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 와서. 이런 곳이라서!” 70대 시니어들 축구를 동네서 즐기다
- ‘행복접근권 15분도시’ 성동도 5분정원도시-생활권이동 정책 추진 중
프랑스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한국의 많은 언론들은 “최소인원으로 이루어낸 최상의 성과”로떠들썩하다. 개막식 퍼포먼스가 카톨릭을 조롱했느니 아니었느니 하는 논란도 있다. 하지만 진짜 주목할 한 가지는 파리올림픽이 ‘기후올림픽’으로 치러졌다는 사실이다. 우리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줄 개념과 삶을 바꿀 모델을 우리는 올림픽서 나누었다.
파리올림픽은 ‘노 에어콘’을 주창했다. “올해는 가장 시원한 여름”, “이젠 에어콘 없이 못 살아!”를 외치고 있지만, 다른 방식의 에어콘이 파리엔 준비돼 있었다. 70미터 아래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회전시켜 건물냉각에 쓰는 시스템. 기온보다 6도씨를 내릴 수 있다. 1990년대부터 깔린 이 시스템은 루브루 박물관 등 파리 요소요소에 100여 킬로미터 퍼져있다. 용적율을 버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띄우면 바람길이 난다. 파리의 오래된 돌집은 그 자체로 시원함을 유지한다. 파리올림픽은 새 경기장도 거의 짓지 않았다. 선수촌에서 15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기존의 경기장들을 재배치했다. 티켓을 소지자들에겐 대중교통이 무제한 제공됐다. 도보와 자전거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건, 파리가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2020년 재선된 이달고 시장은 “보행자를 위한 파리”를 표방했다. “15분 도시”가 그 슬로건. 그의 선임 시장 베르트랑 들라노에는 2001년부터 ‘무인자전거 대여시스템 벨리브’나 ‘센강 인공백사장 조성’ 등 ‘일상의 삶과 시민 중심 정책’을 펴왔다. ‘시위와 혁명’의 나라 파리시민들도 이러한 정책에는 반대시위를 하지 않았고, 정책자들을 연속 당선시켰다. 미래는 준비와 실천으로만 온다.
◆15분 도시 - 성동도 일상정원도시, 생활권 중심 이동권 등 정책 추진 중
이 15분 도시 개념의 창안자는 카를로스 모레노 프랑스 팡테온-소르본대 경영대학원 교수. 그는 지난 5월 29일 성동구 시립성동청소년센터에서 특강을 했다. “15분 도시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에 대한 근접성(proximity)를 높이는 것”이라고 그는 주창했다. 직장서 15분이면 집으로 갈 수 있는 삶. 아이들은 걸어서 유치원과 학교에 가고, 저녁준비를 위해 가까운 마트에서 신선식품들을 살 수 있다. 산책과 운동을 매일 하고, 휴일이면 가족들이 슬리퍼를 신고 영화나 연극을 즐길 수 있는 일상. 즉, 주거와 직장, 교육과 소비, 문화와 의료 같은 복지-삶의질을 결정하는 요소들이 충분히, 언제든 접근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는 도시.
정원오 구청장은 모레노 교수를 직접 찾아간 바 있고, 그의 책 『도시에 살 권리』에도 추천사를 썼다. 15분도시 아이디어 워크숍을 성동의 주민들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성동구가 펴오고 있는 ‘5분 일상정원도시 성동’이나 ‘공공셔틀버스로 생활권 중심의 이동권 확보’도 이러한 움직임의 일부. ‘15분도시 성동’ 체험을 시도해 봤다. 청계천과 중랑천 자전거-보행로를 따라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를 타면 청계천 중랑천을 낀 작은 동네, 송정동-용답동-사근동에 도달할 수 있다.
◆송정동 - 중랑천과 송정제방 ‘원유로 프로젝트 7일장’의 풍부함
송정동은 중랑천변의 동네다. 송정제방을 만들면서 송정동은 중랑천을 밀어부치고 자리잡았다. 중랑천은 송정동서 굽는데, 이 마을도 한글의 ‘ㄴ’ 영어의 ‘L'처럼 굽었다. 그러니 송정동은 강과 제방의 동네다. 강엔 거위들과 가마우지, 여름 백로와 겨울원앙들의 집이 있다. 가끔 인천바다서 놀러온 갈매기들을 중랑천서는 만날 수 있다. 제방 안쪽과 위쪽앤 자전거길과 보행로(짙은 풀숲에 뱀도 산다)와 체육시설들이 밀집해 있다. 많은 주민들과 시민들이 걷고, 뛰고, 대화한다.
