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업이 만난사람] '의사조력 존엄자살 입법'에 즈음해
상태바
[원동업이 만난사람] '의사조력 존엄자살 입법'에 즈음해
  • 원동업 기자
  • 승인 2022.07.26 12: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다! '좋은 죽음' 맞을 준비 되셨나요?”
죽음의 질 1위 영국의 비결은 호스피스. '의사조력 자살' 입법 전 할 일은?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 성동지사 심영섭 담당자. 이곳에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등록할 수 있다.

지난 7월 22일, 기자는 성동구도시관리공단 3층을 찾았다. 청계천변 청계천 9가. 그 건물에  건강보험공단 성동지점이 있다. 3층 민원실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사전 확인을 받은 참이었다. 이미 죽음의 과정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기계의 힘을 빌려 목숨을 연장하지 않음을 자신의 자유의사로서 명확히 밝혀 일종의 '공증'을 해두자고 하는 것. 

◆청계천변 국민건강보험 성동지사서 신청 가능
민원실에 들어서면 대각선 건너편에 큼직하게 표식이 돼 있다. 자리에 앉자, 절차는 10여분 만에 진행되었다. 본인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그리고 연명의료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과 그것을 들었음을 확인하는 서명절차 두 번. 그게 내 죽음-연명의료에 대한-을 내 스스로 결정하는 절차의 전부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해 궁금한 몇 가지를 담당자께 질문했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모르시는 분들도 있다. 많이들 이 절차를 이용하고 계신가?
“평균 하루에 7~8명은 오시는 것 같다. 어떤 경우에는 친구분들이 함께 오시기도 하고, 부부가 함께 오기도 한다. 어르신들이 역시나 다수인데, 여자어르신이 상대적으로 남자어르신보다는 많다. 주변분들에게 이런 절차를 진행했다고 말씀하시면, 그것에 자극을 받고 오시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여기 성동지점에는 옆동네 동대문에서도 많이 오신다. 

- 병원에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가능한 것 같은데. 
“함께 전달해 드린 책자를 보시면, 안내가 돼 있다. 서울에서는 현재 은평구와 중구 보건소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병원에서는 가톨릭대서울성모병원 및 여의도성모병원 등이다. 대한불교조계종 등 비영리 법인 및 단체도 있다. 성동선 한양대학교병원에서도 등록이 가능하다.”
2022년 7월 22일 현재의 등록기관수는 558개다. 의료기관 수는 336개. 이중 성동구는 두 곳이 등록기관 등록이 돼 있다. 위 국민건강보험공단 성동지사[성동구 청계천로 546, 3층(마장동) 1577-1000]와 한양대학교병원[성동구 왕십리로 222-1 / 전화 02)2290-8665] 광진구로 넓히면, 국민건강보험공단 광진지사(광진구 구의강변로 45, 105호(구의동) 전화 1577-1000 동일하다]

- 이곳에서 신청을 하면 어떤 절차를 거치나?
“우리는 대행기관이다. 의향서 등록에 관한 업무, 설명이나 작성 지원을 해드린다. 결과도 통보하고. 만약에 원하신다면, 연명의료의향서 카드도 보내드린다. 카드가 없어도 전산등록이 되어 효과는 동일하다. 연명의료에 대한 최종적 관리를 하는 곳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http:www.LST.go.kr)이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를 찾았다. 거기서 찾은 몇 가지 정보. 

 

▶ 2021년까지 1,158,585명 작성, 100명 중 2.65명
 2018년.2.4~2021.12.31까지 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인구는 꾸준히 늘었다. 2018년 100,529명에서 2019년 432,138명. 2020년에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줄어서 257,526명이지만, 지난해는 다시 368,392명이다. 2021년 기준 누적 1,158,585명. 인구 100명당 2.65명, 2.65%가 이미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것. 이중 남성은 357,077명, 여성은 이보다 2배 이상 많아서 804,717명이다.
▶ 연명의료계획서
 치료 중 작성되는 연명의료계획서는 2018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2021년 현재 누적 81,129건. 남성이 50,596건, 여성 30,533건이다. 60대와 70대의 남성에게서는 그 비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인상적인 표지.

◆시대 따라, 사회 따라 죽음에 대한 다른 태도

2016년 한 해, 우리나라 총 사망자 28만 명 중 75%인 21만 명이 병원에서 사망했다. 병원에서는 의학적으로 소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도 생명연장을 위한 다양한 시술과 처치를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 변화가 온 것은 2009년 김할머니 사건 이후. 76세의 김 할머니는 폐암 발병 여부 확인을 위해 검사를 진행하던 중, 갑작스레 의식을 잃었고, 식물인간 상태에서 인공호흡기와 같은 생명연장장치에 의존해 중환자실에 있게 된다. 할머니 가족들은 평소 할머니의 뜻을 전하며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병원에서 이를 거절, 결국 소송에 이르게 된 사안. 
대법원은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했고,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라면,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한다. 2013년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특별위원회서 절차와 방법을 논의, 2016년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단계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었고, 이 법에 따라 연명 의료결정제도가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된 것. 

