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전쟁나면 우리 다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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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전쟁나면 우리 다 죽어요?
  • 광진투데이
  • 승인 2017.03.2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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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수/건국대 사학과 교수
한정수/건국대 사학과 교수

필자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초등학생 딸이 있다. 얘가 요즘은 학교 친구들을 데려와 토요일 저녁에 파자마파티를 연다고 난리다. 또 아파트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보고는 너무 귀엽다고 우리도 한 마리 키우자고 애교를 부린다. 딸 바보인지라 반려묘도 데려와 키우도록 하고 왁자지껄한 파자마파티도 허락하였다. 물론 허락 전에는 온갖 조건을 붙이지만 결국은 소용이 없다.

그런 딸아이에게 요즘 부쩍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아이말로는 현재 상황이 너무 무서워서란다.  북한정권의 미사일탄도 발사 소식, 성주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뉴스, 중국의 사드 관련 제재 조치, 김정남 암살 소식 등이 지속적으로 뉴스에 나오다보니 불안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매일같이 거의 생방송하다시피 나오는 대통령 탄핵관련 뉴스도 그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아이의 입에서 드디어 이런 말이 나왔다. “아빠, 전쟁날 것 같은데 그러면 우리 다 어떻게 되요?"라고 말이다. 왜 그러냐고 하니 그냥 하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얼굴  가득히 걱정이 담겨 있었다. 사실 아이의 걱정에 크게 공감되는 면이 있다. 시국이 하수선해서이다. 아이의 눈과 귀, 생각이 이러하다면 그것은 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더구나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경쟁에 시달리느라 불안한데 어른들의 세계는 그 아이들에게 그럼에도 너희들은 공부만 잘하면 된다라고 가르치려 한다. 그러면 해결되는 것일까?

아이는 우리 사회 속 살아있는 천사들이다. 그런 천사들이 불안하다고 느끼는 사회, 결코 정상적이지는 않다. 아이들의 현재는 어떠할까? 학원 아니면 인터넷게임과 핸드폰게임, 아이돌 등이 그 중심에 있는 듯하다. 경쟁이 치열하면 할수록, 사회가 불안하면 할수록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아이의 눈은 열려 있다. 바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말이다. 현재의 그 세계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그래서 아이는 지금까지 배워왔던 상황 속에서 가장 위험한 때를 생각하였는지 모르겠다. '전쟁'과 '죽음', '가족의 해체' 등과 함께 지금껏 누려왔던  많은 것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 인식인 것이다.

도대체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옛 글에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라 하였다. 이는 왕조시대를 살았던 공자님이 정치하는 방법에 대해 물은 데 대해 답하신 말씀이었다. 정말 선견이라 여겨진다. 반면, 현재 우리사회를 보면 대통령은 대통령답지 못하고, 정치인은 정치인답지 못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답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답지 못하다.  책임을 미루고, 남 탓을 한다. '내 탓이오'란 말을 하며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 오기를 막연히 기다리며 또 누군가 해결해주겠지 한다. 혹은 그냥 지금처럼 먹고 살기만 하면 별 상관없지 않겠어라고 냉소하며 자위한다.

이런 어른들의 세계를 아이들은 보지 않는 듯 하면서도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충격은 어른의 배가 된다. 그 기간이 길수록 불안은 불안을 낳고 또 불안을  낳으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찌 해야 아이의 입에서 “아빠 전쟁 나면 다 죽어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답을 잘 알고 있다. 대통령이 대통령답고, 정치인이 정치인답고, 교사는 교사답고, 언론인은 언론인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어른은 어른답고, 자식은 자식다우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나는 누구이며, 누구와 함께 무엇을 희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또 소통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대화가 필요하고 경청이 필요하다. 신뢰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안 될까? 지나친 불신의 사회에 살고 있다보니 늘 내 것부터 챙겨야지 하는 마음이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로를 위해 양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요즘 개학을 하면서 한 학년 올라간 아이는 이제 “아빠, 전쟁나면 우리 다 죽어요?"란 말을 하지 않는다. 벌써 자기가 걱정을 한 들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서일까? 아니면 현재의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잘  정리되어가서일까?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할 틈 없이 학교를 가야하고 학원을 가야해서일까? 혹은 새로운 친구들 사귀느라 바빠서일까? 뭐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체념에서 나온 인식변화일 가능성이 큰 듯하다. 국제 및 정치 사회 상황은 바뀐 것이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아이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부패와 혼란, 갈등, 위기 등이 늘 있는 세계에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혼란스럽고 유난스러운 21세기 한국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살아남은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10년 후 이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드는 마지막 생각은 최소한 앞으로는 아이가 “아빠, 전쟁나면 우리 다 죽어요?"라는 말을 안해도 되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최소한의 소박한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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