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떼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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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떼와 같다
  • 서울로컬뉴스
  • 승인 2016.11.0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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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길랑/천주교 서울평협 전 대외관계위원장
명길랑/천주교 서울평협 전 대외관계위원장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떼와 같다'는 말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그의 저서 《신국론》에서 한 말이다. 《신국론》을 집필한 일차적 동기는 신학적인 것이지만 《신국론》이 도덕·정치·철학 등 인류 역사상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주제가 망라되어 있어서 서구 지성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제국을 비롯한 국가들에게 강하게 비판한 이유를 “정의가 없는 국가란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잡혀 온 해적에게 “무슨 생각으로 바다에서 남을 괴롭히느냐”고 문초를 하자 “그것은 폐하께서 전 세계를 괴롭히는 생각과 똑같습니다. 단지 저는 배 한 척으로 그 일을 하는 까닭에 해적이라 불리우고, 폐하는 대함대를 거느리고 그 일을 하는 까닭에 황제라고 불리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신국론〉ⅩⅠⅩ, 12)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강도떼와 국가가 외형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강도떼도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고, 두목 한 명이 다스린다. 또한, 강도떼도 결합체의 규약이 있고, 약탈물을 일정한 원칙에 따라 분배한다. 심지어 강도떼도 서로 갈라져 싸우면 약탈도 하기 어려우므로 자기들 안에서 일정한 정의와 평화가 유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랜 전통에 따라 “정의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신국론〉ⅩⅠⅩ , 12)이라고 규정한다. 또한, 이런 정의를 저버리고 불법을 저지른 자는 남에게 해악을 끼치지 못하도록 징벌로 교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때로는 강도떼가 나름대로의 세력 때문에 그 탐욕이 징벌당하지 않으므로 정정당당한 집단처럼 행세하게 된다. 전 세계를 지배하고 정복한 로마제국도 진정한 정의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면 진정한 '공화국'이 아니라 강도떼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초기 로마가 정의로운 국가였을 때 얼마나 번성했는지도 상세하게 기술했다. 그는 당시 로마제국이 초기의 정의로움을 잃어버려서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를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우리는 지금 정의를 파괴하는 각종 위협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탄생부터 지금까지 주요한 사건을 간추려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박근혜 후보의 당선은 정의롭지 못했다. 국가정보원, 국방부 사이버사령부, 보훈처 등 국가기반이 대선에 개입한 것이다. 바로 댓글 사건이다. 선거에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기관이 법을 어기고 댓글로 박근혜 후보는 좋은 사람, 야당 후보는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여론이 들끓자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댓글 사건에 대해 의지를 가지고 수사를 지휘하던 채동욱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수사팀장 윤석렬 검사를 해임 좌천시켰다. 왜 그랬을까? 선거부정을 감추고 박근혜 정부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미국에서 이런 사건이 터졌다면 당선 무효다.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거짓말을 해 낙마했다.

둘째, 세월호 사건이다.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304명이 수장됐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청와대가 재난관리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고 두 번이나 말했다. 대통령은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주된 임무다. 그런데 청와대가 국민의 귀중한 생명이 죽어 가는데도 재난관리를 하는 곳이 아니라니 이 무슨 망발인가.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설치한 '세월호 진상규명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정부 여당은 방해했다. 결국 특별조사위원회는 진상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채 해산 당했다.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아리송한 7시간을 덮기 위해서다. 밝혀야 할 수사 대상이다.

셋째, 메리스 사건이다. 정부는 메리스 사건이 터지자 우왕좌왕 위기관리 능력이 없었다. 서울 삼성병원을 초기에 폐쇄를 단행했더라면 메리스 확산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국민의 생명보다 재벌 이익을 고려한 결과였다.

