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보다 먼저 세웠던 조선 태조의 응방, 응봉산은 한국 매사냥의 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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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보다 먼저 세웠던 조선 태조의 응방, 응봉산은 한국 매사냥의 메카
  • 성동신문
  • 승인 2020.12.2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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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⑭ 응봉산 일몰
일몰 무렵 응봉산에서 바라본 한강. 서성원 ⓒ
일몰 무렵 응봉산에서 바라본 한강. 서성원 ⓒ

○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응봉동

일몰 무렵 응봉산에서 바라본 한강. 서성원 ⓒ
일몰 무렵 응봉산에서 바라본 한강. 서성원 ⓒ

◆ 바람맞은 매

순조 22년(1822년)응봉산 기슭에 더벅머리 총각이 넋을 놓고 앉아있다. 청둥오리가 하늘을 돌다가 한강에 내려앉는다. 더벅머리 사내의 눈이 청둥오리를 따라서 강물로 내려간다. 오후 햇빛에 강 언저리가 번들거렸다. 얼음이다.
“야, 지개, 너 이럴 줄 알았어. 뭐하냐?”

머리를 곱게 땋은 처녀다. 더벅머리 지개가 처녀를 바라본다. 처녀는 숨을 몰아쉰다. 바쁘게 왔나 보다.
“보라야, 추운데 뭣 하러 왔어.”

말은 그렇지만 더벅머리 지개가 웃으며 반긴다.
“지개 너야말로 뭔 청승이냐. 팥죽은 먹었냐?”
“아하, 오늘 동지지. 스무 살 이대로가 좋아. 그래서 안 먹었어.”
“피이, 없어서 못 먹었단 얘긴 곧 죽어도 안 하는구나.”
“보라야, 응사님이 팥죽 챙겨 주라고 하시던?”
“울 아버지 알면서 그런 소리 하고 싶냐.”

보라의 아버지는 응사였다. 그 응사는 알고 있었다. 동지를 핑계로 딸 보라가 지개에게 팥죽 먹이려 한다는 것을. 그래서 집을 나서기 전에 보라에게 못을 박았다.

“먹어서 될 놈 아니다. 몸에 처발라서 매 귀신 떨어내면 모를까. 그놈, 집에 들여선 안 된다. 알았냐?”
지개는 매사냥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 들어온 놈이었다. 지난해 겨울이었다. 보라 아버지는 사람들이 알아주는 응사였다. 딸 이름까지 매 이름으로 지었다. 보라매의 보라. 그런 만큼 매사냥이라면 누구에게라도 뒤지지 않았다. 그런 응사여서 그랬을까. 지개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개는 여태까지 저러고 있다.

“넌 바람맞은 매다. 놀던 물로 가거라, 이 눔아.”

사냥감을 놓치는 매는 하릴없이 하늘을 빙빙 맴돌며 바람을 맞는다.
지개가 바람맞은 매 꼬라지라는 얘기였다. 지개는 한강을 바라본다. 입석포가 빤히 내려다보인다. 장안벌에는 마른 수풀이 펼쳐져 있다. 살곶이벌도 그렇다. 봄부터 가을까지 보였던 말이나 소는 한 마리도 없다. 겨울이니까. 뚝섬 나루로 가기전에 화양정이 아득하다. 광나루로 가는 사람들이 걸음을 재촉한다. 해떨어지기 전에 강을 건너려고. 강 건너 압구정에 연기가 피어오른다. 동지여서 이른 저녁밥을 짓겠지.

응봉산 팔각정. 서성원 ⓒ
응봉산 팔각정. 서성원 ⓒ

◆ 매서운 응사와 시치미 떼고 버티는 지개

응봉산에 응방이 들어온 것은 태조 4년(1395년)이다. 이성계는 매사냥을 좋아했다. 그때는 궁궐을 완성하기 전인데도 응방을 먼저 뒀다. 그 이후, 왕실의 매사냥은 계속 이어졌다.

응방에서 해동청은 인기가 좋았다. 바닷가에 서식하는 푸른빛이 감도는 송골매를 해동청이라고 불렀다. 고려 때는 원에서 해동청을 바치라는 요구가 많아서 조정이 힘들어 했다.

