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처럼 디자인 세성 - 김영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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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처럼 디자인 세성 - 김영진 대표
  • 성동신문
  • 승인 2021.03.1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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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좋고 열매 많은 나무는 뿌리가 깊나니, 세성이 그러하다
“나는 기획의 마술사! '못한다 않는다' 어떻게든 되게 해왔다!”

서울역사박물관에는 방대하고 다양한 서울의 지난 흔적들이 기록 보존돼 있다. 이중 어떤 것들은 땅에 묻혔다 발굴이 됐고-청계천 오간수문 같은 것-, 어떤 것들은 오랜 동안 관이나 가문의 서재 안에서 문서로 남았던 것들이다. 2014년 3월 3일 발간된 책 『마장동_수도권최대축산물단일시장』은 480여 쪽 빼곡하게 '마장동과 시장'을 담고 있다. 그 책에 김영진 대표(3세대)는 2세대 김용득과 함께 '마장동 민초들의 이야기' 첫머리를 장식했다. 

그 첫 번째 장에 새겨진 건 김씨네 가계도. 김한길 최기녀로 시작해 4대를 뻗는다. 어느 집안이든 이렇게 가계가 없으랴만, 이들 김영진 대표네가 놀라운 건, 거의 모든 그 집안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1935년의 돈암동 옛집에 대한 건물소유권보존등기신청서와 마장동에 오기 전 2년여 지낸 오래된 중국집 육합춘 뒤 하왕십리집 매도증서가 그 집안엔 있다.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며 발행한 지나사변행상 사금고국고채권도, 당시의 2차세계대전 당시 할증금부전시저축채권도 있다. 2세대 김용봉의 조선법학전문학원 졸업증서와 형사시험 합격증 경찰 재직 당시의 표창장도 망라한다. 

마장동 책을 만들던 연구원들은 “집에 있는 각종 문서와 사진을 연구하면 박사 학위가 몇 개는 나올 것”이라고 감탄했다. 디자인 기업 세성의 힘은 어쩌면 이런 오랜 역사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모른다.

4대가 살아온 마장동 큰대문집 앞에서 김영진 대표.
4대가 살아온 마장동 큰대문집 앞에서 김영진 대표.


◆간송의 땅 농사짓던 할아버지, 세성과학 운영했던 어머니를 잇다

- 성동의 여러 동네에서 주민자치회에서 자신의 동네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 낸 걸 보았었습니다. 마장동, 금호동, 성수동, 행당동, 도장골, 행당동…까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게 모두 디자인 세성에서 내셨던 거더군요. 
“어머니가 마장동에 대한 애정이 정말 크셨어요. 어머니 이야기를 작게 묶어 <어머니의 길>이란 소책자를 만들었죠. 아버지도 40여년 꾸준히 쓰신 일기를 남기셨고. 그것도 책으로 출간코자 했었고. 그런 일을 하다보니, 한참 마을기록에 대한 관심이 컸던 시기에 마장동 주민자치위원회와 '마장동 이야기'란 책자를 만들게 됐죠. 그걸 보시고는 여러 동네서 '우리도 만들자!'고 요청을 해오시더군요.”

- 역사박물관서 발행한 『마장동』 책자를 보니 할아버지께서 간송 전형필의 땅을 여기 마장동서 경작하셨더군요.
“간송 전형필에게 소작료로 지급한 1만1천1백원 지급 영수증이 3장 남아있어요. 간송의 한해 수익이 32만원 쯤이었다고 하는데, 소작료로 저만큼 지급했다면 정말 크게 농사를 지으셨던 거죠. 할아버지가 여기 마장동뿐아니라 용두동, 동대문상고, 한신아파트, 미군창고였다가 경찰병원이 된 곳, 도선동까지 농사를 지으셨대요. 일꾼들을 어마어마하게 두고, 때로 고용도 하고 그렇게 운영하신 거죠. 마장동은 미나리가 주를 이루고, 다른 밭농사도 하셨다고 해요.”

- 저는 어머니 김순기 여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기록들이 남게 된 이유가 어머니께서 할아버지와 관련된 집안 기록들을 절대로 버리지 못하게 하신 때문이라고.
“그렇죠. 어머니가 저희에게 늘 하신 이야기는 저희가 큰대문집 아이들이란 거였어요. 집안에 누가 되지 말라 하셨죠. 침도 땅에 못 뱉고, 음식도 남기면 안 되고, 밖에서 떠들어도 안 되고.…. 누군가 보고 있다 하셨죠. '베풀어야 해. 꿀리지 않게 잘 살아야 해.' 항상 그러셨어요. 잘 산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죠? 어머닌 마장동서 대외 활동도 많이 참여하셨고요. 경찰 세무서 공무원 아주머니들 청소부까지 전부 아셨어요. 외가집은 군자동서 400여년 토박이셨는데, 집안의 문화를 굉장히 중히 여기셨어요. 어머니는 삶의 목표는 그간 집에서 팔았던 땅을 다시 사는 것이었어요. 저를 임신한 상태에서 4층 건물도 지으신 거고. 부도가 나서 버리고 간 사출공장을 인수해 프라모델 완구업체를 운영하기도 하시고. 마장동을 되게 사랑하셨어요. '여기가 강남보다 더 나은 곳이 될 거다' 그런 믿음을 평생 간직하셨어요.”

