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고전13:6) 2018.11.29
“지금은 한식날 아버지 무덤에 성묘 가서도 나는 울지 않는다(중략).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중략),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우리 남매들이 더 이상 울지 않은 세월에도 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
김훈 저(著) 「바다의 기별(생각의 나무, 23-2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슬픔이라는 것도 풍화되어 서서히 없어집니다. 그 절절하던 그리움도 잊혀져 가 삼십 년이 지났더니 아버지와 사별했다는 슬픔이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듯 슬프다는 감정이 풍화돼 없어졌다는 그 사실이 슬퍼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망각은 슬픔이자 축복입니다. 기억하는 능력보다 더 큰 축복은 망각하는 능력입니다. 지구는 적도를 기준으로 시속 1,664km 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자전을, 공전 속도는 무려 초속 30km에 달합니다.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하는 굉음을 상상해 보았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살아갑니다. 인간의 청력은 20~2만 Hz 사이의 소리만 들을 수 있는데,지구의 자전이나 공전 소음은 이 범위를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소리를 다 듣고, 모든 것을 다 안다면 우리는 아마 미쳐 버릴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면 황금 같은 ‘지금’을 과거라는 강도로 인해 마구 유린당할 것입니다. 다 듣지 못하게 하시는 은혜, 다 알지 못하게 하시는 은혜, 망각하게 하시는 은혜! 이것이 고마우신 주님의 은혜입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전1:4)
한재욱 목사
강남 비전교회
서울시 강남구 삼성2동 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