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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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도 괜찮아요
  • 성동신문
  • 승인 2020.10.1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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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효은 / 기자.작가
어효은/성동신문 기자
어효은/성동신문 기자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는 누가 보든 말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몇 가지 기억나는 장면들이 있다. 하늘을 찢어놓을 듯이 커다란 굉음에 너무 무서워서 큰 소리로 울었다. 그 소리의 주인공이 비행기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다섯 살 즈음에는 어두운 방에서 혼자 잠이 깼는데 너무 무서워 동네가 떠나가라 운 기억이 생생하다. 어찌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눈물을 억지로 참기 시작했던 순간은 언제부터였을까? 어른이 되어가면서 마음이 슬플 때 눈물 흘리는 행동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나약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싫었다. 상대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 있을 때 맘 편히 울 수 있었다. 술을 많이 마시던 때에는 어느 정도 취하면 눈물이 나왔다. 주로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집에 갈 때 어린아이처럼 더욱 서럽게 울었다. 꽉 틀어막아 놓은 수도꼭지가 터져버린 것 같이. 내 안에 그렇게 큰 슬픔이 자리하고 있는지 몰랐다. 평상시 억눌러놓은 감정이 술을 마시면 무의식이 열리면서 두려움, 불안, 공포, 서러운 마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요즘은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술에 의존하며 감정 표현을 하기보다 맨정신에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울어도 괜찮아’ (그림 어효은 기자)
‘울어도 괜찮아’ (그림 어효은 기자)

몇 주전 어린 시절 많이 예뻐해 주시고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언니와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께서 먼 길을 떠나셨다. 3~4년 전부터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점점 심해지면서 결국 요양원에 가게 되셨다.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할머니를 만나러 갔지만, 서울 생활을 하면서 늘 할머니가 마음에 걸렸다. 집에 언제 가냐고 물어보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언제 또 오느냐는 질문에 '한 달 있다가 또 올게요.'라고 대답하면 할머니는 “열흘 있다가 와"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와는 때로 친구같이 지냈다. 심심할 땐 화투도 치고 학교에서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싸가서 할머니를 드리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는 무더운 여름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가꾸는 옥수수밭에 가서 책가방에 옥수수를 잔뜩 넣고 옮기는 일을 함께 하기도 했다. 대학교에 갔을 때는 방학 때마다 시골집으로 내려오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겨주셨다. 아플 때는 이불을 덮어주고 물을 떠다 주셨다. 그 따스한 손길이 좋았다.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라면과 비빔국수 맛은 최고였다. 다시 학교 기숙사로 떠나는 날이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셨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마음이 아려왔다. 그 순간순간들이 다시 오지 않을 걸 알았고 소중하다는 걸 알았지만 흘러가는 순간을 잡을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좀 더 오래오래 반복되는 일상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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