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한여름 밤의 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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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여름 밤의 꿈(4)
  • 성광일보
  • 승인 2022.07.1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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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시인·소설가,
김욱동

고등학교를 졸업한 올해는 별 무리 없이 부모님의 허락까지 순조롭게 얻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작년 여름, 그전 해인 2학년 말부터 대학 진학문제로 부모님과 몇 번 마찰을 빚는 갈등에 시달리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중압감에서 벗어나고자 동생들의 돼지 저금통까지 깨부수고 대구로 도피했다. 

내당동 작은아버지 집에서 며칠 빈둥거리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부산으로 연락 취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달아나듯 10년도 지난 오래전 초등학교 1학년 때 누나와 같이 가 봤던 가창 외갓집을 혼자 갔다. 

동산병원 맞은편 서문시장을 걷고 있을 때 '가창, 우록행' 이란 붉은 팻말이 보이는 시외버스가 나타났다. 
잠시 망설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차에 올랐다. 

비포장 길이라, 가끔 머리가 천정에 닿을 듯 덜컹거리던 버스는 파동을 벗어난 뒤 '대한중석' 앞을 거처 냉천을 지날 때는, 연신 시퍼런 개울 속으로 곤두박질할 것 같이 위태로웠다.
버스 의자보다 낮은 게딱지 같은 함석지붕과 초가지붕이 거의 반반씩 섞여 있는 시골집들을 차창으로 흘려보냈다.

점점 외가가 있는 삼산동이 다가오자, 외삼촌을 만났을 때 해야 할 거짓말을 연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긴 여름 해가 삼산동에서 청도로 넘어가는 팔송 재 머리에 얹히고 어둠이 어슴푸레하게 내리는 골목마다 밥 짓는 연기가 무리 지어 마을에 자욱했다.
청솔가지 타는 메케한 냄새가 한꺼번에 마을 골목을 꾸역꾸역 쏟아져나오는 저녁 시간, 버스는 삼산동 정류소에 도착했다.
겨우 두 사람이 앉아있는 것을 확인한 운전사가 재촉하는 눈길을 보내자 머뭇거리다 버스에서 내렸었다. 
“형아 언제 왔노?"

낚싯대를 거의 손봤을 때쯤 나보다 두 살 손아래지만, 학교 수업만 끝나면, 논으로 밭으로 외삼촌을 따라 억센 농사일에 굵어진 탓인지, 골격이 어른 뺨 칠 만큼 건장한 외사촌 동생이 어깨에 삽을 멘 모습으로 뒤에 서 있었다. 
"응 여름 방학이라서 놀러 왔다."
"참! 형 올해 대학교 들어 갔제?"
"그래, 진학했다. 삼촌은 어디 가셨나?" 
"볼일 보러 아침 먹고 바로 대구 나갔다. 저녁에는 올 끼다"

동생은 삽을 마당 한구석에 세우고는 부엌 앞 장독대 옆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길은 샘물을 머리 위로부터 두어 번 뒤집어쓰고는 나에게도 등물하라고 물을 길었다. 
뼛골이 저미듯 시원한 샘물이 등줄기를 타고 배꼽으로 모이는 것을 느끼며 수건을 받아들고 저수지 쪽을 보았다.
"요즘도 못에 붕어 잘 나오나?" 

동생은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마루로 올라서며 못 방향을 한번 쳐다봤다. 
"몰래 투망 던지는 놈들이 많아 올해부터는 동네 형들이 밤에 돌아가며 지킨다고 하던데 모르겠다." 

저녁을 지어 놓고 마실 나간 외숙모가 차려 둔 밥상을 사이에 두고 밥주발보다 더 높게 퍼 담은 저녁을 먹었다.
 쌀이라곤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깡 보리밥이 푸석거리며 흩어지는 것을 연신 숟가락 안 든 손으로 우겨 싸며 몇 번 우물거리다 삼켰다. 
막 된장 찍은 풋고추 아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구멍으로 미끄덩하고 내려가는 곱삶은 보리쌀의 묘한 감촉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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