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자전거 성동·광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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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자전거 성동·광진점
  • 성동신문
  • 승인 2021.01.14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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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스케이트, 세차장 거쳐…, 자전거는 나의 운명
“아이가 아빠가 되어 다시 아이의 자전거를 사러 왔지!”
화양사거리 자전거 가게. 이곳은 삼천리자전거의 중요한 거래처다. 그는 지역사회에 봉사와 기증을 많이 해왔다.
화양사거리 자전거 가게. 이곳은 삼천리자전거의 중요한 거래처다. 그는 지역사회에 봉사와 기증을 많이 해왔다.

 찾아갈 곳에 대해 물었을 때, 삼천리자전거 성동대리점 이우구 대표는 “화양사거리로 오세요!”하고 말했다. '아니, 그렇게만 말씀하시면 어떻게 찾으란 말이지?' 그러나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금방 알게 되었다. 그의 자전거 점포는 성동과 광진의 경계, 송정과 성수의 대척점, 성수동의 2가3동 끝자리, 화양사거리의 꼭지점에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 자리가 광진구에 속했다가 성동구에 다시 반환된 거예요. 광진구가 성동구에서 분리된 구역이니까, 이곳 지역 변화가 크네요!”

이우구 대표의 고향은 충남 부여다. 백제시대 사비로 불렸던 부여는 660년 멸망때까지 백제의 도읍. 이우구 대표는 깊고 깊은 산골서 자랐다. 주민등록상으로 58년생인 이우구 대표는 그 시절 다른 아이들처럼 1~2년쯤 주민등록 신고가 늦었다. 어려운 시절이었다. 개울의 돌을 뒤집으면 가재가 얼마든지 보이는 곳이었는데, 방학이면 서울에 자리를 잡았던 형네 집에 놀러오곤 했다. 형이 하던 일이 자전거 점포였다. 거기서 자전거를 무수히 봤다. 하늘이 조각만하게 보이는 시골 말고, 대처 서울로 올라가자고 마음먹었다. 형이 근처 자전거 도매상 서울상사에 그를 소개시켜주었다.

추천했던 자전거 첼로 크로노80을 힘껏 들어보인 이우구 대표.
추천했던 자전거 첼로 크로노80을 힘껏 들어보인 이우구 대표.

◆자전거부품 도매상, 세차장, 구두, 스케이트공장… '탈것'은 그의 운명 

직원 정영태 씨가 배민 딜리버에게 펌프를 빌려주고 있다.
직원 정영태 씨가 배민 딜리버에게 펌프를 빌려주고 있다.

-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생활하니 어땠습니까?
“경동시장 맞은편에 내 직장이 있었어요. 그때 장사가 잘 됐어요. 우리 가게는 자전거포에 부품을 대주는 일을 했어요. 지금은 자전거가 한 대 한 대 포장이 돼서 와요. 
그때는 바라시라고, 부품들이 다 한 묶음씩 다발로 왔어요. 자전거 살 스포크, 바퀴틀 림, 타이어 주브, 페달, 클락션 뭐 이런 게 오거든요. 그럼 그걸 다시 자전거에 한 가득 싣고 배달을 가는 거예요. 저기 멀리 돈암동 신흥사, 성신여대 골목골목에 있는 자전거포에 갖다 줘요.”

  - 그럼 그때부터 자전거포하고 연을 여태까지 맺어오신 거예요?
“아니요. 거기서 나와서 그 다음엔 세차장에도 있었어요. 스케이트 공장에도 있었고. 전승현 선수라고 유명한 스케이트 선수가 있었는데, 그 밑에 있었어요. 칼날하고 신발하고 따로 오면 그걸 갖다가 못질해서 신발을 만드는 거에요. 당시에는 취직이 다들 어려운 때니까, 일만 준다고 하면 뭐 돈을 많이 주지 않아도 거기서 일을 하는 거예요. 겨울 오기 전에 스케이트는 다 만들어 팔면 겨우내는 일이 없어요. 그러면 거기서 나오고.”

  - 하하. 주로 이동 혹은 탈것과 관련된 곳에서 일하셨군요. 세차장 일은 어떻습니까?
“세차를 하면, 그때는 다 손으로 했어요. 겨울이고, 여름이고 할 일이 많아요. 차량 내부까지 다 청소를 해야 하니까. 일을 다할 때까지는 밥도 안 줘요, 선배들이. 
잠을 잘 때는 한 방에서 한 열 명쯤 되는 직원들이 함께 자기도 하고…. 
나는 운전병을 할 생각이었으니까, 거기서 일하면서 좀 배우고 그런 거죠. 내가 한 곳에서 오래 일하기보다는 여러 곳을 조금조금씩 했어요. 아직 어떤 일이 더 좋은지 모르니까 살펴보느라고.”

  - 결국 자전거 일을 다시 하게 되신 거군요.
“서울상회서 건설사에 납품도 했어요. 태양금속이란 데서 리어카 철제틀에 우리가 림, 살, 타이어 이런 걸 조합 조립해 바퀴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잘 됐어요.”

이우구 대표는 구두도 배운 적이 있다. 신발 역시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수동이동기구라고 본다면 그의 탈것(이동기)과 관련된 직업의 역사는 반백 년을 훌쩍 넘어가는 중이다. 이쪽으로 오게 된 건 가게를 차려온 형을 따라서다. 
그게 71년이니 어느덧 성동에 온 지도 50년이 됐다. 1978년엔 형이 자전거포를 정리하게 됐을 때, 그걸 넘겨받았다. 
“남한테 주는 것보다는,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싶었죠!”자전거를 썩 괜찮은 일로 보았던 그는, 오랜 '방황'을 끝내고 이 자전거 대리점에 자신의 젊음을 온전히 받친다. 

