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K를 한 번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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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K를 한 번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
  • 강서양천신문사
  • 승인 2019.05.0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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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장면을 실어 나르던 K의 중학교시절 이야기 -

기고

이상호 정책위원장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 지난 호에 이어 >

뚝방의 현실은 가난과 설움의 똬리를 어린 꼬마의 가슴에도 멍울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기 어려웠던 그의 집안은 그의 형에게 고등학교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찌감치 그의 형은 문래동 공장 골목에서 자리를 잡았다. 어린나이이니 일은 똑같이 해도 월급은 적었다. 아침 7시 반까지 출근하여 일찍 끝나도 8시 경이었다.사장은 저녁 먹을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며, 돈을 아끼고 있었다. 차비를 아껴 귀가하면 밤 열시를 훌쩍 넘으니 17살짜리 소년은 배고픔보다 설움이 복 받쳤다고 했다. 뚝방에 앉아 흐르는 냇가를 쳐다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K의 친구는 형을 기다리며 단무지 비빔밥을 만들곤 했다.

그의 장기였다. 이렇다 할 반찬이 없으니 그의 집안사정을 잘 아는 구멍가게 아저씨는 단무지가 쉬기 전 그를 불러 모아 주곤 했었다. 참기름, 깨소금, 단무지, 고춧가루를 적당히 볶아내 비비게 되면 색깔이며 맛이 그런 대로 먹을 만 했다. 아니 맛있었다.

K는 처음 빗길을 피해 뚝방길에 접어들었으나 날이 더 할수록 주변의 시선이 불편했던 그의 집안 골목보다 뚝방길을 택하는 날이 잦아졌다. 어느 날이었던가? K의 친구를 한동안 골목과 학교에서 보지 못했다.

프레스에 손목이 날아간 형을 간호하기 위해 K의 친구는 병원에 머물고 있었다. 물론 동생들 학비와 생활비를 감내하며 요리사의 꿈을 위해 모아두었던 피눈물 나는 돈은 병원비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군인아저씨와 보냈던 꿈같은 짧은 하루도 기억에서 지워야 했다.

그의 형은 현세에서 유일하게 즐거움으로 남게 하기 위해 하느님이 주신 꿈이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누이는 형벌과 같은 운명을 택한 것 같다. 모두가 서로에게 죄스러웠고 또한 그것은 상이하게도 서로의 위안이 됐다.

할머니는 빨리 죽어야 한다는 말을 늘 하셨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손주에게 기대야 하셨던 그녀의 모진 운명을 저주하며 말이다.그의 형은 알코올 중독이 되어 갔다. 허나 동생이 돌아 올 시간이면 어김없이 기운을 차려 단무지 비빔밥을 만들었다. 잘린 손목을 동여매고 말이다.

그의 누나는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모른 척 해주는 것이 고맙기도 했고 서럽기도 했다. 다만 이쁜 누나 왔다며 착착 감기는 동생, 연민의 시선을 보냈던 할머니, 죄책감에 그의 누나를 쳐다보지 못했던 그의 형, 부록으로 다리는 절름거리기는 하나 자주 동생과 어울려 노는 K에게 그녀는 가장이거나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녀는 가장이거나 예쁜 누이이거나 짐을 홀로 진 어머니였다. 그의 형, K의 친구, 할머니의 생존을 책임져야 했던 그의 누나는 술집을 나가고 있었다. 모두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모두 다 몰라야 하는 사실이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유독 K를 쩔뚝 다리라고 놀리는 놈이 있었다. 분을 못 이겼던 K는 언젠가는 응징하리라 다짐을 했다. 허나 놀리고 도망가는 데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K와 그의 친구는 모의를 나누었다. K는 군용 포크를 준비했고 그의 친구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놈을 화장실로 몰아주었다. 그날 그놈은 허벅지에 선명하게 구멍이 났다.

낄낄대며 통쾌해 했던 K와 친구에게 선생님은 매를 들었다. 그날 K와 친구는 숟가락을 들지 못할 정도로 매를 맞았다. 마침 그놈은 부잣집 아들놈이었으니 선생님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그 아이는 K와 친구에게 알아서 부하가 되어 주었다. 선생님보다 더 무서운 것은 K와 그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단골이었던 떡볶이 집에서 값을 치루는 것은 오로지 그 아이 몫이었다. K의 책가방도 그 아이에게 들려졌다. 비오는 날! 으레 어머니는 마중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K는 그날따라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날, 비 그치기를 기다리지 않고 K는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집에 없었다. 마실(마을에 놀러가다, 강원도 사투리) 가셨으려니 동네를 찾던 중 바로 옆집에서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비오는 처마 밑에서 K는 어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K의 험난했던 치료 과정이며, 학교에서 놀림 받는 아이의 마음고생을 어찌해야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장애가 창피해 비오는 날 마중가지 못하는 어미의 마음을 통곡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그날, K는 가출을 했다.

뚝방에서 잠을 잤고 K의 친구, 그의 형에게 생에 처음으로 소주를 얻어 마셨다. 어머니가 밉기도 했으나 왠지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날 일은 K의 친구, 그의 형에게만 할 수 있었다. K의 친구, 그의 형이 장애인이어서 그랬는지 K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몇 년 뒤! 그의 형, 그의 누나는 과일행상을 시작했다. 술집에서 그의 누나가 빠져 나오기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형의 악살에도 건달들은 물러 서주지 않았다고 했다. 할머니가 길에 내동댕이쳐지고 K의 친구 역시 머리가 깨졌다고 했다. 한 팔을 마저 자르겠다고 그의 형이 칼을 빼들고 그의 누나가 병을 깨들고 자해를 해서야 멈춰 섰다고 했다. 얼마간 그의 누나의 고혈을 착취한 돈을 빼앗아 리어카를 사고 장사거리를 마련해 그의 누나와 그의 형은 길을 나서게 됐다.뚝방길에 또다시 비가 내린다. 비가 오니 장사를 공친 뚝방길 골목에는 단무지 비빔밥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다. K의 어머니는 K를 생각하며 울고 K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고 있다. 마치 청개구리 모자와 닮아 있다.

비만 오면 비가 대신해 우는 것인지 K가 함께 우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꽤 긴 시간! 뚝방길 냇가에서 K를 볼 수 있었다. 팔이 잘린 그의 형과 말이다.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도 울고 있었다. 1970년대 끝자락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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