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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책임과 실천: 기정상생(奇正上生)의 원용(援用)정항석/성광일보 논설위원
정항석/성광일보 논설위원

기정상생!
<손자병법(孫子兵法) 제5편 병세(第五篇 兵勢)>에 나오는 말이다. 인식의 수준에서 변칙인 기(奇)와 정칙인 정(正)이 끊임없이 서로 어울려 상생(相生)의 순환, 즉 생산적 흐름을 뜻한다. 아울러 그 생산성을 위해서 전술적으로 점검하는 포괄적 접근을 포함한다. 손자(孫子)는 평생 이것을 연구하여 이 저서로 세상에 내놓았고 그 유용성은 오늘날에도 기능적이다. <손자병법>은 단지 전장(戰場)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평시에도 적용될 만큼 그 원용의 범위에서 외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때는 기원전 515년의 일이다. 손무(孫武 B.C. 545-B.C.470)는 오자서(伍子胥 ?-B.C.485)의 추천으로 춘추전국시대 오나라(吳) 합려(闔閭 재위 B.C. 514-B.C.496)와 만나게 되었다. 하루는 합려가 손무와 이것저것 담론(與他談論)을 나누고 그의 대안적 정책(帶兵打仗之事)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것이 실현가능한 것인지(紙上談兵管什麼用)를 알고 싶은 것이다(讓我來考考他). 그때는 어지러운 시대이다. 그렇지 않았던 시대는 거의 없지만 늘 전쟁이 가깝게 도사리는 형국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 탓에 합려는 의구심이 많았고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 것을 염려하였다.

“선생(손무)의 병법을 모두 들었습니다만...” 그리고는 곧바로 손무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여자들(궁녀들)도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손무는 웃으며 대응한다.

“하오(好)!”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합려는 손무에게 훈련할 여인(訓練姬妃宮女)들을 선별해 주었다. 그 수가 100명(一百個宮女)으로 친히 그가 총애하는 이들(兩個寵姬擔任隊長)중에서 두 명을 가려 대장(隊長), 말하자면 팀장으로 선발했다.

“히히~ 호호...”

그러나 관녀(官女) 혹은 궁녀들은 훈련에는 관심이 없었다. 합려로부터 훈시를 듣던 시점과 달리 손무의 본격적인 지휘의 시점에서 그들의 태도는 변하였다. 훈련장은 떠들며 웃고, 장난과 난장판이다(這些女人笑作一堆 亂作一團). 기록에 따르면 훈련해야 할 두 팀장은 ‘허리띠를 잡고 비웃었다(笑彎了腰)’고 한다. 손무의 훈령과 그 훈련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誰也不聽他). 상황이 이즈음 되자, 손무는 중간 점검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군령으로 이들을 참하려 하였다. 합려가 용서해 줄 것을 간청하였으나(遣人求情), 손무는 군령은 왕명보다 중요하다며 군령(君令)과 군법(軍法)의 위반(違反)으로 그 둘의 참수를 명하였다(理當斬首). 그리고 다시 훈련을 시키자, 모든 궁녀가 군소리 없이(不敢出聲)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動作劃一). 이 일로 합려는 심기가 상했으나 손무를 상장군으로 중용했다(孫武當了將軍). 기(奇)와 정(正)의 선순환을 위한 중간점검이 통한 것이다.

<좌전(左傳)>에 전하는 내용이다. <좌전>은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었다’는 삭즉삭제즉제(削則削除則除)에 따라 ‘필요한 것만 담았다’는 공자의 <춘추(春秋)>를 춘추시대 말기 노나라의 역사가이었던 좌구명(左丘明 B.C. 556-B.C. 451)이 해석한 것으로 전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좌씨춘추(左氏春秋)> 그리고 줄여서 <좌씨전(左氏傳)>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좌사(佐史)는 ‘말(語)’을 기록하고 우사(右史)는 ‘일(事)’을 기록한다는 옛 말씀에 따른 것으로 ‘좌전(左傳)’는 이를 뜻한다. B.C. 700년경부터 약 250년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사기(史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는 선발된 인원이 180명이라고 하는데 그 수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손무의 ‘말(담론과 병법서)’은 ‘유용한 정책(조례 등 사회적 해결책 포함)’을, ‘궁녀’는 ‘오늘날의 공무를 담당하는 이들'이고, 합려는 ‘국가발전을 위한 실천의지와 그 영향을 주는 제도’와 같다. 제도와 공무수행인(위정과 행정) 사이에서 정책의 적절성과 함께 실천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정책의 실행 사이사이에 적절하게 시행되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요긴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비단 이런 고사가 그때에만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되새겨보자. 왕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손무는 이들을 참수했다. 정책실천의 중요성이다. 정책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토의되어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국가사회적인 공적결정(public decision)이다. ‘군령(軍令)과 군법(軍法)의 위반(違反)으로 참수했다(理當斬首)’는 것은 그 결정에 따른 공적 결정의 이행이다. 손무의 자의적인 감정에 따른 것이 아니다. 곧 바로 참수를 시행한 것도 아니다. 기(奇)의 탄력적 적용을 기다렸다. 하지만, 사회적 결정에 대한 어긋나는 행위의 주체이었던 이들의 태도는 매우 불량했고, 상황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관녀(官女)들은 ‘왜 훈련을 해야 하는가’를 헤아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 공적 결정의 사회적 위반이다. 공무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게다가 국가위기 시에 남녀구분은 의미 없다. 수많은 백성들에게 미칠 그들의 역할이 순기능으로 이루어진다 하여도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하물며 그 당위성을 알고 있으면서 실천하지 않는 관리는 그 비판에서 비켜가지 못한다. 그들의 행위가 미치는 부정적 파급은 사회적으로 몹시 크기 때문이다. 눈여겨 볼 것은 왕의 구원 요청에도 불구하고 참수를 한 것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일러준다. 정(正)이 적용된 것이다. 정책과 제도는 합당했으나 정작 이를 실행해야 할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동시에 손무의 대안을 수용한 합려의 결정은 지극히 당연하다. 비록 개인적으로 속상하여도 총희참수를 받아들인 것은 대의적 차원에서 불가결한 것이 아니라 마땅한 것이다.