넷째, 역사교과서 국정화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2015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은 현행 역사교과서를 두고 “잘못된 역사를 배우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거나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이종걸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현행 역사교과서 어느 부분이 부끄럽다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전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말했다. 무슨 '기운'가지고 역사교과서를 개정하나? 그런데도 교육부 관계자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제작을 강행했다. 무엇이 그렇게 다급해서 수많은 역사학자와 역사 담당 교사들이 반대를 하는데도 밀실에서 집필진의 명단도 밝히지 않고 역사교과서 편찬을 강행하는 것일까? 이승만·박정희 등 친일·독재자들을 찬양하고, 이들의 반민족적·비민주적 행위의 취부를 덮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교과서를 '박정희 일가의 가족용'교과서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것은 역사의 왜곡이다. 당장 역사교과서 편찬을 멈춰야 한다.

다섯째, 백남기의 죽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때 쌀 80㎏ 한 가마당 210,000원을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 4년이 지나도록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전국 농민들이 쌀값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백남기는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죽음에 이르렀다. 죽음의 원인은 외상이다. 그런데 서울의대 백선하는 병사로 적었다. 의료인들이 외상이라고 했으나 백선하는 굽히지 않았다. 경찰은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부검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백남기의 죽음은 백남기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다. 우리 농민의 정신적 죽음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생명과 평화의 일꾼”이었고 우리 농민들의 길잡이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국회는 진상을 밝혀야 한다.

여섯째,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자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에서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은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후에는 그만 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이 최순실에게 건네졌다는 걸 자인했다.

하지만 이미 드러난 것만 봐도 “남북 비밀 군사 대화가 담긴 자료, 국무회의 말씀 자료, 최순실 딸 정유라 대학입시와 관련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문건, 국토교통부 장관이 청와대에 보고한 '복합생활 체육시설 추가 대상지 검토안' 등 다양한 기밀 문건이 전달되었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정을 보자, 박 대통령은 10월 20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자신이 기업들의 문화·체육에 대한 투자 확대를 주문했고, 기업 대표들과 창조 경제와 문화 융성의 융복합 필요성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운만 뗏는데 재계 주도로 두 재단이 설립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모금 과정이 사실상 “반 강제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이 재단 설립 직전 주요 기업 임원들을 만나고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모금액을 할당하고 재촉하는 과정 등은 대통령이 말한 기업들의 자발성과는 거리가 멀다. 기업들은 대통령의 의중에 대한 확인 없이 두 재단에 모두 8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내놓을 이유가 없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대기업들의 자발적 모금이었다”는 기존의 주장들을 뒤엎고 “청와대 지시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모금 지시가 확인된 셈이다. 대기업들의 손을 비틀어서 800억 원의 돈을 강탈해서 두 재단을 설립한 몸통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고, 깃털은 안종범과 전경련 이승철이라 하겠다.

일곱째, 지역 편중인사다. 2014년 1월 '경제 검찰로'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장에 대구·경북(TK)출신을 앉힘으로써 감사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에 이어 5대 권력기관장에 전부 영남 출신으로 채워졌다. 감사원, 검찰청, 경찰청, 국세청의 고위직 152명 중 영남 출신이 40%를 넘어섰고, 국가 의전서열 10명 중 8명이 영남 출신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영남의 영남에 의한 영남을 위한”인사를 했다.

'동종교배의 퇴화의 법칙'이 동물뿐 아니라 인간사회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끼리끼리 인사의 조직은 창의력이 나오지 않으며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진다. 박근혜 정부의 이런 인사가 오늘의 위기를 자초했다고 필자는 본다.

이상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들을 살펴보았다. 부정선거를 덮기 위해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수사팀장을 해임 좌천시켰으며, 구할 수 있는 304명의 생명을 구하지 않았고,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 예방에 무능했고, 역사의 왜곡을 시도하고 있고, 물대포로 농민들의 의인을 죽였고, 국정을 최순실이라는 사인(私人)에게 의존하고 사인을 위해 대기업에게 강도짓을 했고, 특정지역 편중인사로 지역 차별을 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민주주의 위기, 서민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를 초래했다. 뿐만 아니라 대선 때 국민에게 한 중요한 약속을 대부분 지키지 않았다. 따라서 대한민국을 정의가 없는 나라로 만들었으며 강도떼가 설치는 나라로 만들었다.

'민무신불입국(民無信不立國)'이라 했다. “백성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를 세울 수 없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민 지지율 5%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음을 말한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수행 능력을 거의 상실했다. 거취는 박근혜 대통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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