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인간과 같이 군집생활을 하면서 분업하고 의사소통을 한다. 이러한 개미의 조직 생활을 유심히 관찰한 일본 학자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개미 구성원의 20%는 매우 열심히 일을 하면서 조직을 이끄는 우수한 개미 집단이고, 완전히 뒤쳐져 헤매는 하위 집단이 20%이고, 나머지 60%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평범한 집단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수한 개미 집단을 따로 뽑아서 별도로 관리해보니까 똑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전부 우수한 집단의 개미였는데 똑같이 2:6:2로 구분이 되었다. 뒤처진 하위집단 20%를 따로 분리하더라도 똑같이 2:6:2로 분류가 되더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는 조직의 부(富)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상위집단 20%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상위집단 20%의 수준이 높은 집단일수록 더 잘 사는 조직을 만든다. 다만, 하위 20%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조직이 원만하게 굴러갈 것이다.
국가의 구성원인 인간도 개미와 유사하다. 다만, 개미와 차이가 있는 것은 인간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인위적으로 이 비율을 조절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비교하면서 설명해보고자 한다. 자본주의란 개인별로 잘 살고 싶은 욕망을 인정하고 일의 성과에 걸 맞는 소득을 보장한다. 개인별 능력의 차이가 있으니까 당연히 상위집단, 중간집단, 하위집단이 생기고 이의 비율이 3:4:3 (또는 개미와 같이 2:6:2)의 구조로 형성이 된다고 한다. 반면, 공산주의는 법과 제도를 활용하여 1:9의 구조로 가는 것이다. 잘 사는 집단(지배층)이 10%, 나머지는 90%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는 공산당원을 인구의 10% 정도로 국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국가의 부(富)를 극대화하지만 계층 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10명 중 3명은 아주 잘 살고, 3명은 아주 못 사니까 주변을 둘러보면 빈부의 격차가 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면 상위 30%가 하위 30%를 먹여 살려야 한다. 상위 30%가 국가 부의 80%∼90%를 가지고 있기에 하위 30% 지원하는데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반면 공산주의는 10명 중 한 명만 특권층으로 잘 살고 나머지는 다 못 산다. 왜냐하면 개인별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개인의 부(富)로 연결이 되기 않기 때문에 열심히 일할 동기가 없는 것이다. 하향평준화 되어 다 못사는 형태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사회적 갈등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주변 사람이 다 자기랑 비슷하게 못 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장기 집권이 가능하다. 배가 고픈 것은 참아도 배가 아픈 것은 못 참는 인간의 습성을 꿰뚫어 본 것이다.
최근 대선 후보들 간 정책 이슈를 보면 우리는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코로나 보상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거리두기로 발생되는 하위 30% (영업을 하지 못하는 자영업자)에 집중 지원이냐 아니면 전 국민 지원이냐 문제이다. 당연히 하위 30%에 집중되어야 한다. 월급이 제대로 나오는 일반 근로자에게 지원할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대신 지불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도 마찬가지이다.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은 결국 많은 세금을 걷어서 전 국민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위집단은 물론이고 중간집단의 세금도 올라간다. 기본소득 금액이 커질수록 중간집단과 하위 집단이 차이가 없어지고 결국 3:4:3의 구조가 1:9의 구조로 변하게 된다. 대신에 국민이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가 없기에 종국에는 못 사는 국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사는 국가를 원한다면 1:9의 구조보다는 3:4:3의 구조로 가되 상위30%가 하위 30%의 최저소득을 보장하도록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최저소득과 기본소득이 차이이다.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의 미래가 이번 대선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