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가 풍년드니 빈말이 깨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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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가 풍년드니 빈말이 깨춤을 춘다
  • 성동신문
  • 승인 2021.07.1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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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 / 성동신문 논설위원
송란교 / 성동신문 논설위원
송란교 / 성동신문 논설위원

‘내 말 먼저 들어봐!, 아냐 니가 내 말 먼저 들어야지!, 내 말을 어디다 판 겨!, 내 말은 말이 아닌 겨!, 왜 내 말을 잘라 먹고 그려!, 싸라기 죽만 먹었나 왜 반말이야!, 왜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겨!, 말귀가 그리 어두워서야 어디다 쓸 거냐!, 그기 아니고 이기라니까!, 이기 아니고 그기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이나 되게 해야지!, 뭔 헛소리여?’ 이런 소리는 해가 넘어갈 즘 시장 골목에 있는 주막에서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와 이제는 제법 귀에 익숙하다.

말의 가치가 밑도 끝도 없이 떨어진다. 막차도 끊기고 돈도 떨어진다. 말싸움이 끝나도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말의 품격이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 없고 말하는 사람의 인격도 희미하다. 자기의 생각은 태풍에 실려 보냈는지 가뭄에 말라버렸는지 도통 겨자씨 껍데기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남을 흉보는 소리만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온다.

장맛비 타고 오는지 댐이 와르르 무너지듯 우당탕탕 쏟아진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을 헛소리라 하는가? 말이 말 같아야 말이라 하지 말 같잖은 소릴 질러대면서 말이라 하면 듣는 말이 화를 낼 것이다. 빈 둥지에 빈말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으면 빈 소리만 들린다. 빈속은 빈손만 바라보며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뒹굴게 된다. 들어서 배부른 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빈속에 꼬르륵 소리만 요란 떨 듯 허튼소리만 활개를 친다.

개들이 싸우는 소릴 개소리라 하는데 이보다도 못한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개소리하지 마!’ 개가 짖으면 개소리인 것이 분명한데 사람이 하는 말을 미친 개소리라 한다면? 여기서 사용된 ‘개’는 멍멍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헛된’ ‘쓸데없는’ ‘질이 떨어지는’ 것을 뜻하는 접두사로 이해하고 싶다.

개소리 말고도 개꿈, 개떡, 개수작 등도 자주 듣는 말이다.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Harry Frankfurt)는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거짓말은 진실을 왜곡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이며 거짓말을 지어내기 위해서 거짓말쟁이는 무엇이 진실인지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허위를 진리의 위장 가면 아래 설계한다. 그러나 개소리는 이런 진실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조차 없다. 그야말로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이다’라고 했었다.

할 일은 안 하고 못된 짓만 골라 하고, 할 말인지 해서는 안 되는 말인지 구분도 못하고 마구 떠들어대면 허튼소리가 되는가? 쓰레기 같은 말들이 날마다 쏟아지니 한 트럭이 넘는다. 이 쓰레기를 어떻게 치워야 하는가? 쓰레기 매립장도 넘쳐나서 허튼 말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데 어떡하나? 쓰레기봉투도 값이 오르던데 쓸데없이 돈 들어가게 생겼다. 입에서 나오면 모두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가슴이나 머리를 통하지 않고 혀끝에서 뒹구는 가벼운 말을 즐겨한다. 입으로만 설쳐대고 정리되지 않는 단어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덜 씹은 음식을 삼키면 목구멍이 불편하다. 덜 다듬어진 단어를 들으면 귀가 아프다. 환자가 하는 말이라면 버릴 게 없겠지만 허튼 말을 내지르면 스스로 가치를 떨어뜨리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어느 모임에서 거나하게 취해 감당하지 못할 허풍을 치고 나서 며칠 지나 별일 아니라는 듯 약속을 깨면 신뢰와 존경심은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이슬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강물 따라 흘러가는 모래알 신세가 될 뿐이다. 주변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헛소리가 넘쳐나니 스스로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헛소리를 하게 된다. 이탈리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알베르토 브란돌리니(Alberto Brandolini)는 ‘헛소리를 반박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은 그런 헛소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몇십 배나 많고, 바보는 우리가 반박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헛소리를 쏟아낼 수 있다’라고 주장했었다.

너무 많은 헛소리, 너무 모자란 침묵! 흔들림 없이 꼿꼿이 서 있고 싶어도 헛소리가 거친 바람을 일으키니 빈 마음조차 비틀거린다. 존중받지 못하는 말에 내가 왜 웃어주어야 하는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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