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태 성동문화원장 신년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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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 성동문화원장 신년인터뷰
  • 성동신문
  • 승인 2021.01.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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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영주 청년이 택한 길, “고물(故物)을 보물로!”
“어렵고 힘든 학생이 활짝 웃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겠소!”
원장실은 전국의 문화원에서 보내 온 지역 향토 자료와 책으로 가득하다. 김원장은 성동문화원에서 펴낸 책자를 보고 있다.
원장실은 전국의 문화원에서 보내 온 지역 향토 자료와 책으로 가득하다. 김원장은 성동문화원에서 펴낸 책자를 보고 있다.

성동문화원장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자 주변분이 말했다. 
“그 자리는 쓰는 자리예요!”
살림이나 인품이 넉넉한 이들이 그 자리 '문화원장'에 앉는다는 것. 자신을 뿌리로 하여 양분을 꽃과 열매에 보낸다는 이야기. 
김종태 원장은 철을 모으는 '고물상' 기업 경마금속3R 대표다. 
고향 영주향우회장도 맡고 있다. 성수동에 터잡은 지는 어느새 36년여. 서울숲 장학회를 거쳐 현재는 성동구장학재단 이사장. 성동문원에서 4년여간 이사를 맡다 2018년 7월부터 5대 성동문화원장이 되었다. 
'문화주의'같은 철학이며, 문화원 정책-사업 말고(그런 건 다른 자료에도 많으니까) 그의 삶과 일상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 저는 성수동 주민입니다. 경마금속3R을 지나며 자주 보았죠.
“고철 전문이죠. 고물이 아니라 보물입니다. 이런 일을 하시는 분들이 애국하는 분들 아닙니까? 철을 모아서 포스코 보내면 가공해서 수출도 하고 그러니까. 철거현장에 가면 땅에 묻힐 철근 하나를 더 찾겠다고 애쓰는 이들도 봅니다. 그분들 수고가 커요. 
경마금속의 '경'은 경주(競走)하는 말이 아니고, 경사 경(慶)자를 씁니다. 내가 경상도서 왔으니까. 성수동에 큰 경마장도 있었으니까. 성수금속으로 지으려했는데, 이미 이름이 있었어요.”

- 성수동에 자리를 잡게 되신 계기는?
“고향이 영주예요. 군대 마치고, 내가 장남이거든요. 시골서 장남은 대개 아버지 밑서 고향을 지켜요. 해서 1년 농사를 지었지. 
근데 봄에 씨 뿌리고 한여름 뙤약볕 견디고 가을 수확 했는데, 농협에 빚 갚고 나니 손에 남는 게 없어요. 농촌이 아직은 젊은이들을 위한 곳이 아니다 싶었어요. 중앙선 타고 서울로 오는데 앞에 앉은 아저씨가 그래요.”

- 뭐라고 하시던가요?
“돈을 벌려면 콩나물 장사, 물장사, 그리고 고물장사를 해야 한다. 나는 셋 중에 고물을 택했어요, 그 중에서도 철. 그때 문래동하고 뚝섬(성수동)이 준공업지니까 둘 중 하나로 가야하는데, 나는 성수동으로 온 거죠. 친구가 있었어요. 
구리 신주 아스텐 같은 건 비철, 나는 비철하다 철을 했어요. 3R은 리사이클링-재활용- 재이용한다는 그런 뜻이고. 성수동에 무수히 사업체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많이 나갔죠!”

- 장학사업도 꾸준히 해오고 계시군요.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랑만 사는 애들이 있어요.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 할머니가 등록금 걱정할 거 아니요. 동네서 등록금 내주면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할 거 같아서. 각 동마다 있는 건대, 지역 아는 분들과 함께 했어요. 
우리는 꼭 받아야 할 학생한테 주려고 장학위원들과 동사무소 복지과랑 꼼꼼히 짚어서 도왔죠.”

- 영주향우회장이시죠? 기사를 찾다보니 재경봉현향우회장님으로 고향에도 장학금을 주셨고.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고 그러잖아요. 영주가 사과 인삼, 풍기읍은 인견 이런 게 좋으니까 그런 제품도 사주고. 축제도 가고. 영주신문도 꼬박꼬박 봅니다.”

- 문화원은 서울 전 지역 구에도 있고, 전국에도 연합회가 있더군요. 문화원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지역의 역사 문화를 보전하고, 지역향토문화 연구도 합니다. 근현대사진전이라든지, 풍물놀이, 명리학 같은 우리 전통문화를 전승하고 대중화하는 일도 하고. 당연히 이를 통해 구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거죠. 문해교육은 지난 시기 격동기에 교육기회를 갖지 못했던 분들에게 한글학습의 장도 열어드리는 거예요. 교육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드리는 거죠. 문화원 사이엔 서로 협력도 잘 됩니다. 순천 같은 데 가면 안내해주고, 와서 인사말 해주고, 선물도 주고받고.”

그는 '고물 고철'을 다뤄온 이다. 현재는 우리 옛것의 문화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일과 이 일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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