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자촌→현대도시→600년 역사도시' 서울도심 40년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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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현대도시→600년 역사도시' 서울도심 40년 변천사
  • 서울로컬뉴스
  • 승인 2018.03.1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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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정사진총서Ⅷ - 착실한 전진, 1974-1978②」 발간

대표 판자촌 소공동 등 도심 노후지 개발 본격화, 플라자호텔․롯데호텔 등 건설
서울역 거점 ‘제1순환도로’ 개통 등 도심과 외곽지역 연결하는 도로망 확충 중점
훼손됐던 한양도성 복원사업 '75년 시작해 숙정문, 광희문, 세검정 등 복원

종로, 을지로, 남대문로 일대 (1977.09.20.)

1966년 존슨 미국대통령의 방한, 1972년 남북대화를 통해 국제사회에 비춰진 당시 서울 도심은 낡은 판자촌이 즐비한 모습이었다. 이를 계기로 서울 도심에서는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돼 소공동에 플라자호텔('76년 완공), 롯데호텔('79년 완공) 같은 대형 건축물이 하나둘씩 건설되면서 현대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근대화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손됐던 한양도성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복원사업도 서울시 주도로 1975년 착수, 600년 역사도시의 위상을 회복하는 움직임도 시작됐다. 한양도성과 연결된 숙정문, 광희문, 세검정 등도 이 시기에 복원됐다.

같은 시기, 허허벌판이었던 강남 일대는 지하철2호선, 병원 및 공공시설 등 기반시설이 갖춰지고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도시의 모양새가 꾸려졌다. 1974년~1978년 서울은 이렇듯 강남‧북으로 확장된 도시 영역에 ‘내실있는 발전’을 모색하는 시기였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송인호)은 한강 이북 지역이 서울의 중심으로서 내실을 다져나가는 시기였던 1974년부터 1978년까지의 변화모습을 담은 사진 260여 점을 수록한 「서울시정사진총서Ⅷ - 착실한 전진, 1974-1978②」을 펴냈다고 밝혔다.

당시 서울 도시계획의 주된 정책적 기반은 서울을 3개의 핵(강북 도심, 영동 도심, 영등포‧여의도 도심)으로 묶는 ‘삼핵도시 구상’과 ‘서울의 3대 공간 확보’였다.

이 시기는 서울 도심공간의 재정비와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선진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판자촌이었던 소공동 등에 플라자호텔을 비롯한 고층빌딩이 들어섰다.

이 시기 도로정책은 1960년대에 구축됐거나 계획된 도로망의 연장선에서 도심과 도시 외곽지역을 연계하는 주요간선도로 확충에 집중됐다. 대표적으로 이화동~동대문 간 도로를 건설해 서울역을 기점으로 의주로-독립문-중앙청-율곡로-동대문-퇴계로-서울역을 연결하는 ‘제1순환선’이 1975년 완전 개통됐다.

서울시는 1975년부터 한양도성(서울성곽)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고 대대적인 서울성곽의 보수‧복원공사를 추진, 역사도시 서울 정비에도 나섰다.

「서울시정사진총서Ⅷ - 착실한 전진, 1974-1978②」는 서울도서관에서 도서 또는 전자책으로 열람할 수 있으며, 시민청 서울책방에서 구매(가격 30,000원) 가능하다. (문의 : ☎739-7033)

