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를 준비하던 독서당은 살아나야 (독서당을 찾아온 보부상과 지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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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를 준비하던 독서당은 살아나야 (독서당을 찾아온 보부상과 지라비)
  • 성동신문
  • 승인 2020.08.1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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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② 독서당
독서당터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독서당로 191 (옥수 극동아파트 입구)(독서당터 표석, 촬영 서성원)
독서당터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독서당로 191 (옥수 극동아파트 입구)(독서당터 표석, 촬영 서성원)

좋은 곳을 따로 이름 붙였다. 마포 쪽을 서호(西湖), 용산 쪽을 남호(南湖)라고 했다.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동호(東湖)였다. 지금의 옥수동이다. 

왕실에서 지은 제천정(濟川亭)이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힘 있는 벼슬아치들의 별장이 곳곳에 있었다. 그곳에 정자가 아니라 웅장한 기와집이 있었다. 20칸 집이었다. 그곳에서는 한강을 오르내리는 배들이 잘 보였다. 철 따라 이동하는 철새 무리도 볼만했다. 그 집에 등짐을 진 보부상이 들어섰다. 
“집이 어째 이리 조용하우?”

마당에서 비질하던 하인이 머리를 들어 바라보았다. 
“예끼 이 눔아,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들어왔냐?”
하인은 처마 아래에 현판을 가리켰다. 東湖讀書堂(동호독서당)이었다. 
“헤헤, 뭐라고 적혀 있는 거유?”

보부상은 등짐을 댓돌에 내려놓으며 넉살을 떨었다. 그러자 하인이 뒷짐을 지고 말했다.
“어허, 이러니께 니가 개고생이제. 갈쳐 줄 테니 잘 들으잉, 독서당! 알것냐?”
“으잉? 다섯 글자인데유.”
“세 글자만 읽기로 정했어. 물건 살 꺼 없으니께 꺼져 임마.”
보부상은 우물가로 슬쩍 자리를 피했다. 바가지로 물 마시면서 뭉그적댔다. 마침 부엌에서 나오던 처자와 보부상이 마주쳤다. 처자는 빈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지라비였다. 보부상은 반갑다. 

“아이구 아씨, 향기 좋은 머릿기름 가져왔는데 한번 구경하슈.”

지라비는 보부상을 요리조리 살폈다. 고개까지 갸웃거렸다. 보부상의 눈가가 바르르 떨렸다.
“당신, 명나라 사람 아닌가요?”

그 말에 보부상은 냉큼 말했다.
“나 조샌진이무니다.”
“조센징?”
지라비의 커다란 눈이 활짝 열렸다. 예쁜 눈에 의심이 가득하다. 하얗게 질린 보부상이 다급하게 말했다. 

“헤헤, 왜인 같아 보였나유? 흉내 잘 내쥬?”

보부상을 이방인으로 의심하는 지라비, 한림말에 사는 처녀였다. 독서당 아래 동네였다. 그런데 지라비는 하는 짓이 남달랐다. 독서당 학사들이 자기 마을에 있으니 제가 지켜주겠다고 떠버렸다.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와 독서당(讀書堂)](그림) 독서당계회도 일부, 1570년 작자미상,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와 독서당(讀書堂)](그림) 독서당계회도 일부, 1570년 작자미상,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독서당을 알려면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알아야 한다. 공무를 맡은 관리에게 책만 읽게 휴가를 주는 것을 사가독서(賜暇讀書)라 한다. 여기에 선발되면 자유롭게 생활했다. 임금에게 매월 보고서만 내면 무엇을 해도 괜찮았다. 그들은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였다. 그들이 연구하려면 건물이 필요했다. 그것이 독서당이었다.

그런데 주제넘게 지라비가 독서당 학사들을 보호하겠다고 팔 걷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처자를 오지랖이라고 불렀다. 나중엔 지라비(지랖)라고 했다. 그날은 학사들이 먹을 푸성귀를 바구니에 들고 독서당을 찾았던 것이다. 하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너, 총각 학사를 어떻게 해볼라고 이러는 그제? 맞제?”

학사는 다섯인데 그중에 노총각 하나가 껴 있었다. 그날 지라비의 의심을 받은 보부상은 그 길로 독서당을 빠져나갔다. 독서당에 올 때는 두뭇개 나루를 거쳐서 왔었다. 떠날 때는 험한 독서당 고개를 넘어갔다. 지금의 약수동으로 가는 길이었다. 지라비가 나루를 지키는 군졸에게 알렸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보부상은 왜로 돌아갔다. 그는 왜의 간자(間者)였다. 지라비 때문에 독서당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문책을 받았다. 그 후 임진년, 간자는 왜군으로 참전하여 옥수동까지 왔다. 그 자가 독서당에 불을 지르고 말았다. 지라비에게 당한 것을 분풀이한 것이다. 전란 때  한림말에 지라비가 없었다. 있었더라면 조선의 인재 양성소 건물이 사라지는 불행은 막았을 텐데 ……. 

독서당로
독서당로

독서당만 지어줘 봐욧

여기는 2020년 6월 14일, 성동구 독서당로. 나는 독서당을 취재하러 나섰다. 독서당로 4.4km쯤은 둘러보고 글을 써야 할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고개 너머 고개였다. 후회했다. 헥헥거리면서 길가에 앉아서 쉬고 있을 때다. 
“독서당 같은 거나 지어줘 봐요. 존나 할 테니까” 

변성기 소년의 짜증 섞인 소리가 집 안에서 날아왔다. 보지 않으려 해도 집안이 보였다. 알 것 같았다. 소년은 병을 앓고 있었다. 중이염이 아니고 중이병이라는 것. 소년은 '존나'를 알기나 할까. 남성 생식기에서 나왔다는 걸. 알면 더 입에 달고 살까? 말해놓고 보니 발칙해졌다. 그걸 입에…….

독서당의 복원은 지역민의 소원이었다. 그 지역 단체장도 그걸 알고 있었다. 독서당을 복원하려고 했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비슷한 걸 지었다.

“이노무 자슥을 콱, 독서당인문아카데미센터 가면 되잖아. 독서당 지으면 니 같은 게 뽑히기나 할까. 왜놈 똥이다.”
소년의 아버지였다. 독서당 같은 걸 지어주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핑계에 발끈한 것이다. 

“헐, 파덜 어텍. 내 좋아하는 것만 하겠다구요. 독서당에선 그랬다면서요. 조선시대에도 그랬는데 왜 안 된다는 거예욧. 헬조선 떠나고 싶어.”

작가 서성원
작가 서성원

그때다. 소년의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 그래. 해보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려볼게. 내가 동네 부녀회도 하고 자율방범대로 뛰고, 바르게 살기도 하고, 열 가지쯤 하니까 네 소원 하나는 들어줄 거다. 우리 아들은 독서당 학사 될 수 있어. 독서당에 불 지른 놈들이 아직도 큰소리치고 있잖아. 위안부는 돈벌이 한 거다, 반도체 원료 못 주겠다고, 너라면 어떻게 해결할래?”
“국민청원 해도 안 들어 주면요?”
“으응? 독서당을 잘 이해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지 별수 있간?”
나는 알았다, 소년의 엄마가 오지랖, 지라비라는 것을. 그럼요, 독서당 살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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