할아버지에게서 상속된 땅은 '매매가 안 되는' 땅이었다. 은행에 잡혀 '대출을 받을' 수도 없는 땅. 경원선이 뚫리면서 동마장과 서마장이 된 이 땅은 이후 도로를 내고, 집들이 이사도 와 살고, 이면도로가 얽히면서 땅에 대한 소유문제가 풀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힌 곳이 됐다. 서울한복판 마장동서 여전히 볼 수 있는 1970년대쯤의 동네풍경이 이해가 갔다. 영진에게 그 땅은 “팔고 어디 가지 말고, 예서 살고 또 물려주어야 하는 땅”이다. 디자인세성이 큰대문집 옆에 자리를 잡은 것도 거개 그런 이유다. 

- 김영진 대표께서도 마장동과 연이 깊으시죠? 부인 김창호 님도 마장동 토박이 동명초 후배시고.  
“가족들, 아이들까지 모두 동명초에 다녔죠. 저는 동명초 산악회장, 동명초 동문회 기획국장 등을 맡았어요. 사람들은 그게 사업에 여유가 있어서 그런 줄 알거나, 비즈니스 때문에 그런 줄 알지만, 그렇진 않아요. 나는 2007년부터 사회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상공회의소 최고경영자 과정 1기에 가입했고 경성라이온스 클럽 활동도 하게 된 거죠. 2017년엔 경희대 사이버대학원에 입학했는데 자기소개서 잘 써서 수석입학인 거예요. 그래피티가 뭔지도 모르던 사람이 '사회적 예술론' 같은 과목에서 발표도 하고. 마장도시재생과 관련해 문화자원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면서 주민과 상인들간 마장상생협의체 대표도 맡게 된 계기가 됐죠.”

그의 사무실 옆 공간엔 그와 큰대문집 그리고 세성의 역사가 빼곡하다.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은 이유는 그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그의 사무실 옆 공간엔 그와 큰대문집 그리고 세성의 역사가 빼곡하다.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은 이유는 그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기획의 마술사란 별명 더해 마라톤 스물다섯 번 완주처럼 끈질기게 지속해온 한 우물

- 인상 깊었던 또 하나는 할아버지가 정말 '흙을 팔아'서 장사를 하셨더라고요. 어머니는 제조업을 하신 거고. 김영진 대표는 디자인 기업을 운영하고 있고요. 이 집 3대는 마치 1차산업 농업, 2차산업 공업, 3차산업 디자인 서비스업을 모두 거쳤구나(웃음). 김영진 대표께서 디자인 세성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디자인세성은 기획사예요. 기획은 아이디어를 내고 판을 짜고, 계획해서 실행해 내는 거에요. 제가 대학교 때 별명이 '기획의 마술사'였어요.”

- 자칭타칭(웃음) 영광스런 이름이군요. 어떤 일 때부터죠?
“나는 경제학과에 들어갔는데, 관심이 가는 건 연극이었어요. 삼촌이 텔런트셨는데, 어릴 적부터 연극을 접하게 되었어요. 그땐 다방 같은 데서도 공연이 벌어졌어요. 국립극장도 가고. 동경이 생겼던 거 같은데, 학교 가선 내내 연극반에 있었어요. 그러다 2학년때 연극반 회장을 맡았어요.

- 보통은 3학년 4학년이 맡죠?
“대개 그렇죠. 당시 우린 테네시 월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을 준비했는데, 포스터가 연극개막 1주일 전에나 나온다는 거예요. 난 더 알리고 싶었고. 해서 A4 용지를 반 잘라서 '유리동물원'이라고만 매직으로 써서 온갖 곳에 붙였어요. 1985년엔 유리동물원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때에요. 사람들이 궁금하잖아요. 포스터가 붙으니까, '아!' 한 거죠. 수목금토 공연을 했는데 4회 매진이 된 거예요. 입장료를 500원씩만 받아도 350석이니까…. 그때부터 친구들, 선배들이 그렇게….”

김대표가 아이디어를 내 '돈을 벌어야지'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1984년 전두환 정권은 대학자유화 조치를 취한다. 그렇게 해서 대학은 학도호국단 체제에서 총학생회로 전환하고, 대학마다 동아리연합회도 생겨난다. 그러면서 동아리들 지원 체계도 변화한다. 모든 동아리는 '똑같이' 지원받게 된 것. 이전에 75만원쯤을 지원받던 연극반도 24만원. 
“우리가 1년에 3회 공연을 했어요. 한번 하는데 두 달씩 넘게 연습해요. 1년이면 180여일. 세트 의상 조명 음향도 준비해야 하고.”