낙원상가 일대 (1976.08.04.)낙원상가 앞 전경을 촬영한 사진으로 오른쪽에는 현재 사라진 파고다 아케이드가 있다
공덕동 오거리 일대 (1978.06.02.)현재 공덕역 인근으로 지금은 사라진 마포극장과 녹십자병원이 보인다
세종문화회관 뒤 적선동, 도렴동 일대 (1977.03.17.)
세종문화회관 뒤 적선동, 도렴동 일대 (1977.03.17.)
플라자호텔 건축공사 (1976.01.26.)1973년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소공지구는 도심재개발이 처음 시행된 곳으로 초기에는 화교회관을 건립해 재개발을 할 계획이었으나 지주들의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 사업 진행이 지연되고 있었다. 이에 이 지역에 토지를 가지고 있던 ㈜한국화약(현 한화그룹)은 화교들이 소유한 이 지역 토지를 일괄 매입해 1976년 플라자호텔을 건축했다.
북아현 재개발지구 (1974.10.20.)북아현 제2지구, 아현 제2지구, 서빙고 제1지구, 고척지구 등 4개 불량주택 재개발 사업이 1974년 확정됐다. 재개발 사업은 주택을 건설하고, 도로와 상하수도, 석축 계단 등을 완비해 지역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사진은 북아현 제2지구의 재개발 모습이다. 왼쪽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 건물이 보인다.
용산동 재개발지구 (1977.03.30.)1977년 4월 서울시내 재개발 사업이 일제히 착공됐는데 현저 3지구 등 10개 지구이다. 특히 고지대 불량주택지는 개발억제 시책에 따라 표고 70m 이상은 완전철거됐다. 위 사진은 용산 1지구의 모습으로 남산 3호 터널 남단 진입부 옆 보성여자고등학교 주변이다.
무악재 일대 (1977.03.15.)독립문에서 무악재 방향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행촌병원은 현재도 그 자리에 위치해 있다.
난지도 제방 (1977.03.22.)1977년 1월 새마을 노임소득사업으로 실시되는 난지도 제방축조공사가 착공되었다. 난지도와 마포구 성산동 사이를 흐르는 샛강을 매립하고 한강변 쪽 난지도에 제방을 쌓아 고수부지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종로 1가 사거리 가각정리 공사 (1976.08.04.)서울시는 1976년 광화문우체국에서 종로 1가에 이르는 도로의 확장공사를 완료한 후 보신각 옆 가각을 정리했다. 사진은 보신각 주변 가각정리 공사현장으로, 보신각 오른쪽에 있었던 조흥은행 종각지점을 철거하는 모습.
확장공사 전 청계천로 모습 (1976.04.19.)동아일보사에서 광교에 이르는 총 500m 구간 도로를 기존 24m 폭에서 34~36m 폭으로 만들고, 7~8m 폭의 보도도 건설했다.
확장공사 후 청계천로 모습 (1977.01.01
서대문 방향 정동입구 (1977.08.07.)
정동 사거리 정비 (1977.08.07.) 광화문-서대문역 사거리까지 도심 간선도로 확장 공사가 1977년에 시행됐다. 원래 도로폭이 30m였던 것을 40m로 넓혔고 지저분했던 도로 주변을 깨끗하게 정비했다. 정동 사거리를 찍은 사진으로 정면에 서대문 고가도로가 보인다.
하남호텔과 회나무 (1976.11.04.)정동길 확장 시 도로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는 500년 된 회나무는 주민요구에 따라 보존하기로 하고, 이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남호텔은 손탁호텔이 위치하던 곳 바로 옆에 6.25전쟁 이후 생겨난 호텔이다. 신·개축을 거듭하며 정동을 지켜오다 1995년에 경영부진 등으로 캐나다에 매각됐다. 현재 이 자리에는 캐나다대사관이 위치해 있다.
독립문 일대 고가도로 공사 모습 (1978.07.13.)현저동과 독립문 일대를 바라본 모습.
홍제 고가도로 공사 모습 (1977.03.30.)홍제 고가도로는 홍제 사거리 일대의 교통체증을 해결할 목적으로 1976년 11월 착공, 1977년 5월 개통됐다. 왼쪽으로 보이는 유진상가는 홍제천 복개와 동시에 지어졌다. 1993년 북부도시고속도로 건설로 유진상가 일부가 철거됐고 홍제 고가도로는 2012년 없어졌다.
종로 1가 도로공원 준공 (1976.12.23.)종로 1가에 조성된 도로공원과 신신백화점(왼쪽), 화신백화점(오른쪽) 모습이다.
을지로 4가 도로공원 (1976.07.29.)클로버 형태의 도로공원은 도로의 가각정비와 도심의 녹지공간 확충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성곽보수공사 현장의 케이블카 (1976.02.20.)삼청지구에는 성곽보수에 필요한 성석(城石)을 운반하기 위한 케이블 타워 12개소가 설치됐다.
성북지구 성곽복원 후 (1978.03.31.)성북지구 성곽복원 공사 완료 후 성곽과 현재 서울과학고등학교의 모습. 새로 복원한 여장과 기존 성곽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장충지구 신라호텔 주변 성곽공사 (1978.11.07)
복원된 풍납동 토성 일대 (1976.09.18)
안암동 1가 한옥밀집지구 (1976.09.09.)성북구 안암동 1가 일대 한옥밀집지구로 안암천과 안암초등학교 주변이다. 1930년대 후반 돈암 토지구획정리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지역으로 그 당시의 함께 건설된 도시형 한옥들이 들어서 있었으나, 현재는 10여 채의 한옥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보문동 4가 한옥밀집지구 (1976.09.09.)현재 보문역과 신설동역 사이의 한옥밀집지역이다. 서쪽으로는 보문로가 지나고, 동쪽으로는 성북천이 흐르는 지역이다. 현재는 한옥 1/4가량만 남아있다.
세종문화회관 (1978.01.11.)세종문화회관은 1972년 화재로 소실된 후 1974년에 착공, 1978년 완공됐다. 1973년 엄덕문 건축가가 전통건축의 요소를 현대적으로 활용해 세종문화회관 건축공모에 당선했다. 대강당, 음악당, 회의장을 각각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연결된 「ㄷ」자 형 한옥 배치로 하고, 지붕에는 서까래의 조형을 살려 한국건축 고유의 멋과 기품을 표현했다.
수송 초등학교 화재 (1976.06.17.)1976년 6월 17일 서울시 수송초등학교 과학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11개 교실을 태우고 40분 만에 진압됐다. 화재 이후 1977년 수송초등학교는 폐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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