송정제방엔 봄이면 벚꽃이, 여름엔 장미가 무성하다. 송정제방 매미학교 아이들은 우화를 보고, 매미잡이에 열중한다. 가을이면 이곳서 노랗게 은행잎이 진다. 송정동 골목엔 제비들도 난다. 집 지을 진흙이 근처에 있는 덕분이다. 중랑천 중간엔 모래톱이 제법 형성돼 있다. 굽은 천이기에 가능한 일일 게다. 최근 맹꽁이 서식지도 사람들 관심에 올랐다. 나이 80대에도 뛰고 달리는 ‘슈퍼시니어’들이나,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뇌과학자(달리기만큼 뇌에 좋은 일이 없어!)들에게 송정동의 강과 제방은 유혹할 만한 주거 환경이다.
송정동에서 제일 핫한 곳을 들라면 ‘원유로 프로젝트’를 꼽는다. 오래 비어있던 낡은 빌라(코끼리 빌라 옆)를 리모델링해 도시적 삶을 집약해 넣었다. 옥상에는 서울가드닝클럽이 조성한 정원이 있다. 지하엔 앤티크 하우스가 스페인과 이태리의 로컬을 테마로한 카페를 운영한다.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욕실은 2층에 있다. ‘실용적이진 않지만 예뻐서’ 집에 들이고 싶은 브랜드를 내세운 SBBP(스몰브랜드 빅픽처)도 있고, 이태리 장인의 공방을 옮겨놓은 가죽공방 베데로도 경험 가능하다. 요가방과 책방과 제로웨이스트샵과 강아지 고양이 용품점도 만날 수 있다. ‘엄선된’ 도시적 삶의 체험에 필요한 이동시간은 불관 1분이다.
원유로 프로젝트의 정수는 아무래도 7일장이다. 원하는 누구나 보따리를 풀 수 있다. 매주 토요일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린다. 고교생부터 시니어까지 참여자들도 다양하다. 근처 송정동과 성수동에 사는 거주민들로부터 수원서 제주서 온 이들까지 있다. 자신이 만든 소품들, 오래 모았던 골동품, 유학을 위해 정리할 옷가지와 소품을 파는 이들까지……. 이들과 대화하면서 ‘삶은 얼마나 풍요하고 다양한가!’ 증거들을 본다. 증거를 보면, 비로소 변화가 시자할 수 있다.
◆용답동 - 용답도서관 + 용답푸르미르상점시장가 + 운동장의 다양성
중랑천을 따라 살곶이다리를 건너고 청계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용답역과 만난다. 용답동은 주거와 시장이 하나처럼 형성돼 있다. 중앙로랄 수 있는 십자로에는 상가들이, 그 이면도로에 빌라들이 빼곡하다. 옛 시골 5일장은 집에서 뜯어온 호박이며 오이를 파는 시골아낙부터 요일마다 장을 옮겨 다니는 보상-부상 같은 떠돌뱅이 장꾼 그리고 고정매장을 둔 상회들의 복합공간이었다. 용답푸르미르상가시장도 퇴근뒤 직장인들이 회포를 풀만한 주점부터 장바구니를 채우는 주민들까지 모두 만족할 만한 공간들을 두텁게 형성했다.
용답동은 ‘편리한 교통’도 갖고 있다. 청계천 따라 성수역서 신설동까지의 지선이 용답역을 내준다. 7호선 답십리역도 가깝다. 번잡해서 그렇지 자전거 이동도 용이하다. 평지이기 때문이다. 서울공유자전거 따릉이는 이곳서도 가깝고, 유용한 이동수단이다.
용답동 아파트 재개발 사업지 근처에 성동구립 용답도서관이 있다. 금호도서관과 더불어 ‘미디어센터’가 있어 미디어 창작의 기쁨까지 누릴 수 있다. 도서관이 일상의 교육과 문화를 충족할 핵심시설이라는 면에서 용답도서관은 주민들에 큰 혜택이다. 공부와 세미나와 함께 누리는 모임과 휴식도 가능하다. 하늘정원은 개방돼 있다. 그 정원으로 갈 때, 우주비행의 역사와 별자리들을 엿볼 수 있다. 우주가 우리들의 생 안에 들어올 기회다.
용답초등학교 옆 잔디구장을 찾았다. 근처 전농천은 생태하천으로 재단장했고, “꽃보다 예쁜 우리 어르신들을 환영합니다”라는 복지관도 신설-운영되고 있다. 정원이 예쁜 용답글로벌체험센터도 지척이다. 70대의 시니어들은 이곳서 매주 토요일 축구를 한다. 12시부터 2시까지. 이 폭염 아래서도 경기가 벌어지고 있을까? 웬걸! 뜨겁고 열정적인 경기다. 저리 뛰어다닐 체력과 기상은 놀랍고 부러운 일이다.
