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에서 세상 인심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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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에서 세상 인심을 읽다
  • 강서양천신문사
  • 승인 2022.08.1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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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강서문화원 원장
김진호 강서문화원 원장
김정희 (세한도) 1844년, 종이에 먹, 23.9×108.2㎝, 국보 제180호, 국립중앙박물관
김정희 (세한도) 1844년, 종이에 먹, 23.9×108.2㎝, 국보 제180호, 국립중앙박물관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난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추사체를 창안한 명필로 잘 알려져 있지만 금석학, 고증학, 경학 등에도 통달한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다.

증조할머니가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이고 증조할아버지 김한신이 영조의 부마도위, 친부, 양부가 모두 판서 출신의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가문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자랐다.

가문이 좋고 머리도 좋고 글씨도 잘 쓰고…. 이처럼 추사는 어려서부터 남들의 부러움을 모두 안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추사는 까다롭고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추사가 동지부사로 잘나가던 1840년 55세의 나이에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유배길에 오른 추사가 전주를 지날 때 당대 3대 명필 중 한 명인 창암 이삼만(1770~1847)을 만나게 되었다. 창암은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글씨를 보여주며 평을 부탁했는데, 글씨를 한참 보던 추사가 던진 말은 “노인장께서는 지방에서 글씨로 밥은 먹겠습니다”였다.

전주를 지나 추사의 절친 초의선사(1786~1866)가 머물던 전남 해남 대흥사에 머물게 되었다. 대흥사에는 조선의 명필 중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1705~1777)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는 현판이 있었는데, 이를 본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원교의 현판을 당장 떼어 내게. 글씨를 안다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현판을 걸 수 있나”라고 하며 ‘무량수각(无量壽閣)’이라는 현판의 글씨를 써주고 달게 하였다.

이렇듯 추사는 남의 글씨는 폄하하고 자신만이 최고라는 자존심이 무척 강했다.

그러한 추사는 1840년부터 9년간 제주도 대정현에서 위리안치 된 채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탱자나무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음식은 거칠어 목에 넘어가지도 않았고 날씨는 변덕스러워 걸핏하면 앓아누웠다. 

지금이야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고 온갖 산해진미가 있는 관광지 제주도이지만 그 시절에는 최고 고통스러운 유배지였던 것이다.

그런 제주에서 추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서책뿐이었다. 제자 이상적(1804~1865)은 그런 추사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청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구한 귀한 서책과 세상의 소식들을 제주도를 찾아 전해 줌으로써 추사는 세상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유배 기간동안 학문에 정진하고 인격 수양에 힘써 추사체를 완성한다.

유배 기간인 1844년 추사는 <세한도(歲寒圖)>를 그려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진 자신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해준 제자 이상적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렇게 탄생하게 된 <세한도>는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지만 두 사람의 우정을 추운 겨울속의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세한도> 발문 마지막 구절에 ‘적공(翟公)’이라는 사람이 언급된다. 기원전 130년 한나라(전한)때 적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정위라는 높은 벼슬에 오르자 찾아오는 많은 사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이후 실각되자 그 많던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 대문에 거미줄이 쳐질 정도였다.

그 뒤 다시 정위에 오르니 외면했던 사람들이 다시금 찾아들게 되었다. 이에 적공은 다음과 같은 글을 대문에 붙이고 철새처럼 찾아오는 사람들을 일절 만나지 않았다.

一死一生乃知交情(죽고사는 갈림길에 서봐야, 사귐의 정을 알게 되고)

一貧一富乃知交態(망하고 흥해봐야 사귐의 형태를 알게 되고)

一貴一賤交情乃見(귀하고 천함을 겪어봐야 사귐의 정이 보인다) 

아마도 추사는 귀양살이 9년 동안 세상의 물살처럼 오로지 권세와 이익만을 쫓는 사람들의 인심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류에 휩싸이지 않고 소나무처럼 한결같은 제자 이상적을 보았기에 <세한도>라는 명작을 남겨 지금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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