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보다 최소한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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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보다 최소한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 광진투데이
  • 승인 2017.01.1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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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종 교수/건국대의학전문대학원
장원종 교수/건국대의학전문대학원

1871년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이 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앨리스가 붉은 여왕(Red Queen)의 손에 끌려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붉은 여왕이 앨리스의 손을 잡고 한참을 달렸는데도 제자리에 있자. 앨리스는 "왜 계속 이 나무 아래인 거죠? 내가 살던 곳에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빠르게 달리면 다른 곳에 도착하는데 말이에요"라고 물었다. 

붉은 여왕은 "여기선 있는 힘껏 달려야 지금 그 자리에라도 계속 있을 수 있단다.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아까보다 최소한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라고 대답한다.
1973년 미국 진화생물학자 리 밴 베일런(Leigh Van Valen)은 이 내용을 인용해 '종(種)의 진화와 멸종'을 설명하며 '붉은 여왕 가설'을 내놓았다. 

한 종이 진화할 때 다른 종과 주변 환경 역시 진화하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현 상태를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뒤로 밀려나 멸종하고 만다는 것이다.  

어느 때 부터인가 겨울이면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정말 맞이하고 싶지 않은 손님이 있다. 그 손님이 오면, 축산농가는 비상이 걸린다. 축산시설과 인근지역의 입출입을 통제하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소독약제를 분무를 하고, 그야말로 온 나라가 떠들썩해 진다. 그리고 일부 국민들은 관련된 먹거리가 위험할 수 있다고 하며 손사래를 친다. 정말 맞이하고 싶지 않은 그 손님의 이름은 조류인플루엔자바이러스(avian influenza virus, AI)이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그 손님의 새로운 별명들이 등장하고 있다. 

2003년부터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H5N1형'이라는 별명을 우리가 익히 들어 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H5N6과 H5N8이라는 별명이 등장했다. 그럼, 그 별명은 어떻게 지어질까?

감기의 원인 중 하나로 알려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핵산이 RNA인 바이러스로서, 게놈(genome, 유전자의 총체)이 8개의 분절(단편, fragment)로 나뉘어 있다. 각각 단편이 유전자로서 단백질을 생산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2개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는 표면단백질인 HA(Hemagglutinin)이고, 다른 하나는 NA(Neuraminidase)인데, HA의 경우 18가지(H1~H18), NA는 11가지(N1~N11) 유형이 있다. 이렇게 NA와 HA의 조합에 따라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형을 결정짓는다. 즉, H5N1형은 유형5의 HA와 유형 1의 NA를 가진 바이러스라는 것이다. 그런데, HA와 NA가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감염을 위해 세포에 부착과 감염된 세포에서 증식된 바이러스가 떨어져 나올 때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 두 단백질 때문에 어떤 생물, 즉 사람에게 감염되는 혹은 조류에게 감염되는 특이성을 바이러스에게 부여하게 된다. 또한, 병원성의 높음과 낮음을 결정하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를 닮은 후손을 만들어 다음 세대를 이어 나간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역시 복제를 통해 항상 자기와 똑같은 후손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복제에는 항상 오류가 있기 마련인데, 생물체중 RNA를 핵산으로 가진 바이러스는 특히 이 복제 오류가 많다. RNA를 핵산으로 가진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복제중 지속적으로 오류를 통해 조금씩 새로운 형태의 자손을 만들어 낸다. 

이들 중 대부분은 생존에 실패하지만, 일부분은 오히려 환경에 더 잘 적응하고, 심지어는 좀 더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더욱이 인플루엔자는 게놈이 8개로 나뉘어져 있어 한 세포에 근연관계의 다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동시에 감염되면, 재편성(reassortment)이라는 현상으로 서로의 게놈 일부를 가진 새로운 바이러스가 만들어 질 수 있다. 

최근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자연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재편성이 일어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예가 있었다. 

지난 2009년 전세계를 휩쓸었었던, 신종인플루엔자바이러스가 바로 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로 인한 감기를 '신종플루'라고 명명했지만, 해외에서는 Swine Flu (돼지 인플루엔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해외에서는 돼지 인플루엔자로 알려져 있었을까? 

그 이유는 바이러스의 유전자에 해답이 있다. 그 바이러스에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발견되는 돼지 인플루엔자바이러스 유래 유전자가 2개, 새에서 유래된 유전자 1개 그리고 사람 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즉, 4개의 재편성이 일어난 매우 특이적인 바이러스였다. 이 바이러스의 특징은 매우 전파력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독감바이러스 중에서는 그 병독성이 약한 편이어서 많은 감염자가 발생했어도 사망자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조류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조류에게만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H5N1형의 경우 2003년부터 2016년 4월까지 동남아 등에서 약 850명의 사람감염 사례가 보고된 바 있고, 그 중 449명이 사망하였다. 또 다른 조류인플루엔자바이러스 H7N9형은 2013년부터 2016년 5월까지 중국 등에서 770명의 환자가 발생하여 300여명이 사망하였다. 이와 같이 조류에만 감염을 일으키던 바이러스도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사람에도 감염될 수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지난 2016년 12월 25-26일 포천에서 폐사한 수컷 고양이 1마리와 길고양이 새끼 1마리의 사체에서 H5N6형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고양이에게 감염된 것이 곧바로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조류에서 포유류로 감염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필자는 본 글에서 조류인플루엔자의 국가적인 대책이 어떤 것이 문제이고, 어떤 것을 해결해야 하고, 어떤 방법으로 가야하는지를 하나하나 열거하지는 않겠다. 단지 지금까지 보여준 바와 같이 생물체는 진화의 선상에 있고, 끊임없이 변화해 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우리도 힘껏 달려야 지금 이 자리에 머물 수 있고, 보다 안전한 환경을 만들려면 지금보다 최소한 두 배는 더 빨리 달려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피해를 입은 축산농가와 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분들에게 힘을 내시라는 격려의 말씀을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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