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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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의 <북치고 장구치고>
  • 서울로컬뉴스
  • 승인 2016.10.1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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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김정숙/광진투데이 논설위원

그가 오전 9시경부터 차오르던 오줌보를 백양사 휴게소 화장실에서 비우고 카페라떼 한 잔을 들이켜고 있을 무렵만 해도 세상은 흥분될 일도 없고 설사 흥분될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 날이 이 날 같고 이 날이 그 날 같은 기분이었다.

 특히나 요즘처럼 노모의 병치레가 하루를 멀다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게 할 때면 남은 직장생활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노모 곁에서 아들 노릇이나 폼 나게 해볼까 고민하던 차라 새로운 게 나타나도 심장이 벌떡이도록 흥분 될 일들은 남은 생에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 만 같았다. 그래서 삶이 무료하기도 하고 때때로 우울하기도 했다.

 그날은 그의 무료와 우울이 힘 빠진 머리칼에 허연 눈처럼 내리 앉았다는 걸 알리려는 듯 새벽부터 흩뿌리던 가을비도 휴계소 처마 밑에서 '부슬 부슬' 흩뿌리고 있었다.

 사건은 그때 일어났다.
 안경에 내리 앉은 가을비를 닦아내려 바지 오른 쪽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려는 순간 그의 목울대가 '파르르' 떨리며 진동했다.

 그리고 바로 2미터 가량 앞에서 시선이 멈췄다.
 아니 무언가에 꽂혔다.

 그가 서 있는 바로 앞에 초록의 배춧잎이 직사각형 모양으로 접혀진 채 휴게소를 드나드는 군중들 발길에 차이고 있었다.

 그의 목울대에 머물던 카페라떼가 '꿀꺽' 소리를 내더니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저건 분명 만원 짜리 지폐다!'
 '저걸 어떻게 주워야 쪽팔리지 않게 주울까?'
 찰나의 고민을 마친 그는 손에 쥔 우산에 잠시 눈길을 주더니 비 내리는 휴게소 차양 밖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이 보폭으로 두 걸음만 가면 저것에 닿는다. 딱 ! 두 발자국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우산으로 저 배춧잎을 덮치는 거다.’
 찰나의 고민과 찰나의 계획을 마친 그가 마침내 배춧잎 앞에 다가섰다.
 '자! 이제 우산을 저 배춧잎에 떨어뜨리기만 하면 되는 거다.'

 흥분의 도가니에서 자글자글 끓어오른 그의 볼이 상기되더니 급기야 미열도 나는 듯 했다.
 가뜩이나 밋밋한 생활에 이런 기회는 삶의 활력소가 되는 듯 해서 그다지 싫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툭!’하고 오른 손에 잡았던 우산을 배춧잎 위에 떨어뜨리려는 순간 사달이 일어났다.
 그의 맞은편에서 성큼성큼 다가 온 환경 미화원이 배춧잎 앞에 ‘턱!’멈춰 섰다.
 그리곤 재빠른 손놀림으로 접혀진 사각의 만원 짜리 지폐를 빗자루로 쓸어서 쓰레받기에 ‘훌렁!’쓸어 담았다.

   그리곤 그에게 잡힐 새라 남에게 잡힐 새라 종종걸음으로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순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을 목격한 그가 한 숨을 뱉었다.
‘하!’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듯 미화원의 뒤통수를 쏘아보며 더 큰 한숨을 뱉었다.
‘하아!’
 흥분의 도가니에서 자글자글 끓어오른 그의 심장이 격노로 요동쳤다.
‘엠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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