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적인 사진과 역설적인 시를 버무리는 로맨스 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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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적인 사진과 역설적인 시를 버무리는 로맨스 가이
  • 서성원 기자
  • 승인 2023.01.25 1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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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이 만난사람] 임정의 사진가&시인
1990년 상계동 아파트와 판자촌 풍경과 시(詩).

태어난 사람은 자연이나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사람과 자연과 도시, 이 모든 것은 시간 위에 얹혀 있습니다. 
시간은 세월입니다. 사람과 자연과 도시는 세월 속에서 풍화됩니다. 낡아서 볼품없이 초라해지거나 겨우 버티기도 하고, 바람 속으로 사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세월에 풍화되지 않는 사람과 자연과 도시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사람과 자연과 도시를 만나보려 합니다. 
사진가 임정의, 그분은 세월에 풍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롯이 빛나는 사람입니다.  
건축 사진은 후진에게 맡겨두고 지금은 물안개 사진을 합니다. 여전히 현업 사진작가로 봐야 합니다. 그가 사진으로 남겨 놓은 도시, 현재 진행형인 자연 사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30만, 40만 장인지 작가 자신도 모른다고 합니다. 사진만 바라보고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이보다 생생한 증거는 없습니다. 사진가이면서 시인으로 살아가는 임정의를 만나 볼까요. 

요즘에는 보기 어려운 사진 필름 밀착 프린트

'뮈에인myein, 내 마음 속의 오목렌즈' 사진전 서울대미술관

나는 2023년 새해 벽두에 임정의 님의 전시회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뮈에인 myein , 내 마음 속의 오목렌즈>

사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임정의를 모르는 분이 있을까요.
한국 최초로 건축 사진 전문가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4대 사진가 집안이어서 그렇습니다. 작가의 선대로 한국 리얼리즘 사진 1세대 거장 임석제, 한국전쟁 종군기자 대장 임인식이 있고 작가의 아들 임준영은 건축과 순수예술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으니, 이들의 사진은 곧 한국 사진 역사입니다.  
반가운 소식을 듣고 나는 전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2023년 1월 13일, 서울대미술관입니다. 
세월을 거슬러 오롯이 빛나는 작가의 사진과 마주하니 행복했습니다.

전시장에서 옥수동 사진을 설명하는 임정의 사진가

Q : <뮈에인, 내 마음 속 오목렌즈> 전시에 참여하게 된 계기
“1984년(1990)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건축 사진 특강할 때 양윤재 교수와 '저소득층의 주거지형태 연구'라는 책을 만들었어요. 그것이 기념비적인 책이 되었는데 그 인연으로 서울대 미술관 측에서 연락을 준 게 아닌가 싶어요.”

사진전은 임정의, 김정일, 최봉림, 김재경 공동 전시입니다. 1층부터 3층에 걸쳐서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 공간이 널찍합니다. 임정의 작가가 촬영한 곳은 봉천동, 난곡동, 신림동, 중림동입니다. 그리고 작가가 살았던 금호동, 행당동입니다.

Q : 성동구 금호동 행당동 시절
“1961년 5·16군사혁명으로 북촌 가회동 집을 정리하고 우리 가족은 이민 가려고 했지만 이민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1963년부터 성동구 금호동 산 64번지에서 살았어요. 1973년부터는 신장(현재 하남시)이라는 곳의 농가에서 꽃과 양계를 하다가 1980년 초 부모님은 미국으로 이민 가고 나는 홀로 남았어요. 현재 남동생과 여동생은 미국에 살고 있지요. 부모님은 1998년 한국으로 모셔와 현재 국립현충원에 계세요.
금호동 산 64번지는 금호동 중에서도 맨 산꼭대기에요. 뭘 사려면 금남시장을 가야 하는데, 달동네(산동네)라 무척 힘들었지요. 우리 어머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Q : 동네 사진을 찍게 된 계기
“어린 시절 북촌 가회동에 살 때, 아버지가 찍어준 사진들을 봤지요. 우리 가족의 삶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금호동 산 64번지, 집 앞마당에서 바라본 주변 모습들을 촬영한 것이 계기가 되어 동네를 사진으로 기록하게 되었어요.”