“젊어서부터 한 거니까 가능하지요!” 양홍선 부단장이 말해준다. 이곳은 드물게 ‘잔디구장’이다. 부상의 큰 걱정 없이, 70애들이 이곳서 뛸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다. “70대가 축구한다고 배려도 많이 해줘요!” 서울시 직영시설인 이곳을 정기적으로 이용 가능한 것이 세 번째 이유다. 무엇보다 큰 동력은 매번 30여명은 모인다는 인적 구성이다. 이날은 노원구 팀과 친선게임을 가졌다. 노원팀은 9월 전국 경기에 나간단다. ‘기적’은 여러 조건의 조합에서 꽃핀다.
◆사근동 - 옛삶 새겨진 삶의 터서 새 실험 꾸준히
용답동 건너편 동네가 사근동이다. 최근 용답역서 청계천 위로 난 나들교로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옆엔 사근용답 도보교가 ‘육교’처럼 설치돼 있다. 사근제방길에서도 턱을 올라야 연결되고, 용답역쪽에서도 길게 보행로를 걷고서야 접근할 수 있는 다리다. 공유가 나온 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해 유명세를 탔지만, 이용은 난감하다. 유모차나 휠체어는 이동불가능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청계천으로 길게 형성된 자전거(보행로) 도로에서 ‘턱 없이’ 바로 이동 가능한 나들교를 볼 때마다, 기반시설로서의 ‘길’ 역할을 상기하게 된다. 이동약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생기면 많은 것들은 절로 해결된다. 용답푸르미르상점가시장이 크게 활성화된 시점은 이 나들교 신설 이후였다. 용답동서 사근동으로 가는 길이 윤동주의 시 ‘내를 건너 고개로’의 ‘마을로 이어진 길’이 된 것도 이 다리 이후일 것이다.
청계전 제방을 올라 사근동쪽을 바라보면, 고개다. 사근동은 ‘사근고갯길’을 가진 동네. 동네 한가운데로 4211번 버스가 운행한다. 마을버스같지만, 강남까지 이어진다. 1990년 사근동엔 물난리가 났다. 그해 9월 엄청 비가 내렸는데, 물을 퍼내지 못해 사근동이 물에 잠겼다. 그래도 사람들은 책가방 머리에 이고, 출근가방 가슴에 품고, 웃으며 학교와 직장에 갔다. 그 흔적은 지금 사근빗물펌프장으로 남아있다. 펌프장을 왼편에 두고, 사근고개로 향해 걷는다.
모세혈관이 몸의 말단까지 피를 보내듯, 사근동은 골목길이 촘촘하다. 골목마다 긴 역사가 만든 신구의 풍경들이 있다. 학생들이 많이 주거하는 골목길답게 카페와 식당은 발랄하다. 골목길로 들면 옛기억 새록새록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쉬운 부분도 많다. 동네엔 도서관이 없다. 서울숲 같지는 못하더라도, 가벼운 옷 입고 뛸 만한 숲길도 없다. 청계천은 큰길가를 지나야 하니 마음 다짐을 해야 한다. 사근동 도시재생센터는 닫혀있었다. 사근마을활력소도 제 역할에 못 미친다 들었다. 서울시 진행 모아타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곳곳에 붙어있다. 도시가 어디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개념과 모델에 대한 소통과 합의는 우리들 내에서 충분하지 않다. 사근동은 그 모습을 보여주는 최전선이다.
마을마다 다른 조건과 지향을 갖는다. ‘15분 도시’도 하나의 완성된 모델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을은 언제나 진행형이다. 희망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있다. 사근동엔 남이장군을 모시던 사당을 표지석이나마 부활시킨 이들이 있다. 이십여 년 가까이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밥상이 8월에도 열린다. 사근동 역사만들기 현수막, 그 옆으로 마을모임도 활발하다. 사근동만의 새로운 공간을 실험하고 있는 폐가킹-이들의 목표는 도시 청년들에게 제2의 고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으로 향하는 7번 골목길도 열려있다.
15분 도시! 그 목표는 ‘충분한 삶의 질-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마을사람 누구나.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쉽게. 그 도정의 완성은 민과 관과 학이 소통하며 협력해야만 가능하다. ‘15분 도시’를 만들 본질도 힘도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