조선에서도 매사냥을 한다고 하면 힘깨나 쓰는 사람이었다. 귀족들이 즐기는 놀이였던 것이다. 매사냥을 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이들은 그들이 쓰는 말을 따라 했다.

'뭘 그리 매만지나.' '매몰차게 그러지 맙시다.' '시치미 뗄 거요?' '바람맞은 거요?' '그 사람 참 매몰차네.'
지개는 응사가 매섭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물러설 지개가 아니었다. 지개의 성은 무씨다. 시전을 떠나며 원래 이름을 버리고 지개로 바꿨다.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마음 속에 무지개를 품고 살았다. 시전에서 돈벌이에 코박고 살다가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지개가 만나는 응사는 성질머리가 매서웠다. 그렇다고 물러설 지개가 아니었다. 응사가 그러거나 말거나 지개는 시치미 떼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응봉산 정상의 소나무와 팔각정의 일몰. 서성원 ⓒ
응봉산 정상의 소나무와 팔각정의 일몰. 서성원 ⓒ

◆ 마음을 훔칠 줄 알아야 하는 매꾼

서리가 내려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응방은 바빠진다. 왕실이나 그 근친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불러 댔다. 김조순은 순조의 장인이다.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집안이 되었다. 순조가 11살에 왕위에 올랐고, 그의 할머니가 정치를 대신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죽게 되면서 김조순이 권력을 쥐게 된 것이다. 지개는 이런 얘기를 시전 바닥에서 다 들었다. 지개에게 시전은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었다. 지개는 상인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응사를 만났다. 물건을 사러 온 응사였다. 그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 매를 데리고 하늘을 날고 싶어졌다. 그게 지난해 가을이었다. 그렇게 해서 응봉산으로 들어온 것이다.

매사냥은 보통 이렇게 진행된다. 매를 데리고 있는 사람은 언덕같이 높은 곳에 선다. 몰이꾼이 꿩을 날게 한다. 배고픈 매는 날아가서 꿩을 발톱으로 찍어서 잡는다.

응방에 속한 응사는 매사냥 오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 매사냥 오는 이들은 왕실 사람들이거나 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매 사냥을 한다. 그러면 매가 사냥에서 성공만 할까. 그렇지 않다. 그런데 결과는 응사에게 돌아온다. 아주 매몰차게. 보라의 아버지가 염려하는 게 바로 이것이었다. 매사냥이 응사 제 목을 누르게 될 수도 있다.

며칠 전이었다. 지개는 매사냥을 익히려고 장안벌을 누비고 있었다. 우연히 보라의 아버지와 마주쳤다. 응사는 우리 속에 매 세 마리를 가둬두고 있었다. 응사가 매서운 눈으로 지개를 쏘아봤다.
○ ○
“울 아빠 만났다며 며칠 전에.”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던 지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해 여름, 10만 넘게 죽었다잖아, 평양에서.”

순조 21년(1821년)에 괴질이 돌아서 길거리에 시체가 뒹굴 정도로 죽었다. 순조 22년도 마찬가지였다. 한성은 물론이고 팔도에 괴질이 떠돌았다. 목숨이 아까운 사람은 두렵게 만들었다. 지개는 시전에 있을 땐데, 사람 만나는 게 꺼려졌었다.
“너도 괴질 얘기 들었구나.”
“오늘부터 너 절대로 만나지 마래. 괴질 옮길 놈이라고.”

지개는 이미 들은 말이었다. 장안벌에서 응사님이 쏘아보면서 그런 말을 했었다.
지개는 말없이 한강을 내려다 본다. 그러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선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라에게 말한다.
“오늘이 동지인 거 너는 알지?”

이 한마디만 남기고 응봉산으로 올라간다. 보라는 지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동지가 어떻단 말인가.
동짓날 해는 짧다. 하늘에서 내려온 노을이 땅에 스미고 강물에 녹아든다. 지개는 응봉산 노을 속으로 점차 사라져 간다. 아버지가 귀가하기 전에 집에 가야 한다. 괴질을 핑계로 지개와 떼어놓으려는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서쪽 하늘 노을이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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