전시장에서 금호동 산 64번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있을 때입니다. 
임정의 사진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나이가 들어보였습니다.
“아하, 여긴 옥수동 뒷산인데.”
1960년대 사진을 보고 바로 아는 게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아시냐고 내가 물었습니다. 큰아버지가 금호동에 살아서 자주 왔었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두 분 중년 신사는 임정의 작가의 고등학교 동기였습니다. 60년 전의 산의 능선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금호동 사진 관련해서 KTV에서 다큐를 찍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살던 금호동 산 64번지를 찾아가서 전과 후의 모습을 비교해 보려고 했지만 고층 아파트로 변해 찍을 수도 없었고 동호대교옆 금호동 파노라마 사진도 전에 모습과 비교해 찍어 보려고 했지만 모든 곳이 고층 아파트로 변해 찍을 수가 없었어요.”

금호동 산 64번지에서 바라본 한강 너머 압구정(좌), 옥수동 고갯길 방향(우)

Q : 동네를 기록한 사진 내용
“한국전쟁 이후 경제 개발을 하면서 옛것은 없애버리는 문화가 되었어요. 그래서 기록하는 사진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어요. 특히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거치면서 서울은 도시 개발을 했습니다. 내가 건축 사진을 하면서 도시가 탈바꿈하고 불량 주거지가 바뀌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지요.”

Q : 동네 사진을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은 일
“달동네 모습을 찍으러 가면 삶의 터전인 자신들의 집들을 재개발하는 데 지장이 있을까 봐 싫어하는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못사는 동네를 찍어 북으로 보내려는 간첩이라고 신고하는 일이 벌어진 적도 있었구요.”

Q : 사진의 역할
“기록은 기억보다 강력한 언어입니다. 지난 과거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진의 역할은 역사가 되고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영상 언어로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죠.
앞으로는 콘텐츠가 중요할 거예요.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다큐멘터리들은 미래 세대들에게 크나큰 자산이 될 겁니다.”

작가는 돈이 되지 않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했습니다. 상업사진을 하는 것보다 인내와 끈기가 필요했다고 회고했습니다. 


Q : 앞으로 계획
“내 사진은 아날로그 시대의 필름과 인화지로 만들었는데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있어요. 경제 개발로 사라지려는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모습을 남겨두려고 해요. 아파트 공화국 문화는 자연을 파괴하고 있어요. 자연과 공간의 조화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내 과제지요. 
물안개 피는 아침 풍경이라는 주제로 시와 사진을 엮어 사진집을 준비 중이고 2022년 가을 전쟁기념관 전쟁 사진 아카이브를 만들면서 부친의 사진을 중심으로 금년 6월까지 전시하고 있어요.”

물안개 피는 아침을 담은 임정의 작가 사진 (출처: https://www.foto.kr/gallery9-1)

이번 사진전에 사진과 나란히 시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달동네 추억3'은 절창입니다. 
'누구에게나 집으로 가는 길이 있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이 끊겨버렸습니다.' 
로맨스 가이 임정의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물안개 피는 아침 시집이 나오면 그가 영원한 청춘으로 살아온 세월을 느껴보려 합니다. 시집, 언제 나옵니까?

임정의…

조부 임석제, 부 임인식으로 사진가 집에서 태어남. 아들 임준영에 이르기까지 4대 사진가 집안. 건축사진가로 국내외 건축도시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 1970년 신문, 방송보도 사진, 1975년 공간 사진부장. 현재 청암사진연구소 운영. 1997년 제2회 광주비엔날레 초대작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사진가 인물 아카이브에 생애사 구술 기록 영구 소장. 《임정의 포토그라피》 《르 포르뷔제를 보다》 《한국의 공간》

<덧붙임>'뮈에인 myein , 내 마음 속의 오목렌즈' 사진전은 2023년 3월 5일까지입니다. 그의 사진과 시를 놓치지 말기 바랍니다.
<작가 서성원(itta@naver.com)>

<뮈에인 내 마음속의 오목렌즈> 사진전 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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