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 일’, 내일은 ‘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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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남 일’, 내일은 ‘내 일’
  • 성동신문
  • 승인 2022.02.0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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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 / 성동신문 논설위원
송란교 / 논설위원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들을 극한직업으로 내몰고 있다. 대선 투표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어떤 후보를 선택해야 좋을지 결정할 수가 없다고 야단들이다.

요즘 트로트가 대세를 형성하면서 트로트 가수 선발대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경연대회에 참가하는 가수들의 실력이 비등비등 엇비슷하다 보니 심사하시는 선배 가수분들이 무척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스포츠경기는 사람의 마음이 끼어들 수 없도록 기계나 장비가 측정한 숫자로서 우열을 확실하게 가려준다. 간혹 심판의 오심을 기계가 올바르게 잡아주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나, 참가선수들은 대부분 그 결과에 불만 없이 승복한다. 기계가 판정을 내려주는 숫자에는 사사로운 감정 개입이 배제된 것이기에, 참가자들 사이에서 오해나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나 감정이 관여할 수밖에 없는 가수 선발전에서는 사정이 좀 다른 듯하다. 노래하는 실력이 서로 비슷비슷하면 아무래도 자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기가 쉽다. 문제는 마음이 끼어든 판정이다. ‘너’와 ‘나’의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되면 탈락자들의 불평불만과 비난이 있을 수 있다. ‘객관적이지 않고 아주 주관적이라고’, ‘나는 모르는 심사위원인데 너는 아는 심사위원이었다’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을 모두 알고 있는 심사위원이 얼마나 될까마는, 심사위원들과의 평소 친소관계가 당.탈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심사위원들도 지극히 객관적으로 판정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면서 아주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눈길도 마음도 애매모호(曖昧模糊)하다.

누군가를 선택해야 함에 있어, ‘좋은 쪽’으로 선택할 때는 나와의 좋은 감정이 작용하고, ‘나쁜 쪽’으로 선택해야 할 때는 나와의 나쁜 기억들이 항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누군가를 떨어뜨려야 한다면 나의 뇌 속에 저장된 온갖 나쁜 기억들만 떠오를 것이고, 누군가를 합격시키려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온갖 좋은 추억들만 떠오를 것이다.

선택의 기로(岐路)에 섰을 때, ‘어떤 쪽’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뇌는 좋은 감정이나 나쁜 기억을 소환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결정을 함에 있어,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내 기억 속의 좋은 감정이 떠오르니 내 기분도 좋아질 것이고, ‘나쁜 쪽’으로 생각하면 나쁜 감정을 소환해내니 내 기분도 덩달아 나빠지게 될 것이다.

여러 명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중에서 더 ‘좋은 쪽’으로 선택해야 정신건강에 이롭다. 결국에는 좋은 감정이 더 많았던 사람이 선택될 것이다. 덜 ‘나쁜 쪽’으로 선택하겠다고 하면, 여하튼 간에 나쁜 감정이 떠오르게 되고, 그러면 은연중에 자신의 기분도 나빠진다. 나쁜 감정은 자신을 더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을 경험으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 명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할 때는 반드시 더 ‘좋은 쪽’으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대선 투표일이 가까워지면서 유권자들의 마음도 바빠지고 있다. 이 후보도 싫고 저 후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 명은 꼭 뽑아야 하니 기분이 더 더럽다고 한다. ‘기권하면 될 일 아닌가?’라고 물으면, ‘투표할 권리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라고 외친다. 그렇다,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들은 지금 괴로워하고 있다. 투표를 포기하기도 싫고 뽑을 후보들도 싫다고만 떠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은,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보자는 것이다. ‘후보자들이 다 나쁘다’라고 평하기 전에, ‘덜 나쁜 후보를 뽑아야 하겠다’라고 하기 전에, ‘덜 좋은 후보는 밀어내고 더 좋은 후보를 뽑겠다’라고 생각의 관점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더 나쁜 후보’를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

‘덜 좋은 후보’를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더 좋은 후보’를 생각하면 스트레스는 확실히 사라진다.

옆집에 쓰레기가 쌓이면 내 집 아니라고 다른 사람들과 합세해서 쓰레기를 옆집에 버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절대 ‘내 일’이 아닌 ‘남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자고 나면 그 쓰레기 더미가 커져서 내 집 대문을 막아선다. 그때 서야 ‘내 일’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면 이미 늦다. 오늘은 ‘남 일’인 것이 내일은 ‘내 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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