김영진 대표는 마라톤 풀코스를 25회 완주한 러너이기도 하다. 한번 42.195킬로미터의 마라톤 코스를 뛰려면 그 준비는 그 스무 배인 1천킬로쯤을 뛰어야 한다는 것이 이 업계의 기본 상식이다. 마라톤 완주를 했다는 것은 그가 여러 방법을 연구하고 실제로 연습해 왔다는 증거가 된다. 체중을 조절하고, 코스를 따져보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스스로는 포기하지 않는 이라는 합리적 믿음도 갖게 한다. 

◆노라고 하지 않는다. 길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들어 간다

그는 졸업후에도 여러 번 그의 연극반 동지들과 공연을 올려왔다. 2000년 정보소극장에선 <굿 닥터>를, 2002년 마포문화체육센터에선 <라이어>를, 2010년 소월아트홀에선 <택시 드리벌>을 올렸다. 그때마다 그는 '기획'을 담당했다. 공연장 마련부터 재정, 홍보와 공연진행까지 모든 걸 풀어가는 그 자리. 소월아트홀 공연에서 그는 5회 공연중 2회 공연의 500석 좌석을 만석시켰다. 모교 보성고의 교지 발간을 꾸준히 맡아주면서 후배들을 맞이하는 것도 여전하다. 그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또 돌보며 함께 가는 사람이다. 97년 일본에서 만나본 세상 '프린트 하우스'로부터 24년의 세월을 꾸준히 '기획-창조'의 길에 있는 것 역시 그렇다.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해, 어떻게든 길을 찾아야 하는 것, 그게 김영진 대표가 생각하는 디자인이고, 기획이고 그리고 기업의 본질이다. 그는 두 군데의 자기 일터-하나는 마을과 또 하나는 영업 현장에서- 성과를 일구어 왔다. 호기심을 내는 것, 현재 있는 자리는 무엇이 본질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 그리고 그걸 나름의 방법을 찾아 실현하는 것은 그의 천성 같은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집안 제사를 드릴 때? 

“우리 집은 2번의 차례를 올리고, 4번의 제사를 드려요. 그럴 때면 가족들이 모이죠. 우리는 한글로 수필처럼 축문을 써요. 간단한 고인의 프로필을 적고 현재 우리 집안의 소식들을 축문에 정리합니다. 조카들에게 오늘 어느 분의 제사이시다, 어떤 분이셨다 이야기도 하죠. 시기마다 업그레이드 되고….”

- 노(No!) 라고 하지 않는다. 일단 받고 그걸 해결해 낸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김치냉장고 디자인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김치통을 만들어달라고 하시는 거에요. 정말 김치통이요. 만들어 드렸죠. 스타키도 그렇고, 삼성엔지니어링도 그렇고. 성동구에서 하는 축제 '성동-마음-잇다'같은 행사와 축제의 기획과 진행 같은 것도 그렇죠.”  

김영진 대표는 지난해 마장동 도시재생 공모사업의 하나로 '마장 방구석 음악회'를 기획했었다. 급성호흡기 전염병 코로나19 상황에서 대규모로 '합창'을 한다는 일이 가당키나 할까? 그래도 그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그걸 해낼 전문가들을 조직하고, 차근차근 일을 집행해 냈다. 2019년 500여 명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치룬 '마장 실버 문화 페스티벌' 같은 행사의 온라인 축소판.

디자인세성은 세상 세(世) 이룰 성(成)으로 기업 이름을 지었다. 그건 어머니가 일으켰던 기업, 세성과학을 잇는 것이다. 어떻게 '세상을 혹은 세상에서 이루게 될 것'인가? 나무는 뿌리가 깊을 때라야 꽃이 좋고 열매가 많게 된다. 물은 샘이 깊을 때라야 내를 이루고 바다에 이르게 된다. 마장이라는 서울의 땅에서, 그 땅에 뿌리내리고 건물을 올린 큰 가족들 안에서, 어릴 적 친우들과 새로 만나는 이웃들 안에서 영진은 자라고 살고 있다. 디자인세성은 그가 마장에서 혹은 성동에서 (그리고 마땅히 서울과 한국과 세계에서) 함께 어깨 걸고 성장해갈 터다.
(주) 디자인세성
서울 성동구 마장로27길 8-5(마장동 497-12)
전화 02)2299-4216 팩스 0505-115-4216
http://광고디자인.net / http://브로슈어_kr

<원동업 성수동쓰다 편집장>

그간 세성이 만들어온 광고기획들. 기획에서 제작 운영까지 토탈 경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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