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여인 시장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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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여인 시장을 아시나요.
  • 성광일보
  • 승인 2024.07.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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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미 라
수필가.
성동문인협회 수필분과장
황미라 수필가.

오늘은 동묘벼룩시장에 있다는'여인시장 표지석을 찾아볼 생각이다. 표지석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위치가 궁금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겨울바람 마다않고 서둘러 나선다. 점퍼 깃을 세워 얼굴을 가려보지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걷다보면 청계천 영도교에 닿는다. 영영 못 건너올 다리, 영영 이별 다리라는 뜻이다. 이 다리에는 단종과 단종비 정순황후定順王后의 애달픈 사연이 있다. 

단종 3년(1455)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여 세조가 되고 단종은 상왕으로, 정순왕후의 대비가 되었다. 1456년'성삼문'박팽년 등이 추진하던 단종보위계획이 발각되어 상왕으로 있던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를 가야 했다. 의덕왕대비(정순왕후)는 군부인으로 격하되어 궁에서 쫓겨났다. 영도교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 갈 때 정순왕후와 이별한 마지막 장소다. 단종은 이 날 이 다리를 건넌 후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순흥에서 유배 중이던 금성대군이 계획한 또 한 번의 단종복위계획(1457년 9월)이 드러나면서 영월에서 사사(1457년 10월)되었기 때문이다. 영도교를 건넌지 1년4개월 뒤의 일이다. 정순왕후는 단종과 헤어진 후 영도교 근처 정업원에서 초암을 짓고 평생(82세)을 살았다.

 영도교를 지나 동묘벼룩시장이 시작되는 곳에 왕도넛 가게가 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갖가지 도넛을 바라보며 머뭇거린다. 맛은 있지만 칼로리가 높아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이다. 벼룩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방금 걸어 왔던 길과는 완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아주 다양하고 진귀한 물품들이 매장뿐 아니라 보도에도 진열되어 있다. 오늘은 여유롭게 구경할 시간이 없다. 북적거리는 인파를 헤치며 매의 눈으로 목표물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어느 블로그에서 찾은 단서는 공중전화 부스와 우체통이다. 이 둘 사이에 표지석이 있었다. 이미 손에 들려있는 꽈배기를 먹으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는데 공중전화 부스만 하나 있고 우체통은 아예 없다. 정황상 전화 부스 있는 곳이 확실하다. 그런데 표지석이 안 보인다. 진열대에 가려졌나 싶어 뒤로 들어가 살펴봐도 표지석이 없다. 없어진 걸까, 못 찾은 걸까,
결국 주변 풍경만 사진으로 몇 장 남겼다.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된 열여덟 정순왕후는 조석으로 도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통곡했다. 비통한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그 소리를 동네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정순왕후 만큼 신분의 변화가 심했던 왕비가 있었을까, 결혼 2년 동안 왕비에서 대비로, 대비에서 군부인으로, 군부인에서 이제 관비로 전락했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가담했던 신숙주는 관비가 된 정순왕후를 자신의 종으로 달라고 했던 일도 있다. 세조가 '신분은 노비지만 노비로 부리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정순왕후는 씻을 수 없는 수모를 당했다. 세상과 맞닥뜨린 삶이 얼마나 두렵고 막막했을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처음에는 시녀가 동냥해 온 것으로 끼니를 이었다. 차츰 생활에 적응하며 직접 명주를 짜서 댕기나 저고리 깃, 옷고름을 만들어 팔았다. 비단에 자줏물을 들이는 염색업도 했다.

빌어먹을지언정 세조가 내려준 집과 음식은 받지 않았다. 이런 사연을 알게 된 동네 아낙들이 끼니때마다 채소를 가져다주었다. 궁에서 금지시키자 정순왕후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채소를 파는 척 하며 은밀히 갖다 바쳤다. 거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당시 홍인지문 밖은 왕십리나 뚝섬에서 재배한 채소를 거래하는 장터가 있었는데 여자들만 모여서 채소를 파는 곳은 여기 밖에 없었다. 이런 사연을 품고 있는 곳이'여인시장'이다.

엄혹한 시기에 힘없는 여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일탈을 감행할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단지 그에 대한 측은지심, 동병상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세조의 도움을 과감히 거절한 기개에 반한 걸까. 생육신을 비롯한 많은 유생들은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비판하였다. 민심도 이와 다르지 않았음이 가장 큰 이유라 생각한다. 민심은 그를 보호했다. 민중은 서로를 끌어안는 재주가 있다. 민간신앙에서 왕비계 신으로는 유일하게 정순왕후 송씨를 '송씨부인 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당시에는 영도교예 얽힌 단종과 정순왕후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혼인 등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이 다리를 건너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애써 영도교로 찾아온다. 영도교와 한 묶음인 여인시장도 마찬가지다. 세월 따라 모양은 바뀌어도 흐르는 이야기는 지속된다. 여인시장 이야기가 시실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설령 전설이라 해도 그 자리에 표지석이 하나 놓일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혹여 지금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면 안내판을 붙여 두는 방법도 생각해볼 일이다. 언 몸을 녹이려고 잔치국수를 먹는다, 멸치육수가 진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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