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에,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려고 중랑천에 간 적이 있다. 중랑천은 한강 지류 중 하나로, 경기도 양주시에서 발원하여 의정부시를 거쳐 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을 말한다. 둔치 아래쪽에서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데 팔순쯤 되어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손수레를 끌고 내 앞으로 지나갔다. 나는 일상의 일이려니 하고 건성으로 보아 넘겼다.
내가 중랑천에 처음 가게 된 건, 달리기 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만 해도 둔치가 정비되지 않아 사람들의 통행은 잦지 않았다. 지금은 강줄기를 따라서 둔치에 도로가 나 있고 노면도 포장이 되어서 이용하는 사람으로 넘친다. 찾는 사람이 많으니 자연스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하곤 한다.
스케이트를 신고 강변도로를 따라서 달렸다. 맑은 강물이 햇빛에 은색 비늘을 반짝거리며 덩달아 따라오고 있다. 파란 하늘에 펼쳐진 하얀 구름은 오직 자연만이 표현할 수 있는 멋진 풍경이다.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곧게 뻗은 길 위로 질주하다 굽어진 도로를 따라 돌아서니 조금 전에 보았던 노인이 손수레를 세워 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손수레는 오래되고 낡아 보였지만 바닥에는 온기가 느껴지도록 두툼한 담요가 깔려 있고 손잡이 부분은 고운 천으로 예쁘게 감겨 있었다. 안에는 노파 한 분이 타고 있었다. 손수레를 세워놓은 노인 곁으로 많은 사람이 지나갔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는 연인이 있었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보였다.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며 흥에 겨워 지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낯선 분위기가 새로웠던지 연신 곁눈질하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노인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수레 곁에서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시 후 노인은 다시 손수레를 끌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손수레에 타고 있는 노파는 수족을 쓰지 못하는 분이었다. 얼핏 보기에 언어 구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분 같아보였다. 노인은 숨이 벅찬 듯 가끔 손수레를 도로 가장자리에 세워두고 강 건너를 주시하기도 하고 한가롭게 헤엄치는 오리 떼를 바라보기도 했다. 간혹 두 사람의 얼굴이 마주칠 때면 입술을 힘없이 떨어뜨리며 싱거운 웃음을 주고받았다. 이따금 노파의 턱으로 침이 흘러내리면 노인은 거친 손으로 쓱쓱 닦아 주었다. 사랑이란, 체로 걸러진 고운 결정체와 같이 수많은 어려움과 아픔이 여과 과정을 거치면서 쌓이는 진실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 내 머리에 떠올랐다.
예전에 ‘오아시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사회 부적응자인 종두와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와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그들은 사랑이 깊어갈수록 갈등이 고조되고 난관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결국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사랑을 이루게 된다. 정신과 육체가 온전치 못한 이들의 이야기가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바라본다면 쉽게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곧 우리이기 때문이다. 두 노인의 모습이 나의 관심사가 된 것도 그들 역시 이 시대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또 한 굽이를 돌아서니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과속으로 달리던 두 자전거가 맞부딪치며 싸움이 벌어졌다. 그들에게 주위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거친 욕설까지 오갔다. 중랑천변에 새로운 길이 생기면서 시도 때도 없이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 남을 고려하지 않은 자전거의 과속 질주 등 공중도덕의 실종이 덩달아 생겼다. 이기주의가 만연하면서 훈훈한 정도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노인 내외는 자의반 타의반 그 곳에 있어야 했다. 반 시간이 지나서야 두 사람은 싸움을 멈추고 각자의 길로 갔다. 그들은 스스로 승자라고 우쭐해 할지 모르겠지만 그곳에 모여 있던 많은 사람에게는 두 사람 모두 완전한 패배자였다. 싸움이 끝나고 주변이 대충 정리되자 노인은 젊은이들이 옥신각신하면서 쓰러뜨렸던 꽃대를 곧추세웠다. 그리고는 땅에 밟힌 꽃 몇 송이를 주워 노파에게 전해주었다. 순간 그곳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그리로 모아졌다. 사람들의 얼굴 모습은 각기 달랐지만 사랑을 전하는 노인의 모습에서 그곳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진실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 관심사가 다른 사람과의 비교 선상에서 오르내리는 것도 아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노인이 우리에게 보여준 행동은 세상사 욕심에서 벗어나 맑은 마음을 많은 사람에게 전파하였다는 것이다. 손수레 뒤로 유채꽃 물결이 일렁이며 노랗게 웃고 있다. 바람을 타고 출렁이는 꽃물결이 모두에게 환한 미소를 보낸다.
우리는 가끔 세상 사람들을 조급하게 비판하고 그것으로 세상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대상을 비판하지 않고 그것을 존중하며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행위의 참된 의미가 저절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건강한 사람이나 심신이 불편한 사람 모두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중랑천 둔치, 아직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다툼이 있기는 하지만 노부부가 보여준 가슴 찡한 사랑의 물결이 멀리 퍼져 나갈 때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해지리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