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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서양천신문사 박선희 기자
  • 승인 2020.11.2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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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구두를 새 구두처럼 바꾸어 드립니다”

신개념 여성 구두 수선 명장 ‘CREPIN 김혜정 대표’

 

도로가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구두를 닦고 있는 중년 남자. 보통 사람들이 흔히 그리는 구두 수선공의 모습이다. 여기 그 선입견과 편견을 단숨에 날려 버리는 스타일리시한 여성 구두 수선 명장이 있다. 바로 마곡 오피스 빌딩에 자신만의 공방을 차리고 마음껏 창의력을 펼치고 있는 구두 수선샵 ‘CREPIN(크레핀)’ 대표 김혜정 씨다.

상호인 크레핀은 이름에서부터 구두 수선공’, ‘구두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 낡은 고가의 구두도, 추억이 담겨 있어 차마 버릴 수 없는 구두도 그녀의 손을 거치면 뚝딱뚝딱 새 것으로 변신한다.

일단 크레핀을 방문한 고객들이라면 세 번 놀라게 된다. 여성 구두 수선 장인이란 사실에 한 번, 엔틱한 분위기의 멋스러운 샵을 들어서며 두 번, 화보에나 나올 법한 그녀의 매혹적인 스타일에 세 번 놀라며 구두 장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다.

어려서부터 자유롭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좋았다는 김 대표는 20대 때부터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핸드백 제작에 관심이 있었다. 핸드백 분야는 해외 유학파가 많고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라 입지를 고민한 끝에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며 창작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구두 계열로 눈길을 돌리게 됐다.

20대 후반이라는, 진로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조금 늦은 나이었지만 구두에 대한 김 대표의 열정은 남달랐다. 오직 기술을 배우겠다는 일념 하에 서울 강서구 송정역에서 경기 안산에 있는 회사까지 오가며,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급여도 받지 않고 열정 페이 만으로 장거리 출퇴근을 반복했다.

주말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로 생계비를 충당하면서까지 열심히 뛰었기에 이를 눈여겨 본 지인의 소개로 일본계 구두 수선점 리슈 한국지사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많은 남자 기술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자라는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도 묵묵히 견디며 열심히 기술을 배워 나갔다. 그러다 2016년에는 일본 유학길에 올라 우리 나라보다 선진화된 구두 수선, 리폼, 제작 능력을 키워 마침내 구두 수선 명장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었다.

구두 수선샵이 1층이 아닌 6층에 위치한 것은 이례적이다. 요즘은 유튜브나 SNS 문화가 발달해 입소문을 타고 구두를 진정 아끼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작년 8월에 개업한 이후 일 년 남짓 되는 동안 단골 손님도 많이 늘었다고.

김 대표는 회사에 소속돼 있을 때는 고객 불만족 리스크 때문에 창작이 아닌 단순히 구두 수선에만 머물러야 했던 점이 아쉬웠지만, 개인 샵을 차린 후에는 상담을 통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을 때 그리고 그 작품에 고객이 만족을 표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디자이너로서의 새로운 도전도 준비

크레핀은 두 가지 컨셉의 공간으로 나뉘는데, 잘 정돈되고 멋스러운 샹들리에가 달린 전시장 같은 홀과는 다른 느낌으로 안쪽 내실은 좀더 작업실 분위기가 났다. 고가의 슈리페어(구두 수선) 기계가 안쪽에 자리 잡고 있고, 재봉틀과 재료 조각 곳곳에 김 대표의 손길이 묻어났다.

김 대표는 상업적 목적보다는 창작의 퀄리티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되도록 좋은 소재를 사용하려고 애쓴다. 내구성이나 유연성 면에서 뛰어난 소재를 구하기 위해 해외에서 공수해 오기도 한다.

독창성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순수하게 작업 과정을 즐기고 있지만, 때로는 시간의 한계에 부딪히거나 작업 중 먼지를 뒤집어 써야 할 때, 기계나 칼을 많이 써서 상처를 입거나 손이 거칠어질 때는 자괴감이 느껴지기도 한단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고 새 신발을 얻은 것 같다고 기뻐하는 고객들의 모습을 보면 뿌듯함을 느껴 그 모든 것이 치유된다고 말하는 김혜정 대표.

김 대표는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구두 수선 일이 블루 칼라로 인식돼 각광받지 못하는 직업이지만, 구두 수선은 우리 생활에 밀접한 만큼 없어지지 않을 직업이기에 미래 전망이 밝다고 본다고 했다.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가진 김 대표는 크레핀을 브랜드화하고 가방, 신발 등도 직접 제작해 고객에 선보이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김혜정 대표의 역량이 보다 넓게 확산될 수 있길 바라며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여성 구두 수선 장인들이 많이 배출돼 크레핀 2호점, 3호점이 생길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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