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깃든 힘 믿고 끊임없이 연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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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깃든 힘 믿고 끊임없이 연구할 것
  • 강서양천신문사 남주영 기자
  • 승인 2017.03.09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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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 역사학자로 시작해 신지식인으로 우뚝 선 양천구 향토사학자 한종섭 씨

양천구 목동에 소재한 백제문화연구회 사무실에서 양천구의 향토사학자 한종섭 씨를 만났다. 사무실에서는 어디선가 맡아본 적 있는 듯 친근하고도 진한 향이 나는 차가 끓고 있었다. 그가 특허를 낸 ‘느티나무잎차’다.

“그거 아십니까? 느티나무는 우리 민족이 마을 가운데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신목입니다. 하늘에 제를 지낼 때 느티나무 잎을 따서 차를 만들어 올렸다는 기록이 있어요. 또 느티나무 잎은 벌레가 먹지 않는다고 하지요. 저항력을 길러주는 액막이 차입니다.”

차 한 잔을 권하면서도 그에 깃든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한종섭 씨는 천생 향토사학자다. 30여 년 동안 양천구 일대의 유물과 문화재 보존을 전승, 보존하는 데 힘써왔으며 양천구 외에도 하남시 등 전국을 누비며 한국의 토성과 백제의 역사 등에 대해 연구해왔다. <한강 서부와 백제 건국>, <위례성 백제사> 등 저서 활동도 활발히 해왔다.

그가 지역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 목동 주변을 비롯해 양천과 강서 일대로 개발의 물결이 몰려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늘 보이던 산과 밭이 밀려나가고 건물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안타까움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원래 이 주변은 한강변, 그중에서도 소금이 들고나던 ‘소금길’이었습니다. 소금은 당시 화폐로 쓰였으니 매우 귀중했고, 그 통로로 자연스럽게 중요한 장소들이 많이 모여들었어요. 그런 것들이 허무하게 없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당시 쌀가게를 하고 있던 한종섭 씨는 쌀 배달용 오토바이를 타고 일대를 누비며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실들을 수집했다. 개발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없어지는 것이 지역 내에서 쓰이는 작은 지명들이라 지명부터 수집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목동 신트리 아파트가 왜 ‘신트리’라는 이름을 쓰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의 신트리 일대는 신트리는 옛 지도에 ‘신기(新機)’로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우리말에서 “새롭게 틀을 잡았다”는 뜻의 ‘신틀이’와 같은 뜻으로, 신트리는 여기서 기인한 지명이다. 이곳에서 무언가가 새롭게 시작되었음이 지명에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터전에 깃든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향토사학자들이 가진 능력의 힘이다.

처음에는 마을의 지명을 찾아다니는 작은 일이었지만, 얽히고설킨 역사는 한종섭 씨를 양천구에 묻혀 있던 토성으로, 이어서 하남시에 묻혀 있던 백제의 토성으로 이끌고 갔다. 백제의 첫 수도인 한성백제 도성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동안 한종섭 씨는 명실상부 백제 역사문화의 전문가가 되었다. 물론 모든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개발업자와 싸우다가 전 재산이 압류될 뻔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묵묵히 산을 오르고 발굴하며 근거를 모으고 책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냈다. 이런 업적들이 인정받아 한종섭 씨는 2000년부터 4년 동안 하남시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근무했고, 2010년에는 문화예술분야에서 역사연구로는 최초로 신지식인으로 인증 받았다.

“지금까지 이 일을 해 올 수 있었던 건 어릴 적에 한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옛날에 부산에 살 때 6·25전쟁이 터져서 부산으로 피난민들이 몰려들었지요. 밥을 먹고 있으면 어린 아이들이 깡통을 들고 구걸을 해서 내 밥을 나눠줘야 했어요. 우리는 왜 이렇게 못 살까? 다시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생각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고. 우리가 얼마나 강한 민족인지 알면 힘을 기를 수 있어요. 역사를 돌아보는 데에는 그런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어느새 70대에 접어들었지만 한종섭 씨는 여전히 역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의 문명이 우리 민족으로부터 일어났음을 밝히는 인류사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며, 2013년 발간한 <인류문명의 발상지 한국> 1권에 이어 2권과 3권을 계속 발간할 계획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민족은 정말 대단한 민족이라는 것, 세계의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주눅 들지 않을 만한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제 힘 닿는 한 역사를 발굴하고 보존, 전승하는 데 힘쓸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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