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없이 피아노와 함께하는 하루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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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없이 피아노와 함께하는 하루를 보냅니다!
  • 강서양천신문사 권해솜 기자
  • 승인 2022.08.30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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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 대한민국 피아노 조율 명장 1호

 

지금까지 만나온 시니어 중 가장 바쁜 사람을 꼽으라면 대한민국 피아노 조율 명장 1호 이종열(84) 조율사가 딱 생각난다. 몇 주 전 그가 일하는 예술의전당에 갔으나, 연주자가 갑작스레 피아노 조율을 요청하는 바람에 잠시 잠깐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원래도 바쁜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방송을 몇 번 탄 탓(?)에 얼굴 알아보고 사진 찍어달라는 이도 적지 않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더욱더 빛나게 해주는 피아노 음색의 예술가 이종열 조율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편집자 주>

 

이날 이 조율사는 며칠 전 독일에서 날아온 스타인웨인 피아노를 손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피아노를 살 때 조율이 되어 오지 않을까? 이 조율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조율해서 보내기는 하는데 잘 안 맞아요. 동양사람 손에 맞게 건반이 눌리는 깊이를 다시 설정해야 하고요. 소리가 트이지 않아서 도저히 (공연장에) 나갈 수 없어요.”

이 비싼 새 피아노와 힘겨루기를 한 지 3일째. 피아노 속 240개 현을 만지고 또 만져서 수개월이 지나야 겨우 공연장에 내보낼 수 있다. 

“연주용 피아노는 최소 1시간 40분 정도 소요하고, 이 피아노는 새것이라 긴 시간을 두고 제대로 된 음색을 잡아야 해서 천천히 보고 있어요. 예술의전당 음악당에 피아노가 11대 있습니다. 피아니스트는 공연 전에 그중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소리가 나는 피아노를 고릅니다. 공연장에 나가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걸려야 해요.”

이 조율사는 연주자보다 소리에 더 민감하다고 말한다. 피아니스트는 연주만 집중하면 되지만 조율사는 피아노 속 모든 부분의 정보는 물론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알아야 한다.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칠 줄 아는 것 또한 기본이다. 

 

우리 가락 통해 음악을 알게 되다

전주 이씨 종가에서 태어난 이 조율사는 양반 집안의 정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시조창을 잘 부르시던 할아버지 덕에 우리 가락을 듣고, 음악을 접했다. 

“해방 후 한국전쟁 나기 전까지는 어른들이 기분 좋으니 풍악을 곳곳에서 했습니다. 계속 들으니 외워지더라고요.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거죠. 그러다 새로운 음악에도 관심이 커졌어요. 피아노 연주회가 있다기에 교복 차림으로 쫓아다녔어요.”

못 이기는 척 사촌을 따라서 다니게 된 교회에서 풍금을 치면서 오르간 교본을 섭렵했다. 580개 넘는 찬송가 전곡을 칠 수 있게 되니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소리를 만드는 악기 속이었다. 

“페달을 밟으면서 풍금 연주를 하고 싶어서 교회에 다녔습니다. 풍금을 치다 보니 같은 장조의 3음계도 건반에 따라 소리가 다 다르게 나잖아요. 공구 통을 교회로 가지고 가서 풍금을 뜯어보고야 말았습니다.”

뚜껑을 열기는 했는데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만지면 만질수록 다른 소리가 났다. 서점에서 일본어로 된 건반악기 조율 서적을 찾아서 보게 됐다. 이를 계기로 조율사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고 한다. 

“해방된 그해 학교에 들어갔어요. 한국식 교육을 받았으니까, 일본어를 따로 학습해서 조율 교본을 봤습니다.”

책 말고는 달리 선생이 없었다. 독학으로 풍금 조율을 시작해 피아노, 쳄발로, 파이프오르간까지 조율할 수 있게 됐다. 지금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조율사가 이종열 조율사의 제자이자 후배다.

