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세상읽기] 가족 돌봄의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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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세상읽기] 가족 돌봄의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 이상국 기자
  • 승인 2022.02.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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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 문화기획자
이상국 

서울과 강릉을 오갈 때면 주로 버스보다 KTX 기차를 이용하는 편이다. 교통수단으로 내가 기차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기차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좋다. 그 편안함 속에서 나는 주로 음악을 듣거나 종이 잡지를 읽는다. 가끔은 영화도 보고 라디오도 듣는다. 릴리아 작가의 <초록 거북>이란 그림책도 얼마 전 강릉행 기차에 비치된 종이 잡지를 읽다 만났다. 

<초록 거북>은 아빠 거북과 아기 거북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기차에서 <초록 거북> 이야기를 읽는 순간, 나는 편찮으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릴리아 작가의 전작 <파랑 오리>가 '치매'라는 주제로 입양 가족의 엄마와 자식 이야기를 그렸다면, <초록 거북>은 노년에 돌봄의 역할이 전환되는 아빠와 자식의 부자 관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초록 거북>에서 아빠 거북은 점점 늙고 약해지면서 아기 거북의 도움을 받게 된다. 아기 거북은 성장하여 어른이 되고 언젠가부터 아빠 거북의 일을 대신하면서 아빠의 존재를 알아 간다. 그리고 아빠를 안아주며 말한다.

“아빠의 두 발이 멈추지 않도록, 함께 산책할 거예요.”
“걷는 게 너무너무 힘들어 지면.... 아빠의 발이 되어 줄 거예요.”

자식이 성장하면 어느새 부모와 자식의 역할이 바뀌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 순간에 어쩌면 가족은 함께 서로 더 의지하고 각별한 사이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빠와 아들의 관계도 그렇다. 내가 어렸을 적, 농사를 지으며 쌀 반 가마니는 거뜬하게 짊어지시는 아버지가 우람차고 강인하게 보였다. 그런 아버지를 곧잘 따라다니면서 쌀 배달 일을 거들었다. 하지만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께서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부터는 과거의 우람차고 강인한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의 뇌출혈로 인해 나는 자연스럽게 성동구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강릉에 내려와 몸이 아프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틈틈이 홀로 농사짓는 어머니의 일을 도왔다. 하우스에서 수확한 고추를 운반하고, 방앗간에서 갓 도정한 햅쌀을 트럭에 실어 쌀 배달도 나갔다. 아버지가 맡았던 역할 일부를 경험하며 매년 가을마다 한결같이 한해 농사일을 마무리 해오시던 아버지의 존재를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재활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아버지는 집에 와서도 평생 일궈온 농사일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현실에 많이 답답해하신다. 그로 인해 내가 하루 한 번 휠체어 탄 아버지를 모시고 산책 나가는 일도 우리 가족의 중요한 일상이다. 산책하는 동안 아들인 나는 아버지의 발이 되어 준다. 휠체어를 밀고 소가 있는 축사에 들리거나, 최근 귀농하여 이사 온 아버지 친구의 집에 방문하는 것도 어느덧 아들인 내가 함께 챙겨야 할 몫이 되었다. 

그림책 <초록 거북>에서 세월이 흘러 성장한 아기 거북이 아빠 거북을 등에 지고 높은 곳으로 오르는 모습처럼, 어느 순간에는 아빠와 아들의 관계에서 돌봄의 역할이 전환되는 시점이 온다. 그 시기가 나에게도 다가왔다는 것, 어쩌면 청년인 나도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일까? 어리기만 했던 아들이 아버지를 돌보는 어른이 되니 <초록 거북> 속 이야기가 더 공감된다. 그리고 <초록 거북>을 통해 가족 돌봄의 방향을 새롭게 인식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젠 나도 이 세상 아빠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게 너무나 많다. 그렇게 오늘도 아빠와 아들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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