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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체로 거른 깨발음의 노래

4,심우도(尋牛圖)

*소(牛)를 잡았다,

온 정신
다하여 소를 잡았으나

심통 사납고
힘이 세어 다루기가 힘드네!

어느 때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고
또 어느 때엔안개 짙은 계곡으로 달아나네.

竭盡精神獲得渠 心强力壯卒難除
有時纔到高原上 又入煙雲深處居 <四得牛頌>

고생고생 끝에 소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사납게 날 뛰는지 힘이 달려서 다루기가 아주 힘이 듭니다, 습성(習性)이 남아서 그렇습니다. 제 멋대로 살다가 코에 고삐를 채웠으니, 날 뛸 수밖에 없죠, 옛날에는 소를 다 길러 봤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 농촌에서 살아서 소 많이 길러 봤습니다. 농우(農牛)로 길들이기 가 보통 쉽지 않았습니다, 한 삼년(三年) 길을 들여야 밭도 갈고 논도 갈았습니다, 그래야 소 몫을 다하지 않습니까? 곽암선사도 소를 길러 본 것 같습니다. 소의 습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소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코뚜레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푸레나무를 엄지손가락 두 배 정도 크기의 가지로 만듭니다. 나무를 베어다가 삶습니다. 둥그렇게 코뚜레를 만들기 위해서죠, 삶으면 잘 휘어져 동그랗게 만들기가 쉽게 하 기 위해서입니다, 소코와 소머리 크기에 맞추어서 소코뚜레를 한 1년 정도 그늘에서 말리면 됩니다.

처음에 코를 뚫고 코뚜레를 해놓으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를 칩니다. 하도 울고 설치니까 마을 당산 나무에 매놓습니다. 그러면 한 3일 정도면 적응을 합니다. 뛰어 봤자 코만 아픈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코뚜레에 적응을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힘이 센 숫놈, 소도 꼼짝을 못합니다. 그렇게 해서 길을 들이죠,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우리 마음이 꼭 소와 같습니다. 소도 길이 안든 소를 닮았거든요, 심강역제心强力壯 졸난제卒難除라 했지 않습니까? 심강(心强)은 심통 고집이 세다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으로 말하면 아집(我執) 고집(固執)을 말합니다, 무시 겁을 오면서 쌓아온 무명 업식(無明 業識)입니다. 역장(力壯)은 업습(業習)입니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다룰 수 있겠습니까? 길을 들여야 합니다, 득우(得牛)은 견성(見性)을 말합니다. 소를 잡았으니까 마음을 본 것 아닙니까? 마음을 보면 견성(見性)입니다,

곽암선사의 심우도(尋牛圖)는 오후(悟後) 보림(保任)를 말하고 있습니다. 견성(見性)한 후에도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하면 닦을 것도 보림 할 것도 없이 업장(業障)이 다 몰록 녹겠지만, 돈오점수(頓悟漸修)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심우도( 尋牛圖)입니다. 그러니 득우(得牛)는 견성(見性)만 했지 성불(成佛)은 못 한 것입니다, 왜 부처가 못됐느냐? 하면 업 습(業習)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업 식(業識) 번뇌가 다 소멸되어야 부처가 됩니다. 그래서 심우도尋牛圖를 보면 득우(得牛)의 소가 누런 황소입니다. 잡기는 잡았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길 안든 소다 이것입니다. 누런 황소가 흰 소(白牛)가 되어야 성불(成佛)입니다, 하얀 소는 길이 다든 소입니다, 번뇌 망식 업식(煩腦 妄想 業識)이 다 떨어진 부처란 것입니다,

그래서 삼구(三句)에 보면 높은 산으로 올라가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소도 잡고 보니, 옛날 같지를 않고 귀찮겠죠, 그래서 잡힌 고삐를 끌고 죽자 살자 올라 간 것입니다. 소치는 목동 고삐 놓으면 안 됩니다. 죽을힘을 다해 따라 갑니다.

마음을 본(見性) 수좌 스님 화두(話頭) 놓으면 안 됩니다. 고삐 쥔 목동과 똑 같습니다. 높이 오른다는 것은 상구보리(上求菩提)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개 낀 계곡으로 달아납니다. 산이든 계곡 이든 고삐 놓으면 허사虛事 됩니다. 죽을힘을 다해 쫓아가야 합니다, 산꼭대기든 계곡이든 따라가야 합니다, 화두 참선

마음공부도 소 길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고삐가 화두(話頭)입니다, 잠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야합니다, 화두 놓아 버리면 고삐 놓은 목동과 같습니다. 고삐를 놓으면 헛일이 됩니다, 고생해서 소 잡은 보람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소고삐 꽉 잡고 소 따라가야 합니다. 화두도 마찬가지로 놓지 말고 자나 깨나 성성적적하게 일여(一如)해야 합니다, 네 번 째은 소 잡는(得牛頌)은 노래 였습니다. 마음에 返照하십시요.

성동신문  sdnews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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