특히, 합려의 수용과 중용표명은 최종의사결정 기구(특정 분야의 의사결정자와 제도)가 실천의 의지를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잘 알려준다. 나아가, 일체적으로 수용할 환경의 지적 못지않게 사회적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공무의 현장에서 합의된 결정이 제때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무용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역설하자면, 책상에서 글(서류)만 작성하려고 하고 민원현장에서 적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러한 고사(古事)는 오늘날 우리국민에게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관한 교훈을 준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어떤가! 1997년 IMF외환위기 이후 서민들의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를 위한 적절한 정책도 마땅치 않고 이를 개선해야 할 위정(爲政)과 행정(行政)은 그 결과에서 낙관적이지 못하다. 해마다 위정과 행정을 위한 엄청난 세금은 투입되지만 나오는 것은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다. 그렇다면 이를 점검해야 한다. 중간평가제 도입을 통해서라도 그리고 선출직이라도 그 위정과 행정 등을 재고할 시점이 되었다. 단지 최종 의사결정자가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궁녀(관리/공무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위정과 행정의 복지부동 행태에 대하여 ‘기(奇)와 정(正)’의 적용이 없다면 그 관녀들처럼 변하지 않을 수 있는 탓이다. 이에 더하여 참수이후 관녀들이 훈련에 임한 것은 그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개인적 판단이 작용했을 추론이 더해진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그러한 모습이 국가적 위기와 연계되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손무(정책)가 생존할 동안은 오나라는 강성했다. 하지만 그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오나라는 쇠퇴하게 된다. 관녀의 태도는 여전했고 합려의 시행의지는 지속적이지 못했다. 행정과 위정이 정체됨으로써 정책이 제 기능을 발휘되지 못한 것이다. 정책이 입안된다 하더라도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준다. 말하자면 합의된 결정의 수행도구로써 기와 정을 통한 전술적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정칙은 있어야 했다. 국가사회적인 차원의 공무수행을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가 끊이지 않게 신사고의 투입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무수행에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봉급과 세비의 인상과 근무환경의 개선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근자에 들어 오히려 이러한 것이 서민을 위한 민원에 해가 될 수 있다. 궁녀들의 조소적 반응은 철밥통과 같은 상황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굳이 공무수행의 대가(代價)가 서민경제와 다르게 탄력적이지 않는 ‘철밥통’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수반한다. 그때와 지금을 단순 비교해도 그렇다. 만약 참수된 두 궁녀가 훈련의 목적을 공적 결정의 차원에서 대의적으로 인식했었다면 절대다수의 생사를 건 공무수행의 중요성을 단지 몇 푼(?)으로 재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모든 공무수행의 대가(代價)로써 철밥통과의 연계가 엷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컨대 관녀(官女)는 궁궐에서 일을 보는 관리이다. 당시 각 제후국들의 갈등적 상황으로 보아서는 궁이 가장 안전한 곳이다. 그곳에서 급료를 받아 생활하면 더할 나위 없이 안락할 수 있다. 전장은 물론이고 민원현장에 갈 일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적당히 왕의 신임만 유지한다면 그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 나태와 복지부동이다. 그야말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기적 발상이다. 게다가 강성한 국가적 기틀을 반석에 올리고도 재임말기에 합려가 보여준 태도는 정체적(停滯的)이다. ‘고인 물과 같다.’ 왜 새로운 사고가 필요한 지를 알려준다. 새로운 사고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으로부터 집약된다.

