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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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상식
  • 강서양천신문사
  • 승인 2019.10.1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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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약속
이대희 원장유림한의원

누구나가 약속을 한다. 어기기 위해서 약속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종종 가는 지인의 사무실을 들렀다가 근처 건물에서 3년의 약속이란 학원 자리가 없어진 것을 보았다.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새로 복합상가를 짓고 있는 듯했다. 그냥 예전부터 그 이름이 참 예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사라진 것을 보니(아마도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과 약속이라는 말이 마음에 여운을 남기고 또한 문득 아프게 느껴진다.

약속과 기대 무엇인가를 서로 이야기하고 그리고 기대하는 그 심정이란 어떤가. 누구나 간절하고 굳은 마음으로 약속을 하고 나도 누군가에게 혹은 소중한 사람에게 그런 약속을 했으리라. 가볍게 다음에 밥이나 한 번 하자는 지나가면서 흔히 하는 약속부터, 굳은 합격의 약속, 사랑의 약속, 동맹의 약속, 직장에서의 약속 등 가볍든 중하든 그리고 본인 스스로에게 한 약속 또한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주변 사정으로 혹은 알 수 없는 기타 등등의 사정 혹은 본인의 결정으로 약속은 지키지 못할, 혹은 지켜지지 않은 것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어떤 경우는 그저 시간이 지나 이제 도저히 그 약속을 입 언저리에 담기도 부끄럽게 잊혀져 가거나 혹은 어겨 버리고 세월을 지내는 내 모습을 본다. 약속을 어긴 사람은 잊어버릴지라도 그 약속을 애틋하게 기대해 온 사람의 상실감이란 아마도 매우 클 것이다. 그것이 타인이든 혹은 수년 전, 수십 년 전 약속한 본인 스스로이든 약속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이는 기억하고 잊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오롯이 그 약속을 바라보던 사람들에게는 흩어져버린 약속들로 인한 상실감이 마음의 병으로 바뀌어 자리 잡기도 한다.

동의보감에는 ‘탈영실정증’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내경에는 전에 귀족으로 살다가 나중에 천민이 되어 생기는 병을 탈영이라 하고 부자로 살다가 후에 가난해져서 생기는 병을 실정이라고 했다. 비록 사기가 침범해서 생기는 병은 아니지만 병이 안에서 생겨 몸이 매일같이 마르면서 기가 허해지고 정기도 없어지며 병이 심해지면서 기운이 없어지고 으스스하면서 때때로 놀라게 된다고 했다. 병이 심해지는 것은 겉으로는 위기가 소모되고 속으로는 영혈이 바닥나는 것이라 하였다. 또 주해에는 혈은 근심 때문에 줄어들고 기는 슬픔 때문에 감소되므로 겉으로는 위기가 소모되고 속으로는 영이 허탈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증상에는 음식 맛이 없고, 마음이 권태로워지고 실증이 나며 살이 마른다고 했다. 이런 증상에는 교감단을 쓰며 ○천왕보심단, 가감진심단, 승양순기탕, 청심보혈탕을 쓴다.(脫營失精證 ○內經曰 嘗貴後賤名曰脫營 嘗富後貧名曰失精 雖不中邪 病從內生 身體日減 氣虛無精 病深無氣 酒酒然時驚 病深者 以其外耗於衛 內奪於榮 註云 血爲憂煎 氣隨悲減 故外耗於衛 內奪於榮 ○是證 令人飮食無味 神倦肌瘦 內服交感丹 外用香鹽散 擦牙<入門> ○宜服天王補心丹(方見下) 加減鎭心丹 升陽順氣湯 淸心補血湯)

삶의 정도에 대한 기대와 약속이든, 신뢰와 감정에 대한 기대와 약속이든 그것이 본인의 기대치에 미치치 못할 때 근심과 슬픔이 생기고 동의보감의 내용처럼 병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마음의 병을 얻어 몸의 병으로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종종 보게 된다.

가을밤에 달은 반쪽을 지나 눈썹마냥 가느다랗다. 기대를 줄여야 하는 걸까 아니면 한껏 기대하고 철저히 무너지더라도 그 기대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누려야 할까, 나는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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