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동대문 을 당협위원장 김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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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동대문 을 당협위원장 김경진
  • 동대문신문
  • 승인 2023.03.0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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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담아 전심전력으로 동대문만 보면서 달리겠습니다"
지역 특성 살리도록 자신감·활력 불어넣는 것도 정치인의 중요한 역할

국민의힘은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상임공보특보단장을 지낸 김경진 국회의원을 동대문 을 조직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앞서 동대문 을 지역구에는 이준석계인 은아 국회의원(비례대표)을 조직위원장으로 내정했지만 최고위원회의 최종 의결을 받지 못했으며, 김경진 의원이 올해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김경진 위원장은 1966년 전남 장성군 출신으로 광주 금호고등학교(8) 졸업 후 고려대 법대 학부와 동 대학교 석사과정 중 1989년 사시 31회에 합격해, 1992년 사법연수원 21회 수료, 1995년 군법무관을 마친 후, 1995년 인천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20161월 국민의당 입당 후 광주 북구갑 지역구에서 제2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1대 선거 낙선 후 20217월 윤석열 대선캠프에 합류했다.

한편 김경진 위원장은 내년 치러질 제22대 총선 여당인 국민의힘 동대문 을 지역구 출마가 점쳐지고 있다. 본지는 배봉산에서 지난달 23일 김 위원장을 만나 그동안 걸어왔던 인생과 정치 철학에 대해 물었으며, 앞으로 동대문구 지역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에 대해 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Q. 먼저 지면을 통해 동대문구민께 인사를 부탁드린다.

A. 안녕하세요. 국민의힘 동대문구 조직위원장으로 이번에 임명된 김경진입니다. 직접 찾아뵙고 한 분 한 분 손잡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지면으로 먼저 인사 올리게 됐습니다. 곧 골목에서 거리에서 시장에서 한 분 한 분 찾아 뵙고 사는 이야기, 힘든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Q. 동대문구와 인연이 있어 동대문구로 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인연이 있었으며, 어떤 추억이 가장 기억이 남나? 더불어 수십 년 만에 동대문구를 다시 찾은 느낌은?

A. 1983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해 동대문구에서 자취생활을 했습니다. 시골에서 막 올라온 촌놈 눈에 동대문구는 화려한 서울의 모습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저에게 서울은 일종의 희망이랄까? 처음 맡아본 도회지의 햇볕, 공기,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음. 당시는 어질어질하게 많던 자동차, 시장통 냄새 등 그 모든 것이 희망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동대문으로 왔습니다. 매일 아침 '제가 20대 젊은 시절 밟던 그 길을 다시 걷는구나, 내가 이제 여기서 뭔 갈 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에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겁기도 하고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합니다.

 

Q. 위원장 인생 여정을 듣고 싶다.

A. 저는 7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시절 대한민국 농촌은 정말 가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없는 형편에 맏이라고 저는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혜택은 다 받고 자랐습니다. 어려우니 될성싶은 놈에게 자원을 몰아주는 게 당시의 상황이었는데, 그런 점에서 전 참 운이 좋았던 거 같습니다. 그 기회를 제가 잡았으니 말입니다.

원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사실 그때 아이들이 아는 직업이라 봐야 대통령, 장군, 과학자가 전부긴 했습니다. 그때는 내가 뭔가 만들어 이 나라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법이라는 게 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줄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법을 통해 공정을 회복하고 상식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봤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법대에 진학했으며, 그리고 사법고시에 붙어서 검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누군가 억울한 사람이 있다고 칩니다. 재판까지 가면 이미 그 억울한 사람은 만신창이가 됩니다. 검사는 그 억울함이 지속되는 걸 가장 일선에서 막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죄인을 벌줄 수도 있지만, 저는 그 전에 누군가의 억울함을 막을 수 있다고도 봤습니다.

하지만 공직이라는 게 여러 해 근무하다 보니 확실히 한계가 있었습니다. 법이라는 틀보다 더 넓은 공간에서 나를 있게 해준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했을 때 떠오른 게 정치였습니다. 정치라면 그 억울함이 발생할 수 있는 요인조차, 없앤다고 말하는 건 너무 이상적입니다. 적어도 그 요인을 최소화해서 발생의 근원을 제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치가 이상만으로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두 번이나 떨어지고 한 번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안에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자리가 국회의원이었습니다. 검사 시절 법에 따라 사건을 집행하면서 느꼈던 답답함이 있었는데, 입법의 영역인 국회는 그 답답함과 사회적 미진함을 원천에서 해소하는 영역이었습니다.

 

Q. 행사장에서 인사말을 하실 때면 고향 이야기와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

A.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면서, 제 어릴 적 살던 그 나라가 지금의 이 나라가 맞는지 가끔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시절, 어쩌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부강해 감개무량하게 그 시절을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고향에 대한 추억은 어찌 보면, 대한민국을 조금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제가 여든쯤 되었을 때, 오십 줄인 지금을 다시 한번 회상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Q. 20대 국회의원 시절 대표적으로 했던 일들은?

A. 20대 국회에서 4년 내내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서 일했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라는 말이 지금은 비교적 흔한 표현이지만, 제가 의원을 하던 시절에는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때는 '공유경제'라는 이름으로 플랫폼을 구축해 영세 사업자들을 그 울타리에 가두고 수수료를 약탈하거나 불법 파견근로를 일삼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소상공인의 억울함을 푸는 데 정치인으로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과방위에 있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두 가지만큼은 제가 소임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첫 번째가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창설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것과 두 번째는 대한민국의 자주국방, 더 나아가 K-방산의 초석 중 하나가 된 한미 미사일 지침 폐기에 앞장섰다는 점입니다.

