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오지마을 초등학생 위한 커피나무 사업 빛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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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오지마을 초등학생 위한 커피나무 사업 빛이 보였다
  • 동대문신문
  • 승인 2020.03.0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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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약속 지킨 커피나무 지원, 주민들 지속적인 후원 요청에 고민 커

히말라야 설산! 네팔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는 에베레스트 산을 비롯한 명산들이 즐비하다.

만년 설산 히말라야를 품고 있어 세계의 지붕으로 잘 알려진 네팔은 수려한 자연 환경을 갖고 있지만, 국토의 대부분이 척박한 산악지형이 많아서 3차 산업의 발전은 물론 농사도 힘들어 아직까지도 세계 저개발지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국민대다수가 종교를 갖고 종교적인 생활한다. 특히 힌두교가 85%를 차지하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힌두교적인 전통이 살아있어 국민의식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농업국가인 네팔의 국민들은 아직 순박하다. 특히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국민들은 도시민에 비해 더 순순하며, 농업에 의지하며 살 곳 있다. 네팔에서 농사는 여자의 몫이며, 일자리가 없는 남자들은 대도시나 해외에 나가 돈을 벌여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시골에서 젊은 남자가 많지 않으며, 아이들의 교육환경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네팔 산간 오지마을의 초등학생의 교육지원과 마을자립을 위해 2012년부터 동대문구민, 회기동 주민자치위원회, 연화사, 경희의료원, 동대문신문사, ·중학교 등 많은 기관들이 국제개발구호단체인 더프라미스(The Promise)를 통해 커피나무 심어주기 운동을 시작했다. 커피나무 심어 주기 운동은 다딩시 리프마을과 상코스 마을 등 산간지역에 2014년까지 3년 동안 총 13,000여 그루를 마을 주민들과 함께 심었다. 2015년 당시 동대문구해외봉사단은 규모 7.9의 대지진이 발생한 네팔을 지원하기 위해 일일바자회 까지 준비했지만 6월 초에 발생한 메르스로 인해 일일바자회를 취소하여, 3년간의 약속만 지킨 후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해 아쉬움이 깊게 남았다.

이후 네팔 주민들은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해 올해 동대문구 해외봉사단을 꾸려 24일부터 10일까지 다시 방문했다. 사실 필자는 이전부터 커피마을을 방문하여 심어준 커피나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해 방문하지 못해 마음 한 구석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계속 남아 있었다. 어렵사리 꾸민 봉사단은 코로나19로 인해 인원이 12명에서 7명으로 줄어들어 자신감이 없었다. 코로나19로 주변에서 봉사활동을 철회해야 된다는 의견들이 계속 나왔지만 굳은 마음으로 진행했다.

6년만에 다시 밟은 네팔은 많이 변해있었다. 아니 변한 것이 아니라 발전한 모습이었다. 발전한 네팔 수도 카투만두의 모습을 보면서 커피마을도 변해 있으리라는 상상을 해 보았다. 먼저 지난 방문 때 방문하지 않은 초등학교를 처음 방문하여 학용품 등을 전달해 주었다. 처음 찾아가는 초등학교는 가이드도 가는 길을 몰라 헤매기도 했으며, 공사 중인 도로가 너무 위험하여 불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이후 다시 찾은 커피마을은 거의 변하지 않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마을회관이 없어지고 작은 유치원이 만들어졌으며,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는 점이다. 마을 청년회장은 처음 방문했을 때 마을대표 아들이었으며, 여중생이 자라서 결혼하여 아이엄마가 되어 있어 놀라게 했다.

마을사람들의 환영식을 뒤로 하고 커피나무 생육 상황을 둘러보면서 실망감이 엄습했다. 사실 실망감은 이곳 커피나무 상황을 사전에 들었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했는데, 막상 현장을 보니 더 심했다. 마을 초입부터 심어준 커피나무가 보이질 않았다. 마을 입구 밭에는 커피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었기에 눈에 쉽게 띠어야 하는데 거의 보이질 않아 실망감이 컸다. 이후 마을 곳곳을 다니면서 확인한 결과 살아남은 커피나무에는 많은 양의 커피가 달려 있어, 안도감이 들었다. 이후 몇몇 집을 찾아다니면서 확인한 결과 밭 언저리에 심은 커피나무만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한 집이 커피나무를 잘 키워 수확이 많다는 청년회장의 말에 그 집을 방한 결과 23그루의 커피나무가 잘 살아있었다. 그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은 흥분의 도가니였으며, 희망의 불빛을 보았다. 이 집의 지난해 수확은 생두 100정도로 우리 돈으로 약 90만원 정도 였는데, 이 곳 산간마을에서는 많은 수확이었다. 이 집의 커피 수확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커피나무를 심으면 돈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 다른 마을의 커피나무 생육환경을 확인한 결과 약 4분의 1정도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후 청년회장은 커피나무가 돈이 되므로 우리가 지속적인 후원을 해 주었으면 하고 요청했다.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마음 한 구석에는 지속적인 지원을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같이 일기 시작했다. 필자의 고민의 시작은 커피나무를 지원해 주는 것보다는 커피나무 묘목을 키우는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커피가 돈이 된다면 그들 스스로 커피묘목을 키우는 방법을 배워야 된다. 하지만 이들은 커피나무 묘목을 키워보겠다는 계획을 밝히지 않아 추가 지원여부는 답변하지 않고 돌아왔다. 이제는 밥을 먹여 주는 것이 아니라 밥을 하는 방법을 알려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립하려고 할 때 옆에서 조그만 도와주면 굳건하게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인들이 우리 국민을 보고 놀라는 것은 스스로 자립했기 때문이다. 필자도 네팔 사람들에게 스스로 자립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봉사단은 네팔 사람 스스로 자립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지금도 그들이 스스로 자립한다면 자립할 수 있도록 후원하겠다는 계획은 있다. 문제는 네팔 현지인들의 의식이다. 그들이 하겠다는 의지를 가질 때 누군가 옆에서 도와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박승구 (본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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