2009년 김할머니 사전 전에는 어땠을까?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은 당시의 정황을 보여준다. '의학적 권고에 반하는 환자의 퇴원'에 대한 의료진 및 가족을 살인죄 및 살인방조죄로 인정한 판례가 있었다. 

 물질문명의 전파나 과학기술 등의 발전으로 인한 물리적 세계의 변화를 우리는 쉽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주거환경을 포함해서 먹거리와 사용하는 도구 등 환경에 너무나 쉽게 적응한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속도, 정신이나 문화의 영역에서 변화는 조금더 늦게 온다. 이를 설명하는 단어가 '아노미-문화지체'다. 위 연명의료에 대한 논란은 그런 예다.

◆호스피스가 좋은 죽음 핵심이지만, 영국은 일상화, 한국은 갈 길 멀어

연명의료의향서를 마친 기자에게 공단은 <말기 환자와 가족을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안내>서를 동봉해 주었다. 안내서는 아쉬웠다. 호스피스에 대한 설명이면서, 호스피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定義)와 설명이 없다. 입원형/자문형/가정형 호스피스에 대한 설명과 전문기관에 대한 설명,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오해와 진실'을 다루고 있지만….

호스피스는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이 편안하고도 인간적인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위안과 안락을 베푸는 봉사활동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지칭."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를 순화해 '임종봉사자'로 번역했다.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일까? 어떤 죽음도, 심지어 좋은 죽음도 나쁜 삶보다는 낫지 않다(好死不如惡活)고 주장하는 중국인들의 생각에 대해 어떠신가? 죽음의 질 지수(Quality of Death Index)는 이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겠다. 이코노미스트 인텐리전스 유닛은 완화의료 및 보건환경, 인적자원, 돌봄자원구입능력, 돌봄의 질, 지역사회의 참여 등 5개의 범주를 20개 항목으로 나누고, 이를 지수화해 '좋은 죽음에 대한 평가지표'를 마련해 적용하고 있다. 한국은 2010년 40개 OECD 회원국중 32위, 2015년에는 18위로 올랐다. 73.7점. 영국은 93.9점이었다. 영국은 어떤 상황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국이 '웰다잉의 나라'가 된 비결로 꼽는 것은 호스피스 제도다. 영국 정부는 완화의료에 대한 포괄적 정책을 수립하고, 국가보건서비스(NHS)를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한다.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다양한 기부와 봉사활동이 이루어진다. 환자들은 거의 무료로 호스피스를 이용한다. 어린이도 호스피스에서 죽음과 함께 산다.  

태어나자마자 뇌출혈로 수술을 받은 미아란 아이. 그 아이는 현재 17개월이고, 언제 어떻게 상황이 나빠져 병원 신세를 져야할지 모른다. 이 아기를 엄마는 호스피스에 데려다준다. 호스피스에서는 이 아이의 아침을 챙겨주고, 놀아주고, 옷도 갈아입히고, 온종일 돌보다 엄마에게 돌려준다. “만약 위급 상황마다 병원에 간다면, 대기시간도 길고, 매번 낯선 의료진에 미아에 대해 설명하거나 새로 진료가 시작될 것"이라는 미아의 엄마는 “호스피스가 없었다면 가족의 일상이 무너졌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2017년 호스피스의 날을 맞아 마련된 '누구도 홀로이지 ㅇ낳게 사진전' - 보건복지부 제공

◆'의사조력존엄사법' 전에 해야할 일들

최근 국회는 일명 <조력존엄사법>이 대표 발의됐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동대문갑)은 1) 말기환자이고 2) 수용키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며 3) 신청인 자신의 의사로 희망할 경우, '조력존엄사'가 가능하도록 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조력 존엄사법 발의에 대한 호스피스학회 입장-2022년 6월 21일”(출처: hospicecare.or.kr)을 냈다. 이 글은 좋은 죽음에 대하여,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1.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나, 이후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호스피스 돌봄이 가능한 질환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호흡부전, 만성간경화에 국한되고 있다. 
2. 이조차 인프라 부족으로 대상 환자중 21.3%만이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있을 뿐이다. 약속했던 인프라투자, 돌봄에 대한 관심, 사회적 제도 정비 등은 아직 제자리걸음 그 이상이 아니다.  
3. 지난 코로나 2년을 거치며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 88곳 중 21곳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휴업했다. 나머지 기관도 방역을 이유로 면회가 금지돼 환자들은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질 높은 생애말기 돌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요지. 당면한 문제의 해결과 돌봄에는 소극적인 채, '조력 존엄사'는 자칫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죽음 전에, 우리가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