고, 지역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더불어 대명신협은 매년 우수한 경영성과를 달성해 매년 조합원 배당금을 챙기는 것은 물론 매년 불우이웃돕기, 자원봉사 활동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침으로 신협운동의 지상목표인 '복지사회건설'을 세우기 위해 실천하고 있다.

 

■ 금융기관이지만 지역 사랑방 된 대명신협

대명신협의 설립부터 함께 했던 김종구 이사장은 설립 당시 고생했던 일들을 회상하며 "힘들게 영업·홍보하며 상인들과 만나 많이 친해지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상인들은 대명신협을 사랑방으로 생각하고, 상인들이 갖고 있던 고민들을 제게 와서 털어놓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김종구 이사장은 은행과 관련이 없어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에게는 최대한 노력해 도움을 주었고, 도움을 받은 이들은 대명신협을 더욱 믿고 이용했다는 후문이다.

아울러 김종구 이사장은 "신협은 단순한 금융기관을 넘어 인간 중심, 조합원 중심이라는 남다른 철학을 바탕으로 조합원으로부터 얻은 경제적 이익을 조합원에게 환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은행하면 비싼 외국자본의 1금융만 이용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라며 "우리 신협은 앞으로도 금융편익을 제공하고 지역경제 발전에 이바지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지금까지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라며 끊임없는 대명신협 사랑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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