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자식 사랑 - 하피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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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자식 사랑 - 하피첩
  • 강서양천신문사
  • 승인 2023.02.2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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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牧民心書)』로 유명한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상들이 8대에 걸쳐 문과에 급제하고 모두 홍문록에 이름을 올렸던 팔대옥당(八代玉堂)의 명문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런 다산은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책을 저술한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렇듯 많은 책을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은 1801년부터 시작되는 18년이라는 긴 귀양살이 덕분(?)이 아닐까 싶다. 

다산은 14세 되던 해 홍화보의 딸 홍혜완과 혼인하였다. 서울 출신의 부인 홍씨는 다산보다 한 살 연상이었다.

다산이 유배지에 있었던 18년의 긴 세월 동안 부인 홍씨는 고향 마재(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전장을 가꾸며 집안 살림을 돌보았다. 이후 다산이 유배지에서 풀려났어도 벼슬길이 열리지 않자 항상 남편을 격려하며 남편의 친구들이 집에 찾아와 묵고 갈 때면 정성스레 만둣국을 만들어 대접했다 한다.

그러던 다산이 고향에서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례(回婚禮)를 맞이한다. 회혼례가 있기 3일 전 회혼의 애틋함을 담아 다산은 회근시( )를 지었고, 잔칫날 아침 세상을 떠나며 세상 마지막 시가 되었다.

 

60년 풍상의 세월 눈 깜짝할 사이 흘러가

복사꽃 활짝 핀 봄 결혼하던 그해 같네

살아 이별 죽어 이별 늙음을 재촉했으나

슬픔 짧고 즐거움 길었으니 임금님 은혜 감사해라

오늘 밤 목란사(木蘭辭) 소리 더욱 다정하고 

그 옛날 붉은 치마 유묵 아직 남아있네

쪼개졌다 다시 합한 것 그게 바로 우리 운명

한 쌍의 표주박 남겨 자손들에게 넘겨주노라

 

다산은 부인 홍씨와의 사이에 6남 3녀를 낳았으나 4남 2녀는 요절하고 2남 1녀만 장성하였다. 이를 개탄하며 “죽은 애들이 산 애들의 두 배구나.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 그 잔혹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할 것인가”라며 비통해했다고 한다. 

어린 자식들이 죽는 아픔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식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유배와 함께 두 아들이 벼슬길에 오를 수 없는 폐족(廢族)의 신세가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1801년 신유사옥으로 유배 갈 때가 다산은 40세, 장남 학연은 18세, 차남 학유는 15세, 막내딸은 8세의 어린 나이였다.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오늘의 다산을 있게 한 것은 홍씨 부인의 보이지 않는 내조였을 것이다. 홍씨는 시문에도 능하여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 간 지 6년(1807년)이 되던 해 겨울, 시집올 때 가져와 붉은빛이 담황색으로 바랜 치마와 함께 사언시를 지어 보내며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표현하였다.

1810년 다산은 그 치마를 오려 두 아들에게 간직할 당부의 말을 쓴 서첩을 만들고 이를 노을빛 치마라는 뜻의 노을 하자를 써서 ‘하피첩( )’이라 하였다.

그 하피첩 1첩의 머리말에는 “내가 탐진(강진)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는데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다. 그것은 시집올 때 가져온 훈염( , 시집갈 때 입는 붉은 예복)이다. 붉은빛은 이미 바랬고 황색마저 옅어져 서첩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를 잘라 마름질하고 작은 첩을 만들어 붓 가는 대로 훈계의 말을 지어 두 아들에게 전한다. 훗날 이를 보고 감회가 일어 어버이의 자취와 흔적을 생각한다면 뭉클한 마음이 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피첩이라 이름 붙인 것은 붉은 치마라는 말을 바꾸고 숨기기 위해서다”라고 쓰여 있다.

더 나아가 다산은 두 아들에게 “내가 너희들에게 전답을 물려주지는 못하지만, 평생을 살아가는데 재물보다 소중한 두 글자를 주겠다. 하나는 ‘勤(근)’이요 또 하나는 ‘검(儉)’이다. 근면과 검소, 이 두 가지는 좋은 전답보다도 나아서 한평생 쓰고도 남는다”라고 훈계하였다.

그런 하피첩은 다산의 후손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다가 정약용의 5대손이 6·25전쟁 피난길에 수원역에서 잃어버린 후 행방이 묘연했다. 그러던 중 2004년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수레에서 발견되어 KBS ‘진품명품’에 출품하면서 딸에게 보낸 매화병제도(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소재와 비교하는 등 검증을 거쳐 4책 중 3책이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되었다.

보물 제1683-2호인 하피첩은 1810년에 다산이 느꼈던 부인과 아들, 딸에 대한 사랑이 현재의 우리와 다름 없다는 것에서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싶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세태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영원히 간직해야 할 가치는 같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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