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화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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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화병
  • 강서양천신문사
  • 승인 2018.12.04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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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칼럼

이대희 원장  유림한의원

추위가 오고 밤이 깊어지며 이야기도 깊어지는 계절이지만 혼자 속으로 끙끙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는 추운 밤이다.

鬱火… “鬱(울)” 막히다, 막혀서 통하지 않다, 우거지다, 수풀이 무성하다…. 그렇다. 켜켜이 쌓여서 수풀이 무성하게 쌓이듯 막혀서 통하지 않는 상태, 화가 치밀어 그것이 켜켜이 쌓여서 막혀있는 상태를 ‘울화병’이라고 한다.

 

며칠 전 온 단골환자인 한 부인은 간밤에 자다 벌떡 깨서 자고 있는 남편을 노려봤다고 한다.

그 환자는 대학을 잘 졸업하고 각자 취업도 잘한 아들과 딸이 있어 본인의 삶은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오래전 남편이 첫사랑과 바람을 피우면서 그 후로 맘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 분이다. 그렇다고 헤어질 것도 아니었기에 그 상처와 감정의 찌꺼기들은 울화가 되어 가슴에 쌓이고 쌓여서 오래된 슬픔과 분노가 고운 얼굴 결을 따라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오래전 부원장을 하던 시절 중년의 간호사 직원분도 착하디착한 남편이지만 자다가 남편이 미워 발을 꼬집었다고 했다. 그때는 그 상세한 사정을 이야기하진 않아 참으로 왜 그랬을까 하고 넘어갔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제야 이해가 되면서 부인들의 평온한 얼굴 너머의 내면의 맘고생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밖에서 보이듯 그렇게 그녀의 내면은 평온한 것은 아니었다. 흘러간 이야기인 듯 이야기 하지만, 중년의 시간이 넘어가 이제는 무뎌질 만도 한 나이의 그 부인에게도 쌓이고 쌓인 그 슬픔이 지워지지가 않은 듯 했다.

평소 그 부인의 울화병을 알고 있기에 종종 치료해 드렸던 대로 가슴의 화를 풀어주는 약침치료와 한동안 이런 저런 일들로 맘이 심란해서 잠도 잘 못 주무셨다고 하길래 심화를 식히고 불면증을 치료 하는 처방을 해주었다.

며칠 후에 오셔서는 잠도 좀 잘 자고 남편 뒤통수가 짠해 보여서 따뜻하게 밥을 해주었다는 이야기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 부인이 하는 말이 “제가 성격이 왜 이렇게 변했나 모르겠어요” 한다. 하지만 그건 성격이 변한 게 아니라 “병이다”라고 말씀드렸다. “아픈 것이니 치료받으시고, 치료 받으시면 좋아지실 겁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우리 몸이 상처받으면 병이 나고 아프듯, 우리의 마음 역시 상처 받으면 병이 나고 아프다. 보이는 몸의 상처는 얼른 병원으로 쪼르르 달려가 치료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조금씩 살짝씩 차곡차곡 쌓여가도 알지 못한 채 또 상처를 내고 방치한 채로 ‘내가 왜 그럴까…’ 하고 스스로를 탓하며 얼마나 오랫동안 지내고 있었을까.

살짝 상처가 났을 때에도 치료하고 또 묵히고 묵혀서 혼자 그 상처를 보고 엉엉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가까운 한의원으로 오셔서 치료를 받으셨으면 좋겠다.

 

울화로 인한 병, 그 병은 고칠 수가 있다.

동의보감에 ‘칠기(七氣)’란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생각하고 근심하고 놀라고 무서워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사람에게는 ‘칠정’이 있으며 병은 ‘칠기’에서 생긴다고 하였다(七氣者, 喜怒悲思憂驚恐 … 直指曰 人有七情, 病生七氣……).

또 ‘칠정심통(七情心痛)’에서 ‘칠정’이란 기뻐하는 것, 성내고 근심하는 것,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 슬픔, 놀라고, 무서워하는 것을 말하며, 지나치게 기뻐하면 기가 흩어지고, 지나치게 성내면 기가 올라가며, 지나치게 근심하면 기가 가라앉고, 지나치게 생각하면 기가 뭉치며, 지나치게 슬퍼하면 기가 소모되고, 지나치게 놀라면 기가 문란해지며, 지나치게 무서워하면 기가 내려간다고 하였다.

그 중 ‘6정(怒憂思悲驚恐)’은 모두 심기를 울결시켜 가슴을 아프게 하며 오직 기뻐하는 마음만이 기를 흩어지게 할 수 있으므로 6정의 울결을 흩어지게 하고 아픈 것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七情者, 喜怒憂思悲驚恐 盖喜則氣散 怒則氣上 憂則氣沈 思則氣結 悲則氣消驚則氣亂 恐則氣下 六情皆令心氣鬱結所以作痛 惟喜則氣散所以散六情之鬱 能止痛也…).

 

그 부인에게는 치료를 해드리면서 “취미생활과 함께 소소하게 많이 웃으시고 사세요”라는 말을 덧붙여 해드렸다.

아마 나도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아내에게 미운 짓을 많이 했으리라. 일요일 저녁 숙제가 가득한 아이와 함께 넋 놓고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하하하 웃는 아내의 뒷모습을 기쁘게 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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