이우구 대표와 정영태 직원. 둘은 20여 년쯤 함께 일해 왔다. 뒤편으로 보이는 곳을 예전에는 살림집으로 썼다.
이우구 대표와 정영태 직원. 둘은 20여 년쯤 함께 일해 왔다. 뒤편으로 보이는 곳을 예전에는 살림집으로 썼다.

◆아이가 아빠 되어 아이 자전거를 사러 올 때, 가장 기쁘다

“이곳 한 쪽을 그때는 살림방으로 썼어요. 3남매를 낳아 잘 키웠습니다. 당시엔 이곳이 대개 비포장도로였어요. 다니던 버스도 봉은사에서 혜화동까지 64번이든가 있었고, 노선이 또 하나 있었어요. 동일로도 뚫리지 않은 채였고, 고가도 크게 앞에 있었고. 사람들이 많이 왔죠. 뚝섬유원지에 여름이면 배를 타겠다고….”

늘 자전거를 수리하는 곳이었으므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옷을 버렸다. '어떤 때는 하루에 열두 장쯤 옷을 갈아입혔노라'고 그의 아내가 보탰다. 

한강이 가까운 이곳 화양동 성수동 자양동 등은 평지다. 물을 부우면 어디에고 흘러가지 않고 땅에 고일 것이다. 
내가 어릴 살던 곳은 서대문 안산 자락, 인왕산 자락이었다. 그곳은 산동네, 길은 가팔랐다. 자전거를 탈 환경이 아니었으니, 나의 첫 자전거 학습이 이뤄진 건 스물이 넘어서였다. 이곳 성수동에선 누구나 자전거를 탄다. 아주머니, 할머니, 학생 그리고 아이들도 자전거는 필수품이다. 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는 순간은 부모됨을 느낄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기도 하다. 

“점포가 오래되다 보니까 가끔 3대가 와서 자전거를 사는 경우도 있어요. 아빠가 와서 그러는 거예요. 자기가 어릴 때, 여기서 자전거를 샀는데, 어느새 아빠가 돼서 아이에게 자전거를 사주려고 한다고. 그럴 때면 정말 기쁘죠. 참 보기가 좋아요. 성동구 하고 광진구 하고 비교해보면 성동구가 자전거 인구가 좀더 많은 것 같기도 해요.”

  -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은 자전거를 탈 수는 없죠. (성동구) 서울숲은 탈 수 있거든요. 정말 성수동에 오는 분들이 깜짝깜짝 놀라는 공통점 중 하나가 정말로 많은 자전거예요. 거의 집집마다 인원수대로 자전거가 있다고나 할까요? 할머니들도 타고 다니시니까.(웃음)
“그렇죠. 성동구에서 한참 동안 걷기 대회를 했어요. 정원오 구청장님이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러면 대회가 끝난 뒤에 경품으로 자전거를 줬어요. 우리가 거길 납품도 했어요. 한 20~30대쯤 납품하면서, 우리가 기증도 두세 대쯤 합니다.”
이우구 대표는 적십자사가 진행하는 청소년 자원봉사 페스티벌에 지난 2014년부터 매해 자전거를 기부해오고 있다. 
1,300여만 원어치 넘는 자전거가 그동안 곳곳의 청소년들에게 전달됐다. 그가 주는 자전거엔 환경과 건강, 활력이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핸들질을 통해 방향을 잡고, 페달질을 통해 앞으로 전진해가는 자전거처럼 단순하게 단단하게 아이들이 제 길을 헤쳐가기를 바라는 마음. 

 

성수동은 평지다. 자전거를 타기 좋은 동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애용한다.
성수동은 평지다. 자전거를 타기 좋은 동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애용한다.
서울숲의 삼천리자전거. 이 자전거는 필자가 결혼하던 2001년 구입해 2018년까지 타고, 이웃집 아빠에게 물려주었다.
서울숲의 삼천리자전거. 이 자전거는 필자가 결혼하던 2001년 구입해 2018년까지 타고, 이웃집 아빠에게 물려주었다.

- 자전거도 '장비빨'이 좀 있죠. 값나가는 걸로, 대표님이 자랑하고픈 자전거가 있다면?
그가 이층으로 안내했다. 크로노80. 삼천리 자전거의 고급 브랜드 계열인 첼로 제품이다. 고급부품으로 전세계에 공인받는 시마노 XT 부품이 들어가고, 한국인들의 체형에 맞도록(팔다리가 그다지 길지 않게) 자전거의 틀을 다시 디자인한 제품이다. 카본 프레임이라 가볍고 탄탄하다. MTB 계열이고, 엘리트 선수들이 아니라 대중들이 탈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직원으로 20여년을 함께 일해온 정영태 님은 "동급의 여느 수입품에 견주에 가격은 합리적이고, 성능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보탰다. 

삼천리 자전거는 우리나라의 자전거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1944년 설립된 회사니까, 어느덧 86년이나 된 오래된 회사. 
이곳 성동광진점에 자전거를 공급하고 있는 삼천리 본사 동서울지점 서진규 과장의 말.

“그쪽 지역은 아파트촌이 아니잖아요. 굉장히 넓은 지역을 커버해야 한단 말이죠. 그런데도 되게 높은 판매율을 기록하고 계세요. 저희로선 굉장히 고마운 대리점이죠.”
자전거는 두 개의 바퀴로 달린다. 자전거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두 개의 바퀴 사이에 앉아, 그는 오늘도 달린다.

【원동업=성수동쓰다 편집장】
(3bigpictu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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