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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애는 ‘사회적 문제’이다이상호 / 정책위원장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상호 정책위원장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개별적 치료 vs 사회적 문제
어차피 시설이나 병원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라 저주를 퍼붓는다면 치료며 재활을 뭣 하려 하는가? 휠체어를 가로막는 계단을 때려 부숴야 한다. 즉, 장애는 치료나 재활로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 문제인 것이다.

의료행위 vs 자조
의료행위는 일정기간 동안만 유효한 것이며, 그것이 장애인당사자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계단을 때려 부술 수 있는 것은 명백히 자조이다. 장애인 스스로 사회적 억압에 대한 집단적 책임을 질 때 해결되는 것이다.

전문가 우위 vs 집단적 책임
세게 말하면 이렇다. 단 하루도 장애인으로 살아보지 않은 이가 어찌 장애인 전문가인가 말이다. 오히려 장애인의 자조에 근거한 집단의 힘이 장애를 둘러싼 억압을 깨부술 수 있다. 한 명보다, 열 명, 열 명 보다 백 명. 나아가 이 사회의 억압에 항거하는 수백만의 장애인의 군대 말이다.

전문 지식 vs 장애인의 경험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근방에 휠체어 당사자 50명이 접근할 수 있는 밥집이 있는지는 대한민국 어느 홈페이지를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다. 장애인조직 당사자 간부님에게 물어보는 것이 제일 빠르고 효과적이다. 즉, 지식이 아닌 당사자의 경험이다.

돌봄 vs 권리
활동보조는 자원봉사도 아니요, 주체가 활동보조인도 아니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객체이다. 즉, 주체는 장애인당사자다. 행위의 모든 과정과 결말은 돌봄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의 평등을 향유해야 할 장애인자립생활인 것이다.

통제 vs 선택
80년대 한국장애인복지에서 장애 대중을 사회에 해가 되는 ‘기생적 소비계층(parasites-기생충)’으로 이 땅의 일부 전 씨 일가들이 명시한 바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관계나 임노동에 의한 생산력이 월등히, 현저히 떨어지니 이렇듯 분석한 듯하다. 사람이 아닌 자본의 입장은 언제나 잔인하다.

이러한 잔인함을 자선이나 시혜로 포장했던 과거는 장애인당사자를 장애인복지전달체계에서조차 통제의 수단으로 그들의 밥벌이 수단으로 폭행과 간접적이고 직접적인 살인을 일삼았다. 물론 이는 일부이긴 하나 현재진행형이고 이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의 찬탈 이외에는 없다고 올리버는 선언한다.

개인적 적응 vs 사회적 변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휠체어 장애인이 계단에 적응할 필요는 없다. 사회적응 훈련, 인간 승리 등등 엄혹한 차별과 억압에서 불가능한 정상이 되기 위해 소모되는 막대한 비용과 낙인을 감수하는 것을 시설과 재활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해 왔다.

올리버는 장애인 개인의 사회적 적응이 아닌 계단이 사회적 문제이며, 장벽이고 낙인이었던 것을 선언한다. 즉, 계단을 때려 부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시설과 재활은 1도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생각도 없고 실천 역시 없었음을 명시한다. 하여 장애 학은 권력의 찬탈이다.

※외부 필진의 기고 및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애학, 장애의 사회적 모델의 아버지인 M. oliver 교수. ⓒbbc 캡처

 

강서양천신문사  gsyck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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