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쓰다] 서울살이, 공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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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쓰다] 서울살이, 공간에 대하여
  • 성동신문
  • 승인 2020.08.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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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효은 / 기자, 작가
어효은 lovewill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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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온 지 4년 가까이 됐다. 무작정 올라왔고 딱히 뭔가를 기대하지 않았다. 서울행을 결심하는 많은 청년들이 갖는 부와 명예에 대한 환상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집에 가면 잘 곳과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설명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서울행 버스를 탔고 여기까지 왔다. 아직도 어디론가 가는 중이고. 

 당시만 해도 사회주택이나 하숙집, 원룸을 알아볼 여력이 되지 않았고 가장 만만한 고시원을 찾았다. 다섯 군데 이상을 돌아보았는데 비슷비슷했다. 듣던 대로 딱 한 사람이 누울 공간과 책상이 있었다. 1평 남짓한 공간에도 미니 냉장고가 다리 맡에 놓여있었고 잘 때마다 우웅거리는 소리를 냈다. 천장에는 걸어놓은 옷들이 빽빽했다. 반년 넘게 그곳에 있었다. 그다지 좁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만한 공간에서 잘 수 있다는 것에도 감사했다. 관리자인 이모님도 좋은 분이었다. 과일을 깎아주기도 하고 인사를 하면 늘 웃는 얼굴로 맞아주셨다. 그렇지만 나날이 건강이 안 좋아졌다. 창문이 내 창인 곳에서 지냈는데 그 때문인지 통풍이 잘되지 않아 답답했고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것도 늘 아쉬웠다. 감기몸살 등 자잘한 질병에 자주 걸렸고 마음도 우울하고 불안할 때가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개인 방이 없었던 나는 늘 나만의 공간을 꿈꿨다. 지금은 응봉동 빌라에서 거실과 화장실, 부엌을 공유공간으로 사용하고 따로 개인 방을 쓰고 있다. 처음 며칠간은 혼자만의 공간이 낯설고 외롭게 느껴졌다. 그런데 곧 하루하루 적응을 하며 편안한 공간이 되어갔다. 창은 크지만, 북향에 건물이 가로막고 있어 햇볕이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래도 고시원과 비교하면 두 사람은 붙어 잘 수 있는 침대에 간단히 스트레칭을 할 수 있는 공간, 개인 옷장이 있어 만족스럽다.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차올랐다. 청년사회주택으로 월세도 저렴한 편이다. 집 바로 근처에는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있어서 좋다. 역이랑은 거리가 좀 있어서 걸어가면 20분 정도 걸린다. 밤에는 인적이 드물어 마을버스를 이용하는데 높은 지대를 구불구불 올라가는 버스를 타려면 손잡이를 꽉 잡아야 한다. 

이 공간과 헤어지게 된다면 앞으로 어떤 공간에서 지내게 될까? 단순히 바라는 점을 이야기하면 스트레칭을 좀 더 여유 있게 할 만한 크기의 방에 해가 잘 드는 남향이었으면 좋겠다. 넓은 창에 패턴이 없는 심플한 커튼을 달 거다. 책상에 좋아하는 책을 꽂아 넣고 글을 쓸 공간을 만들고 은은한 조명을 놓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서 침대는 있으나 없으나 큰 상관 없다. 그래도 침대가 있다면 푹신하고 포근했으면 좋겠다. 바닥 이불이어도 마찬가지다. 식물도 키우고 싶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생각도 있다. 같이 스터디도 하고 산책을 하거나 등산을 하고 자전거를 타러 나가기도 하고 뭔가 일을 꾸미기도 하고. 그러면서 개인 공간이 보장되어있는 곳. 같이 요리도 해 먹고. 지금은 금주 중이지만 맥주나 음료 한 잔씩 하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이 있다면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여유가 있으면 강아지, 고양이를 키우고 싶기도 하다. 혼자라면 힘들겠지만 함께 지내면 같이 돌볼 수 있으니까 부담이 덜 될 것 같다.

독립하기 전까지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밥을 먹고 편안하게 살았다는 걸 도시 생활을 하면서 깊이 느꼈다. 서울에서의 생활이 최초의 독립인 셈이다. 오늘도 쌀을 씻고 밥을 안친다. 여유가 되면 근처 공원을 산책한다. 공유공간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어쩌면 내가 있는 이 공간이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 그 인연이 소중하듯 공간도 마찬가지다. 새삼 먹고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주어진 삶을 돌보고 책임지는 방법을 이곳에서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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