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인터뷰를 통해 만나본 단체나 기관장들은 자신이 속한 단체를 설명할 때 통상 ‘년도(年度)’를 들어 이야기했다. 하지만 최근 만나본 우순옥 이사장은 사단법인 양천여성장애인회 디딤돌(이하 ‘디딤돌’)의 연혁을 설명하면서, 내내 자신의 나이를 기준으로 디딤돌의 역사를 되짚었다. 이는 그에게 있어 ‘디딤돌’은 자신의 살아온 궤적과 다름없었으리라 짐작하게 했다.
“제가 1961년생이에요. 제 나이 서른아홉에 이 단체가 만들어졌어요. 당시 신월종합복지관에서 담당 팀장님이 양천구의 여성장애인들을 발굴해 10명 이내의 자조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 게 시작이었죠. 시간으로 보면 꽤 오래된 단체인데, 크게 발전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네요.”(웃음)
우순옥 이사장은 디딤돌의 제3대 회장을 맡고 있다. 정확히는 디딤돌이 2018년 6월 서울시로부터 사단법인 설립 허가를 받아, ‘이사장’ 직으로 단체를 이끌고 있다.
“제가 쉰 살에 투표를 통해 디딤돌 회장이 됐어요. 당시에는 지금보다 너무 열악했어요. 어르신 몇 분이 사무실에 나와서 겨우 자리를 지키는 정도였죠. 그나마 있던 구청 지원도 끊길 상황이었고요.”
우 이사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이 된 후론 디딤돌의 존립을 위해 법인 설립이 시급했고, 기꺼이 사비를 털어 자본금을 만들고, 단체 운영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디딤돌의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여성장애인들의 활동 공간도 유지되고 있다.
현재 디딤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회원은 40~50명가량이다. 이들은 신정동에 소재한 디딤돌 사무실에 나와 오카리나와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 회원들에게는 양천구푸드뱅크마켓센터의 지원으로 주 1회 빵과 떡 등이 제공되고, 양천구 거주 장애인 및 가족을 대상으로 한 상담과 옷 수선 사업 등이 이뤄지고 있다.
앞서 2003년에는 신월문화체육센터에서 여성장애인만을 위한 ‘수영교실’을 최초 운영해 주목받았으며, ‘장애인수영 한강건너기 대회’ 후원과 생활체육 대회 및 걷기 대회 참여 등 대외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 왔다.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싶지만 여건상 그럴 순 없고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수업은 자체적으로 관련 자격을 소지한 회원이 강사가 되어 가르치고 있어요. 좋은 대학을 나온 고학력자가 와서 가르치는 것도 좋겠지만,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한테 배우면 맞춤형으로 스스럼없이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운영하고 있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우순옥 이사장은 심리상담사 1급 자격 소지자이자 각종 장애인 기능경기대회에 수차례 출전해 양장(양복) 부문 1위를 놓치지 않은 뛰어난 실력자다. 그는 디딤돌 회원들을 다양한 직종의 ‘장애인 기능대회’에 해마다 출전하도록 해, 교육을 받는 뚜렷한 목표 의식과 성취감,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저는 단체장이라면 소속된 단체에 대한 희생과 헌신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희생과 헌신이 없으면서 단체장이라고 말하기엔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큰 성과가 있는 단체는 아니지만, 회원들이 모여 빵을 나누고 취미생활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우순옥 이사장은 ㈔양천여성장애인회 디딤돌 이사장이자 ㈔한국장애인정보화협회 양천구지회장, 양천구장애인체육회 부회장 등 다양한 직함을 가지고 있다. 모두 ‘봉사직’에 가까운 일들이지만, ‘단체장’이기에 자신의 성향상 그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저는 네 살에 앓았던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하지만, 살면서 ‘수영’과 ‘운전’을 가장 잘한 일이라고 꼽아요. 저는 남들처럼 빨리 달릴 수는 없지만, 수영과 운전으로는 원하는 어디든 갈 수 있죠. 특히 장애인들에게 수영을 많이 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수영으로 인해 몸이 건강해지기도 하지만,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고 모임을 가지면서 마음이 행복해지거든요. 저도 처음 수영을 할 때는 여성들만 있는데도, 남들 앞에 벗은 내 몸을 보이는 게 쉽지 않아서 한 달이나 고민을 했어요. 그만큼 자존감이 낮았던 거죠. 그런데 막상 수영장에 가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보는 사람이 괴로울 순 있어도 제가 괴로울 건 없잖아요.”
우순옥 이사장은 2006년 마라도에서 제주 송악산까지 수영으로 횡단하는 기적을 써냈다. 이 경험이 자신의 인생을 바꾼 ‘변곡점’이었다고 했다. 이후 해협 횡단의 용기와 자신감을 발판으로, 서울시장애인수영연맹 회장을 맡아 ‘장애인수영 한강건너기 대회’를 열기도 했다.
여성장애인의 사회 참여와 교육 활동을 중점 지원하고 있는 장애인회는 전국적으로 양천구가 유일하다. 당초 디딤돌은 ‘여성’과 ‘장애인’이라는 이중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여성장애인들에게 복지서비스 지원과 권익 향상, 더 나아가 사회 참여의 기회 제공을 통해 자립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돕고자 설립됐다.
“디딤돌을 운영하면서 구청의 지원이 있긴 하지만, 민간의 관심과 후원이 아쉬울 때도 많죠. 회원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도 여건이 안 될 때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늘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젊은 장애인들이 많이 오셨으면 한다는 거예요. 젊은 분들이 많이 오시면 프로그램도 더 활성화되고, 교육을 통한 일자리 연계도 수월할 수 있거든요.”
우순옥 이사장은 디딤돌 운영에 있어, 더 어려운 사람들이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작은 마음이라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뒷받침이 될 수 있길 기대했다.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자신과 발 맞춰 동행할 젊고 바른 인성의 열정 있는 동력자가 나타나주길 바라고 있다.
“제가 신앙인인데, 제게 이런 약한 부분을 주지 않았더라면 세상에서 너무 왈가닥으로 재밌게만 살까봐 신이 날개를 조금 꺾어둔 것이라 생각해요. 저희 아이들도 그런 얘기를 해요, 하나님께서 엄마에게 장애를 준 건 다 이유가 있어서일 테니 너무 슬퍼하거나 힘들어하지 말라고요. 그게 아니었다면 엄마가 지금보다 더 안 예쁠 수도 있었을 거라고요.(웃음) 그러니 더 긍정적으로 살아야죠.”