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놀이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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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놀이하는 삶
  • 성동신문
  • 승인 2021.02.1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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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효은/성동신문기자, 작가
어효은
어효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인지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을 이해했다. 그렇지만 말을 하지는 못했다. 유치원 때까지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초등학생이 되어 친구를 처음 사귀었다.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게 됐다.

발표하기 전에는 떨렸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면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하곤 했다. 친구들과 어떤 주제로 토론하든 지는 법이 없었다. 억눌려있는 마음을 말로 내뱉으며 해소하고 싶었나 보다. 글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는 책도 많이 읽었다.

해가 지기 직전까지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뛰어다녔다. 어찌나 체력이 좋았던지 몇 시간을 뛰어도 지치지 않았다. 별 고민도 없었다. 단순하게 행동했고 누구에게 특별히 잘 보일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오직 놀이에만 몰입했고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다 갔고 잠도 푹 잤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여러 과목을 공부했다. 때로 말썽을 부려 혼이 나기도 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방과 후에는 또다시 산과 강가, 모래사장을 뛰어다녔다. 놀이는 내가 선택해서 행동할 수 있고 재미까지 있던 활동이었다. 자발적으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주체적으로 했던 행동이었다. 가보지 않은 곳을 탐험하는 것도 좋아했다. 해야만 해서 하지 않았고 그 시간이 그저 즐거웠다.

초등학생 때는 기회만 생기면 손을 번쩍 들고 질문도 많이 했는데 중, 고등학생이 되니 눈치가 보였다. 한시라도 빨리 수업을 끝내고 싶은 친구들에게 수업이 끝나갈 때쯤 손을 들고 질문을 하면 따가운 눈총과 뒷담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교복을 입고 교실 책상에 앉아 서서히 틀에 갇히고 말았다. 학교 내에서는 어쨌거나 선생님이라는 어른의 말을 따라야 했다. 보호받으며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마음을 표현할 기회는 나날이 사라져갔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상상을 했지만 움직임은 줄어들었다. 더는 놀이를 하러 밖에 나가지 않았고 손과 옷이 흙투성이가 될 일은 더더욱 없었다.

어린아이들은 충분히 뛰어놀고 모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히려 아이들이 도대체 왜 그런 걸 해야 하냐고 되물으면 난감하다. 움직이는 게 귀찮고 힘들고 재미없다고 쉬고 싶다고 말하면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모르겠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건강한 활동이고 건강을 떠나서 재미있다고 이야기해도 예전만큼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편한 자세로 앉아 SNS, 미디어 매체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한 번이라도 뛰어놀며 재미를 느낀 아이들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이런 활동이 훨씬 더 즐겁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더 많이 웃고 호흡하고 다른 친구와 교류하는 시간을 즐긴다. 아이들은 대부분 나무 막대기 하나만 있어도 온종일 열 가지가 넘는 놀이를 하며 보낼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이 놀이를 잘 만들지 못하고 어색해하기까지 하는 경우가 있는데 무엇인가 아이들의 상상력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어른이라고 뛰거나 활동적인 놀이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생산적인 일을 하느라 ‘놀이’에는 관심이 없다. 할 일은 넘치고 퇴근 후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 한 잔, 해야 할 수도 있다. 삶이 더욱 유연해지고 행복해지기 위해 일을 하지만 놀이 안에 그것이 숨어있다는 건 잘 모르는 것 같다.

놀이를 만드는 상상력은 자연이 불어넣어 준다. 흐르는 물과 숲속의 나무들, 바다와 모래 알갱이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모른다. 그래서 가끔이라도 자연의 소리를 들으러 가고 활동적인 놀이를 하며 생기를 이어가고 싶다. 행복의 방향 중 하나가 ‘놀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다. 자신에게 즐거움을 선물하는 놀이를 함께 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내가 잊고 있던 놀이가 무표정한 얼굴에 미소를 안겨줄지도 모른다.

출처 : 성광일보(http://www.sgilb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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