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와 피해자: 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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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와 피해자: 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가?
  • 성동신문
  • 승인 2021.05.2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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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정 /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영어영문학
이원정
이원정

N번방 사건은 2018년부터 메신저 앱 텔레그램 n번방에서 자행된 디지털 성범죄, 성 착취 사건이다. 가해자들은 10세 미만 아동, 초등학생 등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 착취물을 찍도록 협박하고 해당 영상을 공유, 판매하여 전국민적 공분을 샀다. 만약 이 사건의 범인이나 공범이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내 주변에 이런 끔찍한 사람이 있었구나’하고 경악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가해자들이 존재한다. 이렇듯, 가해자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와 함께한다. 그렇다면 N번방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 또한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울YMCA가 조사한 N번방 사건을 보도한 기사 수에 따르면, 총 982건의 기사 중 성차별적인 보도 사례가 150건 발견되었다. 그 중 가해자를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악마’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타자화하고 예외적인 사건으로 인식하게 하는 보도가 14건이었다. 그리고, ‘씻을 수 없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처럼 피해자들이 범죄 피해를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는 표현이 있는 보도가 8건이었다. 이러한 표현으로 헤드라인을 작성해 선정적•자극적으로 보도하고, 수동적인 여성의 이미지나 영상을 사용한 보도가 각 5건이었다.

이처럼 언론은 종종 가해자를 보도의 중심인물로 설정하지 않고 피해자를 주연으로 삼아, 마치 피해자가 잘못한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다. N번방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성범죄를 다룬 보도에서도 피해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의 성범죄 보도 대부분은 해당 범죄는 피해자의 잘못된 처신으로 발생했다는 어조로 말한다. 애초에 피해자가 범죄에 대한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범죄라며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보도로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언론도 피해자에게는 똑같은 가해자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은 매체를 통해 어떤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시청자나 독자들이 눈살 찌푸리는 일이 없도록 올바른 역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건이나 가해자를 가리킬 때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으며, ‘조두순 사건’이 ‘나영이 사건’으로 불리는 것처럼 피해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 서울YWCA 측은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의 책임을 약화하지 않으면서도 성범죄의 심각성을 올바르게 보도해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잘못된 보도는 2차 피해를 심화시키고 피해자들이 피해 회복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언론사 내에서 엄격한 보도 기준을 만들어 또 다른 피해를 주지 않도록, 또 다른 가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언론이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이제 피해자의 앞날에는 행복만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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