올해로 조율 인생 66년, 2007년에 피아노 조율사 최초로 대한민국 명장 1호가 됐다. 세종문화회관에서 15년, 지금은 27년째 예술의전당 음악당 피아노를 전담해 조율하고 있다. 여의도 KBS홀과 모차르트홀에서도 그의 조율이 빛을 발하고 있다.

 

66년 한결같은 ‘조율의 시간’

피아니스트 뒤의 예술가로 살던 그를 세상이 주목하게 된 데에는 2019년 그의 인생을 담은 책 ‘조율의 시간’이 있다. 이때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S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조율사의 손을 거치면 음에서 빛이 난다”고 극찬했다. 훨씬 이전인 2003년에는 개인 피아노를 가지고 연주 여행을 다니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폴란드)이 완벽한 연주 이후 이 조율사를 무대로 불러 청중의 박수를 받아내기도 했다.

“올 6월에 내한한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도 세계를 다녀봤어도 이런 피아노는 처음 본다고, 너무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대단한 피아니스트들이 얼마나 많이 와서 이곳에서 연주하는데요. 기억은 다 못해도 저에게 좋은 얘기를 해준 연주자는 다시 한번 이름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조율사가 빚어낸 소리는 피아니스트와 관객 모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세상 까다로운 피아니스트의 예민함을 뛰어넘는 감각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위선양’하며 살아왔다고 이 조율사는 자부한다.

“나는 이 일을 독학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최고 조율사를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피아니스트가 저에 대한 평가를 해주는 것을 보면 저 또한 탑 클래스일 거로 생각합니다.”

 

‘유퀴즈’에 나왔다가 다 늙어서 떴다?

그는 요즘 조율할 시간도 바쁘지만 다른 활동으로도 바삐 지낸다. tvN 인기 프로그램 ‘유퀴즈’에 나온 뒤 더 그렇다. 담백하고 스스럼없는 입담으로 유퀴즈를 진행하는 유재석과 조세호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이 조율사는 “다 늙어서 떴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면서 멋쩍게 웃었다.

“제가 그렇게 TV에 나와서 후배 조율사들이 편하대요. 예전에는 조율하러 온 총각이나 아저씨로 불렀는데 지금은 ‘선생님’이라고 부른답니다.”

이후 인터뷰 요청도 많고, 부르는 곳도 많지만, 거의 매일 2회 공연이 있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했다. 건강만큼은 잘 챙겨야 하는데 지난 3월, 그것도 조성진의 연주가 있던 기간에 코로나19에 걸려 비상이 걸리고야 말았다고. 

“2회 공연이 잡혀 있었어요. 한 번은 생방송, 다른 하나는 관객이 들어오는 공연이었어요. 조성진의 기획사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냐고 사정해도 코로나19니까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조성진 씨 연주회가 너무 중요했지만 제가 밖에 못 나가니까요. 내가 빠진 예술의전당은 상황이 이렇게 되는구나 실감한 거죠.”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현역의 삶을 사는 이종열 조율사. 연배 비슷한 친구들이 자주 가는 노인복지관이 어딘지 사실 관심도 없다고 했다. 

“제 관심 분야를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으니 가도 말이 안 통할 겁니다. 조율에 대해 아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피아노 연주 얘기는 들어봐도 직접 한 번도 안 본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은퇴한 동창도 가끔 전화하지만, 저는 현역으로 일하고 있고, 자리를 지켜야 하니까 만날 수 없어요. 나는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서 술도 안 먹는 사람입니다.”

그는 명품 조율사가 명품 피아니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명품 피아니스트가 명품 연주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조율사의 역할이라고 했다. 

“연주력이 좋아도 피아노가 좋지 않으면 감동이 안 와요. 피아노 보이싱(소리를 깎고 음색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해서 소리가 완성되면 제가 먼저 감동합니다. 그걸 내주면 피아니스트가 감동하고 관객도 감동하는 거죠.”

이 조율사의 방 앞에는 명장이 있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대한민국 명장’이라고 쓰인 명패가 걸려있다. 그는 오늘도 오늘의 연주자를 위해 최고의 소리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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