과학기술 혁신 본부는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찾아 나서는 연구개발(R&D)의 컨트롤타워 같은 곳입니다. 이게 한 해 약 20조가 들어가는 국가사업인 데다 주무 부처가 연구 당사자인 과기정통부와 돈을 집행하는 기재부로 나뉘어 있어 늘 줄다리기가 심했고, 그와 중에 주요 정책이 표류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걸 과학기술혁신본부 체제로 바꾸면서 독립적인 조직으로 만들어냈습니다.

한미 미사일 지침은 아시다시피 어떤 조약도 아닌 상태에서 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막는 독소 지침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사일은 단지 무기체계에 그치지 않는 게 결국 미사일에 들어가는 엔진 기술이 우주산업의 핵심이 돈입니다. 이 둘은 서로 맞물려가면서 발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한국은 미사일 지침으로 인해 결국 대우주 시대로 나아가는 데 있어 엄청난 장해를 받고 있었다. 이 문제의 기초를 해결한 것입니다.

 

Q. 20대 국회의원 지역구(광주 북구갑)에서 의미 있게 추진했던 사업은?

A. 많은 사업을 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반산업단지를 광주과학기술단지에 유치한 부분입니다. 일단 초기예산이 4천억 정도인데, 앞으로 4조 이상의 예산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두 번째로는 광주 임동 북동지역에 오래된 방직공장들을 회사 소유주들과 광주시청과 협의해 이전을 확정지은 것들이 큰 기억에 남습니다.

 

Q. 지금 동대문구에 가장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A. 동대문 발전에는 3가지 철학적 방향성이 있어야 합니다. 자연이 아름답고, 깨끗한 동대문 과학기술 연구기관과 같이 분명한 상징성이 있는 기관이 존재하는 동대문 교통접근성이 편리한 동대문 이 3가지가 핵심입니다.

이필형 청장이 추진하는 '꽂의 도시 동대문, 저탄소 동대문'은 자연이 아름다운 동대문 개발의 방향을 의미합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이필형 청장의 이러한 동대문 발전 방향이 성취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 예산을 최대한 끌어오도록 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동대문구에는 전국 최대의 약령시, 인삼상가 등이 있고, 경희대 한방병원이 있으므로 이와 연계한 과학기술연구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관시설을 제대로 들어서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 수준의 한약, 한방 의료의 메카가 되어야 합니다.

교통접근성 문제는 장안동·답십리동 일대는 지하철 대중교통의 맹지입니다. 과거 정치권에서 경전철을 추진해 왔지만,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예산 부담으로 인해 이를 기피해 왔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들의 전철 연계성을 놓여주는 것이 동대문 발전의 중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너무 낮아 미래가 걱정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하며, 저도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동대문 을 지역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로 바뀌었고, 특별한 특징 없는 베드타운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 특히 장안동은 예전 불법 안마시술소가 사라지고 경남호텔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도시의 활력을 잃었다.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이 있나?

A. 여전히 동대문에는 봉제산업이 존재하고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일하고 있습니다. 봉제산업 의류산업을 전통산업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고 세계패션을 주도할 수 있도록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으면 될 것입니다.

경희대·외국어대·삼육대·서울시립대 등 주요 대학들이 포진하고 있어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대학과 연계해 젊은이들이 연구 창업, 살아갈 수 있는 일자리 기반시설 마련이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연결된 중랑천과 청계천의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주민들이 운동하고, 이 공간 속에 꽂 축제와 같이 다양한 문화적 이벤트를 만들어 활력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울러 동대문의 노포 식당들을 하나의 브랜드로 묶어내는 아이디어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동대문은 서울의 오래된 구도심으로서 기초 기반이 있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훌륭한 식당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낡음을 어떻게 레트로(Retro)한 것으로 포장해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Q. 위원장께서 동대문구에서 꼭 하고 싶은 사업은 꼽자면?

A. 고려대-경희대-외국어대 등 대학벨트, 홍릉 연구단지-대한민국 최대의 약령시를 결합해 제약 바이오 벨트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습니다. 버드나무 잎에서 추출한 성분을 가지고 감기 몸살 두통 심장병에 특효인 아스피린을 만들어냈듯 식물 속에는 다양한 효능은 가진 물질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물질들의 특성을 찾아내고, 인간에게 유용한 부분만을 추출하고, 대량 생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 지역에는 약령시에 판매되는 다양한 약용식물들과 대학의 연구인력, 홍릉의 전문 연구시설이 같이 있어 잘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잘할 수 있는 것을 잘 결합하게 만드는 것도 정치인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Q. 동대문구민으로부터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나?

A. 편안하면서도 치열하게 일했던 정치인, 그 누구보다도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열정으로 살았던 사람, 그런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꼭 해야겠다는 말이 있다면?

A. 세상이 참 시끄럽습니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겠다는 사람이 욕을 먹고, 죄를 지은 사람이 큰소리치는 무척 피곤한 세상입니다.

그렇게 많은 국민들에게 정치는 멀어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진심담아 전심전력으로 동대문만 보면서 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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