이러하다면, 국가사회 발전을 위해서 관녀들의 행동과 사고방식 그리고 합려의 자기중심적이고 정체적인 태도가 오나라 쇠퇴의 원천이 되었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자세와 사고로 서민들을 위한 행정수행의 자세를 도모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국가나 공공단체의 공무(公務)에 대한 보상은 굳이 철밥통(평생완전고용과 복지)’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또한 그럴 까닭도 없다. 늘 시대에 따른 적절한 정책을 입안하고 수용하며 실천할 제도가 절실하다는 것을 말한다. 다행히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그 일을 할 수 있고, 또한 이를 하려는 인재가 많다. 더 다행인 것은 말단이어도 공무행정에 긍지를 가지는 분들이 많다. 착한 봉급(?)에도 개의치 않고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면서 소신껏 민원을 그야말로 성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반복되지만 합려의 궁녀선발 역시 문제가 있었다는 데서 ‘왜 그리고 어떻게 국민들이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를 여실히 일러준다.

이렇다! 행위의 동기유발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고정적이고 안주하려는 정체적 마음가짐이 제거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공무수행의 과정에서 ‘기(奇)와 정(正)’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좌회전과 우회전 그리고 직전을 통한 자동차 운전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고도 중간 중간에 신호등을 점검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원칙도 그 허와 실이 있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기와 정을 적절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 몫은 의사결정의 영향력이 큰 제도(선출되거나 임명된 선출직 혹은 임명직)가 아니라 국민이 담당하여야 한다.

다시 <손자병법>으로 돌아가자. 손무는 그의 저서에서 첫 문단에 다음과 같이 묻고 답하고 있다.

기정은 서로 상생해야 한다(奇正相生), 끊임없이 순환하기 때문이다(如循環之無端). 그런데 누가 그것을 다할 수 있겠는가(孰能窮之哉)?

정치는 격렬하게 다투는 것이 본디의 모습일까! 아직까지도 선사적(先史的) 삶의 방식(?)처럼 투쟁적 생존(生存)을 우선적 조건으로 인식하는 듯 보인다. 비관적인 정치경제이다. 그런데 여전히 오늘날에도 적용되고 있다. 모든 사회가 이에 따른다면 승장독식의 무한경쟁에서는 ‘승(勝)의 소수를 위해 나머지 대다수는 잔멸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평화적인 사회를 성립시키기 위한 충분조건도 아니며 필요조건도 아니다. 좀 더 세밀하게 손무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귀기울여보자. 앞서, 손무가 관녀를 참수하는 것은 그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주지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리고 반성과 개선의 조짐을 보이지 않았던 데서 오는 것으로 이것이 그의 주요 관심은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기정상생(奇正上生)은 모두를 위한 이익(利益)의 조화(造化)를 의미한다. <손자병법의 제일편(第一篇)시계(始計)>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정황을 헤아려 살피되 다음을 고려해야 하는 바, 그 순위를 정하고 있다. 첫째는 도(一曰道), 둘째는 하늘(二曰天), 세째는 땅(三曰地), 넷째는 사람(四曰將),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도(五曰法)로 두었다. 법을 가장 낮은 곳에 두는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기와 정이 생산적으로 순환하는 흐름을 중시한 것이다.

일견, <손자병법>은 춘추 시대 손무(孫武)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현재 전해지는 <손자병법>은 후한 말기의 정치가 조조(曹操 155-220)가 원본을 요약하고 해석을 붙인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 13편>이다. 원본이 아니어도 그 본질은 훼손되지 않는 것이다. 이를 보면 ‘기(奇)와 정(正)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의존한다. 하여튼 기정상생의 조화를 키워드로 하는 <손자병법>은 대다수의 민중을 위한 도교적 교리를 바탕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반하여 전국시대의 오기(吳起 ?-B.C.381) 또는 오자(吳子)가 지었다는 <오자병법(吳子兵法)>는 지배층을 위한 유교 철학에 기초한 병법서라는 것은 알려진 일이다. 이 둘을 가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기(奇)인지 또 무엇이 정(正)인지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오늘날 이러한 고사와 고서가 의미하는 바는 가늠할 수는 있을 것이다. 취지와 정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사회는 어떻게 흐르고 있는가! 기와 정의 긍정적 흐름을 기대할 수 있는가! 누구를 위하여 정치와 행정이 있는가! 이러한 의문은 어제와 오늘의 정치일가에서 오는 씁쓸한 해프닝들에서 기인한다. 기정상생의 가치를 반복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앞서 언급한 손무와 합려 그리고 관녀의 행동 등 일련의 내용에서 작금의 한국정치는 ‘누가 손무이고’, ‘누가 합려이며’, 그리고 ‘누가 관녀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서민경제는 어려워지는데 행정부와 위정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상당수의 선출직 위정자들은 민생경제를 위한 생산적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일부는 서민경제를 위한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필요이상으로 행정부와 특정 정당이 하는 모든 일에 일일이 트집을 잡으려 한다. 기정상생의 교훈을 우리 정치와 행정에 넣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것이다. 철밥통의 삭제와 고위 선출직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중간 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절실해 보인다. 이것이 오늘 국민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묻고 싶다! 이제 ‘누가 손무가 되어 서민경제에 관심 없이 자신들의 철밥통에 매달리는 그 관녀들을 처벌할 수는 없는가’라고!

성동신문  sdnews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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