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에 관한 단상
상태바
청바지에 관한 단상
  • 장문호 기자
  • 승인 2021.10.27 16: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문호/광진투데이 편집국장
장문호
장문호

오늘도 나는 청바지를 입고 외출했다. 특별한 약속이 있는 날이 아니면 청바지를 주로 입는다.
청바지는 우선 몸과 마음이 편해서 좋다. 자유를 느낀다고나 할까?

그러나 모든 사물이 자기만의 역사를 갖고 있듯이, 이런 청바지도 나름대로의 역사가 있다고 한다.
19세기 중엽 미국 서부에서는 황금을 캐러 온 사람들이 몰려오고, 그 가운데 리바이 슈트라우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군납업자로부터 천막 10만개 분량의 납품 제의를 받는다.

그러나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한 나머지 주막집에 들러 술을 퍼마신다.
그런데 거기서 광부들이 헤진 바지를 꿰메는 모습을 보고, 천막으로 바지를 만들면 되겠구나 하는 발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의 상상력은 적중해서, 그 후 질기면서도 튼튼한 청바지가 널리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청바지는 1930년대엔 주로 서부영화에서 주연배우들이 입고 등장하며, 1970년대가 되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한국에서도 70년대 초반, 주로 당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청년문화라는 새로운 문화 트랜드가 일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청년문화는 청바지와 생맥주, 통기타음악 그리고 장발로 대변되었는데, 이는 당시 청년 학생들의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과 지향을 반영하면서, 기성의 문화와 가치에 대해 우월적 차별성을 지니고 나타난다.

특히 통기타음악은 당시 트로트에 대비되는 포크송의 한 흐름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이러한 감상적이고도 낭만적인 청년문화도, 당시 박정희 정권의 외압에 의해 70년대 중반이 되면 해체되기에 이른다.

한국에서의 청바지는 이렇게 청년문화의 한 형태로서 특징을 가지면서도, 1980년대에는 5공 군사정권 하에서 시위를 진압하는 소위 백골단들이 주로 입고 나타나기도 한다.

그때 청바지하면, 백골단이나 군부정권에 의해 시위학생들을 잡아들이는 말하자면 정치깡패들이 입는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 것이다.

이러한 시기를 거쳐 우리 사회가 민주화 되면서, 청바지는 이제 젊은층에게 개성과 자유의 이미지로 변천되어 온 것 같다.

90년대 초반인가, 나는 후배 동료들과 함께 청바지를 입고 마석 모란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청년으로부터 불심검문을 받았다.

얼굴 전체에 짙은 화상이 크게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 그 청년은 분신을 기도한 운동권 청년인 것 같았다.
그 청년은 내가 청바지를 입고 있어서, 아마도 형사나 경찰 프락치 정도로 오인했던 것 같았다.
물론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나는 오늘도 청바지를 입고 자유스러움을 맛보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