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상태바
칼럼
  • 강서양천신문사
  • 승인 2019.10.24 1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석, 어머니의 넓음

이제경 대표이사(부동산박사)㈜민경석사컨설팅 /

㈜코리아부동산경제연구소

올 추석은 참으로 오랜만에 제 날짜에 내려갔다. 일상과 마음이 그리 넉넉하지 않기에, 올 추석도 ‘갈까 말까’부터 시작해서 ‘언제 갈까’ 하는 등 이것 저것 고민하다가 추석 며칠 전 또는 당일에 가는 등 체면치레가 다반사였다.

올해는 괜스레 세월의 무게 앞에 순종하기로 한 것이다. 귀향길은 어린 애들이 3명이나 있어서 비록 힘들겠지만, 애들과 같이 갈 기회도 이젠 자주 있지도 않을 듯도 하고, 고리타분하지만 내가 서울 유학을 온 옛날처럼 애들도 옴짝달싹도 못할 입석 열차를 타 보는 추억하나 삼아줄 겸 무궁화호 기차를 선택했다. 다행히 고향은 옥천이니 그리 많은 고생은 없을 것이라 달래서 유쾌히 떠났다.

 

어릴 적, 어머니는 없는 살림이지만 추석 며칠 전이 되면 늘 나를 데리고 장 보러 중앙시장에 갔다.

그 시장 보는 날은 내게 거의 고문과 같은 날이다. 오전부터 거의 하루 종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시장 보는 어머니 때문에 다리도 엄청 아프고, 배도 고프고, 특히 포목점 좀약 냄새는 눈을 엄청 따갑게 해서 나는 땅바닥을 차면서 투덜거리거나 어깃장 놓기를 하다보면 저녁이 되어서 갈 때가 되니, 사실 좋은 기억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그 고생의 말미에는 어머니는 항상 내게 군청색 추리닝 한 벌을 추석빔으로 사주셨다. 나는 어머니가 무엇하러 이리도 고생하면 장을 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한 일이라고는 오랜만에 만나는 상인 아줌마들이나 포목점 고향 사람과 잡담을 하다가, 내게는 길거리 호떡이나 전을 사먹이고, 어쩌다 지나가는 호호할미가 껌 하나 팔아달라고 사정하면 한통 사서 되돌려 주는 등 특별할 것 없이 재미없는 명절 행사였다. 그 오는 길에 어머니가 내게 항상하신 말씀이 있다.

 

“네가 어른이 되서 시장 가면, 네 아들이 배부르다고 해도 호떡 하나라도 꼭 사먹이고 저기 늙으신 할머니 것이라도 하나 꼭 팔아 주거라. 알았지?”

 

툇마루에 앉아서 멀리 텃밭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저 분이 사시면 얼마나 사실까…. 나는 괸시리 가을 끝자락같은 상심이 들어서 애들이 할머니랑 추억 하나라도 갖고 가길 바라는 마음에 저만치 모른 척 떨어져서 짙푸른 하늘이랑 채소랑 고염나무를 바라봤다. 간만에 푸른 평온을 누렸다. 올 추석이었다.

 

요즈음 세상 정치든 경제든 각박하기가 더하는 듯하다. 작은 흠은 크게 잡고, 자기 큰 흠은 말로 떼우려는 혼돈과 미움의 마음들이 횡횡하고 있다. 범인이야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기도 어렵지만, 추석의 귀향하러 갈 때의 마음이 내 편을 확인하고 옹심을 박으로 갔다 온 듯해서는 진정한 추석이 아닐 것이다. 베풀게 없어서 나누지 못하는 게 아니고, 마음이 없어서 못 베푼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가끔 친구들과 맥주집에서 잡담하다 보면 호호할머니나 장애인이 껌을 팔러 들어온다. 의외로 그 장면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나는 작은 껌이라도 사드리고 다시 그 자리에서 돌려 드린다. 추석장 끝마무리에서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나를 편안케 하기 때문이다.

 

“할머니, 이 껌은 제가 샀으니, 다시 이 껌은 선물로 드릴게요.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문득 앙상한 어머니 손 한 번 잡아주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