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으로 일군 불굴의 공구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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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으로 일군 불굴의 공구인생
  • 서울로컬뉴스
  • 승인 2016.11.1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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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기업 공구나라 박춘규 대표
대명기업 공구나라 박춘규 대표

상계중앙시장을 지나 4호선 철길 아래 상계로를 걷다보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를 온갖 기계들이 전시되어 있다. 청계천에서나 볼 수 있는 수천 가지가 족히 넘을 공구들이 가득한 공구나라(대표 박춘규, ☎02-932-0300)이다. 사무실 문 위에 ‘필요하신 분 연락바람(24시간 대기)’이라는 표지판이 영업정신을 드러낸다. 영어로 쓰인 각종 공구와 청소용품의 하루 대여료는 2만원에서 17만원 선, 매장에 없는 것은 창고에 다 있다.

그 공구들의 이름과 위치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박춘규 대표는 공구인생만 43년이다. 상계초등학교 21회 졸업생인데, 실제 나이는 두 살 많은 63세다. 서대문 영천고개 공사를 하던 1966년도 초4때 상계동에 들어와 한미주택(현 상계대림아파트 자리)에 살았다. 세광중학교를 나온 뒤 천호상고 2학년 때 어려운 가정 형편을 돕기 위해 야간학교를 다니며 공구사를 운영하던 이모부 밑에 들어간 게 공구인생의 시작이었다.

“그 당시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라 시화공단에 전자제품을 납품했다. 이외에 대한항공, 여수남양화학, 대한석탄공업사, 대영타이어 등 큰 기업에 기계 공구, 시추 기계 등을 주로 납품했다.”고 회고했다.

박춘규 대표가 노원에 들어와 공구대여업과 시설관리업을 시작한 지는 20년 째. 지금은 코레일과 서울메트로 등에 각종 청소용 약품이나 용품 등 시설관리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공구이름이 영어와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맥마스터라는 책으로 공부했다.”는 박춘규 회장의 근성과 열성도 불경기 앞에서는 멈칫했다. “독립해서 청계천에서 부흥기계라는 공구상을 했다. 관공서 시설관리나 납품업을 했는데 IMF사태 나기 직전인 1995년에 거래하던 대기업인 덕산그룹이 부도나자 이에 맞물려 연쇄부도를 맞았다. 내가 받은 어음이 휴지조각이 됐다. 그 당시 27억원은 지금 200억원이다. 도망 다닐 때 죽고도 싶었다. 지금도 집에 가면 그 어음들이 한 다발 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게 한 바탕은‘신용’이었다. 대한석탄공사에 같이 납품하던 동업자가 “10년의 사과나무를 심자.”며 사재 2억 2천만원을 털어 대명기업을 함께 시작했다. 그후 개인빚을 다 갚았고, 재작년에는 40년간 거래하던 성원개발에서‘상생 40주년’기념패를 받았다. “40년을 납품할 수 있다는 건 연결이 잘 돼 있다는 뜻이다. 업체는 곧 신용이다. ”

한 우물을 43년간 팠어도 요즘은 전자입찰로 일을 해서 기존방식으로는 어려운 게 현실, 그래도 ‘하면 된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에 잘 견디고 있다. 요즘 대명기업이 거래하는 곳은 충남대 병원, 분당 이노밸리, 분당 디지털센터, 삼성 파이낸스, 메트로 등 규모가 큰 곳이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박춘규 대표는 ㈜경진이레의 가맹점이 되어 히스크바나 엔진톱을 취급하려고 준비 중이다.

물품이름을 어떻게 다 외우는지에 대해 묻자 “그건 세월이다.”고 답하는 박춘규 대표는 “내가 여태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신용’이다. 성원개발이 선불까지 주며 거래해주었기에 오늘날 밥 먹고 살게 되었다. 그래서‘상생’이다. 나 자신이 성실하게 살다보니 서슴없이 투자하는 분도 계셨다.”며 경영철학을 말했다.

박춘규 대표는 지난 20년 동안 지역사회 봉사활동도 꾸준히 펼쳐 JC회장과 강북라이온스 클럽 회장, 상계2동 주민자치위원 등을 역임했다. <노원신문 김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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